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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Mar 03, 2004
 

지난주일 밤부터 목요일새벽까지 목포제일교회에서 말씀사경회를 가졌습니다. 울산과 목포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었습니다.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승용차로 달려가서는 밤 예배를 인도할 수가 없을 만큼 먼 거리였습니다. 다행히 울산-서울-광주로 대한항공이 연결되어서 오후 6시 45분에 목포제일교회당에 도착했습니다. 덕분에 전복죽 한 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7시부터 예정된 저녁집회를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5시, 오전10시, 저녁7시 하루 세 차례씩 수요일 밤까지 모두 10번 하기로 약속되었는데 목요일 새벽까지 연장전(?)을 했습니다. 시간마다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영혼들을 만족시키는 말씀의 잔치를 배설해 주셨습니다. 3년 전에 희년행사를 가진 교회로서 한 때는 목포에서 제일 큰 교회였으나 수년 전에 분리되는 아픔을 겪어서 지금 장년 4,5백 명이 출석하는 교회 규모라고 들었습니다. 구도심 중앙부 옛 법원자리에 교회당이 위치하고 있어서 울산교회와 비슷한 물리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월요일 새벽모임을 마치고 목포의 명물 유달산에 올라가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가 새겨진 비석이 아니라 유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수많은 교회당 건물들이었습니다. 울산에 그런 산이 있었더라면 산자락에는 절들이 즐비했을 것인데 교회당들이 있다는 것이 유별했습니다. 사실 시내를 다니면서도 큰 건물은 주로 교회당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인구 25만에 교회당 380개라니 인구 110만에 교회당 450개인 울산광역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그 지역 복음화에 대해서 말하면 한 여성도의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분은 결혼한 후 시집에서 소박을 받아서 바닷물에 빠져죽으려 했지만 가문에 수치스런 소문을 남길 것이 두려워 한강다리에 떨어져 죽으려고 서울로 갔답니다. 한강으로 가는 길에 천막을 치고 하는 부흥집회에서 은혜 받아 자기를 쫓아낸 시부를 전도하고 신안군 여러 섬들에 복음을 전하여 그 가운데는 오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 준곤, 이 만신, 정 태기목사님을 있게 만든 분입니다. 이 지역 어떤 섬에는 품앗이를 해서 농사를 지으려면 교회에 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복음화 율이 높은 지역으로 변한 데는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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