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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527_정근두.mp4
    성경본문
    눅 24장 50-53절
    설교일
    2018-05-27

축복과 경배

24:50-53

구주대망 2018527일 이웃초청주일, 찬송 28, 620, 491

 

오늘 특별히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이웃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준비한 이 자리는 여기에 오신 이웃 여러분들로 인해서 기쁘고 빛나는 잔치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울산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저는 시간을 내어서 예배당에 오신 여러분에게 유익한 말씀을 드리려고 최선을 다해서 오늘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입니다. 병원은 아플 때 찾아가서 치료를 받는 곳입니다.

 

예배당(禮拜堂)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그 이름대로 예배하는 장소,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경의를 표하고 예배하는 장소입니까?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아까 제가 읽은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믿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축복(祝福)과 경배(敬拜)라는 제목을 잡았습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직접 글을 써서 경전을 남기지는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는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聖經)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글입니다.

 

구약(舊約)이라고 불리는 부분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에 관한 약속을 기록했고, 신약(新約)이라고 부르는 책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약속에 따라 오신 예수님에 관해서 기록했습니다.

 

오늘 제가 읽어드린 성경말씀은 누가복음(福音)이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과 남긴 말씀을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네 사람이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福音)이라고 하면, 누가가 쓴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에 관한 기록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은 누가복음의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예수님의 승천(昇天)이 주제라는 것을 이미 눈치를 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세히 살피면 우리가 읽은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한 부분씩, 한 구절씩 자세히 살펴봅시다.

 

먼저 오늘 본문의 첫 부분은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이 주제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들의 입장에서는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드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의 신앙의 근본이 이 성경의 기록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에 그대로 믿습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가 달리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진리를 알려 줍니다. 그 가운데 가장 놀라운 진리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는 선언일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성경을 떠나서는, 어떤 사람도 어떤 책을 통해서도 우린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첫 부분에 보면, 오늘 본문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 하늘로부터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태어나기 전부터 천사가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 이제 그 오신 곳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한 번 세상에 온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 당연하듯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을 만드셨지만, 그 만드신 사람이 본래의 위치에서 타락해서 오늘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본래의 위치에 있었다면 사람들은, 여기 꽃보다 아름답고, 저기 숲속의 새보다 기쁘게 노래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본래의 위치에서 타락하지 아니했다면, 아직도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들의 삶이 힘들고 외롭고 고달프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비참한 상태에서 우리들을 건져내시려고 예수께서 마리아의 아기로 태어나서 십자가에 자신을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역을 다 완수하신 후에,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나타시고 마지막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창조와 구원의 이야기를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4복음서 기자 가운데 누가는 예수님의 하늘로 올라가신 장소를 밝힙니다. 부활하신 다음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 대 사명을 주신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베다니 근처 감람산 어느 기슭에서 승천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라는 표현입니다.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왜 예루살렘 성내가 아니라 예루살렘 시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감람산 반대편 기슭까지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을까요?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성전에서, 군중들이 보는 가운데, 그들의 환호 속에 승천하시지 않고, 몇 몇 제자들만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을까요?

 

앞부분을 읽어보면 사흘 만에 살아나신 후에도 부활의 증인들로 선별된 사람들에게만 예수께서는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뿐 아니라 주님의 승천도 그의 증인이 될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환호할 군중들에게가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하며 찬양할 제자들에게 보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에게만 경배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자 그러면 이제 본문의 주요 장면으로 눈길을 돌립시다. 예수님이 하신 마지막 말은 기록되어 있질 않습니다. 다만 그의 행동만 누가복음서 마지막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50)

 

축도(祝禱), 축복기도 하시는 전형적인 방법은, 축복을 받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복을 비는 것입니다. 손을 들어 축복하는 장면은 유대문화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런 행동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전통을 따라서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백성을 아직도 손을 들어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6:24~26) 그 전통을 따라 이 예배의 마지막 순서도 손을 들어 축도를 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땅위에서 당신의 사역을 다 완수하고 오신 곳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당신의 특징적인 사역의 재확인 시켜주십니다. 새롭고 완전한 대 제사장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仲裁)로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하늘에 속한 복을 넘치도록 복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웃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날 손을 들어 축복하신 주님을 꼭 기억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그날 손을 들어 축복하신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힘듭니까? 고달픕니까? 외롭습니까? 낙심이 됩니까? 숨이 막힙니까?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그러므로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기억하십시오. 외롭더라도 낙심되더라도, 숨이 막힐 것처럼 아무리 힘들더라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삶에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서 손을 들어 축복하셨습니다.

 

그분이 복 주시면 아무도 그 무엇도 우릴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 복을 우리로부터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선언합니다. . . .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8:31, 32)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 . .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8:35, 37)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8:38, 39)

 

숨 막히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거기 하늘은 성도들의 마지막 희망이 깃던 곳입니다.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51) 새롭고 완전한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참된 복의 중재자로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손을 들어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넘치도록 복 주셨고 또 지금도 주십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한없는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1:3, 우리말) 그러므로 하늘 백성 된 우리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심을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후반부의 기쁨과 찬양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를 드린 후에 기쁨에 넘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계속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24:52,53 현대어) 예수께서는 손을 들어 축복하면서 오신 곳 하늘로 올라가셨으나 우리를 버려두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버려두시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릴 실망시키는 대신에 우릴 위해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다만 우리를 증인으로 준비시키러 떠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기 위해서, 오신 곳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슬퍼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떠나보내고 기쁨에 넘쳐서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3년간 함께 한 스승에 대한 배신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왜 그가 떠나셨는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떠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그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이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계획에 자신들의 부름을 알고, 그 부름에 응하기 위해서 준비될 것을 알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기 위해서 올라가심을 깨달은 제자들은, 계시록의 24장로들처럼 예수님을 향해서 경배합니다.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님은 그 순간부터 제자들에게 예배의 대상으로 등극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리우신 이 놀라운 승천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았던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얼마 전만 해도 두려워서 방문을 잠그고 있던 그 도시 예루살렘으로 이제는 기쁨에 넘쳐서돌아갑니다.

지금 이들의 기쁨은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이고, 세상이 앗아갈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리하여 누가복음 처음에 흘러넘친 기쁨의 샘은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금 샘솟고 있습니다.

 

계속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53) 제자들은 지금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늘 성전에서 머물면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성전 제사로 시작하였듯이 그 마지막도 성전의 예배와 찬송으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찬송하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그것이 기쁜 소식을 듣고 감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온 영혼과 마음이 이 복음으로 인해서 감격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모였다 하면 하나님을 찬미하고 그 이름을 노래하는 것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은 우리가 믿는 바에 따라서 터져 나오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다 해놓으신 것을 믿게 될 때에 터져 나오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가 기독교처럼 노래를 만든다고 해서 우리가 부르는 것과 같은 찬송이 나올 수 없습니다. 자기가 쌓는 공덕으로 좋은 곳을 바라보는 종교에서는 이런 찬송이 터져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 것은 우리의 탐구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계시하신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신 결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누구에게나 신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이고 그들의 모임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모였다하면 찬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을 체험한 자는 감사와 경배를 돌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 제자들이 땅 끝까지 전파할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기쁜 소식은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신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본래적인 당연한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입니다. 꽃이 아름답게 피는 것도, 새가 즐겁게 노래하는 것도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을 초대하여 신앙의 자리에 초대하는 것도 찬양하는 여러분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자녀들에겐 효도가 선택이 아니고 자녀의 도리이듯이, 인간에겐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피조물의 본분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깨닫게 되면 그 마음에는 기쁨이 자리하고 입술에는 기도와 찬양이 터져 나오고 삶에는 매사에 감사의 꽃이 피어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의 마지막 본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삶의 끝을 어떻게 장식하고 싶습니까? 머물 때는 찬양하고 떠날 때는 축복하는 삶을 소원한다면 아름다울 것입니다.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아니 여러분은 어떤 마지막을 사모합니까?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과 성도들은 그 답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손을 들어축복하는 주님을 닮기 원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앞에 있는 성도들을 축복하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시다.

 

하늘로 올라가시며 손을 들어제자들을 축복하는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주님을 닮아 복을 비는 사람이 될 뿐 아니라, 그 축복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경배한 후, “큰 기쁨으로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에서 날마다 찬양한 성도들을 닮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기쁨, 기도, 감사와 찬송이 앞으로 여러분의 삶의 특징이 되길 원합니다. 하늘로 올라가시며 손을 들어제자들을 축복하는 주님을 믿기만 하면 삶은 달라집니다. 올라가신 그대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다시 오실 때까지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서 우릴 다스리심을 믿는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함께 하신 이웃 여러분, 성도 여러분, 기쁨 기도 감사 찬양이란 사람의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때 여러분의 남은 인생길은 아름답게 펼쳐질 것입니다. 지금껏 걸어온 길이 아무리 힘들고 괴롭고 외로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남은 여러분의 삶을 기쁨의 삶, 기도의 삶, 감사의 삶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부디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초대한 친구 신앙인들과 함께 신앙의 첫 걸음을 내딛기 바랍니다. 온 세상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이제 사람의 본래의 위치를 회복해서 여기 꽃보다 아름답고, 저기 숲속의 새보다 기쁘게 노래하는 사람의 모습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사는 것이 황홀하다고 고백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믿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설명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믿는 사람들은 그 분을 경배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축복(祝福)시는 분이시고 믿는 사람들은 경배(敬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축복(祝福)과 경배(敬拜)라는 제목을 잡았습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기쁨, 기도, 감사의 삶이, 지금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분은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할 때에 아멘으로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아멘이란 진실로 그렇습니다.”하는 동의를 표하는 말입니다. 이제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