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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0909_정근두.mp4
    성경본문
    마태복음 6:9~13
    설교일
    2018-09-09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마태복음 6:9~13

구주대망 201899일 주일 찬송 32, 90, 391

 

닷새 동안의 가을맞이 특별기도회를 통해서, 오늘까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여덟 차례 살피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의한 세상을 살 때에 하늘 아버지가 우리에게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며, 어떤 분인지를 아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로 아는 것은 기쁨, 기도, 감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 선결조건입니다.

 

우리를 기도의 자리에서 만나 주시는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동시에 그 분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또한 그 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기도는 하늘 아버지를 부르면서 나아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부를 때에 반갑게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기도문은 부름말과 여섯 개의 간구 문, 그리고 송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섯 개의 간구 문을 분석하면 처음 세 가지는 하나님께 대한 간구이고, 다음 세 가지는 우리의 필요에 대한 간구입니다. 무릎을 꿇을 때마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계획과 뜻을 먼저 아뢰어야 바른 기도입니다.

 

월요일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를 우리가 살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칭송하기 위해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더 알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우선하기로, 하나님을 알리는 일을 주력하기로 결단합니다. 첫 간구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만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경배하기를 열망합니다.

 

화요일에 살핀 두 번째 간구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더 이상 영토가 아니라 마음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마음에는 하나님 나라가 건설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다스리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기도는 아버지여 우리가 당신의 뜻을 순종하여 행하게 하소서라는 기도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 땅에 굳게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해 가길 소원합니다. 또한 아버지의 나라는 주님 오심으로 완성되는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실현되는 그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까? 불의한 세상이 물러가고 의가 보금자리를 트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주님을 오심을 내다보며 살기를 소원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구를 통해서 무엇을 기도합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만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경배하기를 열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 땅에 굳게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오늘도 무엇을 기도하면서 나아가시렵니까?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지 않으시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그의 뜻을 이루는 통로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후반부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후반부의 세 간구는 모두 우리와 상관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입니다.

 

시제를 중심으로 본다면 첫 째는 우리가 현재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합니다. “오늘 먹을 빵을 주소서두 번째는 우리의 과거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미래의 복지와 안녕을 위한 기도입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첫 번째는 우리의 신체적인 필요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는 우리의 정신적인 필요를 구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영적인 필요를 아뢰는 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첫 번째 간구, 일용할 양식을 기도드릴 때 우리는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성부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두 번째 간구, 죄 용서를 위한 기도를 드릴 때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러 오신 구세주 성자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간구, 죄에 빠지지 않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아뢸 때는 성도를 악에서 지켜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놀라울 만큼 적은 낱말을 사용하여 우리의 모든 관심을 삼위일체 하나님께 향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현재, 우리의 과거, 우리의 미래 우리의 전 존재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의 원형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세상을 사셨던 당신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가르쳐주셨습니다. 먼저는 육신의 건강을 보존하기 위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 그리고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형제를 용서하는 기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적인 복리를 위해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도록 일러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라는 후반부 첫 간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달라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해 일상적인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한 그릇 밥만이 아니라, 세끼 양식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을 다 포함합니다. 사람답게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유지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작은 필요까지 다 아십니다. 세계 열방이 그 분 앞에서는 저울의 먼지와 같을 뿐이신 크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일용할 양식까지 생각하십니다.

 

여러분의 일상적 필요를 아뢰는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그리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뵙는 감격을 체험하시는 복된 체험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독수리 날개 침 같은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철저히 의존함을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한 그릇 식물과 한 잔의 물도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때, 우리의 건강, 우리의 목숨조차 하늘 아버지의 손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무딘 언어를 기도의 도구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기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특별기도회는 우리 모두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물이었습니다. 기도해야 복을 받습니다. 기도해야 앞날이 열립니다. 기도해야 나그네답게 살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성도답게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므로 하루가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녁에 기도하므로 새날이 복되길 바랍니다. 젊은 날 기도하므로 아름다운 한 평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귀한 역사에 아름답게 쓰이길 소원합니다.

 

일용할 양식은 몸을 가진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 있다고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배불리 먹고 마실 것만 있다고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우리는 죄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왜 우리는 이 기도가 필요합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울려 살다보면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살아야 할 사이에서 특히 자주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부 사이도 말할 것 없고, 부모 자식지간에도 그렇습니다.

 

먹고 마실 것 있으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울려 지내고 서로 사랑해야 사는 것 다운 삶이 펼쳐집니다. 가까이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해야 할 사람끼리 반목질시하는 관계가 되면 목에 무엇이 넘어가기조차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죄 용서에 관한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만큼이나 필수적인 기도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경건한 성도라고 해도 죄 짓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드뭅니다. 어떤 죄를 범하든 죄를 범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날마다 배고프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듯이 죄를 범하기에 날마다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리 육신을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이,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는 날마다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죄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이 땅에 사는 한, 범죄로부터 초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죄 사함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드릴 수 없는 기도입니다.

 

형제자매를 용서하며 살기 위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피가 역류하고 치가 떨리는 사람조차 용서하는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릎 꿇고 손을 들고 하나님을 바라기를 원하십니다.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면서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부르짖는 그리스도인의 대열에 이제 함께 합시다. 이번 토요일부터, 새벽 530분 한 차례, 부르짖는 자리에 함께 합시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늘 아버지의 용서의 감격을 새롭게 경험할 때 여러분의 이웃을 용서하는 새로운 역사가 창조될 것입니다.

 

이미 매일 새벽과 저녁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번 특별기도에 새벽과 저녁에 나오신 분들 모두를 이번 토요일 5시 반에 초대합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새 힘을 얻어 여러분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기 시작할 때 울산 사회는 새로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용서해야 할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용서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자리에서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는 그리스도인 되기로 다시금 결단하는, 그리고 새롭게 결단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마지막 간구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였습니다. 유혹은 인간이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유혹에는 언제나 연단의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단련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벌이 아니라 영광스런 기회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 기도를 드려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단의 집요한 유혹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끈질긴 사단의 유혹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십니까? 그러면 기도하십시오. 이 기도는 자신의 연약을 아는 사람에게는 본능적이고 자연스런 기도입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호소하고 매달리는 것이 시험을 만나도 넘어지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무릎 꿇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온 땅을 두루 다시시면서 오늘도 은혜 베푸시기를 바라십니다. 지금도 당신의 능력을 주시기 합당한 자를 찾으시고 계십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항상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르짖는 성도, 열매 맺는 사역이 되길 빕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으로 이어집니다. 이 마지막 부분은 무엇을 새롭게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지금껏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 드리는 일종의 송영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기도문을 끝맺는 송영을 배울 차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을 괄호 속에 넣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헬라어 신약 성경 원본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송영부분은 예수님이 본래 가르쳐주신 부분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나중에 첨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사람들이 예배에서 주기도문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주기도문에 대한 화답으로 이 송영을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래 전부터 유대인들은 기도를 드리고 나서 찬양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관습이 초대교회에서도 지켜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바로 일어나는 것보다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기도를 드리고 나서 바로 자리를 떠나는 것보다 이와 같은 송영을 덧붙이는 것이 매우 적절합니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찬양으로 주기도를 마무리를 짓는 것은 적절합니다.

 

정말 우리 모두는 이 송영을 덧붙여 주기도문을 마무리한 조상들의 탁월한 영성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 이 송영은 그처럼 중요합니까? 이 송영의 가치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이 송영은 우리가 주기도문을 통해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 그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동시에 그 분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 것을 잊어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은 우리 문제의 해결 자이신 동시에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대상이신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주기도문의 송영이 가르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완전한 기도는 단지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도하는 대상께 합당한 영광과 찬미를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성을 측정하는 좋은 방안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감사하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기도에서 얼마나 찬양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찬양과 감사의 분량을 측정하면 우리가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인지가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를 분석해 보십시오. 지난 닷새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감사하며 찬양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영성을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신앙인은 대개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실한 영성의 깊이는 바로 기도에 나타나는 감사와 찬양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산을 옮겼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드렸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이 마지막 송영이 원문에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기도를 마치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달라! 달라! 하는 것으로 일관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만 늘어놓고 바로 일어서려면 미안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도를 마치고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진정한 기도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생각하고 기도가 끝날 때에 그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영광송을 즐거이 사용했습니다.

 

, 그러면 이 마지막 송영을 한 구절 한 구절 살펴볼 차례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이라고 고백하는 본문 자체를 살펴봅시다.

주기도문 첫 부분에서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나라가 오게 하시며입니다. 이제 주기도문 마지막에 나오는 송영에서도 나라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라고 찬양합니다.

 

우리가 임하기를 소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우리가 아버지의 것으로 고백하는 나라는 무엇입니까? 우리 하늘 아버지가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의 통치자요 주권자이십니다.

 

기도하는 우리는 다만 그의 백성이요 그의 종일 따름입니다. 기도 응답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절대적인 권력과 주권은 모두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마치면서 우리의 절대적인 복종의 자세를 다시금 고백합니다.

 

아버지여, 이 세계와 장차 나타날 영원한 나라가 모두 아버지의 손에 있습니다.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께 속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 분임을 고백하며 감사합니다.”라는 뜨거운 감격의 고백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께 우리는 찬양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주기도문 앞부분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기에 마지막 송영에서도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라고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천하만사를 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십니다. 모든 역사를 당신의 크신 나라 확장을 위해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영광중에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원하는 것을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펼치십니다. 그의 뜻을 펴지 못할 영역이 따로 없습니다. 온 세상은 당신의 뜻을 펼치는 마당이요, 온 역사는 당신의 뜻을 수놓은 휘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아올 때마다 이 놀라운 능력을 가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소원을 아뢴 다음에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이라는 찬양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그 아름다운 고백의 자리에서 언제나 마무리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또 우리는 주기도문 앞부분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고 기도했기에 기도를 마치면서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라고 찬양합니다. 기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묵상하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만큼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인간의 명예나 명성, 영예와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영광은 인간에서 돌릴 수 없는 단어입니다. 어떤 세상나라에도 돌릴 수 없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광채는 오직 그 분의 속성에서부터 발하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 이름이 영원히 높임을 받고 영원히 경배와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그 놀라우신 분에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알 때에 어떻게 영광을 노래하고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그 분을 아는 자는 그분의 영광을 송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끝내면서 우리가 그 분의 영광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제대로 기도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마무리하며 이 찬미를 드리는 사람은 그 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소원을 새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 힘을 다해 사랑하며 목숨 바쳐 충성할 분은 천지간에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에 그 분의 나라가 편만 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에 그 분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 합니다. 우리가 일용 양식을 구하는 것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용서를 구하며 사는 것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구하는 것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영원한 통치권의 향배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영광이 비취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엎드려 기도하고 일어나서 그 분을 위해서 살아갑시다. 우리의 주되신 그 분의 영광을 위해서 간구하고 그 분의 영광을 노래하는 자리에 나아갑시다.

 

여러분 가운데 자식을 키워본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부모 생각은 안하고 날마다 달라고만 하는 자식은 주면서도 미운 법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존경할 줄 아는 자식은 주어도 밉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리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달라! 달라! 하고는 그대로 일어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소원을 다 아뢴 다음에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하고 너무 감격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찬양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입니다. 주여! 이것을 믿을 때 나는 기쁩니다.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심을 확신하고 나는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 세상을 힘 있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는 하늘 아버지로 인해 감사하면 그 분을 위해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말씀 맺으면서 다윗이 드린 기도를 떠올려봅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역대상 29:11). 다윗의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크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크신 이름 앞에 찬양할 특권을 저와 여러분은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백성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영광이 온 땅을 덮을 그날을 바라보며 나아갑시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상 가득하게 될 그날을 사모하며 살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