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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1125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시록 6:5-6
    설교일
    2018-11-2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계시록 6:5-6

구주대망 20181125일 주일 찬송 43, 150, 353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즈음 저는 <시편과 함께 하는 토요특별기도회>와 함께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사건을 다루는 계시록 말씀을 주일마다 사모하는 여러분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사도 요한은 아직도 마지막 일들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인도하는 사건들과 징조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차례로 인을 떼는 것은 책을 펴기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검은 말과 그 탄자

오늘 우리는 일곱 인 가운데 셋째 인을 떼실 때에 요한이 들은 음성과 요한이 본 사건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오라는 셋째 생물의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자 검은 말이 그 명령에 따라 등장하고 그 탄자의 손에는 저울이 들린 것을 봅니다. 그 순간 요한은 또 다른 음성을 듣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요한이 환상 중에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가 본 손에 들린 저울을 들고 검은 말은 탄자나 환상 중에 들은 네 생물 사이에서 들리는 듯한 음성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말을 탄자가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말을 탄자는 손에 창을 들든지 혹은 활을 드는 것이 어울리지, 말을 타고 손에 저울을 들고 나타났다는 것은 실제 상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손에 들린 저울

우리는 구약 예언의 배경 속에서 그 손에 들린 저울이 상징하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언약에 따른 저주의 예언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26:26)

 

언약이란 준수하는 자에게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언약이지만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입니다. 듣고 따르는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의 위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징계를 통해서라도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집념 때문입니다. 그 징계 중에 한 재앙인 양식을 저울에 달아 먹는 상황을 허락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여러분은 '설마 몸이 성하면 무얼 해도 먹고 살지 못하랴.'고 큰 소리 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집마다 오븐이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양식을 끊을 때에는 오븐을 모두 가동시킬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븐마다 빵을 구울 만큼 재료가 없기 때문에 열 여인이 모여서 한 오븐에 빵을 굽고는 정확하게 저울에 달아 나누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런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요한의 예언을 읽는다면 검은 말을 탄자의 손에 들린 저울을 이해할 것입니다. 음식을 저울에 달아먹는, 경제적으로 매우 곤궁한 상태에 두시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시작됩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그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떠할지 네 생물 사이에서 나는 듯한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그러면 한 데나리온이란 무엇입니까? 한 데나리온은 일용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입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노동자들의 하루 급료입니다. 하루 노동으로 팔 수 있는 밀이 한 되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사실 이 라는 말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밀 한 되는 어느 정도의 양식일까요? 당시 장정 노동자가 하루 먹는 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쌀로 말하면 하루 서 홉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루 품삯을 가지고 그 지역 주곡인 밀을 사면 혼자 하루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밀보다 좀 더 싼 보리를 사면 세 배를 살 수 있습니다. 세 식구는 끼니를 때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구가 셋이 넘는 것이 당시 상황입니다. 먹는 것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쌀에 보리를 섞어 먹듯이 밀에다가 보리를 섞어 먹기도 할 것입니다. 아니면 보리만 먹고 사는 아주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것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우리의 옛날 시골 생활을 생각해 봅시다. 동네가 크다 해도 쌀만을 가지고 사계절을 먹을 수 있는 집은 잘 없었습니다. 대부분 보리를 섞어 먹었습니다. 다만 섞어 먹는 쌀의 양에 따라 어느 정도 부자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요한이 본 검은 말을 탄 사람이 저울을 가지고 나타나서 보여 주는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굶어 죽는 상황이라기보다는 무척 살기 힘든 핍절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곡식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라 곡식 값이 턱없이 상승한 흉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극심한 타격이 있을 것을 보여줍니다.

피해 상황, 피해 계층

턱없이 뛴 곡식 시세를 말하고 나서 그 음성이 계속 들립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노동자의 하루 일당으로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인데 그 음성은

말하기를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이 무엇일까요?

 

대체로 두 가지의 설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흉년의 정도를 표현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뭄이 들기 시작하면 뿌리가 깊지 못한 밀이나 보리 같은 것은 한해 가뭄에도 흉년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같이 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들은 상당한 가뭄에도 곧바로 타격을 입지는 않습니다. 또 가뭄의 결과로 어떤 작물은 피해를 입지만 다른 작물은 그대로 남아 있는, 그래서 피해 상황이 부분적일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해석은 피해가 부분적이라는 것 보다 오히려 피해를 입는 계층이 부분적이라고 봅니다. 하긴 두 가지의 견해가 서로 배타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흉년이 들어 살기가 어려워지면 먼저 타격을 입는 계층들이 있습니다. 국제구제금융시대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광에 곡식이 있고, 은행에 잔고가 있는 사람들은 별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곡식 값이 턱없이 뛰면 당장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은 하루 품 팔아 먹고 사는 계층입니다. 그렇게 보면 부분적인 피해 상황보다는 오히려 피해 계층을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감람유나 포도주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데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없어도 생활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있으면 좋지요. 술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좋고, 기름이 있으면 화장을 해서 아름다움을 더 해 줄 수 있으니 좋겠지요. 그러나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밀과 보리의 품귀라는 것은 특정 계층에서는 아주 큰 어려움을 줍니다. 사실 구약에서는 자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구약 본문을 살펴보면 단순히 팔레스틴의 소산물로서, 누구나 누리는 생필품으로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아래서 누리는 축복으로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구약은 곡식, 포도주, 기름을 자연적인 농산물로 언급하기 보다는 오히려 언약의 축복, 저주, 회복의 흐름 속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계시록에서 셋째 검은 말 탄자의 손에 들린 저울, 네 생물 사이에서 나는 듯한 음성은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가뭄이 들기 시작하여 곡물은 벌써 귀해졌습니다. 아직도 뿌리가 깊게 박힌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는 해를 받지 않은 상황입니다.

동시에 그렇게 가뭄이 시작됨으로써 어려움을 당하게 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 가지 산물 모두 팔레스틴의 주된 농산물이긴 하지만 누구나, 언제든지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밀과 보리는 누구에게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술과 기름은 그처럼 절실한 생필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향락을 좋아하는 자들의 독과점 품목입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21:17) 술과 기름은 특정 계층 - 향락을 좋아하는 자의 기호상품입니다. 커피나 화장품처럼 말이지요^^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밀과 보리 값은 천정 없이 뛰어서, 서민들의 삶에 극심한 타격을 주는데 비해서, 생활의 풍요와 안락을 상징하는 포도주와 기름은 얼마든지 풍족한 시대입니다. 보십시오. 커피나 화장품의 종류는 날마다 더해 갑니다.

 

식구들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식량조차 구하지 못해 급급한 계층들이 있는 동시에 충분한 양식과 생활의 안락과 향락을 누리는 계층이 공존하는 세대를 말세의 시작으로 나타냅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재앙이 시작될 때 누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이 아주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나 반면에 부한 사람들은 전혀 어려움이란 모르는 상황입니다.

 

우리 시대의 상황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믿습니다. 부자들은 살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기 더 좋은 시대입니다. 돈만 가지고 나가면 세상에서 온갖 좋은 것들을 살 수 있습니다. 지중해의 올리브 기름이든 이란의 석류든 무엇이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상징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어린이들이 하루에 수 백 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지만 또 어떤 곳에서는 쌀밥도 거들떠보지 않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한 둘밖에 없는 자녀, 호의호식 시키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하겠지만 지구의 한 곳에서는 꼭 같이 귀한 자식들이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통곡하고 있는 어머니들도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도저히 자기 체중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크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먹지 못해 배가 퉁퉁 부어 죽어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21세기가 문명의 세기입니까? 인터넷을 통해서 몇 초 만에 소식이 접수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정황 속에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자신만 생각 말고 서로 나누는 새로운 삶을 시작합시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미 우리는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인 상황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편적인 상황인 동시에 동일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돈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오늘 이후로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초대교회의 상황

요한이 본 일곱 교회의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가난한 형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서머나 교회의 형편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감람유와 포도주는 풍성한데 밀 한 되, 보리 석 되를 얻지 못해 어려워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분명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풍요로울 만큼 풍요로워 이 구절을 자신들과 연결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경제 상태를 말해주는 정보들을 가지고 판단해 보십시오.

 

종교적 원칙과 신앙을 희생하지 않는 한 동업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교회가 두아디라교회였습니다. 당시 두아디라에는 동업조합치고 없는 것이 없을 만큼 모든 직종에 동업조합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파는 사람들은 정육업자 협회, 양곡을 파는 사람들은 양곡도매업자 협회, 그 외에 모직, 직조, 염색, 피혁 할 것 없이 모두 조합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합원이 되어야만 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각 조합마다 그 조합이 섬기는 신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조합원들은 모여서 축제를 하고 그 신 앞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차려져 있던 제물들을 신이 주는 선물로서 기쁘게 받아먹고 날이 어두워지면 성행위를 갖는 것이 그들의 제사순서 중의 하나였습니다.

 

실컷 먹고 취하고 난 다음에, 남녀가 자기 아내와 남편을 가리지 않고, 성행위를 하는 그런 축제에 참가해야 동업조합원의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회 상황 속에서 새로운 신앙으로 기독교를, 예수님을 새로운 신으로 믿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양심을 지킨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동업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제사에 동참하고 그들의 음란한 행위에 가담할 것인지, 아니면 조합원 되기를 포기할 것인지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조합원 되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경제적, 물질적 손해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그들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짐승의 표가 없이는 사고팔지 못하는 형편이 그때의 형편입니다.

 

짐승의 표라고 하니까 666이니, 바코드니 떠올리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상황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두아디라교회의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합원의 자격을 상실할 때 그들은 실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신앙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

과거의 상황이었고 미래에 발생할 상황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여러분이 보려고만 한다면 오늘날에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신앙 양심을 지키려 할 여러분은 이 세상이 주는 향락 속에 함께 놀아날 수 없습니다.

 

교사로서, 한 때는, 학부형이 주는 돈 봉투를 받지 않으면, 동료 교사로부터 따돌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불의한 한국 경제 속에서 사업가로서 사업을 할 때 절세라는 미명으로 탈세를 하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어쩌면 특정 직종의 수입을 노출시킨다고 동업자들로부터 적으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의 대가를 지불하였습니다. 신앙 양심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는 것은 옛날이야기나 미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주님이 처음 오셨을 때부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순간까지 이 상황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덕 기업주나 타협적인 노동자에게는 오늘도 감람유와 포도주의 궁핍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지만 낮은 임금 속에서 신앙 양심을 지키고 살아 갈 때에 언제 포도주에 취하고 감람유를 피부에 바를 시간이 있겠습니까?

 

세상은 감람유와 포도주의 유혹으로 우리를 흔들려 하고 있습니다. 피를 흘리는 것만이 순교가 아닙니다. 신앙 양심 때문에 빈궁과 고통을 당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백색 순교자의 길을 걷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성도는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7장은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검은 말과 그 탄자는 교회가 존속하는 전 세대를 통하여 성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핍박 역시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 되어 집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일을 촉진시키는 도구입니다.

세상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교회를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 감람유와 포도주에 취하는 것이 우리의 생의 목표는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리 신자의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 때 포도주와 감람유에 취하도록, 거기에 싫도록 도취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하루 속히 내 집 마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불의한 세상 속에서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기대하고 계십니다.

부요하게 되는 것은 여러분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대 주재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빌레몬 장로의 손에 있었던 재물과 같이 선하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인하여 평안함을 얻었으니라고 바울이 빌레몬 장로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여러분 가운데 부하게 될 사람도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아무도 방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손에 들려진 재물은 반드시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지나간 어느 해처럼 물가가 갑자기 뛰고 집값이 올랐을 때,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형제들의 답답한 상황에 도움이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바로 사용하는 할 기회가 됩니다. 믿음을 통한 성도의 교제가 많은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구제와 섬김의 은사를 통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다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가난하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특별히 신자가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신앙 양심을 지켜야 하기에, 가난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혹과 불법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신앙인의 고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적인 압박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신앙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야 말로 여러분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하게 되는 것은 여러분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자를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향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세에 안 믿는 사람들만 고통을 당하고 신앙이 좋지 못한 사람들만 절규하는 그런 상황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도 그러한 자리에 한날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그들에게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를 먼저 순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도록, 성도답게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항해 길에도 풍랑이 있지만 이 풍랑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라고 찬송하며 오실 주님 대망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