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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Dec 06, 2002
요즈음 우리가 묵상하는 에스라의 사역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 영적인 개혁운동을 주도한 것입니다. 포로생활 70년간 팔레스틴 본토에 남아있던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무지랭이 계층의 유대인들이 그곳에 이주해온 이방사람들과 서로 섞이어 살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해서 소위 사마리아 인이라고 불리우는 멸시와 천대를 받는 부류의 계층이 생겨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 인도하에 1차 귀환을 한 사람들도 동일한 유혹을 받았던 것을 보면 세월이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70년간 긴 세월을 포로되어 이방 땅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이 고레스왕의 즉위와 함께 고국에 돌아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70년 이국 생활을 정리하고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그들의 신앙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한편 같은 기간동안 그곳에 터잡고 살
던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돕겠다고 나설 때에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거부하여 그처럼 어려움을 겪은 그들도 7,80년의 세월 앞에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딱한 상황을 접합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은” 일을 “가증한” 죄악으로 규정합니다.

이 때에 지도자 에스라의 반응과 백성의 호응이 오늘날 유대인이 역사에 남게되는 위대한 개혁입니다. 아직도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큰 위험의 하나는 불신결혼이요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일”임에 틀림 없습니다. 다만 그런 상황을 접하는 오늘 우리들의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자녀의 불신결혼은 신앙의 부모의 큰 수치로 여기고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는”(에9:6)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녀를 불신결혼시키면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교회의 공식문서인 주보에 광고를 실어주지 않는다고 항의(?)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입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밝힌 것처럼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인륜지 대사”인 자녀의 결혼을 주보에 실리고 싶은 이유가 그 나름대로 있겠지만 그렇게 허용하는 것은 은연중에 불신결혼을 조장하는 악한 영향을 신앙의 공동체에 주기 때문에 광고를 금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녀를 신앙으로 키우지 못해서 불신결혼을 시키는 것을 정말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 책벌 받겠다고 약속하면 주보에 실리는 것을 교회는 허락할 수 있습니다. 죄악에 대해서 낯이 뜨뜻함을 느끼는 은혜를 입기 바라며 낯에 철판을 깔고 나오듯이 요구하는 무례한 일은 사라지기를 에스라의 개혁을 보면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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