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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114_정근두.mp4
    성경본문
    사도행전 2:36~41
    설교일
    2018-01-14

잊혀진 약속

행전 2:36~41

구주대망 2018114, 새해 둘째 주일, 찬송 5*3, 32, 320

 

구주대망 2018년 둘째 주일 예배의 자리를 찾으신 분들에게 새해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더욱 분명해 지길 빕니다. 지난주일 살핀 베드로의 설교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증거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의 승천하심과 높임 받으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러고 나서 베드로는 자기 앞에 앉은 청중 모두를 향해서 도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받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의 설교가 이 시점에 이르렀을 때에 청중들은 듣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통해서 자기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며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메시야를 그들 스스로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몸서리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슴 치는 후회와 하나님이 파송하신 구원자를 죽였다는 끔찍한 죄의식이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구원의 희망이 달려있는 그 분을 거부한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무슨 구원의 희망이 남아있겠습니까? 이 답답한 심령으로 지금 묻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들이 이 질문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도 거기 또 다른 희망이 남아있을 것을 예상했겠습니까?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기보다는 절망과 한탄의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붙들고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으로 그들은 베드로를 바라보며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절규했을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입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말하리라고 기대했을까요? 지금 그들 중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직도 그들에게 희망이 남아있다고요? 오늘 우리는 베드로가 지금 한 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 속에는 두 가지 명령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 두 가지 약속이 또한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명령을 먼저 살펴봅시다. 베드로는 그 청중들을 향해서 먼저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완전히 바꾸라는 말입니다. 지금껏 살면서 생각해온 모든 것을 바꾸어놓고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도록 요청합니다.

 

회개의 요청은 그 때 그 청중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회개는 기독교 복음의 축복에 들어서는 유일한 관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 사고의 중심에 모셔야만 합니다.

 

신앙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이 산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살아온 사람들도 필요한 때는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원망할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늘이 무심하다고 넋두리를 합니다.

 

그러나 그 분은 생명처럼 소중한 분은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등장하는 하나님은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이십니다. 여러분 자신의 근원이 되시며 여러분 자신의 종국이 되십니다. 우리의 삶의 알파와 오메가 포인트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존재하는 분이 아니시고, 그 분을 위해서 여러분이 존재합니다. 그 분에 의해서 지음을 받았기에 그 분을 따라 살지 않는 삶은 무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기까지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큰 뜻 가운데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나오신 이웃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존재하기 시작했고, 그의 뜻을 따라서 끝나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창조주께서 레디 고(Ready Go)”하면 우리의 삶은 시작합니다. 대 주재께서 (Cut)”이라고 선언하시면 우리의 삶은 끝납니다.

 

삶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는 일이 바로 회개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귀하게 생각한 것이 무가치함을 보는 것이며, 지금껏 내 눈에 하찮게 보인 일들이 의외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여러분의 삶은 회개의 과정으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지금껏 추구하며 살았던 것이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동시에 하찮게 생각되었던 영원에 관한 문제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필요하면 떠올렸다가 다음 순간 잊어버리고 마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기 우리 삶의 영원한 목표가 되실 뿐만 아니라, 저기 다음 삶의 의미가 되는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십시오.

 

내 눈에 좋은 대로 살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삶으로 전환하십시오. 회개는 사고방식 전부를 바꾸는 일입니다. 사고의 틀 자체를 새롭게 마련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이런 과정을 통과한 적이 있습니까? 회개 없이는 아무도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청중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촉구한 다음 두 번째 명령, 세례를 받으라고 요구합니다. 여러분의 귀에는 세례를 받으라는 말이 당연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유대인의 귀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무례한 요구입니다.

 

물론 그들도 세례 요한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외침을 수용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 백성들은 세례를 받으므로 그를 보낸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지만 백성의 지도자들은 회개의 호소에 그들의 마음을 닫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세례라고 하는 것은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요구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깡그리 새로운 출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굴욕적인 요구입니다. 들은 세례를 통해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보고 회개하라는 말이야! 우린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자손이야!’라고 유대인들은 거들먹거렸습니다. 그들은 대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살아왔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회개하라는 말만큼이나 세례를 받으라는 말은 굴욕적인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이 지금껏 거부했던 바로 그 분의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 구원자로 고백하는 새 출발을 하라고 청중들에게 베드로는 요청했습니다.

 

그 분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에 자신을 내어맡겨야 합니다. 정통 유대인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큰 굴욕은 없습니다. 그들뿐 아니라 오늘날 나름 교육을 받고 상식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먼저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베드로의 요청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삶의 출발점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무시하고 멸시하던 그 분을 이제 유일한 생명의 근원으로 시인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자기 뜻대로 살던 사람이 예수를 주인으로 삼고 살기로 고백하는 공적 행위입니다. 예수 없이 살던 사람이 예수를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살겠다고 여러 사람 앞에서 표명하는 행위입니다.

 

세례는 값싼 의식이 아닙니다. 그 의식에 참여하기만 하면 천국행이 보장되는 증표가 아닙니다. 마음에 믿은 바를 많은 사람 앞에서 공적으로 시인하는 행위입니다. 더 이상 내 생각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와 삶의 주인으로 삼으신 예수님을 믿고 섬기며 살기로 결단하는 행위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청중들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명령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두 가지 선물을 약속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백성이 될 때 주시는 첫 번째 선물은 죄 사함의 축복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이 될 때에 우리는 사죄의 축복을 경험합니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믿는 자들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또한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사죄의 축복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죄용서의 체험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여러분은 이런 찬송을 알고 불러보신 적이 있지요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죄에 대한 용서를 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온 것은 죄용서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믿는 자들이 누리는 축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자에게 2의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 용서에 대한 약속보다 자주 잊혀진 약속입니다. 구속 곧 죄사함은 성도들이 누리는 축복의 첫 시작일 뿐입니다.

 

죄 용서를 체험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스러운 신분이 주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빛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빛 가운데 주어질 기업에 대한 약속이 남아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누리게 될 그 영광스런 기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즉시 이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 보장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우리의 죄는 용서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의 희망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죄 많은 세상에 우리를 남겨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패역한 세대에서 우리들만 구원을 얻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계획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베드로가 설교한 또 하나의 약속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자에게 사함의 약속과 더불어 성령을 선물로 받는 약속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령의 선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를 중생시키는 성령 사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사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성령 사역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령 사역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베드로가 말하는 성령의 선물은 베드로 자신과 기다리던 일백 이십 여명의 성도들이 받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한 두 시간 전에 받았던 그 성령을 청중들도 회개하고 세례를 받을 때에 죄 사함과 더불어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입니다.

 

사도행전 1장의 표현을 빌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일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그들에게 증인으로서의 능력을 주시는 일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오순절 아침 9시에 임한 성령의 선물은 그들을 중생시키는 성령 사역이 아닙니다. 그들을 그리스도께 연합시키는 사역도 아닙니다. 내주하셔서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임한 성령이 아닙니다.

 

오순절 이른 아침에 임한 성령의 선물은 그들로 하여금 사역자로서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증인이 됩니다. 이 약속이야말로 사죄의 약속보다도 더 빈번하게 잊혀진 약속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이 약속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베드로는 상기시킵니다. 달리 말해서 성령의 선물로서 능력을 받는 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는 자에게 약속된 능력의 성령은 모든 믿는 자에게 유효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잘 들어보십시오. 베드로는 지금 자신들에게 임한 성령으로 하나님의 선물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청중들을 향해서 너희들에게는 기회가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뿐만 아니라 너희 자녀에게도 이 약속은 유효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유효하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우리를 증인으로 만드는 성령의 선물은 열 두 사도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권능을 주시는 성령의 선물은 기다린 백 이십 명의 제자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특수 집단이나 특정 세대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청중들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제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먼 데 사람에게도 이 약속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여기 모든 먼 데 사람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만으로 한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기록을 남긴 누가의 생각은 결코 유대인에게만 한정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가 누가의 비전속에는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기록을 읽게 되는 초대교회도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만 한정해서 듣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아니, 베드로 자신이 모든 먼 데 사람에 대한 부연적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청중 여러분은 사죄의 약속과 더불어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 약속이 처음 선포된 시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약속이 처음 선포된 현장에서부터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산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을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하면 이 약속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이 잊혀진 약속이 새롭게 기억될 때에 교회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는 새로운 활기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놀랍게 확장될 것입니다.

 

우리 각 개인에게 죄 용서의 체험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이 경험을 증거 할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죄 사함이 믿어지는 것도 성령의 사역이지만 죄 사함의 소식이 전파되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는 약속을 귀담아 들어보십시오. 이 약속의 문맥 속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이해하십시오. 그 날 아침 백 이십 명 성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체험한 진리를 증거 해야 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사죄의 복음이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명령만 하시지 않습니다. 그 명령을 수행할 능력을 부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는 약속을 더 이상 잊어버린 채로 살아가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껏 잊고 살았던 약속이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에 되살아날 때에 울산 교회는 새로운 활기를 찾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는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베드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사죄함을 받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이웃에게 전하는 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