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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624_정근두.mp4
    성경본문
    시23:1-6
    설교일
    2018-06-24

염려를 주께 맡겨라

23:1-6

구주대망 2018624일 주일 낮 예배 찬송 64, 88, 570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이 자리에 오신 이웃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는 시편 23편을 통해서 현대인이 겪는 스트레스가 무엇이며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시편 23편은 성경 가운데서, 그리고 시편 가운데서도 가장 성도들이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어느 시편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름에 계속해서 몇 차례 시편 23편을 살필 때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고,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여러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첫 번째 자리에 오는 스트레스는 염려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염려를 애완동물처럼 옆에 두고 삽니다. 돈 문제로 염려하고 직장 때문에 염려하고 부부관계로, 자녀문제로 염려하거나 갑자기 암 진단이라고 받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건강문제로 염려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면 염려는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염려는 여러분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로 염려는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셋째로 염려는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염려, 왜 삶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염려는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무 것도 솥에 넣지 않고 뭉근한 불로 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기어를 중립에 두고 가속페달을 밟는 것 같이 공회전만 할 뿐입니다. 연기만 나고 소음만 날뿐이지 차는 조금도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와 같이 염려는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지나간 일을 바꿀 수 없습니다. 염려는 과거를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미래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현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란 삶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염려, 왜 비합리적입니까? 문제를 확대시키기 때문입니다. 문제만 집착하면 조그만 모래 무더기도 나중에는 산더미처럼 보이게 합니다. 염려, 그것은 집착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집니다. 염려되는 것을 곱씹을수록 그것은 점점 더 엄청 나 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염려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짓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결단하셔야 합니다.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계속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염려, 왜 건강에 좋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몸은 염려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염려하기 시작하면 골치도 아프고 등줄기도 쑤시고 밤이면 잠도 오지 않고 밥맛도 떨어지고 먹어도 소화도 잘 되질 않습니다. 우리의 신체는 염려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부자연스런 일입니다.

 

보십시오. 동식물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 염려합니다. 염려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우리는 염려합니다. 염려로 인해 불행해지고 건강까지 해칩니다.

 

염려라는 옛 영어는 목을 조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염려는 숨을 쉬지 못하게 목을 조르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질식시킵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염려하는 것은 생래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학습을 통해서 염려를 잘 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학습해서 획득한 것이라면 학습자체를 포기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학교 가서 배우는 것이 좋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학교, 왜 갑니까? 유익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닙니다. 공부, 왜 합니까? 배워두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염려학습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염려의 해독제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1. 하나님이 나를 돌보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첫 문장을 잘 묵상해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우린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그가 공급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것이 어떻게 염려의 해독제 역할을 할까요? 목자가 무슨 일을 하는 지를 잘 알기만 하면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러면 목자, 어떤 일을 합니까? 무엇보다 목자는 양들의 필요를 채워줍니다. 먹을 것을 공급하고 쉴 곳을 마련해 줍니다. 목자는 양들을 보호합니다. 해치려는 짐승들로부터 지켜줍니다.

 

또한 목자는 양들을 인도합니다. 그들이 가야할 곳을 몰라 할 때 양들의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목자는 양들을 바로 잡아줍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해결해 줍니다. 목자는 양들이 필요한 모든 기본적인 것을 채워줍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목자이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을 여러분의 목자로 삼기만 하면,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여러분을 보호해 주십니다. 여러분을 인도해 주십니다. 바른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기만 하면 이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좋은 목자이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 하시리 로다.”(40:11)

 

신약 사도는 더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19)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욕망을 채워 주리라고 약속하지 않고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필요와 소욕은 다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소욕을 다 채워주셨다면 우린 세상에 더 없는 망나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쓰레기 인간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정말 비참하게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 가운데서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넘치도록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채우리라고 약속하십니다. , 그러면 그 약속은 하나님이 누구이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의 성품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시면 약속대로 하실 것입니다. 신실하지 못하시면, 약속을 어겨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모든이란 무엇을 포함한 단어입니까? 아이들 학원비, 가족의 생활비, 집세, 아파트 관리비, 공공요금, 병원비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그리고 영적인 필요도 다 포함됩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영적인 필요, 경제적인 필요, 건강상의 필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모든 필요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면 쓸 것을 공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혼란 가운데는 인도해주시고 당면한 삶의 문제에는 대안을 제시해 주실 것입니다. 염려할 어떤 것도 남겨 두질 아니하실 터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대로 된 보험회사라면 약관에 보장된 모든 것을 보험가입자에게 이행할 것입니다. 보험약관에 무엇이 보장되고 무엇이 아닌지만 알면 보장된 일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7,000가지 넘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들을 알기만 하면 염려할 것이 여러분에게 남겨질 수가 없습니다.

 

염려란 도움이 안 되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건강에 도움도 되지 않지만 또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시면 염려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염려할 때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말하자면 무신론자로서 처신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고백하지만 행동으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시지도 않는 분으로, 모든 것이 우리 자신에게 맡겨진 것으로 처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염려를 취미처럼 붙잡고 계신 성도 여러분, 염려하는 여러분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염려하는 순간마다 여러분은 무신론자로 처신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염려란 실천적 무신론자의 태도입니다. 약속을 지키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니면 약속을 지키실 의사도 능력도 없는 분처럼 대우하는 행위입니다. 이제 염려를 중단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묵상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크게 두 번째로 2 어떻게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목자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목자 삼는 이에게만 목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2.1 예수님을 목자로 모셔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에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주인인 것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 노릇하기를 중단하시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주님이란 뜻은 무엇입니까? 주님이란 말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관장하는 분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오늘날 말로 바꾸면 보스란 말입니다. 총지배인, CEO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가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분이란 뜻입니다. 최고의 위치에서 우리 삶에 대한 최후의 말을 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삶에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분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최후의 선언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대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시고 좌지우지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1)내 양은 나를 안다.”(10:14) “2)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3)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10:27)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먼저 예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하고 다음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뜻하며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님이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알고 그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에 최고 권위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안고 있는 모든 염려는, 그것이 무엇에 대한 것이든, 염려가 여러분을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목자이신 주님이 여러분을 다스리게 하셔야 합니다. 모든 염려의 밑바닥에는 여러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마음대로 하려는 시도가 염려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질 일이 아닌데 책임을 지려고 시도하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자녀들 문제, 아니면 지선 후 정국문제, 평화통일문제, 지구환경문제 그 무엇이든 여러분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다스리려면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염려란 경고등과 같습니다. 염려하기 시작하면 불이 켜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향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하려고 든다는 신호입니다. 모든 염려의 밑바닥에는 우리가 뭐든지 다 하려고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통제하려고 드는 것이 바로 염려의 시작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시고 누가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는 분입니까?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습니다. 이제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 자신이 통제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통제하도록 맡겨드리든지 결단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공동으로 운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고를 내고 하나님이 비난받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각자는 택일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기의 삶의 주인노릇을 하든지 하나님께 삶을 내어맡기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신보다 훨씬 더 무엇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지를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행복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선택을 하실 차례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려고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노릇을 하려들면 염려하게 마련입니다. 만사를 통제하려하면 여러분이 도무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불가능한 시도입니다.

 

하나님의 지시 없이 여러분 자신의 길을 가려들면 당연히 염려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안이 여러분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매사를 다 염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면 그분이 여러분의 주가 되시고 목자가 되십니다. 여러분이 땀을 흘리는 대신 주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저는 하나님을 나의 목자, 나의 주님으로 모시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가까운 세월에 한 번도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결단하실 차례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시면 둘째로 2.2 만사를 두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염려하는 대부분의 일들을 두고 기도드리십시오. 하나님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과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길 원하십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까? 그러면 모든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염려하는 모든 것을 두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놀랍게도 염려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입니다. 염려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염려는 고기도 넣지 않고 뭉근 불로 가마솥에 불을 떼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하나님께 접속하는 것입니다. 염려가 될 때 택일하십시오. 기겁하시렵니까? 기도하시렵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더 나은 선택을 하십시오.

 

염려에 싸여 지내지 말고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기도하는 편을 택하십시오.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는 더 나은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신앙에 관한 사안만이 아닙니다. 교회에 관한 일만 아닙니다. 전도에 대해서만 아닙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합니다.

 

골라서 기도드리지 마시고 무슨 일을 두고도 기도하십시오. 큰일은 기도제목으로 삼고, 작은 일은 염려꺼리로 남겨두십니까? 아니면 작은 일을 기도제목으로 삼다가 큰일을 만나면 염려하기 시작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염려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면 기도할 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하나님의 능력은 여러분의 염려보다 크십니다. 문제를 붙들고 염려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시인은 말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늘 우리 생각으로 가득 차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일일이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맡긴다.”는 말은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짐을 풀어놓는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엄청난 스트레스 해소방안입니다. 여러분을 성가시게 하고 괴롭히고 스트레스를 주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던지십시오. 하지만 낚시 줄처럼 던졌다가 다시 당기지 마십시오.

 

염려란 낮게 깔린 구름과 같습니다. 우리는 밝은 태양을 볼 수 없어서 걱정하지만 구름 위에는 태양이 계속 빛나고 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구름 위를 날아보면 태양이 빛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하시면 셋째로 2.3 한 번에 하루씩만 생각하십시오. 날마다 하루에만 집중하고 생각하십시오.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34)

 

그렇습니다. 내일 일은 오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십시오.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도 비가 떨어지기까지는, 우산을 미리부터 펼칠 필요가 없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그때 우산을 펼치면 됩니다. 어제 비가 왔다고 오늘 우산을 펼칠 필요도, 내일 비가 온다고 해서 오늘부터 우산을 쓰고 다닐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제를 위해서 오늘 염려할 필요도 없고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지금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간 오늘조차 망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엄청나 보이는 미래를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작은 조각으로 나누십니다. 24시간으로 토막 낸 하루하루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린 다만 한 번에 하루만 살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시고”(6:11, 표준새번역) 필요한 양식을 날마다, 하루하루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은 하루하루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선배들을 고백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이 세상 어디에도 염려를 멈추게 할 약은 없습니다. 염려를 멈추게 할 세미나도 테이프도 책도 없습니다. 영적 경험 한 방으로 다시는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은 없습니다. 염려에 대한 처방은 하루하루 사는 것입니다.

 

때로는 시간시간 사는 것이고, 순간순간 사는 것을 터득해야 합니다. 내가 나의 주인노릇을 할 것인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실 것인지를 순간순간 물어야 합니다. 누가 나의 삶을 통제할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내가 주인노릇을 하면 염려할 것이 수월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인노릇을 하면 하나님이 그 문제들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왜 여러분이 염려합니까? 임명도 받지 않고 염려분과 위원장노릇을 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알아서 하실 것이고 여러분이 나설 일은 아닙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염려하게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성가시게 하고 걱정하게 만드는 요인입니까? 위장장애를 일으키도록 하는 요인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모릅니다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처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히 여러분이 가는 길을, 겪는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도 아시고 무슨 문제에 봉착해 있는지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에 첫 자리에 두시고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길 원하면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십니다.

 

그것이 산상보훈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바입니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6:33,현대어성경)

 

집에 가셔서 시편 23편을 날마다 읽고 살펴보십시오. 여섯 절에 열일곱 번이나 나의” “내가” “나를과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인칭으로 표현하는 단어도 다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삼인칭으로는 7번 이상 표현됩니다. 이 시편은 다른 어떤 시편보다 나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시편 23편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십시오. 여러분의 스트레스는 날아갈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처리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모든 염려를 잠재우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면 필요한 것을 모두 공급하고 원수로부터 보호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수천 년 동안 부족함 없이 성도들을 인도하신 목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새로 나타난 교주를 바라보면 여러분은 속고 미궁을 헤매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목사들은 모두 다 틀리고, 그 한 목사만 옳은 것처럼 보이면 여러분은 벌써 이단에 감염된 사람입니다. 빨리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한 적이 없는 분이라면 오늘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주님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십시오.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의 목자가 되셔서 여러분의 삶을 보호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 맺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금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다른 모든 이는 가짜요 모조품입니다. 하나님만이 지금 우리의 유일한 목자시오 앞으로도 목자가 되실 것입니다. 분명한 고백을 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확실한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염려와 걱정에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더 이상 짐을 지고 살지 않아도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