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715_정근두.mp4
    성경본문
    시 23:1~3
    설교일
    2018-07-15

결정권을 주께 맡겨라

23:1~3

구주대망 2018715일 주일 낮 설교 찬송 27, 92, 56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자리를 찾으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지난 한 주간 폭염 가운데서도 평안하셨습니까? 더위 겁내지 않고 위대한 여름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이번 여름에도 울산교회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시편 23편 한절 한절을 살피면서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7대 스트레스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소시켜주시는지를 계속 살피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염려, 분주함, 상한 감정을 치료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결단하지 못함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소시켜주시는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일련의 선택과 결단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단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공이란 달리말해 지혜로운 결단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면 비참한 실패를 겪어야 합니다. 결단을 내리는 것은 우리지만 우리가 내린 결단은 우리의 삶을 빚습니다.

 

모든 결정마다 상응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실수할 수 있기에 결단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 결단으로 인해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봐 걱정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지금도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지 몰라서 고민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붙잡을 것인지 내버려 둘 것인지, 취업을 할 것인지 직장을 그만 둘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까? 결혼을 할 것인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인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두고 망설일 수도 있습니다. 결단을 앞두고 망설이는 데도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이럴까 저럴까 두 마음을 품고 살면 고민해야 합니다.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걸음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리고 나서도 내가 바른 결정을 한 것인가?’를 두고 또 한 번 고민해야 합니다. 마치 요동하는 바다 물결처럼 정함이 없습니다.

 

결단을 앞두고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 그렇습니다. 시편 23편의 네 번째 문장을 보십시오. 시편 233절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에서 시작해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라고 계속합니다.

 

결단을 앞둔 스트레스의 해결책은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의의 길로, 바른 길로 양들을 인도하십니다.

 

가야할 궤도를 따라서 가게 하십니다. 가야할 길을 놓치는 것도 쉽고, 길을 가다가 사소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에 관심을 빼앗기기도 쉽습니다. 목자이신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삶의 바른 노정을 따라 걷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헤매는 것을 보고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받기를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우리를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것보다 당신의 뜻을 우리가 알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할 때 가끔 저지르는 실수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비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느낌을 찾습니다. 감정에 따라서 발걸음을 옮겨 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논리적인 선택을 추구합니다. 보다 방법론적이고 기계적인 접근을 하려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려 듭니다. 공식을 따라가면 답이 나온다는 식입니다.

 

환상적인 사인을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푸른 하늘에 큰 글자로 알려 주시길 바라고, 아니면 문자라도 보내주시길 기다립니다. 가는 길에 무지개라도 보여주셔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인하길 원합니다.

 

이런 모든 시도는 하면 할수록 좌절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놓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낌이나 공식이나 요술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알리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맡길 수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네 가지 방안을 오늘 차례로 살피려고 합니다.

 

첫째로 1. 하나님의 인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히 남자들에겐 만만찮습니다. 길을 잃어도 차를 세워서 묻기를 기피하는 남자들로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도를 받으려 들지 않기 때문에 우린 헤맵니다. 본성상 양들은 잘 헤맵니다. 바른 길을 잘 벗어납니다. 그래서 양들에게 좋은 목자가 필요하듯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양들만큼이나 헤매길 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대부분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는 핵심 원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 대신 우리가 원하는 길을 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방향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안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길 원치 않습니다.

 

양은 생래적으로 눈이 좋지 않습니다. 근시이기에 멀리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길을 자주 잃기도 하고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미래를 멀리 보지 못합니다. 10년 후는 그만두고 내일 일어날 일도 잘 모르며 단 5분 후에 있을 일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래를 내다볼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점쟁이들을 모두 모우고 미래학자들을 집합을 시켜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우리의 안내자가 되셔야 합니다. 멀리 보지 못하는 양들처럼 여러분은 헤매고 넘어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4:12) , 그렇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바른길 같이 보이지만,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결정을 내릴 때는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내리지만 뒤에 보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시인은 고백합니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25:9) 그러므로 우리는 간구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25:4)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로 2. 믿음으로 갈 방향을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배우길 원하십니다.

 

야고보는 어떻게 지혜를 얻는지를 말해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알고 싶거든 하나님께 여쭈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후하게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결코 여러분을 꾸짖지는 않으실 것입니다.”(1:5, 현대어성경)

 

그러나 동시에 경고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주께 어떤 것을 기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1:7) 하나님은 기꺼이 지혜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자 애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 째는 바른 이에게 구해야 하고 둘째로 바른 태도로 구해야 합니다. 즉 대답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지만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받을 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따라서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린 자주 하나님, 인도해 주셔요.”라고 말하지만 안내를 기다리지도 않고 우리 길을 가버립니다. 우린 지시를 받기도 전에 즉각 일을 시작합니다.

 

하나님, 지혜를 주시고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하지만 우린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 자신에게 달린 듯이 처신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러면 지혜입니까? 지혜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혜란 하나님의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귀를 기울이면 우리를 바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반드시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셋째로 3. 하나님의 응답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 이 예배실에는 수없는 라디오 전파와 텔레비전 전파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듣고 볼 수 없는 것은 적절한 수신 장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라디오는 소리를 수신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전파를 수신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수신 장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장치 없이 여러분을 만들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만 하나님께 조율해서 그가 하시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드셔서 세상에 두셨습니다.

 

물론 수신 장치를 꺼놓고 계시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과 관계를 정립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아니면 수신 장치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기 때문에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잘못된 챤넬을 잡았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듣지 못하는 것은 다만 조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고 또 하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뿐입니다.”(33:14)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통로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통로는 여러 가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느낌이나 상황을 통해서, 고통을 통해서 말씀하시곤 합니다. 언제나 꼭 같은 방법으로 말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주요 통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지도를 갖고 떠나는 여행길과 같습니다. 양심이란 나침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가이드 역할을 하십니다. 우리가 길을 잃으면 손에 지도가 있고 마음에 나침반을 갖고 있으며 성령께서 안내자 역할을 하십니다. 사막에선들 헤맬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성경책은 하나님이 주신 가이드북이요 안내지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삶의 길을 안내하는 이 책을 매일 읽지 않는다면 헤매는 것은 당연합니다. 날씨 상관없이 날마다 성경을 읽길 바랍니다. 성경책을 펴질 않으면 수화기를 내려놓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요? 여러분은 날마다 성경을 읽고 계십니까? 그리고 이 성경말씀을 외우고 있습니까? 외워둔 말씀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떠오르게 하십니다. 적절한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알려주도록 성경을 암송하십시오.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바로 여러분에게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는 설교자의 입은 바로 하나님의 입으로 바뀌고 설교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합니다. 설교자를 통해서만 아니라 다른 평범한 성도들을 통해서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조율하는 것을 배우고 그분의 말씀을 배우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다른 사람에게 하시는 말을 전하게 하십니다. 목사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을 통해서 때때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주일예배에 빠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번 여름휴가 중에도 예배를 빠지지 마십시오. 그 예배 중에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치 나를 위해서 설교를 준비한 것처럼 내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고통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쁠 때는 속삭이지만 우리의 고통 중에는 큰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깊은 바다에 빠지면 누구라도 하나님을 찾기 마련입니다. 위기를 만나면 아무도 무신론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들을 귀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매일 그분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길을 놓칠 것입니다.

 

우주선을 보십시오. 발사하고 나서 목적지에 도착할 것으로 손 맺고 있지 않습니다. 우주 센터에서는 계속해서 궤도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순간마다 다시 수정할 정보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접속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매일 듣고 삶의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우린 너무나 쉽게 하나님이 지정하신 길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며칠 동안 하나님과 교제를 갖지 못한다면 궤도를 벗어나기가 십상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한 지점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 떨어져 있기 쉽습니다. 하나님과 매일 접속하셔서 자주 자주 궤도수정을 하셔야 합니다. 매일성경!!!

 

여러분 자신의 길을 가면 깨어진 꿈, 깨어진 마음, 깨어진 삶, 깨어진 가정으로 귀착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벗어난 사회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여기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의의 길은 바로 회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길을 벗어났다고 고백하면, 하나님이 의도한 길로 돌아가고 싶다고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님은 회복시켜 주십니다.

 

너무 오래 헛된 삶을 살았습니까?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처절하게 잘못된 자리에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바른 길로 여러분을 회복시키십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길을 통해서도 여러분을 바로 잡아주실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위기를 통해서, 고통을 통해서, 비극을 통해서도 바로 잡고야 말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위해 설계하신 길은 지금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넷째로 4.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4백년의 종살이를 마치고 마침내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자유의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곧 홍해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양쪽 옆은 모두 넘어갈 수 없는 산악입니다.

 

게다가 마음이 변한 애굽 왕 바로가 기마병을 보내서 맹렬히 추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살육하려는 기세입니다. 정말 진퇴양난에 처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시려고 할까요?

 

하나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정확히 아셨습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적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한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보지 못하는 일을 내어다 보셨기에 실수를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홍해 바다를 여셔서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수년 후에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떠올리며 노래합니다. 주의 길은 바다에도 있고, 주의 길은 큰 바다에도 있지만, 아무도 거기에 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백성을 양 떼처럼,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습니다.”(77:19,20 LB)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서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직면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관계적으로 더 이상 길이 없어 보이는 지점에 서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벽 앞에 섰다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적의 문 앞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문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걷고 계신 길은 어둡고 낙심되고 절망적으로 보이며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도무지 길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계속 믿음으로 나아가면 여러분은 길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길을 만드십니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아 보여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길을 계속 걸어가면 점점 더 분명히, 점점 더 밝게, 점점 더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성숙하면 할수록 여러분의 걷는 길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삶이란 여행길과 같습니다. 의인의 길은 동틀 때의 햇살 같아서, 대낮이 될 때까지 점점 더 빛납니다.”(4:18) 새벽이 될 때에 온전한 빛이 비취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밝아지는 것처럼 신앙인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한날 여러분은 영원의 가장 밝은 빛 속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날 왜 여러분에게 그 특별한 길을 걷게 하셨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고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그날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날 큰 그림 가운데 여러분이 지금 선 자리를 밝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을 위해 선택하신 그 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답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5,6)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는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늘 되새겨 보란 의미입니다. 사실 여러분의 삶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천국에 가기까지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계획은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내를 가지고 살다보면 먼 후일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이 어떠할지를 아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와 어려움, 지체됨, 육체의 가시와 질병 등 여러분이 지금 이유를 묻는 것들은 한날 분명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 속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다만 그 어간에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시편 37편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37:23,24)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걸음을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맞춤계획을 가지고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강제하진 않으시지만 여러분의 걸음을 걷도록 의도하셨습니다.

 

한 날 하나님께서는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내가 걷도록 한 길을 걸었니?” 자기가 원하는 길을 걸으면 그 길은 천국으로 인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마련한 길을 걸어야 천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길을 걸으면 파멸입니다. 우선 보기에는 바른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파멸로 인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위한 맞춤계획을 가지시고 맞춤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닮으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들의 계획을 따라, 그들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안내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내내 여러분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시려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을 위한 길-의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삶을 낭비하는 비극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린 삶을 낭비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문제를 지금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하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오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린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모두를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디서 귀착될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거기까지 가게 할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어떻게 안전하게 도달하게 할 것인지도 아십니다. 언제나 자신이 여러분과 동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결코 홀로 걷게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갖는 많은 스트레스는 불필요하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하나님을 인생의 안내자로 삼으면 앞날은 보장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넘어져도 그 분의 강한 손이 우리를 붙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여기 궁극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자신의 성공을 위한 길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길입니까? 비록 여러분을 위해 계획한 길이 편리한 길이 아닐지라도 혹 인기 있는 길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정한 길이라면 의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을 걷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 여러분을 위한 맞춤 길을 걷기를 바라십니다. 돈을 많이 버는 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위험해 보이지 않는, 안전한 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까?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12:28) 하나님의 길을 가면 세상에서뿐 아니라 하늘에서도 좋은 삶을 누립니다. 자신의 길을 가면 바른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사망과 파멸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결정권을 주께 맡기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말하는 것이 신앙의 고백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