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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422_정근두.mp4
    성경본문
    눅 24:44-49
    설교일
    2018-04-22

너희는 증인이라

24:44-49

구주대망 2018422일 주일, 찬송 36, 80, 49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분위기는 예수님의 마지막 수업 같습니다. 가르치시는 내용을 봐도, 마치 제자들을 향한 고별사와 같습니다. 그동안 1)자신이 가르치신 것을 요약정리하며, 2)앞으로 제자들이 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3)어떻게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오늘 본문의 상황을 먼저 살펴봅시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살핀 본문과 바로 연결된 것처럼 누가는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있던 깊은 밤에 갑자기 주님이 나타나신 그 방에서 마지막 수업, 마지막 고별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지 시간과 장소만을 보지 않고, 누가복음 24장을 전체적으로 보면 연속된 세 가지의 사건을 통해서 하시는 동일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 부활의 아침에 시체를, 주예수의 시체를 찾는 여인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은 죽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갈릴리에서부터 하셨던 고난과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두 번째 사건, 부활의 오후에 엠마로로 가는 두 제자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그 선지자는 이미 죽었으며, 시체조차 사라졌고, 부활에 대한 기대는 덧없는 것인 양 슬퍼하며 낙담하는 제자들을 향해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러고 나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며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두 제자를 깨우칩니다.

 

길에서 성경을 자세히 설명하실 때 그 마음이 뜨거워졌고, 저녁식탁에서 빵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알아본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두 제자는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서 그 밤에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성도들을 만나, 길에서 주님을 만나본 자기들의 얘기를 펼치기도 전에,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먼저 주님이 살아나셔서 그들에게 나타난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그 밤중에 주님을 만나 뵌 간증집회(?)를 했지만, 막상 대화의 주인공이자 부활의 주인공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등장했을 때는, 놀라고 무서워하며, 유령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흔적이 남아있는 손과 발을 보여주며, 만져보도록 요청하고, 생선 한 토막까지 잡수시며,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끈기 있게 당신이 살아나신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본래 표적은 주님의 말씀을 믿도록 하려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표적은 항상 말씀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라라고 불립니다. 정확히 말하면 표적은 항상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갈릴리에 계실 때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신 표적 역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도록 하려는 표적이었듯이, 못 박힌 손과 발, 생선 한 토막은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던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드러내는 표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과 행동 하나하나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듯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하늘의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기회가 되길 소원합시다. 우리의 삶을 지켜본 사람들이 우리의 언행을 통해 하늘 아버지를 떠올릴 때, 비로소 말로 전도하기 위한 이상적인 토양이 마련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앞 문맥에 대한 설명이고, 이제 오늘 본문 44절로 연결됩니다. , 그러면 예수님의 마지막 수업이자 제자들을 향한 고별사를 살펴봅시다. 그 첫 부분은 자신이 그동안 가르치신 것을 요약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44)

또 이르시되마지막 수업시간에 입을 열어 가르치신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즉 예수께서 수난 당하기 전에 말씀하셨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들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했던 나의 말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지금 듣게 될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찍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부터 자주 하셨던 말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9:22)

 

변화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의 증언과 함께 들은 말입니다.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9:31) 그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개역이나 개역개정은, 별세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표준새번역은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라고 번역하면서 세상에서 떠나가심 별세”, “죽으심이라고 설명을 덧붙입니다.

 

누가복음 951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 예루살렘을 향해 나선 여정에서 자주 들었던 말씀,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고 그동안 자신이 가르치신 것을 요약합니다.

 

지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또 이르시되라고 그 밤에 그 방에서 입을 열어 하나님의 계시를 재확인 하십니다. 그 내용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수난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관해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보면, 44절은 바로 앞부분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서는 예수님에 관한 예언, 구체적으로는 수난의 예언이 성취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다 분명히 언급됩니다.

 

지금 24장에서 누가는 의도적으로 점점 분위기를 절정을 향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무덤에서 여인들에게는 천사들의 입을 통하여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일러줍니다. 그 말을 듣고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는 두 제자들에게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 예수님께 대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직접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때까지 두 제자들은 율법과 선지서가 예수님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그 때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있던 그 밤에 나타나셔서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이르는 모든 성경이 그 내용이 예수님으로 채워져 있는 동시에, 그 모든 내용들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서 성취되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큰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세 번째로 등장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그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성경이 예언하는 사건인 동시에 반드시 이 때 성취되어야만 하는 역사적이고 필연적인 사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모세와 예언자들과 또 시편에 내게 대하여 기록한 모든 것이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들 가운데 성취된 일들 전부는, 사실 구약이 대망하여 오던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달리말해 구약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면, 신약은 그 약속의 성취입니다.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자주 자주 성경을 이루기 위해 수난의 걸음을 회피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죽음은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확실히 아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6)라고 그날 오후 엠마오의 제자들을 향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5) 제자들은 갈릴리에서부터 가르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8) 했습니다. 또 말씀을 깨달아야했고, 말씀을 믿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깨닫지도, 깨달을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수난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18:34)라고 반응합니다.

 

그들에겐 절벽이었습니다. 캄캄한 동굴이었습니다. 그래서 24장은 열리다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설명하다’ ‘열리다’ ‘풀이하다.’라고 그 때 그 때 다르게 번역했지만, 모두가 다 그들의 마음을 열어라는 동일한 열리다라는 단어입니다.

 

열리다라는 단어는 한 번의 예외(7:34) 말고는, 모두 다 누가가 사용한 단어입니다. 누가는 복음서와 행전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길 즐겨했습니다. 눈이 밝아져(31) 성경을 풀어(32) 마음을 열어(45) 하늘이 열리고(7:56)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16:14) 성경을 풀어(17:3)라고 다양하게 번역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알고 깨닫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여시고, 깨닫게 하시지 않으면, 우리 죄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못합니다. 우리는 조금도 깨닫지 못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그 뜻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귀에 들려주어도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 진리를 깨닫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11:25)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계시가 언제나 캄캄절벽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계시(啓示)의 대권(大權)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계시의 양면은 1)숨기시고 2)나타내심입니다. 소위 전문가들이라고 자부하는, 세상의 권위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 아이들 같은 우리에게 나타내기로 하신 것은 아버지의 기쁘신 결정입니다.

 

타락 이후 진리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사람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3:24) 실낙원의 사람들에게는 생명나무의 길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하늘 아버지의 기쁘신 뜻에 따라 나타내실 때만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이제 만세에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진리를 온 세상에 드러내기로 하셨습니다. 구약이 대망하던 약속이 이제는 성취되었습니다. 그 성취된 구체적인 내용이 이제는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그동안 누가복음 전체를 통해 암시되었던 대로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가는 사실 그 복음서 1장에서부터 이스라엘 자손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는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1:78)을 노래하고, 할아버지 시므온은 구원을 만민 앞에 차려놓은 잔치 상으로서,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으로서 찬양합니다.

 

이제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서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누가는 이 성취된 구원 사역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 누가 복음 전체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부활하신 주님의 입술에서 우린 듣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살펴본 제자들의 모습은 이웃초청잔치를 앞두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초라합니다. 그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채택되었습니다만 액면대로 믿지 못하고, 작은 믿음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며, 깨닫기 위해 그들의 눈이 밝아져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야 주님의 고난, 주님의 부활, 주님의 죄용서가 얼마나 영광스럽고도 소중하며, 이 죄 용서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이 올 한해 여러분이 하는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며, 아니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영광스런 일임을 믿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들을 주 앞으로 초대하는 일은 현세의 풍요로운 삶과 내세의 영생이 걸린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결코 하찮은 일처럼 여기지 마십시오. 올해 여러분이 초대하기로 한 다섯 사람은 여러분 때문에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때 그들의 복은 유효합니다. 초대를 받고도 거부하면 오히려 심판이 더 클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으셨고 살아나셨고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온 세상에 전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시행하는 일에 여러분은 초대받았습니다. 아직도 여러분에게 소중한 이들을 초대하는 특권을 행사하지 못한 분은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순종하길 호소합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여러분도 증인이 되길 원하십니까?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주어지길 기도하십시오. 아니 증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의 가슴에서 불타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아직도 주님의 죽으심과 회개를 깨닫지 못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증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의 가슴에서 불타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아직도 그 이름을 힘입은 회개와 죄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자신을 심각하게 돌아보십시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세례교인 여러분, 살아오던 삶이 바뀐 회개가 여러분에게 있었습니까? 새로운 삶의 영역에로 옮겨졌다면 너희는 증인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고별사, 유언을 기억하십시오. 그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요 회개와 죄 용서의 증인입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중직자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죄용서의 감격이 넘쳤던 기억이라도 아직 남아 있다면 더 이상 여러분의 구주, 여러분의 주님을 배신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증인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목회자 여러분, 여러분은 마음에 소원이 있고 부름을 받아서 증인이 되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5월의 이웃초청잔치를 위해서만 사는 것처럼 한 때 반짝 증인처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하시는 성경의 말씀은 그날 밤 열한 제자들과 함께 한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그분을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과거의 기록문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고문서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향해서 너희는 증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오늘 이 순간 나타나길 소원합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없이는 아무도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아무도 회개와 죄의 용서를 전하는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눈을 밝히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길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날 주님의 마지막 수업, 유언과 같은 고별사의 마지막 구절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49)

 

그날 밤 모여 있는 무리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너희는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은 증거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사람만이 증인노릇을 하도록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 회개와 죄 용서를 경험한 사람이면 복음 전파를 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증인의 사명, 복음 증거는 모든 족속이 주님께로 돌아오기까지는 멈출 수 없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상관하지 말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름값을 하는 증인이 되려면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마지막 유언처럼 고별사를 종결짓기 전에 볼지어다.”라고 다시 한 번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그러고 나서 말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름값을 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명하십니다. 말씀을 기억한 여인들이나, 마음이 뜨거워진 엠마오를 가던 두 제자들이나, 간증집회처럼 앞 다퉈 말하던 그들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유령인가 하던 무리들 모두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음증거는 지식이나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이 성에 머물라 명합니다. 그러나 명령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아버지의 약속은 선지자들에 의해서 여러 번 전달되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 . .”(2:28)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 . .”(37:14)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44:3)

 

누가는 동일한 말씀을 사도행전에서 다시 예수님의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4) 아버지의 약속하심을 기다리는 일은 지금 우리의 사명 완수를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단 아버지께서 우리를 증인으로 구비시키기 위해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여러분들은 관심을 가지십시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으로 옷 입혀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엄청난 과업만 한 짐을 지고 땅 끝을 향해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순례자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땅 끝을 향해서 바로 나서지 말고 예루살렘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구비되기까지 여러분의 예루살렘에 머무르며 하나님을 앙모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람의 노력으로 덧입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 하늘로부터 입혀지는 능력입니다.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는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한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한 다섯 분의 이름을 두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이번 기회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위로부터의 능력이 입혀지는 일을 위해서 우린 기도에 힘쓰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인도에 민감하며, 바로 순종하는 전도자를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봄바람이 불어와서 지면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듯이 성령의 바람이 울산교회에 불어오길 기도하는 용사들 가운데 여러분의 이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최후 명령에 순종하여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사모하는 대열에 동참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울산교회 성도들을 사용하여 5월의 이웃초청잔치를 아름답게 하시길 원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울산 전역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는 회개와 죄 사함의 기쁜 소식에 휩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복된 5월의 주인공들이 되길 함께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