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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729_정근두.mp4
    성경본문
    시 23:1-5
    설교일
    2018-07-29

상처를 주께 맡겨라

23:1-5

구주대망 2018728일 주일 낮 설교 찬송 23, 86, 56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자리를 찾으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올 여름 들면서 우리는 시편 23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현대인이 겪는 7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해 주시는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어떻게 처리하시는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우리는 불의한 세상을 살고 있기에 상처를 받게 마련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질병으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겪는 가장 깊은 상처는 사람들로부터 받습니다. 의도적으로, 비의도적으로, 때로는 우연하게, 때로는 목적을 갖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인간관계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요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상처를 받을 때 우리는 잘못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방을 살피기 전에 사람들이 상처를 줄 때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하는 잘못된 반응 다섯 가지를 먼저 살피려고 합니다. 이런 반응들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여러분의 삶에 문제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1. 상처를 받을 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1.1 무시하지 마십시오.

무시한다는 것은 조용히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샌들 바닥에 끼어든 이물질처럼 견디며 걷는 것입니다. 다시 빠져나갈 것을 바라며 계속 걷는 것입니다.

 

때로는 전면 부인하려고 듭니다. 나는 문제가 없어요. 난 상처를 입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바를 부인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니면 그것을 축소시킵니다. 별 것 아니라고 말하고 괜찮다고 하면서 그렇게 심하게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상처받은 것에 대해서는 다루기를 기피하는 것입니다. 이불 밑에 감추어 두고 아무 것도 처리 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부담스러운 것, 성가신 것은 언제나 밀쳐두려고 듭니다.

 

하지만 상처를 무시하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지금 무시하고 미루어두는 상처는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흔히들 세월이 치료해준다고들 말합니다만 미루기만 하면 때로는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일찍 발견하지 못한 암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면 대결하기를 지연시키면 작은 문제를 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점점 악화시킵니다. 상처를 즉각 다루지 아니하면 상처가 더욱 악화되고 더 넓게 퍼져갈 뿐입니다.

 

1.2 도피하지 마십시오.

대개 상처를 받으면 사람들은 도망갑니다. 도피합니다. 숨어버리고 문제에서부터 멀어지려고 합니다. 아무 것도 직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윗도 이런 시도를 했습니다. 나는 말하기를 나에게 비둘기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으련만, 내가 멀리멀리 날아가서, 광야에서 머무를 수도 있으련만. (셀라) 광풍과 폭풍을 피할 은신처로 서둘러서 날아갈 수도 있으련만하였다.”(55:6-8)

 

이런 때 도피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우리는 어려움에서 도피하려고 듭니다. 공공건물의 문들은 그래서 모두 도망하기 좋도록 밖으로 열린다고 합니다. 위기에 몰리면 도망을 칩니다.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도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영화, 텔레비전, 게임, 오락장, 알코올, 마약, 도박, 이혼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돌아와 보면 동일한 문제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해결되지도 변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3 숨기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도망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지만 숨기려 합니다. 그것을 자기만 알려고 합니다. 아무에게도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면을 씁니다. 자기의 고통을 캄포라지 하는데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좋은 옷을 입고 만면에 미소를 띠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은 불변합니다. “뭐가 잘못되었나요?”라고 물으면 아뇨, 아무 것도 잘못된 것은 없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아주 싫어합니다. 화난 것을 인정하지만 상처 입은 것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려고 는 들지 않습니다. 우린 그렇게 숨기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받은 상처를 물질로 위장하려 듭니다. 좋은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자기 주위에 여러 가지 것들로 위장합니다. 상처를 받으면 쇼핑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소유는 결코 고통을 보상하지 못합니다. 상처를 받으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상처를 유하게 하지 못합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몸은 탈진하고 말았습니다.”(32:3, 표준새번역) 상처를 숨기는 것은 그것을 더 악화시키는 것뿐입니다. 상처를 숨기면 더 심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는 개방되고 진실하고 진정한 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건강한 구역은 사람들이 자기의 있는 문제를 털어놓기에 안전한 분위기여야 합니다. 남의 상처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을 하지 않고 받아들여주며 사랑받는 분위기여야 합니다.

 

성경공부 소그룹이나 구역소그룹은 문제를 나누기에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눔이 시작되고 나눔이 시작되어야 치유가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의 상처가 훨씬 더 쉽게 아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자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나음을 받게 하십시오..”(5:16) 상처를 들어내는 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상처를 서로 나눌 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붙잡고 있는 한, 마음속에만 넣어두고 있는 한, 치유될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수년전에 입은 상처를 아직 붙잡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감추는 한 치유 받을 수가 없습니다. 상처를 서로 나누기에 최선의 장소는 소그룹입니다. 그래서 구역모임이나 소그룹성경공부 모임을 우리는 소중히 여깁니다.

 

누구나 사람은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서로 서로 상처의 유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상처를 가진 사람은 여러분이 유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나밖에 없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꼭 같은 상처를 받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상처를 나눌 용기를 갖고 입을 연다면 위안을 받게 되고 치유의 첫 문을 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시하거나 도망하거나 숨겨서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1.4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마음대로 하려고 들다보니 염려가 됩니다. 염려는 하나님 행세를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노릇을 하려들면 여러분은 더 비참해집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만사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홀로 온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염려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염려는 결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합니다. 염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고통의 크기를 확대하는 것뿐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나쁜 비디오를 거듭 보는 것과 같습니다. 더 커질 뿐입니다. 어떤 문제를 두고 염려하면 그 문제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집니다. 마음속에 다시 떠올릴 때마다 문제는 점점 확대됩니다. 더 많이 염려할수록 점점 더 염려는 커집니다.

 

1.5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원한을 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면 원한을 품습니다. 우리는 미워하고 화를 내고 조소적이 됩니다. 우리는 자기를 원한 속에 가두고, 자기 연민에 깊이 빠집니다.

 

화가 치밀어서 제 몸을 갈기갈기 찢는 사람아, 네가 그런다고 이 땅이 황무지가 되며, 바위가 제자리에서 밀려나느냐?”(18:4) 미움은 여러분이 받은 어떤 상처보다 더 여러분 자신을 상하게 만듭니다. 악의, 거부, 성적학대, 강간 등 그 어떤 것보다 더 여러분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미움은 안에서부터 여러분에게 상처를 입히며 결국 자신을 죽이는 독과 같습니다. 원한은 상처를 계속 받게 만듭니다. 그 사건을 붙잡고 그것을 계속 생각하므로 다만 고통을 영속화시킬 뿐입니다.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원한을 품게 되고 원한은 고통을 지속시킵니다.

 

원한이란 과거로 하여금 현재를 통제하게 하는 것입니다. 원한은 과거에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여러분에게 상처를 입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상처를 준 그 사람을 미워하지만, 원한은 당신 자신 말고는 아무도 해칠 수가 없습니다. 결코 상처를 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못합니다.

 

생각할수록 너무 화가 나서 그 상처를 곱씹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고 즐겁게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원한을 품는 것은 스스로 패배자의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화를 내는 자신만 상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이런 태도 아무 것도 상처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편235절은 들판에서 잔치의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잔치의 그림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세 단계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크게 둘째로 2. 상처를 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이제 그러면 상처로부터 치유를 얻는 상징들을 차례로 살펴봅시다.

2.1 주님께서 원수를 갚도록 하십시오.

복수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갚아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상처 준 사람에게 보복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원수를 갚으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십시오. 하나님으로 하여금 모든 계산을 하도록 하십시오. 반드시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23:5)

 

양들은 본래 많은 적들이 있습니다. 여우, 늑대, , 진드기 등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들만큼 자기 보호기능이 없는 짐승도 드뭅니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만한 강한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힘센 다리도, 강한 뿔도 없습니다.

 

게다가 양들은 빨리 달릴 수도 없습니다. 보호기능이라곤 제대로 갖추지 못한 동물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방안이 없습니다. 누군가 보호하기 전에는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의 역할은 주위가 절벽을 이루는 봉우리가 평평한 초원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곳은 푸른 풀밭이 펼쳐진 곳이며 양떼를 노리는 사나운 짐승들이 넘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양떼를 그곳으로 인도해서 안전한 곳에서 풀을 뜯게 하는 일이 선한 목자의 역할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처 준 자들을 한날 다루실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2:17-19)

 

하나님은 누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보복하실 것입니다. 한날 원수를 갚으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으며 심판 날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심판할 자원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복수심을 품고 있는 한 우리는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수를 할 것인지 치료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둘 다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복수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복수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복수에는 항상 보복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받은 상처를 보복하려고 들면 고통이 가증됩니다. 다만 상처를 되살아나게 합니다. 유일한 치유의 길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용서는 내게 상처 준 것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네가 한 것은 별로 나쁜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상처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이 세상에서 저질러지는 악을 부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나의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하여금 원수를 갚아주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내가 나서서 보복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수하려 들지 마십시오.

 

왜 우린 용서해야 합니까? 우린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원한을 품는 것은 자신을 오히려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용서를 베풀수록 더 많은 용서를 미래에 보장받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베푸는 것을 받을 것입니다. 더 오랫동안 보복하려들면 더 오랫동안 상처를 입습니다.

 

2.2 주님께서 상처를 치유하도록 하십시오.

목자가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통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주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23:5)

 

양들의 가장 더러운 적은 파리 떼입니다. 양들은 파리를 아주 싫어합니다. 소처럼 긴 꼬리로 쫒아버릴 수도 없습니다. 양떼들에겐 여름철은 파리로 시달리는 계절입니다.

 

파리들은 심지어 그들의 코 속에다 알을 낳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애벌레가 그들을 미치게 괴롭힙니다. 여름철 어떤 때는 양들이 자기 머리를 바위에 부딪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파리 떼 때문에 미칠 지경입니다. 하지만 양들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습니까? 그 때 목자가 하는 일은 올리브 오일을 가지고 유황과 섞어서 양의 머리에 발라줍니다. 그러면 마치 곤충 퇴치제처럼 작용합니다. 마치 목자가 내가 너를 괴롭히는 모든 것을 맡아주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름을 사용하는 또 다른 경우는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양이 상처를 입으면 목자는 기름을 연고처럼 사용합니다. 기름은 상처를 치유하고 보호합니다. 주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상처를 싸매고 치유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상처에 대해서도 이렇게 치유하시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도다.”(147:3)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갚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입은 상처도 싸매어 주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한다고 해서 곧 바로 여러분의 고통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한 후에도 한 동안 여러분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용서는 순간적이지만 회복은 시간이 걸립니다. 용서는 즉각적이나 회복은 몇 주가, 몇 달이,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도다.”(147:3) 물론 조그만 상처는 쉬 아뭅니다. 찰과상은 곧 사라집니다만 깊은 상처는 치유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예컨대 배우자로부터 이혼이나, 부모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친구에게서 사업을 빼앗기는 경우 등은 쉽게 순식간에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상처인 경우는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치유를 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상처 준 사람을 용서만하면 바로 좋아질 것을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의 첫 걸음을 뗀 것이고 치유는 뒤따라 올 것입니다. 치유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십니까? 어떤 붕대를 사용하셔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입힌 정서적인 상처를 치유하실까요?

1) 하나님은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치유하십니다. 다른 성도들과 어울릴 때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처를 나눌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정서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신앙의 친구들과 그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자신을 고립시키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교제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원그룹이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은 기도를 사용하셔서 치유하십니다. 상처를 입으면 그것을 말로 내뱉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발설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몸에 내뱉게 됩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십시오.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사람 다윗을 아주 솔직하게 자기의 감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3)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치유하십니다. 찬양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앉자마자 찬송반주를 들으면서 바로 눈물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정서적인 치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과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세우시고 상처를 싸매어 주십니다.

 

4) 하나님은 사역을 통해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도우는 사역에 동참할 때 놀랍게 자신의 남은 상처가 치유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상처만 어루만지지 말고 이제는 동일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돕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러 나서면 자신의 옛 상처가 모두 아물게 됩니다. 교회는 교제를, 기도를, 예배를, 사역을 제공합니다.

 

지금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면 다음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1) 치유는 두 가지 국면이 있습니다. 신체적 치유만 아니라 정서적 치유에도 두 단계가 있습니다. 상처를 입으면 수술이나 뼈를 부러뜨렸을 때 치유에는 두 과정이 요구됩니다.

 

첫 째 과정은 안정을 시키는 과정입니다. 수술 후에는 안정을 취해야 하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뼈를 부러뜨렸을 때는 깁스를 하여 고정을 시켜야 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여러분의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합니다. 깁스를 풀고 조금씩 사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두 번째 과정입니다. 움직이는 과정입니다. 이 움직이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바로 물리치료사들입니다. 아픈데 움직이라고 하면 우린 싫어 하지만 그들의 도움은 크게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치료를 받는 분 가운데 이 과정에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안정을 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움직이는, 운동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데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움직이도록 자극을 주면 싫어하고 화를 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제 침대에서 내려와서 사역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상처를 받은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자기 상처만 핥고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제 동일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이 내려와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시작하기까지는 여러분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쉬는 시간이 여러분에게 꼭 필요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됨을 아는시간이 필요하지만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은 너무 오래 안정 기간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안정기간을 지나면 정서적 치유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치유 사역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상처를 받아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치유의 사역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2) 완전히 치유가 된 후에도 흉터는 남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항상 흉터가 남기 마련입니다. 상처를 두고 여러분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볼 때마다 상처를 준 사람을 기억하거나 아니면 상처를 치유해 주신 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볼 때마다 치유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치유해주신 분께 감사하십시오. 실패했고 거부당하고 이혼당한 일을 기억하는 대신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주시고 찾아와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편을 택하시길 바랍니다.

 

그 때 여러분의 상처조차 하나님의 은혜의 트로피가 됩니다. 상처를 준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상처를 싸매어주신 치유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2.3 주님께서 잔을 채워주시도록 맡기십시오.

성경에는 넘치는 잔을 가지고 완전한 만족을 상징합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했다는 의미입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시를 쓴 시인이 살던 중동은 대부분 사막지대입니다. 사막에서는 물이든 포도주든 허비할 수 없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상처를 극복하길 원하시면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 그것이 중요할까요? 우리가 주로 상처를 받는 주요한 이유는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기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인간도 여러분의 모든 요구를 채우도록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채워주길 바라면 실망하고 분노하고 다시금 상처를 입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넘치도록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바닥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낙담시키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분을 앙망하면 여러분의 잔은 항상 넘칠 것입니다.

 

목자 하나님을 앙망하면 여러분의 잔은 희망으로 넘칠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목자 하나님을 앙망하면 여러분의 잔은 사랑으로 넘칠 것입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살전 3:12)

 

목자 하나님을 앙망하면 여러분의 잔은 기쁨으로 넘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해서 그 집에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 걱정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기대하지 않던 분이 여러분의 집을 찾아와서 머무는 데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인지 궁금해 하신 적이 있습니까?

 

중동지역에는 이것을 표시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낮선 손님을 맞이했을 때 우선 잔을 내밀어 마시게 합니다. 그런데 마시고 나면 계속 잔을 채워줍니다. 잔이 비면 또 채워줍니다. 손님의 잔이 비었는데 그대로 두면 이제 가도 좋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끝없이 채워줄 뿐만 아니라 넘치도록 부어주면 원하는 대로 머물러도 좋다는 상징입니다. 넘치는 잔은 당신은 우리의 특별한 손님입니다.’하는 표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잔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은 여러분은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상처를 입은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귀빈으로 초대하시고 특별대우를 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5절의 의미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실 것이고 우리 모든 필요를 넘치도록 채우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도록 초대받은 손님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만 귀빈으로 초대받고 끝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 소중한 분들에게 결코 거절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제의를 들려주십시오. 도움과 구원, 만족의 하늘 잔치자리가 그들을 위해서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해마다 봄가을마다 이웃 초청 잔치를 마련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