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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020_정근두2.mp4
    성경본문
    요한복음 3:16
    설교일
    2019-10-20

성경의 하나님

요한복음 3:16

구주대망 20191020일 울산교회, 찬송 64, 304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 하나를 골라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아마 교회를 다니시는 분 가운데서 단 한 구절의 성경말씀을 외울 수 있다면 바로 이 구절일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구절을 통해서 성경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외우기까지 하는 말씀이지만 그 깊고 오묘한 의미를 다시금 살핀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살피기 전에 한 번 물어봅시다. 우선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린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신이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 살고 죽는 것, 재앙이나 복을 내린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소중한 진리를 알면서도 하늘의 마음을 알거나 하늘을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옛적에는 왕들이 매년 하늘에 제물을 바쳤습니다. 임금이 해야 하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마치 대통령 당선자가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것과 맞먹는 일입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도 하늘의 신을 천둥과 비, 가뭄을 내리는 존재로 생각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가물 때면 하늘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하듯이, 하나님을 숭배하지는 않았습니다. 공자는 하늘이 인격적이라도 한 것처럼 하늘을 두려워했습니다. 특히 비바람이 불고, 뇌성과 번개가 칠 때, 그런 두려움에 공자는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 대해서 조용히 명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과의 교제가 아니고 신을 두려워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알리시고, 우리가 자신과 교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숨기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자기가 만든 인간들에게 알려지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 . .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수천 년 동안, 수천만의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배우고 하나님을 알고 만나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예배 시간에 성경의 진리를 듣기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마음을 열고 배울 때에 그 분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리에 여러분도 동참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성경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맨 먼저 1.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성경의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세상 사람들을 매우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내어주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들어보셨습니까?

 

혹 생각도 해보지 않고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들었지만 별로 사실처럼 여기지 않고 지금껏 살아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들을 때마다 강하게 부정하며 살아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선 하나님은 우리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분이 아니시기에 믿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라도 헤어져 산지가 수십 년이 지나서 만나면, 한 평생 모시고 함께 살아온 부모와는 느낌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 살면서 쌓아둔 신뢰 관계가 없기 때문에 한 순간 만남을 통해서 바로 경험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면 왠지 켕기는 부분 때문에 오히려 두려운 느낌마저 들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삶을 살아온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하나님이라기보다는 심판의 하나님, 그래서 막연히 두려운 분으로 생각되기가 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혹 들었다고 해도 실감나지 아니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삶에 비추어 볼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나오신 이웃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여러분에게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물론 느낌으로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대하는 태도나 행동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웃 여러분, 사랑한다는 것은 고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귀한 선물을 통해서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줄 때 사랑을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귀한 선물을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 .”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독생자란 무엇입니까? 쉽게 표현하면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하나님은 2. 우리를 사랑하사 외아들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흔히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무엇인가를 주고 싶습니다. 또 우리는 무엇을 주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가장 귀한 것도 아낌없이 주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사랑은 가장 귀한 것까지도 아낌없이 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는 사건으로 당신의 외아들까지 주신 사건을 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줄 것입니다. 얼마만큼 진실하게 사랑하는지 우리는 종종 어떤 희생을 지불하는가로 측정합니다. 아무 것도 아끼지 아니하고 무엇이든 다 드리는 사랑은 칭송받을 만합니다.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적은 사랑은 발 씻을 물조차 떠주는 것을 잊어버리지만 큰 사랑은 옥합을 깨뜨리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유일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이요 당신이 기뻐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자기의 외아들을 남의 자식을 위해서 내어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에게 무심하고 원수노릇을 하는 자들을 위해서 자기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내어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가 쓸모없고 더럽고 원수 되었을 때 자기의 외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내어주신 것은 바로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누가 이 사랑을 측량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어버이 여러분, 여러분이 얼마나 자녀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원수를 위해서 여러분의 자녀를 희생시킬 수 있습니까? 그것도 유일한 아들, 외아들이라면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그 무엇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주신 사건에 비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어떤 미물이라도 자기 새끼를 포기하려들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그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아들을 죽는 자리에 내어주는 하나님께는 얼마나 큰 슬픔과 희생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은 마치 그의 외아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신 것처럼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는 자리에 내어주셨습니다. 마치 외아들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아끼신 것처럼 보입니다.

 

, 무엇 때문에 내어주셨습니까?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 없는 자기 아들을 우리 대신 죄로 삼는 길 외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한 제물로 십자가에 죽는 자리에 내어주셨습니다.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저주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14, 21)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316절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3.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복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지막 구절을 이번에는 주의하십시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이 귀한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십시오. 멸망치 않고라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마땅히 멸망 받을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그의 죄가 멸망 받기에 합당해도 결코 멸망 받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지었기에 그 벌을 받아야 합니다. 죄와 벌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죄와 벌은 함께 갑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삶을 돌이키면 멸망 받지 아니합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믿는 자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믿기를 중단하면 그는 멸망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믿으면 그는 결코 멸망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연약해도 주님을 붙들면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이전의 죄를 즐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만약 주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영적 생명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멸망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희망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신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빛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모든 평강을 상실하고 모든 축복을 놓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 그 분의 생명을 함께 누리는 자가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멸망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10:28-29).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이 진리를 전합니다. 믿는 자는 결코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고 죄 가운데 머물기를 기뻐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 가운데 거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옛 죄로 돌아가거나 거기 거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죄에서부터 그를 계속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죽음 대신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한시적인 생명 대신에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믿는 자는 그러므로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 안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은 어떤 생명입니까? 그것은 기껏해야 칠, 팔십년 살게 하는 생명이 아닙니다. 잘해야 백년 안팎을 지탱하는 생명이 아닙니다. 무덤이 입을 벌려 여러분을 삼켜도 떠나지 않는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거기서 썩어 없어져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다시 새로워질 때도 함께 하는 생명입니다.

 

심판대 앞에 서는 순간에도 함께 하는 생명입니다. 별보다 빛나고 달보다 은은하게 햇빛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생명입니다. 지금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생명이요 장차 영광 중에 그와 함께 나타날 생명입니다.

 

바로 영원하신 아버지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 한 믿는 자도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가 존재하는 한 여러분은 거기서 즐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한 여러분도 그와 함께 사랑 안에 거할 것입니다. 영원 세월동안 기쁨 가운데 거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외아들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려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구에게 영생을 선물로 약속하십니까?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라고 한정합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만 오직 믿는 자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저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동의하고, 확실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첫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해서 여러분도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 인류는 저주 아래 처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가장 큰 선물이신 예수께서 여러분을 대신해서 처벌당하심으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를 받습니다. 그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처벌받았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여러분의 죄 값은 청산됩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여러분은 멸망 받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는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칩니다. 아무리 극악한 삶을 살아도 믿기만 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여러분의 죄악을 고발해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반백이 되도록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와도 믿기만 하면 새 삶을 얻습니다.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도 믿어야 풍성한 새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내어 좇지 아니하리라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성경의 하나님과 그가 하신 일을 믿기만 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제 다함께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