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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1111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6:1-2
    설교일
    2018-11-11

첫째 인을 때실 때에

요한계시록 6:1-2

구주대망 20181111일 주일, 찬송 33, 151, 36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초에 계시록 5장까지 전했는데 다시금 요한계시록의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우선 전체적인 흐름을 먼저 생각해 봅시다. 요한은 지금 4장에서 시작한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장면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하늘로 올라가 환상을 보는 요한의 위치는 그대로 있습니다.

 

4장에서 요한은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찬양을 듣습니다. 5장에서 요한은 다시금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일곱 인봉된 책을 받으시는 어린 양을 봅니다.

 

그 순간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새 노래가 터져 나옵니다. 이어서 천 천만 성도들의 합창이 메아리칩니다. 모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노래합니다.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한 어린 양을 노래합니다.

 

하늘의 천사들뿐만 아니라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이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와 일찍 죽임을 당하신 구속주 어린 양을 노래합니다. 5장은 이 찬양에 네 생물의 '아멘' 화답과 24장로들의 경배로 마감되고 있습니다.

 

장면의 전환

4-5장의 연속적인 찬양이 울려 퍼지는 하늘 장면에서, 6장은 지상사건들을 보여주는 장면의 전환이 있습니다. 이제 6장을 살펴봅시다. 드디어 어린 양이 그 두루마리 책의 일곱 인을 차례로 떼십니다. 인이 떼어질 때마다 각기 심판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아직 책의 내용이 공개된 것이 아닙니다. 두루마리에 봉해져 있는 일곱 인이 차례로 다 떼어져야만 그 다음 두루마리에 기록된 내용이 공개될 것입니다. 그러나 벌써 메시아 심판의 전조는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곱 인봉이 차례로 떼어지고 일곱 경고의 나팔이 모두 울려 퍼진 후에야 일곱 진노의 잔이 남김없이 이 땅에 쏟아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장은 계시록이 펼친 대심판과 구원 드라마의 예비적인 부분입니다.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는 역사의 완성은 봉인된 인들이 먼저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 후에 책이 펼쳐져 그 내용이 공개되고 성취될 것입니다. 계시록이 펼칠 대심판과 구원 드라마의 예비적인 사건이 6장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을 뗄 때마다 뒤따르는 사건들을 통해 그 책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미리 상상할 수 있습니다.

 

6장을 살펴봅시다. 여기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는 이는 어린 양입니다. 어린 양이 인을 떼십니다.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만이 그 책과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는 어린 양의 손에 의해서 진전됩니다. 우리는 이미 일곱 인봉을 차례로 그가 떼고 있는 역사 속에 살고 있습니다. 네 번째 인을 떼시는 데까지 하나의 단위인 것을 거기 등장하는 말과 그 탄자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스가랴가 본 환상이 다시 한 번 요한이 본 이상의 요람입니다. 스가랴의 환상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로서 말들이 등장합니다. 늘 그러하듯이 요한은 그 환상의 근거를 구약 예언에서 취하면서도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예언을 가지고 자기식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옛 환상에 매여 있는 대신에 새로운 형태를 취해서 자기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나름대로의 표현의 자유를 살려서 동일한 진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말과 그 탄자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복수와 심판의 뜻을 실행하는 대행자들입니다.

 

흰 말과 그 탄 자

그러면 이제 계시록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첫 번째 사건을 살펴봅시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첫째 인을 떼실 때에 등장한 말은 흰말입니다. 그 탄자는 손에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의 색깔이나 그 탄자가 쓴 면류관이나 이 모든 묘사들이 전체가 다 모두 같은 하나의 사실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라는 첫 생물의 외침과 함께 첫째 인이 떼어질 때 한 승리자가 등장합니다. 이미 승리하셨지만 계속 승리하실 자가 여기 무대 위에 나타납니다. 오라하는 소리가 네 생물들 중 하나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오라하는 소리와 함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들이 풀려 나와 성도들을 향해 공격하던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새로운 막을 알리는 오라는 소리를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외칩니다. 거기에 따라서 이제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탄 흰말과 그가 쓴 면류관이 그가 승리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 하더라.” 부연 설명이 그가 승리자임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이미 이기셨고 계속 이기실 분이 누구입니까? 저는 어린 양 그리스도 예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흔히들 성경은 어렵다고 하지만, 계시록이야 말로 성경 중에 가장 어려운 책이라는 말이 가장 실감나게 하는 구절이 오늘 본문의 2절입니다.

 

저는 이 본문에 대해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접근했습니다. 여러 주석가들의 견해를 한번 살펴보고 저울질해 보았습니다. 사실 수적으로 말하면 더 많은 주석가들이 적그리스도 혹은 사탄의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흰 말을 타고 나왔으니까 그가 승리자처럼 보이는데 거짓 선지자다! 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10권 가까운 주석 가운데서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취하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설득을 당한 것은 두 사람의 의견이었습니다. 말과 그 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는 자라는 이유 때문에 흰 말 탄자를 적그리스도로 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말과 그 탄자들이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대행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한편은 소극적으로 심판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뜻은 적극적으로 구원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을 심판함으로써, 성도를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성취됩니다.

 

신약에서는 이 두 가지 면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말의 색깔이 항상 그 탄자가 어떠한 일을 할 것인지 암시합니다. 네 가지 말이 나오고 말들의 색깔이 각각 다릅니다. 그 말의 색깔을 보면 그가 어떤 일을 하는 분인지 드러납니다.

 

계시록에서의 흰색의 의미

계시록에서 흰색은 항상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을 나타냅니다. 흰색은 항상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을 나타내며 그의 영적 승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영광 중에 계신 그리스도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같더라고 묘사합니다. 신실한 주의 백성 속에서 이름이 기록된 돌이 흰 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아서 입게 될 옷은 흰 세마포 옷입니다. 보좌를 둘러 선 24장로들이 입고 있는 옷이 흰옷입니다.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해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에게 각각 흰 두루마기를 주고 있습니다.

 

7장에는 흰 옷 입은 큰 무리들이 등장합니다. 14장에는 흰 구름위에 인자 같은 이가 앉아 있습니다. 19장에는 그의 백성과 함께, 예수께서 흰 말을 타고 흰 옷을 입고 동일한 흰 말을 타고 등장합니다. 20장에는 최후의 심판의 자리가 흰 보좌라고 성경은 묘사합니다.

 

계시록은 일관성 있게 흰 색깔을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을 짓고 있습니다. 이런 많은 증거를 두고 생각해 볼 때 본문에 나오는 흰 말은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과 그 탄자들을 좀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뜻의 대행자라고 보면 소극적인 심판의 대행자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원의 대행자로서 생각하는 것이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만약에 말과 그 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심판과 구원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려움은 없어집니다.

 

둘 째, 셋 째, 넷 째 말들과 그 탄자들이 재앙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같은 각도에서 보려고 하다보니까 그가 적그리스도라고 보는 것입니다. 흰 말을 탄자가 마귀나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기고 이기실 분

뿐만 아니라 면류관을 받은 그의 활동을 묘사하는 이긴다.”는 말은 성경에서, 특별히 계시록에서 많이 등장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권력투쟁(Power game)에 관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은 누가 최후의 승리자인지를 판가름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긴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계시록에는 수없이 이긴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본문과 가까이 나와 있는 계시록 321하반절의 말씀을 살펴보십시오.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55절에서는 유다 지파의 사자가 이기었으니”(5:5).

 

3, 5장에서 이기신 그 분이 6장에서 이기고 또 이기실 분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보는 것이 계시록의 전체 흐름과 그 목적과 특징에 잘 조화됩니다. 계시록의 주제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누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기셨고, 지금 이기시며, 장차 이기실 분으로서 성경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승리자 그리스도의 소개는 계시록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주제중의 하나입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은 171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17:14)

 

계시록이 이 이긴다.”는 단어를 그리스도와 그 백성의 승리에 사용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의 사상적 배경인 구약을 보아도 승리자로서의 메시아의 묘사와 일치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메시아가 활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질문하는 것은 너무 천진난만한 생각입니다. 시편 45편에는 말을 타고 당기시는 이가 메시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대표적인 메시아 예언중의 하나입니다. 메시아 시편중의 하나입니다. 거기 메시아는 활을 차고 활을 당기시는 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시록 62절의 흰 말을 타고 활을 가지신 분, 면류관을 받고 이기고 또 이기시는 분이 메시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합니다. 말과 칼등 무기를 가졌다고 해서 메시아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천진난만한 발상입니다.

 

본문 해석과 감람산 강화

더 나아가서 인을 뗄 때 수반되는 사건의 실마리는 계시록 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요한이 그 복음서에서 사용하는 이긴다.”는 단어 역시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묘사하는 특정한 단어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뿐만 아니라 많은 주석가들이 이 계시록의 인을 뗄 때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세 시기로 구분된 마태복음의 감람산 강화의 구조와 같다고 지적합니다. 첫째 시기는 거짓 선지자, 전쟁, 기근, 염병, 지진, 죽음 등이 나타나는 시기 즉, '해산의 고통이 시작되는 때', 재난의 시작이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 시기는 큰 환난의 때”(24:21)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날 환난 후의 가 있습니다. 그 환난 후에는 해가 어두워지매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 권능이 흔들리는 때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큰 환난의 날을 앞두고 그 재난의 시작의 날들이 있습니다. 그럼 지금 인봉이 떼어진다는 것은 책이 열림으로 시작될 그 재난의 시작을 암시합니다. 예비적인 고통과 환난의 시대는 사회적인 악과 자연계의 재난으로 특징 지워집니다. 이 소극적인 측면만 아니라 적극적인 측면이 감람산 강화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을 뗄 때 수반되는 사건들은 감람산 강화에 나오는 재난의 시작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하긴 이 감람산 강화를 두고도, 감람산 강화에 처음 등장하는 거짓 선지자를 연상하여 처음 나오는 흰말을 탄 사람을 거짓 선지자라고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가 그런 내용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갖다 붙이는 것은 마태복음을 가지고 계시록을 읽어 들어가는 셈입니다.

 

바른 해석은 본문 자체에서부터 나와야 하고 본문에서부터 나온 것이 다른 성경에서도 입증되어야 합니다. 본문이 말하지 않는 내용을 다른 성경을 가지고 읽어 들어가면 무엇이든 다 가능합니다. 그래서 말세론이 인기가 있고, “! 신통하다, 잘 맞춘다, 오묘하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성경은 읽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메시지를 주님의 감람산 강화에서 보아야 합니다. 다른 적극적인 측면을 주님은 증거 합니다. 마가복음 1310절의 말씀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큰 환난의 날들이 이르기 전에, 마지막 종말이 도래하기 전에,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복음이 만방에 전해져야만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악이 판을 치는 시대로 세상이 마감되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은 악한 권세의 손아귀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앉아 있는 포로들의 신세가 아닙니다. 주님이 오시기까지 막무가내로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에 우리가 놓여 있질 않습니다.

주님이 오시기까지 이 천국복음이 온 땅에 전파되어야만 합니다. 그 시대가 환난의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은 땅 끝까지 증거 되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환난을 당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남아있는 포로들이 아닙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능동적으로 공격적으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며 구주를 대망합시다.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도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 흰 말을 타고 등장한 인물은 온 세상에 전파될 복음의 승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흰 말을 타신 분, 이기고 또 이기려고 달려 나가시는 분은 그리스도와 그 복음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계시록 자체가 흰 색깔을 승리자의 색깔로 말하고 있고, 계시록 자체가 승리자로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고, 계시록 전체의 흐름이 예수를 승리자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 옳고, 다른 성경이 역시 그렇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말씀

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과 오고 오는 세대의 성도들을 향한 위안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편지를 받을 당시에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계시록 2, 3장의 일곱 교회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당시 교회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들 가운데 어떤 교회는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들 가운데는 생명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환난 중에 있는 교회가 요한이 편지를 써 보낸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첫째 인이 떼어질 때 승리자 예수를 전면에 나타내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보라! 그가 이기셨다! 그가 또 이기실 것이다!” 그가 활을 가지시고 면류관을 쓰시고 이미 이기셨다는 것을 말해줌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그 음울한 날들이 계속 될 것이지만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인 승리자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핍박의 와중에서 교회는 당황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승리는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것을 이 환상을 통해 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핍박의 와중에서도 교회는 복음을 당대의 온 세상에 전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은 급기야 그 핍박을 누그러뜨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복음은 로마제국 당대에 승리자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는 위로의 말인 동시에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사명의 말이 여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재림하실 것을 그냥 앉아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승리하셨고 승리하실 그리스도를 뒤 따르는 무리답게 우리를 통해 승리할 복음의 위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과 환난을 뛰어 넘어서 오늘도 복음의 능력을 온 세계에 떨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교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난 20세기를 바라본다면 1900년 동안 어떤 시대보다도 지난 세기야 말로 복음의 위력이 만방에 떨쳐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동시에 핍박이 어떤 세기보다도 극대화된 시기라고 말합니다. 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순교 당했던 모든 순교자들보다 20세기에 순교당한 순교자, 한 세기에 순교당한 순교자가 더 많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힘 있게 달려 나갈 때에 사탄도 함께 깨어납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이 능력 있게 승리하는 자리에는 사탄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항상 핍박의 칼을, 여러 가지 환난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가 이기셨고 또 이기시고 있으며 장차 이기실 분입니다. 모든 환난과 어려움을 뛰어 넘어서 복음은 만방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린 이제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시야가 여기 울산에만 한정되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 우리끼리 서로 얼굴들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 광역시 울산을 환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입화산 정상에서 울산광역시를 둘러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좀 더 높은 곳에 서서 여러분의 시야를 좀 더 넓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온 지구가 하나의 촌이 된 시대입니다. 복음이 승리하는 그 현장에 여러분은 마지막 승리자로서 주와 함께 서기를 원치 않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은 여러분을 이 승리의 대열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승리는 확정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면류관을 그 머리에 쓰셨습니다. 장차 그리스도께서 흰 말을 타시고 면류관을 쓰시고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가 모든 것을 정복하시고 통치자로서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가 승리하셨으니 이 승리의 대열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확정된 승리에 지금 참여하십시오.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가는 승리자 예수와 함께 보좌에 앉을 때까지 오늘 여기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갑시다. 확정된 승리에 참여하십시오. 그 날의 면류관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면류관을 쓰신 분

골고다의 십자가의 승리는 지금 역사 속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날 십자가의 승리 이후에 사탄의 권세는 곳곳에서 결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두움 속에 빛이 비추이고 있습니다. 지난 2천년 역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의 역사입니다. 흰 말 탄자는 이미 면류관을 받아 쓰셨고,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계십니다. 이미 금 면류관을 쓰신 그 분은 인자 같은, 다시 재론의 여지가 없이, 그 분은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가 금 면류관을 쓰시고 그가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결과를 수확하기 위하여 손에는 이한 낫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가 마지막 추수를 하실 것입니다.

그 분의 최후 승리를 계시록 1911-16절은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기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흰 말을 타시고 흰 옷을 입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수많은 흰 옷 입은 무리들이 동일한 흰 말을 타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정복하신 분이시기에 이제 그가 쓰신 관은 왕관인 것입니다. 면류관이라 되어 있지만 왕관입니다. 이제는 그가 완전히 승리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기셨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많은 면류관을 썼다고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 심판의 날 그가 얻은 최후의 승리는 많은 면류관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확정된 승리에의 참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때처럼 지금도 우리 앞에 핍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 환난의 날을 준비하는 기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부터 시작되어 마지막 시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치열한 전투가 있을 것입니다. 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우리의 소원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억누르는 죄의 속성이 굼틀거립니다. 자연계에도 새로워지려는 소망과 함께 썩음에 종노릇하는 투쟁이 계속될 것입니다. 영계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짐에 따라 그것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과의 싸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싸움입니다. 이 모든 재난의 날들은 그 큰 환난의 날들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종말을 앞둔 상황은 요한이 처음 환상을 본 때부터 지금껏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가 승리하셨으니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긴 그 날부터 인은 떼어지고 있습니다.

핍박과 기근, 전쟁과 경제적 난국의 와중에서 교회는 지금도 곳곳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보기를 원한다면 세상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지금도 칼날의 위협아래 있고, 지금도 거짓 선지자들의 위협아래 있는 자들이 있고, 지금도 먹지 못해서 기근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고,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이 땅에 있음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첫 인이 떼어지는 상황을 말하면서 백마 탄 승리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당대의 성도들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 동일한 환난 가운데 주님을 기다리는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이 환상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생명의 위협 속에 사는 당신의 성도들을 향해서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으로 위로하려고 그 환상을 가록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주님이 떠나면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둘러싼 상황을 내어다 보셨기 때문에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그 서신 속에서도 동일한 격려를 성도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은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긴 자가 누구냐”(요일 5:4, 5)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게 될 때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가 다윗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인 것을 믿게 될 때에, 우리는 희망을 가집니다. 악이 판을 침으로써 세상이 마감하게 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악하여지고 더욱 악하여 질 것이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가 오셔서 승리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세상이 속화되고 속화되는 길을 달릴지라도 여러분은 거룩해져야 하고 더 거룩한 쪽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가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그 분이 오심과 함께 이 땅에 도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인봉을 떼시고 책을 펴시는 것입니다. 금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신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자로서 그가 땅위에 서실 것입니다. 이 확정된 승리 속에 동참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에게만 내일의 승리를 기약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곳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만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속에도 그리스도가 이기시고 또 이기시는 분으로 알려주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이 싸움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싸움에 여러분이 참여함으로써 여러분의 분깃을 받아 누리는 내일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