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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Sep 21, 2012

총회장의 직무를 마치고

 

우선 총회장의 직무를 잘 수행하도록 끝까지 기도해주신 울산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천안까지 올라오셔서 마지막 직무수행을 지켜보며 격려해주신 장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많은 총대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고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참으로 멋진 동역이라고.^^ 총회장으로서 직무는 월요일 밤에 새 총회장에게 인계함으로 끝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로부터 한 해 동안 수고했다는 인사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마음으로부터 인사를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다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의 기도덕분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함께 KTX를 타고 오면서 정천석 장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앞으로는 목사님이 기쁘게 할 수 있는 일만 하십시오.” 처음부터 거의 끝날 때까지 회의를 지켜보면서, 특히 회의가 마지막을 향하면서 마치 포위망을 좁혀 오듯 한 해 동안 총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한 것을 두고 잘못한 것으로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에서 하신 충고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고신 총회장으로서 새로운 연합기구의 탄생에 동참한 일을 두고 절차와 과정이 잘못되었다고 몰아가는 악의적인 사람들, 그들 스스로는 총회의 법질서를 세워가는 사명감을 갖고 정근두 총회장의 한해의 일들을 폄하하는 현장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장로님의 마음은 무거웠을 것입니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저희 소리가 이기는 현장을 지켜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도 다른 때보다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쉽게 잠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나와서 일들을 반추해보았습니다. 누구든 비난받고 정죄받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설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 아파하며 그동안 자주 내린 비에 훌쩍 자라버린 잔디를 밟고 다니면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내게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명하신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겟세마네의 기도 같은 몸부림이 필요한 것을 아시죠?

 

장로교 통합, 합신, 대신, 백석, 개혁교단을 비롯해서 주류교단들이 합동외에는 대부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관계를 끊기로 결의하고 거의 모두 한국교회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단연류와 이단옹호로 의혹을 받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연합기구에 대한 미련을 고신만 버리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총회규칙 제 625총회에서 위임한 일과 한국교회 연합사업에 관한 일을 담당한다.”는 규정에 따라서 행동한 것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궤변과 거기에 놀아나는 이들을 보면서 한국교회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듭니다. 교회가 새로워지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도록 계속 간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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