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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805_정근두.mp4
    성경본문
    시 23:1-6
    설교일
    2018-08-05

미래를 주께 맡겨라

23:1-6

구주대망 201885일 주일 찬송 70, 88, 44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자리를 찾으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무더위 속에서 지난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동안 제주도에서 새생명훈련과 부부성장학교를 마치고 금요일 오후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주간 화요일에는 청년 1부 몽골단기선교팀, 수요일에는 몽골일반단기선교팀이 떠났고 어제 토요일에는 키르키즈단기선교팀이 출발했습니다. 물론 지난 목 금 토 고등부는 별빛동산에서, 청년2부는 남해에서 각각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무더운 날씨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곳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여름 들면서 우리는 시편 23편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7대 스트레스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소시켜주시는지를 살폈습니다. 저는 오늘 시편 23편 시리즈 마지막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켜주시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을 염려한다고 오늘의 삶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염려하느라고 오늘을 즐기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편 23편 마지막 절에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다고 확신 가운데 결론을 내립니다.

 

시편 23편을 우린 다 같이 암송했습니다. 제가 다시금 6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인은 어떤 염려도 미래의 두려움도 내일에 대한 걱정도 없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이런 확신을 여러분은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신앙인이라면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3. 하늘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채워주심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쳐도 하나님은 거기서부터 선하신 결과를 이끌어내실 것입니다. 나의 유익과 다른 성도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선을 도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145:20)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세밀하게 돌보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여러분의 미래를 돌보실 것입니다. 우린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누가 미래를 주관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미래는 우리 하나님이 주관하시며, 그분은 우릴 사랑하시며, 우릴 도우실 것을 압니다.

 

신앙인으로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첫째로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한 구절씩 살펴봅시다. 선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이 구절은 무엇을 뜻할까요? 틀림없이 다윗도 살면서 실망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뭐든지 좋은 일만 일어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나쁜 일이 선한 사람들에게도 일어납니다. 선한 일만 일어나리라고 말하지 않고 선하심이 반드시 따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나쁘고 악한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은 거기서 선하심을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은 다윗에게 선하심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성도에게 하신 위대한 약속 하나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이 약속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는 누구에게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걷기 싫어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보여주는 길을 따라 가지 않는 자에게 이 구절은 궁극적인 선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믿는 자라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합력하여 좋은 귀결을 가져오리라고 약속합니다.

 

그것이 바로 선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딜레마나 실패나 재난에서도 하나님은 궁극적인 선을 이끌어내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거기서부터도 어떻게 하든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결코 좋은 일만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라도 좋은 일로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가끔 비극적인 사건을 겪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느껴지지 않는 때도 가끔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님도 십자가에서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살다보면 우리도 어찌하여를 부르짖는 경우를 만납니다. 그 상황에서는 선하심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먼 후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돌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로마의 교도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좋은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교도소에 갇혀 죄수의 몸으로 있을 때 신약 성경 가운데 포함된 편지를 썼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일을 통해서 선하심을 이끌어내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고통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둘째로 2.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선하심이 우리를 따를 뿐 아니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라고 고백합니다.

 

“"비록 내가 진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 내가 은혜를 베풀어서 너를 불쌍히 여기겠다."”(60:10) 무엇이 은혜입니까?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부요하신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향해서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은혜란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지 우리가 받아야 마땅한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자비란 무엇입니까? 자비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동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합니까?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길 잘 하기 때문입니다. 실수하고 잘못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죄를 짓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뿐 아니라 인자하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참으로 경험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분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면 예수께서 여러분이 행한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담당하십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지불한 죄 값을 또 다시 요구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정녕 이해한다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 . .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 . .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103:2+11)

 

인자하심을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과 허물과 죄악을 처리하실 때 우리에게 선하시며 자비하심을 깨달게 될 것이며 미래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인자하심을 인해 우리가 난관에 처할 때도 하나님께서 거기서 우릴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고 히브리서 기자는 권면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를 따르는 것은 몇 날이 아니라 평생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주었다가 거두었다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는 잘 해주다가 다음 날은 못해주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만나는 어떤 사람들처럼 변덕을 부리는 분이 아닙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종류의 날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행복한 날, 슬픈 날, 병든 날, 낙심되고 침체되는 날, 외로운 날, 힘든 날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사라진 날을 결코 만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느끼지 못할 수도, 때로는 그 분의 임재를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의 평생에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셔서 함께 살고 계신 부부 여러분, 어느 날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은 먼저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배우자 없이 살아가는 날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배우자 없이 혼자 살게 되어도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실 것입니다. 비록 남은 날들이 외롭고 고달프더라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거기에 함께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여러분의 좋은 날들에 함께 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고달픈 날들에 같이 할 것입니다. 삶의 어떤 상황에도, 춘하추동 어떤 계절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했다가 내일 저 말 하는 분이 아닙니다. 약속을 결코 어기지 않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복하시고 치유하실 것입니다.

 

받아 누릴 수 없는 좋은 것을 주심은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하는 벌을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선하심과 인자하심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시편 23편은 목양의 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양은 앞서 인도하고 다른 가축은 뒤에 몰아갑니다. 목자가 앞서고 양떼가 뒤따릅니다. 소들은 다릅니다. 뒤에서 몰아갑니다.

 

중동지방에는 목자가 앞서 양떼를 인도하고, 개들이 양떼를 뒤에서 몰아줍니다. 양떼의 뒤를 따르는 양치기 개들처럼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릴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목자에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양떼 가운데 오늘까지 있게 하십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함께 하면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신앙인으로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셋째로 3. 하늘나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요점이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애를 위해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 사는 모든 날들 동안 뒤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에는 더 놀라운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좋은 것을 나중까지 아껴두십니다. 아니 가장 좋은 것을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갈수록 더 나은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행복해도 최선의 것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최상의 것은 아직도 도래하지 아니했습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질 때에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압니다.”(고후 5:1 표준새번역)

 

한 날 여러분의 육신은 허물어 질 것입니다. 몸은 끝장을 고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의 삶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둘 중 한 장소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다. 천국에서 보내든지 지옥에서 보내든지 해야 합니다.

 

둘 다 실재하는 장소입니다. 여러분은 영원을 천국 아니면 지옥에서 보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은 죽지만 여러분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존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은 미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몸에 머물러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고후 5:6,8 표준새번역)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 승진이고 영전입니다.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죽을 준비가 되지 않는 사람은 살 준비가 된 사람이 아닙니다. 죽을 준비가 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어리석은 사람만 아무 준비 없이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에게 너무도 분명한 일에 대해서 준비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오늘이라도 주님을 영접하면 하늘나라에 갑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하늘나라는 하나님께 대해 신실하고 그리스도께 대해 순종한 보상을 누리는 곳입니다. 주님을 믿고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와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거기서도 맡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야말로 여러분의 모습에 일치한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구름위에서 비파를 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분에겐 그것도 아주 신나는 일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한다면 거기가 틀림없이 지옥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거기는 여기서 여러분이 즐겨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발목 상할 염려 없이 스키를 즐기거나 윈드서핑도 가능하리라 추측합니다.

 

거기서는 고통과 슬픔, 침체와 눈물, 질병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21:4 표준새번역) 이런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서 하늘나라를 준비하셨을까요? 하늘나라는 모든 사람을 위해 예비한 곳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주님을 따르기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위해서 준비된 곳입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 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의 몫으로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벧전 1:4 표준새번역)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 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의 몫으로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 . 그분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십니다.”(벧전 1:4+ 표준새번역)

 

내가 거기에 안전하게 가리란 확신은 내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기만 하면 그리스도께서 내가 거기에 안전하게 도달하리란 확신을 주십니다.

 

하늘나라를 향한 순례의 길은 여기 땅위에서는 만만하지 않습니다만 언젠가 우리는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믿는 사람들,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거기 가서 영원을 거하길 원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다음 세상에 가서 살 준비를 하는 셈입니다. , 구십 년 여기서 살지만 거기서는 수천만 년, 수 억만 년의 영원한 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사시길 원하십니까? 지옥에서 보내길 원하십니까?

 

여긴 다만 오픈 게임을 하는 곳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늘의 교제를 누리며 준비하십니까? 못 죽어서 산다는 저주를 미리 맛보고 있습니까? 천국이 제대로 차려진 식사라면 여기는 전채를 맛보는 곳입니다. 내세가 제대로 된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라면 여기는 예비과정에 불과합니다.

 

여기는 메인이벤트가 행해지는 곳이 아니라 개막행사에 불과합니다. 여기에서 사는 것이 전부인 듯이 사는 사람들은 돌이켜야 합니다. 빅 이벤트는 영원 가운데 다가올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거기서 시행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하늘에 고향을 둔 이 땅의 나그네들입니다.”(벧전 2:11 현대어성경) 그러므로 그와 같이 처신하라고 명합니다. 지금 여기가 전부인 듯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물질주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그 무엇도 여러분의 것이라고 움켜질 수 없고 장차 가지고 가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일시적입니다. 우린 8, 90년 사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주의에 빠져서 재물을 획득하고 축적하고 소유하는데 모든 삶을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이 모든 것인 양 삶 전부를 소모합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한날 여러분 모두는 다 죽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삶 전부를 세상 것을 위해서 투자하지 마십시오. 재물을 모우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준비하십시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늘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합당한 성품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그것만 여러분이 가지고 거기에 갈 수 있습니다. 돈도 차도 오디오 시스템도 멋있는 집도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이 세상 것을 구입한다고 가진 것을 다 소모하지 마십시오. 피상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원의 빛 속에서 살아가십시오. 여기에 영원히 살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십시오. 하늘나라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영원히 보존하지 못할 지금 여기를 위한 것들을 얻는다고 전 생애를 소비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산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우리에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머물 동안 잠시 사용할 뿐입니다. 떠날 때는 모두 두고 갑니다. 부디 영원의 빛 속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에 갈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누구나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모두 다 하늘나라에 간다면 그런 하늘나라는 바로 지옥일 것입니다. 모두를 보내는 곳이라면 전 사양하겠습니다. 다행히 모두를 들여보내지 아니할 것입니다.

 

여기 세상을 살면서 항상 주님과 함께 하길 원했던 사람들만 들여보낼 것입니다. 예배하는 한 시간도 지루한 사람은 거기 갈 리가 없습니다. 간다면 끔찍한 곳이 될 것입니다. 예배는 한 시간 남짓하면 끝나지만 거기는 끝나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늘나라에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오늘밤 죽는다면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 저는 털끝만큼 의심도 없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확신합니다. 갈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이 받아주시는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7,28) 천국에 가고 있는지 아는 요건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여러분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구주시며 목자가 되십니까?

 

그렇다면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는 고백은 다윗만 아니라 모든 성도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걸으면 가끔 넘어지다가도 바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잘못된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잘못된 책들을 읽거나 더러운 비디오를 볼 수 없습니다. 비윤리적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주님 손을 놓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너는 내 손안에 있어 아무도 너를 빼앗아 갈 사람이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멸망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내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십니까? 의심의 눈으로 보십니까? 더 나쁜 것을 예상하는 눈으로 보십니까? 부정적 시각으로, 조소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하고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모든 날 동안 따를 것이라는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보면 삶은 변합니다.

 

이제 이번 여름 들면서 살펴보기 시작한 시편 23편을 마감하는 시간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보살피시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너의 목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번 일곱 주일을 통해 우리가 배운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라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앞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사망의 음침한 계곡에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원수들이 둘러싼 자리에서 기름을 바르시고 바른 길로 앞서 인도하시는 목자입니다.

 

동시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 뒤에 함께 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위편에는 하늘 본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히 거할 소망이 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목자 되신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위험 가운데서 특별한 임재를 경험케 하시며 영원히 하늘나라를 허락하십니다.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디 예수님을 여러분의 목자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