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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505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 계시록 12:13~17
    설교일
    2019-05-05

용의 핍박

요한 계시록 12:13~17

구주대망 201955일 주일 찬송 8, 40, 411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1213-17절의 이야기는 직접적인 배경인 6절을 먼저 살펴봅시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12:6) 광야로 도망한 여자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풀어줍니다. 그녀가 광야에서 받은 핍박뿐 아니라 거기서 받은 보호와 양육을 강조합니다.

 

보호와 양육, 오늘 같은 어린이 주일에 부모가 생각해야 할 주제입니다. 부모의 중요한 임무가 어린 자녀들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범위와 한계가 있습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보호와 양육을 하도록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임무를 져버리거나 지나친 과보호도 우리 시대의 빈번한 문제입니다.

핍박 받는 교회

그럼 본문으로 돌아가서 왜 남자를 낳은 여자는 용의 박해를 받습니까? 왜 지상의 교회는 사탄의 핍박을 받습니까? 그 이유는 더 이상 사탄이 남자아이를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해산하는 순간 그 아이를 삼키려고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하늘 보좌 앞으로 올려간 그 아이를 이제 더 이상 공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사탄이 하늘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고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하늘 보좌 앞에서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성도들을 헐뜯을 근거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어린 양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도 남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비난받을 만한 여지가 남아있지만 어린 양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기에 사탄은 더 이상 성도들을 고발할 구실이 없습니다. 사탄은 하늘에서 내어 쫓겼습니다.

 

용이 자기가 내어 쫒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하늘로 남자 아이를 놓쳐 버리자, 남자를 낳은 여자를 향해서 분풀이를 합니다. 그리스도를 해하려다가 실패하자, 그 대신 교회를 해치려고 덤빕니다. 여기에 지상의 교회가 박해를 받은 깊은 내막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기에 받는 핍박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시련이 있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핍박은 승리자 그리스도께 속한 무리의 표시입니다. 어리석고 연약해서 시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리자 그리스도 예수께 속했기에 당하는 시련입니다.

 

산상설교에서 팔복을 선언하시면서 주님은 자기 백성의 특징으로 박해를 받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0~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자기 것을 박해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밤 주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향해 하신 다락방 강화를 들어 보십시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8-19)

 

그렇습니다. 박해는 세상에 속한 자들의 몫이 아닙니다. 환난은 주님께 속한 자들의 몫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 주님께 속한 자로서 박해를 받는다면 내일 주님의 승리에 참여할 것입니다. 다락방 주님의 설교 마지막 구절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승리가 보장된 교회

사탄은 일찍 주님을 박해했기에 지금 우리를 핍박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우리가 주님께 속한 증명서입니다. 땅위에서 당하는 어떠한 핍박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승리자 주님의 백성인 확인이기 때문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일찍 주님께서 사탄의 박해를 이기었기에 지금 여러분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에서 주님의 설교를 남겼을 뿐 아니고 그의 편지에서 주님의 백성들의 승리의 보고를 기록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그가 사탄을 이기셨기에 지금 우리는 믿음의 승리를 노래합니다. 예수 사탄을 이겼네. 예수 사탄을 이겼네.” 그의 승리를 지금 노래하는 모든 자들은 장차 영광스런 승리의 행진에 동참할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까? 여자가 낳은 아이가 지금 보좌 우편에 있는 것을 믿습니까? 큰 용이 하늘에서 내어 쫒긴 것을 믿습니까? 어린 양의 피와 증거 하는 말을 인해서 여러분도 그를 이길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예수께서 인자이심을 믿습니까? 물로 세례를 받으셔서 사람과 하나 되시고 피로써 사람들의 죄를 속한 것을 믿습니까?

 

어린 양 예수의 피가 능력이 있습니다. 그 피를 고백할 때에 여러분은 승리합니다. 여러분의 죄는 그 피로 씻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받을 벌을 대신 받으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십시오. 어린 양의 피로 속죄함을 받을 것을 노래하십시오.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것을 증거 하십시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큰 무리를 기억하시지요?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쳐 노래하던 환상을 기억하시지요?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십니까?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14) 모두 큰 환난에서 부터 승리한 자들입니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무리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5)

위기의 도움

보십시오. 하늘에서 내어 쫒긴 사탄은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를 핍박합니다. 남자 아이에 대한 분풀이를 여자에게 하려는 비겁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에게는 패배하고 하늘에서 쫓겨났지만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쯤이야 하고 어리석게 덤빕니다.

 

공격하면 여지없이 당할 것처럼 보이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손쉽게 되지 않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위기의 순간 하늘의 도움이 나타납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 . .”

 

남자 아이, 그리스도를 이기지 못한 사탄은 이제 총력을 기울여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 여자를 버려두지 않습니다. 악한 자의 소욕대로 자기 백성을 내어 맡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순례 길에서 불렀던 찬송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125:1)

 

큰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같이 땅 위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은 영원합니다. 어리석은 사탄은 교회를 향한 마지막 공격을 감행할 것이지만 위기에는 하늘의 도움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쫒기는 여자에게 난데없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진 것을 보십시오. 이제는 달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날아갈 수 있습니다. 쉽게 빠르게 피난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에 여러분의 피난처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어디로 피해야 할 지 알고 계십니까?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귀담아 들어 두십시오. 광야를 가리켜 자기 곳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위해서 예비하신 곳입니다.

 

성도의 피난처, 광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를 사랑하십시오. 성도는 자기 처소를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이 진리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늘 시민입니다.

 

큰 성 바벨론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소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애굽 사람이 아닙니다. 큰 도시 울산광역시에 살고 있지만 광역시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풍조에 따라 살다가 세상이 멸망할 때 함께 망할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소속이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진정한 거처가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확실한 피난처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광야, 거기가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입니다. 뱀의 낯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광야, 여러분의 곳 밖에 없습니다.

 

분노한 사탄의 직접적인 공격을 멀리 피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도피처, 광야를 사랑하십시오. 문명의 불야성을 이루는 큰 성 대도시에 집착치 마시고 광야로 나아가십시오.

 

관심을 하나님께로 쏟을 수 있는 그 곳을 사랑하십시오. 바라기는 오늘 여러분과 여러분의 발걸음이 광야를 향한 걸음이기를 소원합니다. 하늘이 노래지는 고통 속에 자녀를 낳아 몰록의 신 앞에 바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 양식을 공급받고 날마다 돌보심을 느끼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 세상 큰 도시 문명이 여러분에게 참된 거처, 확실한 피난처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어른이든 아이든, 그 백성을 위해 예비하신 곳은 광야임을 명심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에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큰 독수리 두 날개를 주어 여러분으로 여러분의 피난처 광야로 날아가게 할 것입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많은 성경에서 주어가 생략된 수동태의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의 의미입니다. 능동태로 바꾸면 하나님이 큰 독수리 두 날개를 그 여자에게 주시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독수리 두 날개를 여러분에게 주어 여러분의 피난처 광야로 날아가게 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자신이 독수리 날개로 업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을 바로를 통해 삼키려는 용의 시도에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심으로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출애굽한 지 3개월 만에 시내 광야에 도착했을 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19:4)

 

40년 후 이스라엘을 향해 들려준 모세의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32:10-12)

 

바로를 통해 삼키려는 용의 추격에서 옛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여 구원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백성을 파멸로부터 기적적으로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직접 개입하시고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옛 언약 공동체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보존되었듯이 새 언약 공동체 역시 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직접 개입하시고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직접 예비하신 성에서 여러분의 아버지의 품에 안길 때까지 세상에서 안주하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거할 곳은 세상이 아니라 광야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거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여기 계시록에는 세 종류의 때가 있습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마흔 두 달, 일천 이백 육십일로 일컫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사흘 반이 나옵니다. 끝으로 심판 날이 등장합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는 계시록에 나오는 오랜 기간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복음시대 전 기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시에 그 기간은 적그리스도의 기간입니다. 복음시대 전 기간 동안 그래서 핍박을 받습니다. 말씀의 영향이 나타나는 동시에 핍박의 바람이 부는 기간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살던 시대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활동하는 시기라고 말하고 있음을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2-3)

복음시대 전 기간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활동기간입니다. 한 때,두 때, 반 때의 긴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짧은 기간, 사흘 반이 있습니다. 핍박이 극심해지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전례 없는 핍박이 극심해지다가 최후심판으로 인도되는 기간입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 . .

거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왜 하필이면 한 때, 두 때, 반 때 즉 삼년 반입니까? 36개월 하면 나이 드신 남자 분들은 떠올리듯이 36개월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엘리야의 36개월입니다. 그의 기도로 땅에 비가 내리지 않던 기간입니다. 수난과 고통의 기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난 기간입니다. 또한 기적적인 방법으로 양육을 받던 기간입니다.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삼년 반 동안 엘리야를 먹이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온 땅에 지명 수배령이 내렸지만 발각되어 체포되지 않고 살아남은 기간입니다.

 

처음에는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동원해 먹이셨습니다. 떡과 고기를 공수해서 하나님께서 그 종을 먹이셨습니다. 다음에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그 신실한 종을 먹이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신실하신 하나님이 과거 수난의 시기에 당신의 종을 양육하신 그 방법으로 말세의 구주 대망 공동체를 양육하실 것을 기억나게 하는 표현입니다.

 

물을 강같이 토하여

이제 그 여자가 광야에서 받는 핍박의 양상을 요한이 본 환상을 통해 살펴봅시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여기에는 광야에서 여자가 당한 핍박과 도움의 양상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요한이 환상 중에 보고 있는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러 가게 하는 뱀을 통해서 보여 주고자 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구약에는 자주 시험과 환란, 핍박을 넘치는 홍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강물을 삼키니

하지만 사람을 산채로 삼키며 떠내러 가게 하는 홍수처럼 맹렬한 원수의 핍박에서 받는 도움을 성경은 또한 증거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32:6-7)

 

시편 124편의 기자는 더 분명히 주의 구원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124:6~8)

 

최후 결전장으로 , , ,

속수무책으로 보이는 광야의 여자를 해치지 못한 용의 분노는 이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에게 향합니다. 교회 전체 파괴하려들던 총력전에서 실패한 용은 각개 전투로 나오는 모습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신자 개개인을 공략하려고 나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길 수 없으나 그 개개인과 싸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때로 성도 개개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지만 그들의 신앙의 정조를 유린할 수 없습니다. 성도 개개인의 생명은 빼앗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 입니다. 교회는 공격당할 수 있지만 정복당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날 요한의 환상은 이 싸움의 현장에 우리를 세움으로 끝을 맺습니다.

 

“. . .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최후의 결전장으로 우리를 불러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이제 최후의 결전은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를 안겨 줄 것입니다.

 

오늘 환상을 통해서 요한은 일찍 주님이 그에게 친히 하셨던 위로를 우리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환난과 핍박의 물결이 높아가는 소아시아 성도들을 위로하려고 했던 요한의 시도는 거센 환난과 핍박의 마지막 물결 앞에 직면한 온 세계의 성도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메시지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 구원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