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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617_정근두.mp4
    성경본문
    롬 12:4-5
    설교일
    2018-06-17

관계 맺고 살아가기

12:4-5

구주대망 2018617일 울산교회 주일 낮 예배, 찬송 23, 151, 273

 

지난 두 주일 동안 별미를 잘 드셨습니까? 두 주간이지만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새로운 지방일꾼이 곳곳에 뽑히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세기적인 이벤트도 열렸습니다. 다만 바라기는 그 변화가 매일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이길 바랄뿐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바랄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배려로 이른 여름휴가를 잘 다녀왔습니다. 요즈음 세상이 좋아져서 어디서든 휴대폰으로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도 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분들과 직접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나 봅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좀 일찍 여름휴가를 내어서 함께 얼굴을 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첫 째 아들네는 딸 둘에 아들 하나, 둘째 네는 딸만 둘입니다. 첫째는 미국에 서울에 살고 있고 둘째 네는 서울에 살지만, 우린 우리대로 바쁘다보니 서로 함께 만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값 오르기 전에 함께 만나서 여름휴가를 갖자고 의기투합해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여름휴가 계획도 하기 전에, 다녀와서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휴대폰이나 인터넷으로 사람 사이를 쉽게 이어주고 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서로 접속하는 사람들의 수효는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은 가히 거리를 정복하는 느낌이 드는 이 시대 새로운 축지법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과거 어떤 때보다 더 개인주의적이 되었습니다. 자아존중, 자아표현, 자아충족 등이 강조되어서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의 하나로서 서로 간의 관계가 멀어지고, 단절되었습니다. 자기에게 최선의 것만 추구하는 삭막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문명의 변화, 주거문화의 발달도 서로 간의 단절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옹기종기 살 때와는 달리 아파트에 살게 됨으로 더욱 이웃과의 단절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건물 벽은 서로 붙어 있는데 인간관계는 서로 단절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위에 살아도 서로 모르고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직장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위의 공장이나 큰 회사를 다니다 보면 함께 일하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게다가 우리 울산 교회 크기만 되어도 서로 모르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피해이기도 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도록 의도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2:18)

 

인간(人間)관계를 갖고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서로에게 속하고 싶은 마음은 인류에게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예수님도 열 두 제자를 선택한 목적이 함께 있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가르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어야 했지만 주님도 친구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교제(交際)라는 말로 이 깊은 우리의 영적인 욕구를 표현합니다.

 

교제는 결코 서로 어울려 다니고 파티에 함께 가고 친구가 되어주는 수준이 아닙니다. 단지 서로 접촉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 이상입니다.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것보다 더 큰 무엇을 의미합니다.

 

교제(交際)란 진정한 의미로는 영혼과 영혼의 연결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지 못하고 살아가고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감정적인 교감, 지적인 교류, 성적인 관계는 나누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관계를,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교감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정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접속해야 하며 다른 신자들과 교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필수적일까요? 거기에는 정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신체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살면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들은 상식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활동을 중시하고 바쁘게 달리고 있지만 우리를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버티도록 하는 것은 서로 간에 갖는 깊은 관계입니다. 서로 결속되어 있다는 의식, 중요한 일에 함께 관련되어 있다는 의식, 삶에 의미를 주는 관계야말로 중요합니다.

 

비타민 결핍증만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접촉 결핍증도 치명적입니다. 그 증상은 신체와 마음과 영혼을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 증상은 심각해서 영적인 침체, 신체적 질병, 조기 죽음으로까지 연결되곤 합니다.

 

그처럼 심각한 증상까진 아니라도 인간접촉 결핍증은 성취감 저하, 피곤, 고독도 유발시킵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날마다 비타민C가 필요하듯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매일 일정량의 접촉도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는데 음식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5대 영양소뿐만 아니라 비타민과 미네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공기도 필요하고 물도 마셔야 하고 햇볕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깊은 인간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건강에 비타민이 필요하듯이 삶에는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과의 깊은 접촉이 꼭 필요합니다.

 

왜 영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까? 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성경은 네 가지 상징을 통해 그것을 보여줍니다. 영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의 은유를 살펴보겠습니다. 교회란 참석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교회란 관계를 맺는 모임입니다.

 

1. 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건물의 벽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영적인 건물로 비교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

 

요즈음 다운공동체 교회가 예배당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께서는 한 때, 날마다 성경본문 묵상보다 설계도면을 살핀다고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시더군요! 이제는 건물이 올라가는 현장에 나가서 건물이 세워지는 것을 가끔 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과자 가게 앞에 서성거리는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살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많은 건축 자재들만 널러져 있었는데 어느 날 보면 서로 연결되면서 점점 건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흩어진 건축자제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제 자리를 잡을 때는 건물이 됩니다. 벽돌, 나무, 쇠 조각, 스위치, 전선 전구 등이 서로 분리되어 있을 때는 건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설계도에 따라서 제 자리에 연결될 때 건물의 모습이 들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지난 5월말에 울산교회에 오셔서 지금 예배에 참석하고, 울산교회라는 신앙의 공동체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울산교회 한 식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성도들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합니다.

 

한 건물 안에 몸은 와서 앉아 있고 귀는 함께 말씀을 듣고 입술로는 찬송도 함께 부르고 나가면서 서로 인사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삶이 연관되기까지는 여전히 구경꾼이지 참여자는 아닙니다. 서로 관계 맺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 살아야 한 식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울산교회로 초대해서영적인 성전, 살아있는 성전을 건축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건물입니다. 그 건물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2:21)

 

왜 하나님께서는 성전이란 그림을 통해서 영적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보여주실까요? 교회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건물을 등장시킵니다. 왜냐하면 건물을 보면 모든 재료들이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둥은 다른 기둥을 받쳐주고 벽들은 다른 벽들 지지하고 벽들은 지붕들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깊은 필요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성도들의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정서적인 지원뿐 아니라 때로는 신체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다른 성도들의 영적 지원도 틀림없이 필요로 합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 가운데는 자녀들이 성장하는데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고 솔직한 고백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선택을 하신 분입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어디서 그런 지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힘든 시기에 누가 여러분을 붙잡아 줄 수 있습니까? 건물에 있는 벽돌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는 삶을 살도록 의도된 존재가 아닙니다.

 

2. 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교회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건물 안에 있는 벽돌이 되는 것과 비교할 뿐 아니라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으로 비교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자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신체적인 몸에 비교합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12:4,5)

 

이 구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1. 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는 독특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서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누구와 같아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독특하게 지으셨습니다. 다른 누구를 복제하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닮으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독특한 존재입니다.

 

2. 우리는 모두는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해야 하며 채워야 할 다른 적합한 장소가 있습니다. 몸을 보십시오. 부분마다 다른 역할을 합니다. 만약 몸의 부분이 같은 역할을 하려고 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기관이 들으려고 하고, 모든 기관이 먹으려고 하고, 먹은 음식을 모두 다 소화시키려든다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3. 우리는 서로를 모두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한 몸을 완성시킵니다. 손은 발을 향해 넌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귀가 코를 보고 넌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시키는 데는 우리 모두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4. 또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믿는 것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서로에게 속해야 합니다. 전 예수님을 믿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고백이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에 서로 속하지 않으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한 사람은 다른 성도들과 교제라고 함께 서로에게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한 사람들은 자신을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5. 우리는 모두 다른 이에게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리되면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눈동자는 아무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손은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열매 맺는 성도가 되길 원하시기에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 속하길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몸을 택하셔서 교회를 보여주실까요? 몸 안에서 모든 부분은 조화롭게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잘 자라기 위해서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하고 서로에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2:19) 힘줄이란 여러분의 몸의 근육부분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 붙잡는 힘줄이 제 구실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양과 힘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 성장에 문제가 심각하면 몸에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몸된 교회에 소속되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속해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과 신앙생활은 홀로 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자랄 수 없습니다. 서로 관련되어 있어야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3. 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양떼 가운데 속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100:3)

 

시편 23편에는 아름다운 시가 나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 하나님의 양떼에 속하면 위대하신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1-15)

 

왜 하나님께서 양떼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양의 그림을 사용하실까요? , 양은 보호되고 돌봄을 받아야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기능 중 하나입니다.

 

사업에 실패를 할 때, 가정생활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개인적인 위기를 당할 때 여러분은 여러분과 함께 있어주고 힘이 되어줄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자정이 넘어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바로 전화를 걸면 달려와 줄 사람이 우리 삶에는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등을 돌릴 때, 여러분을 받아주고 맞이해 줄 친구가 필요합니다. 구역장이나 교구장이 방패막이 되어주고 공동체를 섬기는 교역자들이 보호막이 되어야 합니다. 양은 모름지기 목자가 필요합니다. 독자적인 생존과 생활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자기가 속한 구역으로부터 따뜻한 보호와 신속한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 속에 담긴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비단 목사가 되어 교회를 책임지고 장로가 되어 교구를 돌보는 것 뿐 아니라 구역을 맡아서 섬긴다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는 목양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목자의 마음자세, 어떠해야 합니까?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2,3)

 

많든 적든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목자의 직무는 자원하는 직무입니다. 아무도 양 무리를 돌보도록 여러분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구역장을 하는 것도 장로나 목사가 되는 것도 강제할 수 없는 직무입니다.

 

물론 구역장이나 장로가 되는 것이 돈을 위해서가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가 되는 것도 먹고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즐거운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억지로 하는 일도 아니지만 동시에 섬기는 자세로서 사역해야 합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자기 뜻대로 인도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첫 째도 양들을 사랑하고 둘째도 양들을 사랑하는 것은 목자의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귀한 직분을 맡아 너무 바빠서 성도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면 정말 큰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6월말 중직자 수련회를 위해 시간을 꼭 확보하십시오. 중직자뿐만 아니라 구역장님들도 모두 초대되었습니다.

 

주신 직분을 따라 다른 사람들이 영적으로 자라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맡은 사람들은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일을 감당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복을 받는 첩경입니다.

 

4. 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한 가족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영적 가족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영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는 같은 식구입니다.

 

내가 늦어지면 그대로 하여금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서 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가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딤전 3:15, 표준새번역)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중에 많은 이들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살고 있고, 친척들로부터도 멀리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을 당하면 고향 앞으로 가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분 가운데는 독신으로 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신앙생활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족으로부터 영적으로 자라고 발전하는 일에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영적 가족의 일원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우리는 서로서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사랑하고 돌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돕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식구처럼 처신할 수 있을까요?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다투어 서로 남을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마십시오.”(12:10, 공동번역)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서로 형제자매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서로서로라는 표현이 58번 이상 나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사랑해야 하며 서로서로 돌보아야 하며 격려해야 합니다. 서로서로 지원해야 하며 자신을 주고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상호사역은 같은 신앙공동체에 속한 하나님의 식구들의 특징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도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참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깥에서 성도의 교제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가족으로서 안에 들어와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래서 교회와 음식점은 서로 다릅니다. 식당에 가면 여러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오면 적어도 누군가는 여러분의 이름을 알고 개인적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한 6, 70명 정도가 되면 이상적이겠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완벽한 사람이라면 교회 같은데 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울산교회는 그런 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제발 우리 교회에 등록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고 허물이 있는 분이라면 등록하시길 권합니다. 나사가 풀리고 대책이 없는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도 좋습니다. 여긴 그런 분이 새로워지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여 여러분이 완벽한 교회를 만나면 거기 등록해서 안 되는 것을 아시죠? 여러분이 등록하는 순간 그 완벽은 불완전한 여러분 때문에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가족이란 비유를 사용해서 교회에 관련되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실까요? 가족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같은 울산교회에 한 가족으로 속해 있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로 헌신해야 합니다.

 

더 이상 멀찍이 바라보지 마십시오. 한 걸음 다가오십시오. 큰 모임 울산교회에 소속되고 작은 모임 구역에 참여하면 많은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참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교회가 여러분의 모든 기본 필요를 충족시키는 모임이 되길 의도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서로에게 헌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식구들에게 드리십시오. 구역모임에 참여하십시오. 올 하반기에도 여러 가지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하기로 하신 것을 잘 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주님과 관계를 맺고 주 중에는 형제자매들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