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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701_정근두.mp4
    성경본문
    시 23:2
    설교일
    2018-07-01

분주함을 주께 맡겨라

23:2

구주대망 201871일 주일 낮 설교 찬송 43, 89, 56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자리를 찾으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지난 주일에 이어서 시편 23편을 계속 살피려고 합니다.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7대 스트레스를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소시켜주시는지를 계속 살피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분주함, 바쁨, 쫒기는 삶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특히 산업수도 울산을 사는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일중독에 걸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일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이런 증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언제나 허둥대며 삽니다. 항상 해야 할 일의 목록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깁니다. 빨강 날이 되어도 밀린 일을 하려고 드는 사람입니다. 또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좀 천천히 살라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보다 심한 증상은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쉬면 불안하고 죄책감까지 듭니다. 가장 심한 경우는 아파서 입원해야 비로소 쉬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성탄카드나 연하장은 모두 거래처에서 오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해도 어느 놈이 방학하는지를 모릅니다. 예배 시간에도 휴대폰을 꺼지 못하고 진동으로 바꾸어놓고 예배를 드리다가도 진동을 느끼면 로비로 나가서 받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도 식구들로부터 하숙생이라고 놀림을 받습니다. 꼭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는 녹화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정작 그것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앉아서도 직업과 관련된 자료들을 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127:2) 다른 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된 일이다.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쉼을 얻게 하신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너무 많은 일을 시킬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에 누이시는 도다.”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이런 그림은 양들에겐 가장 아름다운 천국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쉼과 회복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균형 있고 완벽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항상 일만 정신없이 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좋으신 목자께서는 쉼과 회복이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분주한 삶에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 째로 1. 자신의 가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다하게 일하는 이유는 자신의 일과 자신의 가치를 혼돈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많이 하면, 그리고 성공하면 우리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느냐와 우리가 누구냐 하는 것을 착각합니다. 군대에서만 계급이 높으면 더 훌륭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직급이 높으면 더 나은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이름만 알고 넘어가질 않고 반드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성함이 누구시죠?”를 물으면 무슨 일 하세요.”를 묻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에 따라서 대우하려고 드는 세상입니다.

 

분주함을 극복하는 최선의 처방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뜻을 정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우리를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1:18, 표준새번역) 피조물의 첫 열매란 으뜸 열매란 말이고 우린 그가 만드신 만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존재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만물보다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마음에 쉼을 얻으십시오. 여러분의 가치를 입증하려 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드셨기에 여러분은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요즈음은 기계로 만든 제품보다 수제품이 인기가 있습니다. 그것도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서 가격은 뜁니다. 국보급 장인이 만들면 부르는 게 값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작품, 전능자의 핸드메이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여러분의 삶은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면 나도 나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누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면 나도 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일생을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산상보훈에서 주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들을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6:26, 현대어성경) 만약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다면 우린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과도한 일로서 여러분 자신을 입증하려 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우리 모습 그대로를 OK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당신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습을 당신의 눈동자 안에 담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분주한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 두 번째 방안은 2. 지금 가진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얻은 열매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3:13, 현대어성경)

 

혹시 여러분은 더 많이 버는 일에 집착해서 지금 가진 것조차 즐기지 못하지는 않습니까? 물론 먹고 살기에 허덕이는 분도 없진 않지만 가질 만큼 가져도 더 많이 벌겠다고 바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미 가진 것, 창고에 있는 것조차 즐길 여가가 없는 삶을 사는 분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신문이고 TV고 할 것 없이 계속 선전하는 아름다운 아파트를 구입해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없는 아파트도 꽤 많습니다. 아무도 그 좋은 아파트에 남아있질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공부한다고 늦게, 어른들은 돈 번다고 늦게 돌아오다 보면 일주일에 몇 번 오는 파출부만 대낮에 아파트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조건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것은 현대인의 병적현상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으니까 나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버니까 나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지도 않는 것을 사고, 실제 모습과는 다른 자기 과시를 돈으로 하려듭니다.

 

그것도 모두 할부로 구매하다보면 월급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구매를 합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 모두 다 직장에 갑니다. 넓고 좋은 아파트 할부금, 새로운 가전제품 할부금, 멋진 자동차 할부금 갚다보면 막상 서로의 관계를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원하는 삶의 방식은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적게 가지고 편안한 것이 많이 가지려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낫다.”(4:6, 표준새번역)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벌어둔 물질이 아닙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사람 가운데서 아무도 내가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모았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좋은 관계를 위해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을 뉘우칩니다. 배우자나 자녀뿐 아니라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갖는 일에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하나님과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많든 적든 한 평생 축척한 모든 것을 포장이사해서 먼저 보내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빈털터리로 죽는 것을 비참하게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더 나은 방식이 아닐까요? 손 털고 떠나는 것, 유산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것은 성숙한 성도가 시도할 마지막 결단임을 꼭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가진 것을 때때로 좋은 일에 사용하십시오. 십대들의 둥지나 밝은미래 복지재단 같은 좋은 일들을 위해서 후원하십시오. 이번 틴즈페스티벌을 위해서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벌려고만 시간을 사용하지 말고 부디 지금 가진 것을 잘 사용하고 자신을 위해 사용하며 즐기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러면 분주한 삶에 벗어나는 세 번째 방안을 살펴봅시다. 3. 일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 말고 다른 것을 위하여 의도적인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매주간 몇 시간을 일을 위해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시간한도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 말고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하여 시간을 계획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도 여러분의 일처럼 중요한 삶의 일부입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편부모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합니다.

 

어떤 여성도가 목사님에게 화가 났습니다. “내가 하루 종일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목사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시더군요.”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을 했습니다. “월요일은 제가 쉬는 날인줄 모르셨습니까?” “아니 목사님, 월요일이라고 해서 마귀가 쉰답니까? 그런데 목사님은 월요일이라고 쉬십니까?” “, 하루도 쉬는 날을 갖지 못하면 저도 마귀처럼 될까봐서요

 

그렇습니다. 목사만 아니라 누구든 쉬지 않고 피곤해지면 마귀처럼 변합니다. 신경질 내고 짜증내고 원망하고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 어려울 만큼 사나와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20:9,10 공동번역)

 

하나님께서는 한 주간에 하루를 쉬는 날로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계명 가운데 네 번째 계명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규정이기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규정과 같이 십계명 가운데 포함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매 칠일마다 하루는 쉬는 날로 정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만약 이레에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지 않으면 십계명을 어기는 자가 됩니다. 이레 중 하루를 쉬도록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성경은 이 하루 쉬는 날을 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안식일이란 하루 쉬는 날을 뜻합니다. 생업의 노동으로부터 하루를 구별해서 쉬는 날로 정하셨습니다. 먹고사는 일로부터 쉬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하지만 생업과 봉사는 다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레 가운데 하루를 쉬는 날로 구별하는 한 어느 날을 쉬는 날로 정하는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 그렇습니다. 제게는 일요일이 결코 쉬는 날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초에 하루라도 따로 쉬는 날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휴일, 안식일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하는 날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안식일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일로부터 몸을 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몸에 쉼을 주지 않으면 몸이 스스로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감기나 독감에 걸리든지 입원을 하든지 해서 쉬지 못한 날을 보상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은 말씀 따라 쉬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주일을 공휴일로 폐지했습니다. 하지만 몇 몇 년이 못가서 다시 제도를 부활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국민 건강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민이 지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일하지 않고 그냥 쉬게 되면 죄의식을 느낍니까? 예수님은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쉬는 시간을 마련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더 할 일이 많고 바쁩니까? 여러분이 하는 일이 예수께서 하신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 안식일은 여러분의 정서적인 고갈을 재충전시키는 날이어야 합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정서적 충전을 돕습니까?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또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을 갖도록 시도하십시오.

 

그리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관계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무인도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도록 지음 받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스트레스, 염려, 침체가 이 시대의 특징을 이룬 것은 우리가 본래 살도록 의도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서로 사귀며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갖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린 지금 그런 관계를 위해서 시간을 내는 일에 인색합니다. 시간을 들여야, 그리고 시간의 질을 높여야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3) 영적으로 초점을 다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예배라고 부릅니다. 예배란 사물에 대한 관점을 재조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매주일 한 차례 예배의 자리에 오실 때 큰 문제를 가지고 오지만 예배는 모든 것을 제 자리에 오게 합니다. 여러분은 그 문제를 다룰 새로운 힘과 더 분명한 이해를 갖게 될 것입니다.

 

매일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정말 너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창조된 기본 목적 중 하나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시간을 갖는 것이 소중합니다.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집안에 기도하는 골방을 따로 가져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간 집은 전체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성소일 수 있습니다. 삶에 바빠서 도무지 하나님을 집중할 시간이 나질 않는다고요? 로렌스형제는 부엌에서 그릇을 씻는 시간을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건강 돌보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고도 주위에 있는 돌봐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는 분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 캄캄한 귀가 길도 주님과 나만의 교제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소원하면 길은 어디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시간도 소중하고 자신을 위한 시간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위한, 특히 배우자를 위한 시간도 소중합니다. 하루 십오 분이라도 단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두 사람의 관계가 날마다 새로워지면 아무리 바쁘고 지친 삶이라도 새로운 활력소를 공급받을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저녁이라도 서로를 배려하는 시간을 내어 보시면 비록 실낙원도 살만한 세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배우자를 보살피는 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섬김의 핵심임을 잊지 마십시오. 갖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가/그녀가 해 주시 않는 것으로 인해서 불만을 갖지 마시고 그가/그녀가 해 주는 것으로 감사하십시오. 없는 것으로 인해 짜증내는 것보다 있는 것을 감사하고 즐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분주한 삶에 벗어나는 네 번째 방안을 살펴봅시다. 4.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입니다.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방안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전도자의 말에 귀를 기울입시다. 온갖 노력과 성취는 바로 사람끼리 갖는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이 수고도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4:4, 표준새번역)

 

이웃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를 쓰고 열심히 성공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라고 전도자는 갈파하고 있습니다. 헛된 달음질에서 멈출 필요가 있다고 교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가질려는 달음질은 의도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한 결코 중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더 가지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8:36) 대답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을 여러 가지 삶의 영역에다 던져 보십시오.

 

젊은 날 떼돈을 번다고 바쁘게 살았지만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아무리 많은 재산도 수년이 지나면 다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제때에 양육 받지 못한 자녀는 평생 여러분의 짐이 되고 그 자녀로 인해 후회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많이 벌어도 그 모두는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분주한 삶에 벗어나는 다섯 번째 방안을 살펴봅시다. 5. 나의 스트레스를 주님의 평안과 맞바꾸는 것입니다.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는 오늘 우리가 살필 마지막 방안입니다. 이것이 스트레스를 근원적으로 벗어나는 길입니다. 피곤은 세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피곤입니다. 근육이 지친 것입니다. 비교적 빨리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정서적인 피곤입니다. 감정이나 정서가 메마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영적인 피곤이 있습니다. 정신과 영혼이 고갈된 것입니다.

 

그래서 때론 휴가가 필요합니다. 이번 여름 좋은 휴가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휴가를 통해서 첫 번째 피곤을 풀립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는 우리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나의 스트레스와 하나님의 평안을 맞바꿀 때 얻어집니다.

 

어린아이는 가만히 누워서 쉬지 못합니다. 쉬지 못하는 것은 미성숙의 표지입니다. 항상 일만 하려고 들고 쉬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십계명을 위반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아직도 미성숙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실 양들도 가만히 쉬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 도다.” 누이시며라는 단어는 눕게 하시며혹은 눕게 만드시며라는 사역동사입니다. 사역동사의 뉘앙스는 강제로 눕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강제로 눕게 만드신 경우는 없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때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눕게 만드셔서 강제로 쉬게 하시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매우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초청하십니다. 수고하여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11:28,29 표준새번역)

 

내게로 오라 내가 결코 네게 무거운 짐을 더 얹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풀어볼 수 있습니다. 피곤하고 지쳤느냐? 신앙 생활한다고 바닥났느냐? 내게로 오라, 나와 함께 하면 새 힘을 주마. 참된 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마. 나와 함께 걷고 나와 함께 일하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라. 그리고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에 맡기는 것을 터득하라. 어울리지 않는 아무 것도, 무거운 어떤 것도 네게 주지 않으마. 나와 언제나 동행하면 가볍게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라

 

이제 우릴 쉼으로 초대하시는 좋으신 주님이 마련하신 식탁으로 다 함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