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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722_정근두.mp4
    성경본문
    시 23:1-4(4)
    설교일
    2018-07-22

죽음의 골짜기를 주께 맡겨라

23:1-4(4)

구주대망 2018726일 주일 찬송 21, 74, 492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자리를 찾으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다시금 우리는 시편 23편을 통해서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7대 스트레스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소시켜주시는지를 계속 살피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염려, 바쁨, 상한 감정, 망설임을 치료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가 죽음의 그늘진 골자기로 다닐 때에 도우시는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언제나 해만 비취고 비가 오지 않으면 사막이 된다.”는 아랍속담이 있습니다. 의기소침하거나 낙담이라곤 경험해보지 못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한 번도 덮이지 않는 인생길을 걷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무미건조해질 것입니다. 삶의 깊이도 없고, 삶의 성숙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는 데는 좋은 시절도 나쁜 시절도 경험해야 합니다. 삶이란 슬픔과 기쁨의 복합체입니다. 삶이란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 정상과 계곡이 함께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삶의 음침한 계곡을 지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도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

 

1 이런 인생의 골짜기를 만날 때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살면서 이런 힘든 시기,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로 다닐 때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다섯 가지 있습니다.

 

1.1 골짜기들을 만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인생길에는 골짜기들을 아니 만날 도리가 없습니다. 꼭 만나게 되므로 미리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막 이런 골짜기에서 벗어난 분도 계실 것이고 지금 이런 골짜기를 걷는 분도, 그런 골짜기를 막 들어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살다보면 골짜기를 만나는 것은 언제라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산마다 정상이 있는 것처럼 산마다 골짜기가 있습니다. 주님은 아주 현실적이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란 막연한 가정이 아니라 환난을 당하는데하는 현실입니다. 환난이란 반드시 우리가 만나는 현실입니다. 삶에는 어려움, 실망, 낙담이 있습니다. 고통, 슬픔, 질병이 있습니다. 좌절, 실패, 소진의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삶의 일상적인 부분입니다. 골짜기를 만날 때 뜻밖의 일로 놀라지 마십시오.

 

1.2 골짜기들을 만나는 것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정하고 일정을 잡듯이 그것을 미리 계획할 수 없습니다. 골짜기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만납니다. 게다가 대개는 아주 힘든 시기에 찾아옵니다. 거기서 헤맬 시간여유도 없고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시기에 닥칩니다.

 

타이어가 터지는 것도 적절한 시간에만 터지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때나 일어납니다. 그리고 대개는 그런 일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는 때에 일어납니다. 때론 아주 불편한 시간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삶에서 낙담되는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계획할 수는 없습니다.

 

골짜기는 갑자기 찾아옵니다. 예측을 불허합니다. 얼마나 행복한 순간에 갑자기 불행이 찾아오는지 여러분은 경험하셨습니까? 휴가의 고요함을 즐기는 순간, 그리고 그 행복을 고백한 순간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우리를 골짜기로 몰아넣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평안한 삶을 사는 와중에 도착한 한 통의 편지가 여러분을 골짜기로 내몰기도 합니다. 정기건강검진을 하다가 발견한 결과가 우리를 불안의 골짜기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골짜기는 이렇게 모두 갑자기 다가옵니다.

 

신앙의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재난에 재난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온 나라가 황무지가 됩니다. 홀연히 나의 천막집도 무너지고, 순식간에 나의 장막집도 찢깁니다.”(4:20, 표준새번역)

1.3 골짜기들이 찾아오는 것은 편파적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골짜기를 만나는 일로부터 면제된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차단된 사람은 없습니다. 특정한 사람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습니다.

 

문제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문제를 만납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문제를 만납니다. 문제와 시련, 어려움과 고통, 혼란과 낙담, 절망과 침체를 당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나쁜 사람이라든지 신앙이 좋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단지 여러분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골짜기는 나쁜 사람의 길에만 대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의 길에도 골짜기는 있습니다. 선악을 떠나서 단지 여러분이 사람이기에 골짜기는 공평하게 여러분에게도 찾아옵니다. 오히려 악한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닥치기도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골짜기는 불편부당합니다. 골짜기는 여러분이 착하냐 나쁘냐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도 말씀하셨지요?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5:45)

 

생의 골짜기,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게 될 때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우린 보통 첫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왜 하필 나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라고 오히려 질문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는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여러분만은 면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만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상실과 실패와 사랑하는 이를 잃는 비극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므로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묻는 대신에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는 누구라도 만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기 이 땅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문제와 난관도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선한 사람들에게도, 신앙인에게도 일어납니다. 재난과 비극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1.4 골짜기들을 만나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골짜기는 지나가는 여정이지 순례의 길 모두가 골짜기로 구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골짜기는 계속되지 않습니다. 골짜기는 영구한 곳이 아닙니다.

 

다윗의 고백을 잘 들어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다닐지라도”(4) 골짜기는 여러분이 한 평생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한 시점에 지나는 지역입니다. 지나가는 장소입니다. 어려운 시기, 힘든 상황, 고통스런 환경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비록 우리가 골짜기에 접어들면 막다른 골목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터널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터널에 들어서면 결국 그 터널에서 벗어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터널이 생각보다 좀 길수는 있지만 영원한 터널은 없습니다. 터널의 입구에 들어서면 어두움이 지배하지만 빛이 다시 비취는 출구가 있습니다. 터널은 여러분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통과하는 지점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 1:6) 그는 때로 근심스러운 시험의 시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힘든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납니다.

 

인생이란 만만하지 않다고 교훈합니다. 험한 상황을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시험은 잠간인 것을 기억하라고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그 후엔 놀라운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고 격려합니다.

 

베드로는 천국의 기쁨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는 골짜기도 어두움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때로 당혹해 하고 낙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여러분 모두는 거기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망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여기 8, 90년 사는 여정에는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영원 세월 속에 아무 문제없이 살게 될 천국과 비교하면 무시해도 좋습니다. 영원한 빛에 비추어보면 여기 잠간 겪는 환난은 신경 꺼도 됩니다.

 

베드로만 아니라 바울도 고백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이 짧은 고통은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고후 4:17, 현대어성경)

 

골짜기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 인생 여정에 비하면 짧습니다. 그 후엔 영원한 영광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고통은 그러므로 생산적입니다. 고통에 대해 바로 반응하기만 하면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기간의 골짜기가 지나면 영원한 영광의 날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1.5 골짜기마다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목적이 있어서 여러분을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의심의 골짜기든, 침체의 골짜기든, 실망이나 낙망의 골짜기든, 패배와 상실의 골짜기든 그 배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기뻐하십시오. 이 세상에서는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으로 괴로움을 당하겠지만 앞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벧전 1:6, 현대어성경)

, 잠시 동안입니다. 일시적으로 여기서는 시달리기도 합니다. 온갖 종류의 시련이 여기에는 있습니다. 돈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치 못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질병이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연한 일들은 없습니다. 그 모두가 우리의 신앙을 다듬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이러한 시련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 것인가를 보고자 하는 시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곡을 통과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정상의 경치를 좋아하지만, 거기서는 신앙의 깊이를 다질 수가 없습니다. 계곡을 통과하면서 신앙은 아름답게 빚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 하다면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캄캄한 골짜기를 만나면 비로소 무릎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골짜기에서 성숙되어 집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쁨으로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그 때가 여러분의 믿음이 단련되는 때입니다. 좋은 순간이 아니라 어려운 순간이 우리의 믿음을 입증하는 기회가 됩니다.

 

1) 모든 시련은 목적이 있습니다. 아주 조그만 것들도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까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격을 다듬어갑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성숙시키고자 하십니다.

 

2) 믿음은 정상에서가 아니라 골짜기에서 만들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성품을 빚어가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평안함이나 편리함보다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성품에 더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평안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성품을 빚어가는 데 하나님의 목표가 있습니다. 거룩함은 영원하지만 즐거움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긴 즐거움도 거룩함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의 수준으로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을 온갖 시련의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고난으로부터 면제 당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러분은 면제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예수님도 고독한 순간을 겪으셨습니다. 낙담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오해를 받기도 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불의한 비난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인들 달리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틀림없이 골짜기를 통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여러분을 다듬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아무 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사고나 비극을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실 리 만무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에 악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고나 비극적인 일을 통해서 선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악한 일을 가지고도 우리 안에 좋은 성품을 빚어가는 일로 바꾸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이제 오늘 설교에서 두 번째로 던지는 큰 질문은 2 여러분은 어두움의 골짜기를 지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다윗은 고백합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

 

2.1 낙심하기를 거부하십시오.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하십시오. 신앙인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는 글자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어떤 해를 어떤 악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앙인은 전능자 하나님을 목자로 삼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신앙인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헤매지는 않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겁나서 도망치는 자가 아니라 당당히 걷는 자입니다. 차분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자입니다. 비록 죽음 그늘 드리운 깊은 골짜기 지난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걸어가는 자입니다.

 

낙담하기를 거부하십시오. 여러분은 골짜기를 헤매고 돌아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성도는 다만 골짜기를 지나갈 뿐입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는 말 속에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지적인 결단을 포함합니다.

 

사실 오늘 아침 여러분을 낙심시키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낙심해 있다면 여러분이 낙심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낙심은 언제나 선택사항입니다. 낙심하는 쪽으로 생각을 선택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적극적인 것을 보지 않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대신 모든 부정적인 것을 바라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은 선택사항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선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시도하십시오.

 

어떻게 낙심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을까요? 당면한 문제보다 하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하실 일입니다. 두 사람을 동일한 상황에 두고 살펴보십시오. 동일한 혼란과 비극과 위기 상황입니다.

 

한 사람은 그것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다른 사람은 그것 때문에 굳건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연약해져서 산산조각이 나고 다른 사람은 그로 인해 강건해집니다. 차이는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달렸습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대신에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환경 대신에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문제대신에 능력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1:11, 표준새번역) 인간의 힘은 바닥납니다. 시련의 기간이 길어지면 힘이 더 이상 남아나지 않습니다. 에너지와 스테미나가 바닥이 납니다. 인간적인 인내는 끝이 있습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생의 골짜기에서는 여러분 자신의 것보다 더 큰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리란 생각은 아예 갖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힘으로 살수 있을만한 만만한 세상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 닥치는 모든 상황은 결코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훨씬 강력한 전능자의 힘의 원천에 접속해야 합니다.

 

2.2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하십시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4) 하나님은 우리가 골짜기를 통과할 때 그의 능력을 우리에게 약속할 뿐 아니라 그의 임재를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홀로 가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43:2)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물에 빠져 죽지도 불에 타서 죽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걷게 될 골짜기의 한 걸음 한 걸음을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합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시면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좌정하시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말씀만 하실까요? “넌 틀림없이 해낼 거야.” 하나님은 골짜기로 행할 때에 거기에 함께 하십니다. 함께 걷고 함께 손을 잡고 가십니다. 골짜기를 모두 통과하기까지 우리를 오히려 인도하십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4절에 있는 극적인 인칭변화가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다윗은 지금껏 3인칭으로 하나님을 말하다가 여기서는 2인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가당신의로 바뀝니다.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치고 이제는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라고 번역한 단어는 영어에서는 2인칭 단수로 분명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망의 그늘이 짙은 골짜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합니다. 거기서 갑자기 지존자(至尊者)가 지근자(至近者)로 느껴집니다.

 

사망의 그늘이 짙은 골짜기를 통과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께 말하기를 소원합니다. 종교의 대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주인으로 관계하길 원합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음침한 골짜기로 갈 때는 주님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낙심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주님을 가까이 다가와 주시고 우리에게 말씀해 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격적인 분으로 만나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대 우리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만나며, 역설적으로 깊은 골짜기에서 비로소 산정상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여러분에게 가까이 다가오실 때는 깊은 사망의 골짜기에서입니다.

 

2.3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스스로 기억하게 합니다.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 막대기와 지팡이는 목자가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두 가지 기본 도구입니다. 막대기는 사람 키만큼 긴 것으로 그 끝에는 무거운 매듭이 있다고 합니다.

 

목자는 아주 숙련된 솜씨로 막대기를 사용하여 양떼를 공격하는 짐승들을 보호합니다. 오늘날 목자는 더 이상 막대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막대기나 총은 모두 같은 기능을 합니다. 양떼를 보호하는 기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골짜기를 통과할 때, 삶의 어두운 골짜기를 갈 때에 하나님은 하늘에 앉아 무관심과 무감동으로 바라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는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싸우십니다.

 

여러분이 침체에 빠져서 홀로 있다고 여기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을 위해 싸우고 계십니다.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을 싸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하시고 여러분을 보호하십니다. 주의 막대기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주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팡이는 손잡이 쪽 끝이 구부러진 긴 막대기입니다. 목자는 지팡이를 가지고 양떼를 지도하고 안내합니다. 양떼를 자기 곁으로 가까이 오게 할 때에도 사용합니다. 아래편에 있는 양들을 끌어올릴 때도 지팡이를 사용합니다.

 

지팡이는 양떼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양떼를 가까이 오게 하고 아래편에 있는 양들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합니다.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결코 홀로 두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그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여러분을 보호하고 안내합니다.

 

골짜기를 통과할 때 무서운 것은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어두움 속에서 계곡의 벽에 걸린 그림자를 보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닙니다.

 

그림자는 실체보다 항상 커 보입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실제 문제보다 커 보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항상 우리를 위축시킵니다. 그리고 그림자는 여러분을 해할 수 없습니다. 개의 그림자는 우리를 물지 못하며 칼의 그림자는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무섭게 하지만 우리를 해칠 수는 없습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캄캄한 골짜기를 걸을 때에 태양이 비취기를 멈추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것 같고 나는 혼자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완전한 어두움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면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어두움이 있다는 것은, 어딘가 반드시 빛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에 그림자만 드리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십시오. 빛을 향해 돌아서십시오. 그 순간 그림자는 여러분의 앞에 드리운 그림자는 여러분의 뒤편으로 물러갈 것입니다.

 

두려움이 여러분을 엄습하면 그림자를 보지 마십시오. 지금 가는 방향과 정반대방향으로 돌아서십시오. 주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더 이상 주위에 둘러싼 어두움으로 인해서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실망하고 자신을 바라보면 낙담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어느 것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디 예수께로 시선을 고정시키십시오. 주님의 영광의 모습을 응시하면 세상 모든 것은 희미해 질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과 은혜의 빛은 세상의 어두움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림자를 응시하지 마십시오. 골짜기를 지날 때에 빛 되신 주님을 주시하십시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34:19) 주님도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주께서는 의인들이 겪는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십니다.

 

말씀 맺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신자들도 실망하고 병들기도 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손실도 입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가정의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신앙인도 골짜기를 지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불신간에 동일한 골짜기를 통과하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에게는 골짜기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골짜기를 통과하지만 신앙인에게는 목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