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6-07-24 선교사님들께 드린 편지
선교사님들께 드린 편지
“얼마 전부터, 아마도 1년 정도 되었을까요? 멤버 케어 위원회에 선교사 재 파송 심사를 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심사를 받아야 하는 선교사님들 입장에서는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겠지만 임무를 맡은 저희로서도 부담스런 일입니다. 그동안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몇 차례 선교사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일 아니라도 충분히 바쁜 목회 일정인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맡기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을 떠날 때는 스스로 다짐을 합니다. 하긴 어찌 저만 바쁘겠습니까? 선교사님들 역시 출국을 앞두고 바쁘실 텐데 울산까지 오시도록 해서 만나는 일이니만큼 하나의 통과 의례가 되지 않도록 잘 감당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 하나님께서 제게 자주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았습니다. “얘야, 복음 때문에 문화와 환경이 다른 먼 나라에서 수고하고 들어온 분들이다. 파송 심사는 내가 할 터이니 너는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해 줄 수 없니?” 그래서 잘 해보겠다고, 한편은 모질게 마음을 먹다가도 무디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과 일을 더 잘하는 것은 꼭 서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귀한 시간을 내어서 오시는 데 말할 기회를 충분히 드리지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대면해서 질문을 하지만 그것이 선교사님들이 저희에게 꼭 하고 싶은 내용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면담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마음으로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 메일로 답을 받으므로 선교사님들에 대해서 미리 조금 더 알고 만나면 면담시간이 더 효율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몇 가지 제가 드리는 예비적인 질문은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것들이기도 하고, 또 제가 드린 질문에는 없지만 선교사님께서 하고 싶은 말을 하시는 것도 환영합니다.
그러면 우선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고려신학대학의 전신인 고려신학교 대학부를 67학번으로 입학하고 신대원 29기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1978년에서 86년까지 남아공 포체프스트룸 대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귀국을 한 후에, 서울 장승백이에서 두레교회를 개척하고 몇 년 뒤에 정릉에서 탄포리 교회를 분립개척해서 주일평균 어른 출석 150~160명 정도 출석하는 소형교회를 목회를 하다가 1995년 말에 울산교회를 부임했고 . . . 유학중에 남아공화국에서 만나본 외국 선교사님들은, 왜 선교사를 가리켜서 “the cream of Christianity”라고 부르는지를 깨닫게 해 준 귀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 왜 저를 선교사로 부르시지 않으셨죠?”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저는 고려신학교를 다닐 때부터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후원하는, 베이스캠프를 지키는 것이 소임이라는 의식이 있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