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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Aug 26, 2009

   금요일 오후에 귀국해서 오후 늦게 울산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주말 토요일(15일) 저녁에 벨렝에 가서 옛날 친구 파울로 목사와 라이지 사모, 그리고 훌쩍 자라버린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헤아려보니까 86년 여름에 헤어진 후 만 23년만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동안 알만한 사람만 만나면 제 메일 주소를 묻던 친구였습니다. 사실 그 친구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공부할 때 함께 했던 기간은 2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했던 기간의 12배에 가까운 시간을 만나지 못했지만 얼마나 반갑게 환영해 주는지 주 안에서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집 한켠에 있는 게스트 룸에는 우리를 위해서 준비한 깨끗한 침대 시트며 침대 끝에 놓아둔 타올들과 머리맡 탁자에 꽂아둔 아름다운 꽃들에 반기는 주인의 정성이 담겨있었습니다. 브라질 풍습에 따라 밤 9시경에 풍성히 준비된 식탁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오는 소식을 듣고 500Km나 떨어진 곳에 사는, 헤어질 때 다섯 살짜리 따님은 남편과 함께 그 때 자기만한 아이들 셋을 데리고 친정에 와 있었습니다. 그 때 세살배기 아들은 곧 결혼할 약혼녀와 함께 우리를 기다렸고,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막내 따님도 애인과 함께 우리를 기다렸습니다.

 

   지난주일 사역은 아침 9시와 저녁 6시 두 차례 설교였습니다. 제가 영어로 말하면 친구가 포르투갈어로 통역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다만 아침 예배는 보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저녁 6시 예배가 우리 식으로 말하면 대 예배였습니다. 사실상 친구가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회중으로서 3, 4백 명 정도였습니다. 친구의 23년 사역을 정리하면 목회와 신학교 강의, 출판과 인터넷 신학교 운영, 그리고 자녀들을 위한 기독교 학교(500명 재학) 사역으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보여준 곳이 교회 내에 있는 서점이었고 시간을 들여서 보여준 곳이 바로 인터넷 신학교였습니다.

 

   밤마다 늦은 시간까지 담소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친구 파울로와 나는 기질적으로 서로 닮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우리가 좋은 친구가 된 것은 처음 만나자 마자 5분도 안 되어 “지남철이 서로 붙듯이” 서로 통한 신앙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질조차 닮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파울로와 함께한 생은 모험이었다.”고 말하는 사모님의 말은 아내가 내게 늘 하던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당신을 보면 황당하고 당신이 나를 보면 답답하겠지만 내 인생에 당신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가 없었을까요?” 여러분 덕분에 여행도 사역도 친구도 만나고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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