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8_1202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 6:7-8
    설교일
    2018-12-02

네 째 인을 떼실 때에

6:7-8

구주대망 2018122일 주일 찬송 44, 80, 505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이 본 하늘 환상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안팎으로 쓰여 일곱 봉인으로 봉해진 책이 어린 양에 의해서 그 인이 하나씩 떼어지고 있습니다.

 

토요특별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고, 주일 계시록 말씀을 사모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일곱 봉인이 차례로 떼어지고 있습니다. 처음 네 가지 인이 차례로 떼어질 때마다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는 우레 같은 소리를 발합니다. 그 명령에 따라서 말과 그 탄자가 등장합니다.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에 이어 청황색 말이 등장합니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과 그 탄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시행하는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옛날에는 아무나 말을 타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필요한 때에 관청이 소유한 말을 동원할 수 있는 마패는 어명을 받은 암행어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은 위임받은 권세를 가지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예상을 뒤엎는 사건들

처음 네 봉인이 떼어질 때마다 각각 말과 그 탄자가 등장합니다. 말을 타고 등장함으로써 위임받은 명령을 신속하게 이루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맨 먼저 승리하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흰말과 그 탄자의 모습을 보여준 후에, 붉은 말, 검은 말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받을 순교와 핍박을 보여줍니다.

 

아직도 안팎으로 쓰인 책은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다만 일곱 봉인을 차례로 떼어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아직 종말의 사건들이 기술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봉인이 떼어질 때마다 종말로 인도하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종말을 예고하는 징조들은 이미 우리의 예상을 충분히 뒤엎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진노의 큰 날이 오기 전에 핍박을 당하며 순교의 피를 흘리는 성도들의 수난을 먼저 예고하고 있습니다. 봉인이 떼어지자마자 세상을 향한 심판의 채찍이 휘둘러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향한 성별의 징계가 먼저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처음 오신 사건이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었듯이 예수께서 다시 오실 사건 또한 예상을 뒤엎는 사건들로 시작합니다. 먼저 얻어터지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피를 흘리는 것은 교회이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성도들입니다. 교회가 당하는 핍박과 수난을 먼저 기술합니다.

 

계시록은 이미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고 있는 수난의 의미를 밝혀주기 위한 책입니다. 푸른 나무의 수난을 통해 마른 나무가 장차 받을 마지막 재앙을 내다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받는 그 형벌의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 여자들아 나를 위해서 울지 말라 푸른 나무에도 이 같이 심판하시거든 하물며 마른 나무에게는 어찌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성도들은 쏙 빠져버리고, 세상 사람들만 얻어터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의 집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주님 재림의 징조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쪽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신실하게 그 증거를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 수난을 당할 뿐 아니라 때로는 순교의 죽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먼저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尺量)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그 바깥은 척량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 바깥은 이미 내어준 땅이기 때문입니다.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아 붓기 전에 당신의 백성을 성화시키는 도구로써 붉은 말과 검은 말이 등장합니다. 붉은 말은 일반적인 전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핍박이요 순교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검은 말 역시 일반적인 기근 상황이 아니라 성도들이 당하는 경제적인 궁핍과 빈곤으로 우리는 결론을 내린바 있습니다. 둘째 인과 셋째 인이 떼어질 때 일어나는 사건은 세상이 교회에 가하는 직접적인 핍박을 상징합니다.

 

청황색 말의 등장

그러나 성도들이 하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 겪어야 할 고통과 시련은 그것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극히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세상과 함께 당하는 시련과 재난도 있습니다.

 

네 번째 등장한 청황색 말과 그 탄자는 이런 종류의 시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지금 넷째 인이 떼어지고 있습니다. 네 번째 말이 달려 나오고 있습니다. 청황색 말입니다. 병든 사람의 창백한 얼굴을 연상시키는 색깔입니다. 죽은 시체에 감도는 검푸른 빛의 말이 달려 나오고 있습니다.

 

질병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검푸른 빛의 말 색깔과 어울리게 그 탄자의 이름이 사망입니다. 망 뒤에는 음부(陰部)가 재빨리 뒤따르고 있습니다. 죽음이 남긴 희생물을 음부가 거두어들입니다.

그러나 사망과 음부가 마음대로 설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이들은 전능자로 부터 권세를 부여 받아서 -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서 그 권한을 행사합니다. 전쟁의 칼이 사람들을 희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기근과 염병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 속에 초대교회 성도들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죽음과 음부도 다만 전능자의 수종자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행동반경은 정해져 있습니다. 땅에 사는 사람 1/4이나 희생되는 엄청난 희생이지만 그래도 땅 사분의 일에게만 미치는 한정된 재앙입니다. 그 다음 나팔 재앙에서는 삼분의 일까지 미칠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 대접의 재앙이 쏟아 부어지면 온 지구상에 미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계시록을 읽을 때 우리에게 맨 처음 주어진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주어진 책이지만 우리에게 처음 주어진 책은 아닙니다. 먼저 초대교회 당시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책이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책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먼저 말씀하셨고, 그들에게 하신 교훈의 말씀이 동시에 오고 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과 음부의 권세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근과 염병이, 전염병들이 성행하던 것이 1세기의 상황입니다.

 

구약의 배경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여기서 네 번째 말과 그 탄자가 등장함과 함께 동원되는 죽음의 도구들을 열거합니다. 과 흉년과 짐승으로써 죽이더라.”는 말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집단적으로 먹이를 찾는 모습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전쟁의 칼이 설치면 기근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기근이 있는 곳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보면 먹고 마셨기 때문에 전염병이 나돌고, 전염병이 나돌아 경작할 사람이 없이 버려진 땅에는 숫자가 늘어난 짐승들의 횡포가 심해집니다.

요한은 다시 한 번 구약 배경 속에서 종말의 시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언약의 저주가 기술되어 있는 레위기(26:21-26)나 예레미야((21:7-9)나 에스겔(5:17,14:21)을 통해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 기근, 염병, 사나운 짐승은 하나님께서 즐겨 사용하는 언약을 파기한 백성을 향한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레위기에는 들짐승, , 염병, 기근(26:21-26)을 언급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나오는 저주는 , 기근, 염병(14:10-12, 21:7-9)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지 않는 언약 백성들을 향한 징계의 도구가 염병과 칼과 기근과 짐승들입니다.

 

특히 청황색 말과 그 탄자가 가져다주는 죽음의 도구 네 가지 기근, 짐승, 온역, (5:17, 14:21)에스겔의 예언 속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계시록의 말씀과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순서가 바뀌었을 뿐 네 가지의 도구가 모두 언급되어 있습니다.

 

, 흉년, 사망, 짐승

, 그러면 네 번째 청황색 말과 그 탄자 사망이 사용하는 도구를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째, 검으로 죽이는 것을 언급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 은 둘째 인을 뗄 때 나온 큰 칼과는 다른 단어로 표현하였습니다. 앞에서는 짐승을 죽일 때 사용하는 칼을 의미하는 반면 여기에서는 전쟁용 검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벨 때 사용한 것과 동일한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대적들과 싸우실 때 사용하시는 입니다.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6). “그 나머지 말 탄자의 입에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19:21).

 

이 검은 전쟁을 의미하는 검이 분명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앞에서 사용한 붉은 말을 탄자가 휘두르는 검은 본문의 검과는 다릅니다. 또 본문에 나오는 '죽인다(to kill).'은 말은 둘째 인을 떼실 때에 '서로 죽이더라(to slay, to slaughter).'는 말과 다릅니다.

둘째, 흉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흔히 등장하는 재난입니다. 아시다시피 전쟁은 항상 기근을 동반합니다. 한 성읍이 전쟁 중에 포위가 되면 식량이 끊어지고 기근을 당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 부모가 아이를 삶아 먹는 비참한 일들도 일어났습니다. 구약 역사 속에서 뿐 아니라 주후 70년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도 그런 비참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셋째, 기근과 함께 전염병(온역)으로 인한 사망이 뒤따릅니다. 똑 같은 헬라어 말이 사용되고 있지만 앞에서 말위에 탄자를 사망이라 할 때는 일반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고 죽이는 도구로써 칼과 기근과 사망이라고 할 때는 페스트 같은 전염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네 번째로 짐승이 언급됩니다. 전쟁후의 기근과 온역으로 인구가 감소하게 되면 사나운 짐승이 기승을 부리고, 특히 아녀자들이 희생이 되었습니다. 왕하 1725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한 벌로 하나님이 사마리아에 사자를 보내어 몇 사람을 그 밥이 되게 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선지자를 대머리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곰의 희생이 되기도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사나운 짐승들은 성도나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날뛰는 야수들입니다. 로마의 투기장에서 성도들이 짐승들의 밥이 된 사실을 기억해 보십시오.

 

짐승으로 죽이더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당시의 성도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즉각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투기장에서 많은 성도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짐승의 밥이 되던 현실 속에서 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보편적인 재난

먼저 그러한 재난 가운데 살아가던 성도들을 향해 쓰인 편지가 계시록입니다. 때로는 전쟁의 무고한 희생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근의 희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염병, 짐승의 희생이 되기도 하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인 편지입니다.

 

다만 위임된 권한을 받아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상기 시켜줌으로써 죽음과 음부도 하나님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합니다. 하지만 전쟁, 기근, 질병, 사나운 짐승 모두가 전 세계, 전 세대를 통해서 불신자들과 더불어 성도들도 당하는 재난입니다.

 

동시에 이런 재난들이 교회를 향해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재난들을 그 교회를 성별하고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겪게 하심으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성도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 뿐 아니라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당하게 되는 고통에 우리도 함께 합니다.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서 음부가 날뛸 때에 성도들도 희생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에도 이런 재난들이 계속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다른 어떤 세대 못지않게 전쟁으로 인해 죽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기근으로 인해서 오늘날에도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1년에 죽는 수가 천만이 넘는다는 보도를 접하게 됩니다. 기근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질병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이 청황색 말을 타고 달리는 현장에 검과 흉년과 염병과 사나운 짐승으로 죽임을 당하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 세상과 성도들이 함께 당하는 재난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종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살펴보면 예언서들이 엄청난 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사야로부터 시작되는 구약의 예언서들은 구약 전체의 삼분의 일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구약의 예언자들은 유다의 멸망 전에 예언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예언의 기록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주어지고 읽혀져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예언이 이스라엘의 종말에 관해서만, 유다의 종말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많은 예언들 하나도 남김없이 오늘 우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을 심판의 대상으로 말씀하셨지만 이 새 시대는 천하 만민을 향해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들으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돌이켜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으라고 명한 시대가 이 새 시대입니다.

 

새 시대의 명령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새 시대인 동시에 그 명령에 불순종할 때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명령에 대한 불순종의 저주도 이제는 유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해당됩니다.

이런 구약 예언의 배경을 가지고 사도요한은 그가 본 종말의 시작을 기술합니다.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히브리인들의 저녁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과 염병과 칼과 고통에서부터 지켜 주소서.”

 

마지막 사명

인류 공동의 재난에 함께 할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 때 성도들의 기도가 계속될 것입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전쟁과 흉년과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인류를 바라보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시대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우리가 함께 나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들이 당하는 재난을 우리는 남의 일처럼 듣고만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맥추감사절은 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기근을 당해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성탄절도 굶주리는 이웃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인류 공동의 재난이 마지막 시대의 징조로서 닥쳐오고 있을 때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런 때 일수록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서 음부의 먹이가 되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 마음의 부담을 느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이 죽어가고 있는, 기근과 염병과 전쟁의 칼날에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끼리 모여서 예배하고 찬송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승리하고 승리하는 대열에 함께 나아가 승리자들로서 싸워야 합니다. 죽음을 당하게 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죽음의 희생물이 되어서 음부의 먹이가 되는 일들을 볼 때마다 그 영혼에 대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 영혼에 대해서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음부가 삼켜버린 그 영혼들에 대해 책임이 없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를 향한 징계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징계가 보편화되고, 구체화 되는, 때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집단적인 희생이 치러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대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써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21:11)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라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24:7)

일곱 봉인이 차례로 떼어지므로 재난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서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주님의 말씀에 주의하십시오. 이 세대의 징조를 보는 눈을 가지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