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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역자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in/2018_0610_노민석.mp4
    설교자
    노민석 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39장 1-3절
    설교일
    2018-06-10

형통한 자가 되어(39:1-5)28,384,620

2018610일 울산교회 오전예배설교

 

오늘 말씀을 읽으시면서 가장 시선을 집중시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아마도 많은 분들이 형통한’, ‘형통하게라는 단어를 주목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형통이라는 말보다는 만사형통이라는 사자성어가 더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어느 날 동생이 책을 읽다가 만사형통이라는 글을 보고는 형에게 물었습니다. , 만사형통이 무슨 뜻이야. 형은 이때다 싶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만사형통은 다른 뜻이 아니라 만사를 항상 형을 통해서 하라는 말이야. 하나님은 형 말 잘 듣는 사람을 축복하시는 분이야

 

여러분, 만사형통이 무슨 뜻입니까? 모든 일이 뜻 한대로 잘 풀리는 것을 만사형통이라고 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도 만사형통일 것입니다. “요즘 사업이 만사형통이라 살맛납니다.”

형통이 단지 일이 뜻대로 잘 되어 가는 것이라면 요셉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지금 요셉의 상황을 형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의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요셉은 노예의 신세로 전락했다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요셉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요셉은 지금으로부터 3800년 전의 인물입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더하셨다입니다. 요셉 가정의 가계도가 좀 복잡합니다. 아버지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에게는 이복형이 10, 친동생이 1명 있었습니다. 12명의 형제들 중에서 아버지 야곱은 11번째 아들인 요셉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가 바로 요셉의 어머니 라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 것 같은 어머니가 동생 베냐민을 출산하다가 돌아가시고 맙니다. 요셉의 어린 시절은 외롭고 쓸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의 상징과도 같은 채색옷을 입었습니다. 형들은 양떼를 먹이는 고단한 일을 했지만, 요셉은 아버지와 함께 장막에 머물렀습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아들이었습니다. 온실의 화초와 같이 보호 받으며 생활했던 자입니다.

 

그런 그가 형들에 의해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끌려가는 요셉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예상인들이 요셉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군, 이제 출발할 시간입니다. 혹 힘들거나 목마르면 언제든지 이야기 하세요.” 아마도 두 발과 팔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쇠사슬에 묶여 있었을 것입니다. 험악한 인상과 거친 말투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을 것입니다.

 

가나안에서 애굽까지의 거리는 180km정도입니다. 그 길을 약대에 올라타고 갔을까요? 따가운 햇볕 아래서 모래 먼지를 마시며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때 요셉의 나이는 17살입니다. 정신적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애굽으로 끌려가는 그 시간을 어떤 생각으로 버텨냈을까요? 이 말씀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요셉의 그 엄청난 충격과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것보다 몇 갑절 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노예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노예에게는 선택권도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습니다. 편안하게 머리를 붙이고 쉴 수 있는 안식처도, 서로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어 줄 가족도 없습니다.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농사짓는 농기구 중 하나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당시 농기구는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농기구로 괭이, , 쟁기 같은 도구입니다. 둘째움직이는 농기구로 소와 나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농기구가 말하는 농기구 노예였습니다. 노예에는 인권도 생명의 존엄성도 없었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하여 6주간의 군사훈련, 8주간의 운전교육을 마치고, 운전병으로 맹호부대에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자대배치를 받은 첫 날, 군기가 빠졌다고 신병을 제외한 병장이하 졸병들을 침상과 침상 사이에 머리 박아 시켜 놓고는 야전삽으로 무지막지하게 때렸습니다. 부동자세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의 마음속에 내가 과연 군생활을 마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군에 입대하여 받았던 그 충격은 요셉이 당하고 있는 충격에 비교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은 사랑받던 아들에서 애굽 사람 보디발의 노예로 전락한 요셉을 향해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물론 요셉이 결국에는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표현은 어울립니다. 하지만 지금 요셉은 충격에 휩싸인 노예의 신분입니다. 언어, 문화, 식생활 습관이 다르고 아는 사람도 한명 없는 애굽에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란 어떤 것인가?

형통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과 3절에서 형통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문장을 유의 있게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2)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3)

 

2절과 3절에서 형통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언급되고 있는 분이 바로 여호와입니다. ‘형통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찰라흐입니다. 그 의미는 번영케 하다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하나님을 빼고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번영이 바로 형통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형통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면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한 사람의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 다는 것은 고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환경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상황과 환경에 의해 우리의 기분이 좌우될 때가 많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나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다르게 전개되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마음속에서 불평과 불만이 일어납니다. 고난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한 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요셉이 자신이 처한 환경으로 인해 불평하고 원망했다면 요셉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형통은 거리가 멀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

 

비록 지금 요셉이 처한 환경은 애굽의 노예이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형통한 자가 되어 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고,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물질적인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부유함은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없는 물질적인 복은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물질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들 간에 불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차라리 재물이 없었을 때가 더 행복했다는 후회가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형통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모든 인생에는 순풍도 있고, 역풍도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순풍을 만났느냐? 역풍을 만났느냐?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주님과의 관계가 친밀한가에 달려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있으면, 역풍마저도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3732)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은혜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갔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암초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배와 같은 상황입니까? 이 암초를 치워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 뜻밖의 상황, 생각지도 못했던 고난들이 여러분의 인생을 가로막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한자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형통한 자의 형통한 삶의 범위는 모든 일입니다.

신명기 11에 보시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애굽은 풍부한 나일강 물로 인해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충분한 물이 공급되었기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11:10).

 

하지만 가나안 땅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11:11) 거창하고 멋진 설명 같지만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비가 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천수답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애굽에서 사는 것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는 것 보다 더 형통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2절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에서 뜨거움이 일어나게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11:12)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형통한 삶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줍니다. 온 세상을 두루 감찰하시는 여호와의 눈이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백그라운드가 되십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호와께서 요셉의 범사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범사는 모든 일입니다. 우리가 감사헌금을 드릴 때 가장 쉽게 적는 감사제목이 범사에 감사합니다입니다. 요셉의 범사를 형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모든 순간,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갇힌 요셉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3923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39:23)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 사랑받는 아들로 지낼 때에도, 형들의 시기로 인해 이스마엘 상인들의 손에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끌려오는 길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요셉은 애굽으로 유학을 온 것입니다. 요셉을 애굽으로 유학 보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 바로 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보내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그곳에서 애굽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을 배웠습니다. 쉽게 말하면 대학과정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애굽의 고급정보와 지식을 배우도록 요셉을 왕의 신하들이 투옥되는 감옥으로 보내어 애굽을 움직이는 권력자들과 함께 있게 했습니다. 요셉은 그곳에서 애굽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움직이는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 배웠습니다. 말하자면 박사과정을 한 것입니다.

 

요셉의 전 인생을 두고 본 다면, 요셉이 처했던 모든 환경이 형통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부분적인 것, 아직 완성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판단하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연초부터 연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의 삶도 형통한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자연스럽게 아멘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4:12)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평생 복음을 위해 살았던 바울의 인생이 형통한 삶이 될 수밖에 없는 비결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이 아무리 잘 나가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어져 있으면 그것은 형통이 아니라 불통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을 다른 말로 믿음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더디 가는 것 같고,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됩니다. 아니 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828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찬송가 3841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형통한 자는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든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선한영향력이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3을 보십시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2절과 3절의 시간 간격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갈 때의 나이를 17로 봅니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될 때의 나이가 30니까,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지낸 세월과 감옥에서 보낸 세월이 13입니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최소한 2년 이상입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섬긴 시간은 최소 7, 최대 11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보디발에게 인정받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에게 인정받기까지 제법 많은 세월이 흘러갔을 것입니다. 보디발에게 인정받아 가정 총무로 세워지기까지 역경도 있었을 것이고, 모함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가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보디발은 히브리 소년 요셉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보호하고 있고, 그의 하는 일마다 잘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보디발이 오랜 기간 동안 요셉을 지켜본 결과 요셉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요셉을 향한 보디발의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주인인 보디발을 대신하여 모든 재산을 총괄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관리할 수 있게 위임했습니다. 모든 책임을 확실하게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직장에서 동료들로부터 확실한 신임을 얻고 있습니까? 동료들로부터 뭔가 다르다는 평판을 듣고 있습니까?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래 이상하게 좀 다르더라 이 평가는 긍정적인 평가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직장 속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친구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존재입니까? 저 친구에게 이 이일을 맡기면 확실해. 저 친구는 속이거나 부정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야!”

여러분,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골로새서 322절과 23 말씀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되새기시길 바랍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요셉의 형통은 요셉 한 사람의 형통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5을 보십시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보디발의 집이 그 복을 함께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끌려온 동료들에게도 그 복이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요셉은 복을 흘러 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49에 야곱이 자신의 열 두아들을 축복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2에 보시면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 야곱의 축복대로 요셉의 삶은 담을 넘은 가지처럼 복을 흘러 보내는 복된 인생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있었던 노예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집에 있는 노예들보다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을 것입니다. 가정의 모든 일이 형통했기 때문에 보디발이 노예들을 거칠게 다루지 않았고, 요셉도 노예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주인에게도 신뢰를 받았고,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후일에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될 때 동료 노예들이 요셉을 위해 증언을 해 주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요셉이 자신의 아내를 겁탈하려고 했다면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보내지 않고 그의 생명을 빼앗았을 것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의 인격을 신뢰했기에 그를 왕의 신하들이 갇히는 특별한 감옥으로 그를 보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서러움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정말 신뢰했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여 대인기피증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인생의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바로 그 인생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길에 동행이 되어줄 분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형통케 해 주시는 분, 우리를 통해 그분의 복이 흘러가게 하실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여러분의 백 그라운드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그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은 순간의 각오나 다짐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한 순간의 감동만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얻는 길은 단 한가지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얻게 되며, 말씀을 들음으로 유지됩니다.

로마서 1017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오늘 우리교회 등록하신 새가족 여러분, 그리고 오늘 처음 우리교회를 방문하신 여러분, 여러분도 형통한 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백 그라운드로 삼고 싶습니까? 세상 가운데 여러분이 받은 복을 흘러 보내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고 싶습니까?

 

우리 모두는 여러분처럼 예배에 처음 참석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처럼 교회에 등록하여 어색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매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음으로 그 믿음이 더욱 굳건해 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험악한 세상, 고달픈 인생길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그 믿음을 가짐으로 형통한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