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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218_정근두.mp4
    성경본문
    베드로전서 4장 10절
    설교일
    2018-02-18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벧전 4:10

구주대망 2018121, 새해 셋째 주일, 찬송 27, 196, 213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오늘 본문은 은사의 발견, 사역의 기쁨을 찾아 떠나는 올해의 여행을 위한 주제 성구입니다. 그 첫 구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를 제목으로 오늘 우리는 은사의 종류와 성격을 살피려고 합니다.

 

맨 먼저 은사란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은사란 헬라말 카리스마인데 이것은 은혜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이 은혜의 선물은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성령께서는 새로운 삶,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성령님께서는 주님을 위한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특별한 능력까지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에 당신의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해, 달리말해 성도들을 서로 잘 보살피기 위한 특별한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는 특정한 몇몇 성도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보편적인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누구든지 특별한 은혜의 선물을 받습니다. 이 특별한 은혜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특정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평범한 수준을 넘어 봉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각 성도들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기 위함입니다. 이 특별한 능력을 받음으로 성도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와 사회의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그리스도의 교회로 하여금 지상에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은혜의 선물을 주십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는 첫 구절처럼, 신약에는 여러 가지 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은사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봅시다. 그러고 나서 은사와 관련한 궁금한 것 몇 가지를 좀 더 살피려고 합니다.

 

우선 은사하면 1) 생각나는 것들을 먼저 열거해 보고 그 다음 2) 은사라고 여기지 않는 것들을 살피고 3) 은사인줄 알면서도 소홀히 되는 것들을 차례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1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은사들을 살펴봅시다. 은사하면 많은 한국의 성도들은 중보기도를 떠올릴 것입니다. 1.1 중보기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 기도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무슨 일이나 기도할 부담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도 요청을 진지하게 받아드리며 그들을 위해 신실하게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을 섬기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탁월한 중보기도의 사역을 감당한 신약의 예는 주님(23:34; 17:1-16) 각 서신에 기록된 바울의 기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은사라면 1.2 전도의 은사를 맨 먼저 꼽고 싶어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는 전도를 은사라고 말하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여기는 분도 있습니다.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열을 올리는 경우는 대개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도해야할 사명을 부여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전도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도의 은사를 가진 경우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전할 수 있고, 그 열매가 있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 중에서, 어떤 이는 일대일 상황에서 탁월하게 복음을 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이는 대중을 상대로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가 현재만큼 모이는 교회로 성장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그 은사를 활용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조용히 복음을 전하는데,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서서 큰 소리로 모두에게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수많은 급우를 인도해서 예수를 믿게 했을 뿐 아니라 일, 이 학년 담임 선생님과 교장선생님까지 예수를 믿게 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전도의 은사를 성령께서 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3 가르침의 은사를 생각해봅시다. 물론 은사가 없이도 가르칠 수 있지만, 반을 맡아 가르치면, 많은 아이들이 출석하여, 언제나 주일학교에서 일등을 하는 교사는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가르침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 진리의 말씀을 나누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신앙의 진리를 설명하면 다른 이들이 잘 알아듣습니다. 가르침의 은사를 가진 분들은 진리를 분명하고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고,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피차 격려하고 덕을 세우기를 힘쓰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1.4 격려위안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고통을 당한 사람이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 용기를 잃은 사람을 재빨리 알아내고 다가섭니다.

 

격려위안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겪는 삶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보도록 도와줍니다. 자신을 통해서 형제자매들이 힘과 용기를 얻어 서로 사랑하고 돕는 일을 잘하도록 합니다. 때로는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서주며, 용기를 갖도록 옹호해주며, 최선을 다해 형제를 지지하고 돕는 사람입니다.

 

대표적인 신약인물은 누구입니까? 사도행전 436절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 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4:36)고 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 혹은 격려의 아들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당시 모두가 기피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던 사울을 찾아내어 사울을 바울 되게 하는데 바나바는 그 은사를 잘 활용했습니다. 그것을 기억할 때 이 은사가 얼마나 공동체를 세우는데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자는 누구나 진리와 비 진리를 분별하도록 권면을 받지만 1.5 영적 분별력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 안에 있는 선한 영과 악한 영의 임재를 알아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진리와 거짓, 참된 사역자와 거짓된 사역자를 구별하는 일반적인 능력은 초대교회 뿐 아니라 오늘도 필요한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사람들의 행동의 이면을 보며 거짓된 동기를 잘 알아낼 수 있습니다.

 

1.6 예언의 은사는 보편적으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자주 오해될 때가 많습니다. 예언이란 미래에 대한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말합니다.’는 것이 본래적인 의미입니다. 미래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과거의 일이든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전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에 의해서 신앙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세움과 격려와 위안을 얻습닙니다. 성경말씀으로부터 주어진 상황에 따른 적절한 통찰력을 가지고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인권문제, 동성애 문제, 낙태문제, 성적 타락, 인종문제, 핵 확산금지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서도 침묵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잘 알려진 은사와 더불어 2 은사라고 평소에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도 은사의 목록에 추가되어야 합니다. 그 첫 번째 것이 2.1 믿음의 은사입니다. 믿음이 무슨 은사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단번에 주신 구원 얻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증거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꼭 일을 이루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은사로서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그 액면가격대로 신뢰하는 사람이요 산을 옮길 만한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을 때에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가 설교하는 일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나님은 주셨고, 그레데에서 파선할 때 자기와 함께 한 자가 아무도 생명을 잃지 아니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믿음의 은사뿐 아니라 2.2 연보의 은사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거친 항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연보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의무이지 무슨 은사냐고 항의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신앙 공동체를 위해서 그 힘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연보는 의무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 일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은사는 몇몇 잘 사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은 매우 가난했지만 풍성한 연보를 드리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했습니다.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참여했습니다.

 

연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형제나 교회의 필요를 감지하는 마음가짐과 자기희생 정신이 매우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필요를 시의 적절하고 후한 물질적인 지원을 통해서 그 필요를 채우는 일에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이 밖에도 은사인 줄 알면서도 평소에 소홀히 여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2.3 손님접대의 은사입니다. 물론 손님접대를 은사로서 신약이 명시한 곳은 없으나 오늘 본문 바로 앞 구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 4:9)라는 구절은 은사인 것처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은사를 소유한 사람은 친척, 친구들 뿐 아니라 낯선 사람을 편하게 맞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기치 않는 손님이 오는 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않으며 가정을 열어서 손님을 받아드리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필요보다 손님의 필요에 더 민감하며, 손님이 다녀가면 다녀간 손님으로 인해 감사하며, 그 대접한 손님에 대해서 참으로 고마움을 느끼며, 때로는 선물까지 주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음식점보다 집에서 자주 손님 대접을 잘 하고, 음식점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부담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린 지금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님은 그만두고 자기 식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서, 함께 먹는 것조차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구역 식구들이나 교회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나누는 것을 즐거움으로 아는 사람은 손님접대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아주 유용하면서도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은사 가운데는 2.3 섬김의 은사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지역 사회 어디든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특별한 돌봄의 능력이 없어도 마음만 있으면 돕기도 하고 섬길 수 있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은사는 교회가 언제나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섬김의 은사는 실제적인 일을 해 줌으로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능력(12:7)입니다. 짐을 타인에게 떠맡기는 대신 자신이 담당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귀찮게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일을 보고 떠맡는 섬김 자체는 매우 드물고 귀한 은사입니다.

 

섬김도 소홀히 되는 은사이지만 2.4 지도력의 은사도 또한 소홀히 되는 은사입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보다 한 두 걸음 앞서 걷는 사람입니다. 지도력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미래를 위한 목표를 정하고, 이 목표를 향해 공동체가 나아가도록 동기를 유발시키는 사람입니다.

 

좋은 지도자의 관심은 자신의 권위나 지위가 아닌 공동체를 돌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일을 정상적으로 가동되도록 하는 것을 바라고, 문제를 풀어가는 일에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은 지도력의 은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밖에 소홀히 여김을 받는 은사로는 2.5 목양의 은사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주 직분으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목사, 감독, 장로 등으로 불리는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이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목양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고 그 사역의 열매가 풍성합니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신자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 보살피고 인도하고 양육하는 일에 좋은 열매를 거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영적인 필요가 채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시간 관계상 언급만하고 지나가야할 은사는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고 마음이 가벼워지도록 돕는 2.6 자비의 은사와 주님의 사역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조직하고 또 인도하는 능력(고전12:28)으로서 2.7 행정의 은사가 있으며, 음악, 드라마, 도안, , 그림이나 조각 등과 같은 창의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는 능력(35:31)으로서 2.8 창조능력의 은사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은사가 더 중요할까요? 물론 모든 은사는 동등합니다. 신약성경은 모든 은사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은사는 상호 관련되어 있고 아무 은사도 다른 은사의 도움 없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자신이 받은 은사나 역할이나 업적에 대해 교만에 빠지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들이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은 은사에 대해서 말할 때 어떤 은사가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다양한 목적이나 임무를 따라 자기 백성에게 각양 은사를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시작하면서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라고 하는 것은 말씀의 은사가 교회의 성장에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은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모든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연합하여 성장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신자는 하나 이상의 은사를 가질 수 있을까요? 신약을 살펴보면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빌립은 지혜, 섬김, 자비, 전도의 은사를 가졌습니다. 많은 사도들도 다양한 은사를 가졌습니다. 오히려 한 가지 은사만 소유한 경우보다 다양한 은사를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합 은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여러 가지 특별한 능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은사를 가진 것은 그가 섬길 방향을 정하는 데 유용하다. 가르침, 지도력, 행정의 은사를 가진 신자는 교육위원회의 중요한 위원이 될 수 있습니다.

 

손님 접대, 자비, 그리고 격려의 은사를 복합적으로 가진 신자는 깨어진 가정을 회복시키는 일에 남다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전도, 가르침의 은사를 가진 신자는 전도를 위한 성경공부를 잘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 은사와 자연적 재능은 어떻게 서로 다를까요? 두 가지 피해야할 극단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 은사와 자연적 재능을 전혀 다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의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모든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영적 은사는 신앙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요구하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재능들이 성도들을 강건하게 세우고 주님을 섬기는데 사용하는 한 영적 은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성령께서는 한 사람에게 일찍 주어진 능력이나 재능에 일치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하지만 창조 시에 주신 자연적인 재능이나 능력이 구속을 통한 영적 목표를 위해 사용될 때 특별한 은사로 방향이 재조정되기도 합니다.

 

영적 은사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그 은사들은 우리의 구속으로부터 시작하고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포함합니다.”(마이클 그린, [나는 성령을 믿는다] 중에서).

 

또한 영적 은사와 성령의 열매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신자의 삶에서 드러나는 자질인 반면 영적 은사는 섬김을 위한 능력입니다. 각 신자는 모든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어야 하지만 영적인 은사는 모두가 각 신자들에게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사는 현세적 필요에 따라 주시면 받는 일시적 선물이나, 성령의 열매는 성령께서 동거하는 삶에서부터 성품의 변화이며 지속적이며 영원할 것입니다.

 

은사를 왜 주십니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 째는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잘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고”(고전 12:7), “서로를 섬기는 데”(벧전 4:10) 은사를 사용하도록 성경은 가르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고 성숙되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4:11-16). 셋째로는 교회의 증거와 사역이 세상으로 확장되기 위함입니다. 복음증거나 예언과 같은 특별한 은사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은사의 상호 의존적인 사용을 통해서 교회는 그 사역을 확장시킵니다.

 

신자 개개인은 그들의 은사가 주님을 유용하게 섬기는 데 사용되는 것을 알 때 만족을 느끼고 그들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속해 있다는 의식이 강해집니다.

 

그러면 은사를 가진 사람들만 일해야 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영적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특별하게 일하는 것을 모든 성도는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도 그렇고 전도도 그렇고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 은사를 활용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위 방언, 기적, 신유 등 표적 은사에 대해서는 모든 신자가 해야 한다는 명령은 없습니다.

 

하지만 은사는 사용하거나 개발하지 않으면 평생 잠재적인 은사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딤전 4:14), “하나님이 네게 주신 은사를 불일 듯하라”(딤후 1:6)고 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은사는 일시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새로운 상황에 따라서 이전에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은사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새로운 섬김을 위한 성령의 부르심에 언제나 민감해야 합니다.

 

은사는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와 같습니다. 은사 없이도 순종하고 봉사해야 하지만 은사대로 봉사할 때는 놀라운 결실을 얻게 되며 하나님께 크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올 한해 우리 모두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섬김의 기쁨을 맛보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