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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225_정근두.mp4
    성경본문
    벧전 4:11
    설교일
    2018-02-25

은사의 발견 2

벧전 4:11

구주대망 201824일 주일, 찬송 31, 195, 215

 

지난주일 우리는 은사의 발견, 사역의 기쁨을 찾아 떠나는 올해의 여행을 위한 주제 성구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의 첫 구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를 제목으로 은사의 종류와 성격을 살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은사의 발견이란 주제의 첫 강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자연히 그 다음절을 본문으로 두 번째 말씀을 은사의 발견 2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강론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지난 번 첫 강론을 간단히 요약해 봅시다. 은사란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주님을 위한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성도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에 당신의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해, 달리말해 성도들을 서로 잘 섬기기 위한 특별한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특별한 은혜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평범한 수준을 넘어 사역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각 성도들이 다른 사람을 잘 섬길 수 있기 위함입니다. 이 특별한 능력을 받음으로 성도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와 사회의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그리스도의 교회로 하여금 지상에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은혜의 선물을 주십니다.

 

신약에는 여러 가지 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은사하면 1) 생각나는 것들을 먼저 열거해 보고 그 다음 2) 은사라고 여기지 않는 것들을 살피고 3) 은사인줄 알면서도 소홀히 되는 것들을 차례로 살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은사와 관련한 궁금한 것 몇 가지를 좀 더 살폈습니다.

 

어떤 은사가 더 중요한지?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가질 수 있는지? 영적은사와 자연적 재능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영적은사와 성령의 열매는 어떤 관계인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은사를 주시는 세 가지 목적을 살폈고 은사를 가진 사람들만 사역해야 하는지 등등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은사는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와 같으며, 은사 없이도 순종하고 봉사해야 하지만 은사대로 봉사할 때는 놀라운 결실과 기쁨을 맛보는 성도들이 되길 호소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은사의 발견 두 번째 강론을 계속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신약 성경에 언급된 15가지 은사를 살폈습니다만 오늘날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은사들 중에는 신약에 언급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예컨대, 찬양, 악기연주, 성가대지휘, 연극, , 창작활동 등 이런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성경에 언급된 은사지만 요즈음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물론 다양한 은사를 보여주려고 했지만 바울이나 신약성경은 모든 은사 목록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가 던지는 첫 질문입니다. 1 신약 성경에 언급된 은사 중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은사도 있습니까? 어떤 영적 은사는 초대 교회의 기초를 놓는 데만 필요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설립된 이상 사도와 예언의 은사 등은 더 이상 바라지 않아야 하며 방언, 신유, 이적 등과 같은 표적은사(Sign Gifts)를 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아무데도 이런 은사가 끝났다는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 모든 은사를 확인하고 개발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은 교회에 은사가 항상 주어질 것을 믿었지만 언제 어디에 어떤 은사가 주어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실 일로 남겨두었다는 입장에 저는 동의합니다.

 

성령께서 아직도 은사를 주시는가 하는 질문보다는 특정 시대에 어떤 은사를 주실 것이지는 하나님의 특권에 속한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달리말해 어떤 은사가 아직까지 유효한가보다 교회 내에 있는 여러 가지 은사를 발견토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의 역할은 신자들 안에 잠자고 있는 은사들을 깨우치고 확인시키는 일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데 필요한 은사들을 교회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교회가 그 임무를 감당하기 위해 영적 은사는 둘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말씀의 은사(에언, 가르침 지혜, 지식, 권면)이고, 둘째는 섬김의 은사(구제, 도움, 자비, 신앙, 분별, 창작활동)입니다.

 

말씀의 은사는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합니다. 섬김의 은사는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고전 12장 결론에서 여러분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십시오.”라며 말씀의 은사를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성장은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교회가 말씀의 은사로서만 자란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은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연합하여 성장하는 데 있어서 필요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은사는 우리의 기질과도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흔히 은사들은 평생 동안 계속 주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은사를 사용하거나 개발하지 않으면 잠재적 은사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최선을 다해 은사를 활용하도록 요청합니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12:7,8)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활용하면 잠재적 은사로 남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은사는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을 새로운 환경에 따라서 이전에 전혀 몰랐던 은사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새로운 섬김을 위한 성령의 부르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면 2 피해야 할 영적 은사의 남용은 무엇입니까? 어떤 은사라도 남용되어질 수 있습니다. 영적 은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적 은사가 교회 내에서 때때로 잘못 사용되어진 네 가지 경우를 살펴봅시다.

 

2.1 은사를 칭송(Glorification)하는 경우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은사를 가진 자를 칭송합니다. 은사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표적은사(sign gifts)를 치켜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조직 교회 내에서는 특정 직분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특정 은사를 내세우면 그 은사를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진 사람은 우월감을 갖게 되고, 갖지 못한 자는 열등감을 갖게 됩니다.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고전 12-14).

 

2.2 은사를 투영(Projection)하는 경우 어떤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은사를 너무 과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듭니다. “내가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너도 그렇게 하면 같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온 몸에 눈만 가지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책과 수치감을 불러일으킵니다.([당신의 은사는 당신의 교회를 도울 수 있습니다] 중에서). 사도 바울은 몸은 한 몸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온 몸이 눈이며 어떻게 되겠습니까?”(고전 12:14, 17)라고 붇고 있습니다.

 

3.3 은사를 무시(Denigration)하는 경우 은사를 받은 사람이 교회 안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취급될 때 영적 은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오용되어집니다. 지체 내에서 과도한 확신과 독립심을 가진 구성원들은 때때로 약한 형제들로부터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경향을 시정키 위해 바울은 연약한 지체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오히려 더 존귀함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고전 12:22-23).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 나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2.4 은사를 개인화(Individuation)시키는 경우 영적 은사를 지나치게 개인화시키는 경우를 말합니다. 은사는 개인에게 주셨지만 신앙공동체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달리말해 개인적으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신앙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주셨습니다. 은사는 반드시 개인의 유익이 아니라 신앙공동체를 위해 활용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며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는”(4:12,13) 있습니다. 바울은 개인의 성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숙을 말합니다.

 

3 왜 영적 은사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상당한 침묵과 무지와 혼란이 그동안 영적 은사에 관해서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때때로 너무 지나치게 영적 은사의 한 두 측면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다른 이들은 영적 은사를 무시했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주요 요인이 있습니다.

 

3.1 제도주의(Institutionalism)

종교개혁 이전에는 교회와 제도를 동일시했습니다. 어떤 은사는 성직자에게만 국한시켰으며 반면 성직자에게서 발견되지 않는 다른 은사들은 완전히 무시되어졌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전적으로 제도적 교회에 있는 전문적인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의존했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스스로 수동적이 되고 그 사역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록 종교개혁이 제도화되어진 로마교회의 잘못을 고쳤지만 평신도들의 올바른 위치를 충분히 강조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개혁교회는 영적 은사와 평신도 사역에 대한 열정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의 장로교회 역시 영적 은사를 강조하지 못한 면에서는 지적받아야 합니다.

3.2 합리주의(Rationalism)

18세기 신학적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초자연적 요소를 평가 절하했습니다. 그리하여 영적 은사는 자연적 취향이나 달란트와 동일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자들의 영적인 노력과 활동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특수성과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의 모든 활동이 사역과 동일시되었습니다.

 

3.3 감정주의(Emotionalism)

이것은 이러한 합리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18세기 경건주의 운동에서 발견됩니다. 이 운동의 주요초점은 영적 은사의 감정적 측면에만 국한됩니다. 은사를 가진 사람의 경험은 그가 수행한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결운동과 이런 유형의 부흥운동은 오늘날 오순절 운동의 선구자들입니다.

 

4 왜 오늘날 영적 은사에 관한 관심이 일고 있습니까?

이 관심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4.1 은사 운동의 영향

가끔 극단으로 치우치긴 해도 은사 운동은 성령의 사역에 관한 새로운 관심을 가져다줍니다. 부분적으로는 은사 운동의 극단적 흐름과 그 정당성 때문에 기성 교회는 영적 은사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4.2 평신도 사역에 대한 새로운 관심

지난 수십 년 동안 교회 내에서 평신도들의 위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목사 중심의 사역이 의문시되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다 참여하는 사역에 대한 높은 관심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 내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의 성경적 역할을 재고하게 되었고, 소홀히 되어오던 장로교회를 모습을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4.3 형식적인 구조보다 친밀한 교제의 추구

오늘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딱딱한 조직에 만족하지 않고 신자들이 교제의 삶을 위해 보다 새롭고 나은 방법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요청이 그들로 성경을 다시 읽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신약교회의 삶에 대해서 새롭게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신약 교회를 연구한 사람들은 누구나 초대 교회의 삶과 사역에 있어서 차지한 영적 은사의 위치에 대해서 새로운 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4.4 성경으로 돌아감

오늘날 영적 은사에 대한 고조된 관심은 영적 은사에 대해 말하는 성경 구절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한 결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은사를 다루는 성경 구절에 관심이 집중되어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런 구절에 대한 진리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Q.1 만약 모든 교회 구성원이 은사를 받았다면 교회는 왜 특별하게 임명된 자들이 필요합니까? 교회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사역과 직분자들의 사역에 근본적인 차이점은 없습니다. 차이점은 단지 기능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신자들은 영적 은사로서 서로 섬깁니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며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활동합니다.

 

그렇다면 왜 직분이 필요합니까? 성경은 우리가 오늘날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임무를 구별해서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임명으로 직분 자들을 신약교회에 세우셨습니다.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입니다”(고전 12:28).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부여받은 지도자에게 직분을 주셔서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유익을 위해서 활동하게 하십니다.

 

온전케 하는 직분은 다른 은사를 발달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4:11-12). 온전케 하시는 은사를 사도들, 선지자들, 목사, 교사에게 주셔서 성도로 하여금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십니다.

 

만약 그들의 직분을 잘 감당하면 다른 이들이 온전케 되어 교회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해줍니다. 직분과 은사를 겸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는 특별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임명하셔서 그들의 직무를 위한 권위를 부여하십니다.

 

여러분은 지도자들의 말을 잘 듣고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의 한 일을 하나님께 보고해야 할 사람들이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러분의 영혼을 보살핍니다.”(13:17).

 

Q.2 신자들이 은사인 것을 알지 못하고 영적 은사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영적 은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도들이 그들의 은사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교회는 그 모습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은사를 은사로 여기고 그것을 발견하는 일을 주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은사를 직분자에만 관련시켜서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관여하는 어떤 활동들은 너무 세속적이어서 교회가 그것을 성령과 관련시키기를 주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 우리는 교회의 직분 구조 속에서 사용된 능력들만 은사라고 생각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쨌든 영적 은사에 대해서 이제는 알아야 할 때입니다. 바울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나는 어려분이 영적인 선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고전 12:1)

 

영적 은사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므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사의 단순한 확인 이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신자 개개인이 공동체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 새로운 안목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보다 나은 공동체 생활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지체로서 몸이 구성되어 있듯이 교회를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조직체로 보아야 합니다.

 

Q,3 나의 영적 은사를 아는 것이 왜 필요합니까?

이 질문은 두 번째 강론의 결론으로 보아도 좋습니다. 우리의 은사는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통해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영적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가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 아는 열쇠입니다.

 

우리의 영적 은사를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직무를 찾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은사를 알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표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영적 은사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거기에는 책임과 희생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은사를 확인하는 것은 헌신의 문제 때문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나의 은사를 찾고 그것을 확인하게 된다면, 되는 대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 은사로 헌신한다는 의미는, 빈둥거리는 삶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생은, 이것저것 맛보는 식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우리의 삶을 확인하게 해줍니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은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어떤 특정 은사를 받았고, 그것은 교회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등 시민은 없습니다. 좌절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힌 신자들에게, 영적 은사의 발견은 행복하고 효과적인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시킵니다.

 

은사를 아는 것은, 보다 효과적으로 섬기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비시킨 것을 할 때에, 최선을 다하고 최선의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견된 은사는 섬김을 위해 활용될 것입니다. 우리의 은사를 알 때, 신앙 공동체 속에서 적절한 우리의 위치를 찾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그리스도의 몸에 봉사할 각 자리를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서로 지체가 되었습니다.”(12:5). 이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토록 합니다. 우리는 홀로 서거나 신앙 공동체의 도움을 떠나 살도록 의도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써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그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은사를 아는 것은 우리로 성령의 움직임에 의도적으로 협력하게 합니다.

 

다른 한편, 자신의 고유한 은사를 알게 되면, 여러분이 특별한 은사를 받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자유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은사를 과시하면서 그들이 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속삭일 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를 앎으로 죄책감을 피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고유한 은사를 발견하면, 자기가 받은 은사 영역에 보다 더 기꺼이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은사를 받지 않은 영역에는 관여하려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은사를 발견해야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은사를 발견해야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올해는 여러분 각자의 은사의 발견을 통해서 이 사역의 기쁨을 극대화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