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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519_정근두.mp4
    성경본문
    누가복음 2:28-33
    설교일
    2019-05-19

찬란한 내일

누가복음 2:28-33

구주대망 2019519일 이웃초청 잔치주일 찬송 28, 287

 

울산교회 성도들의 초대를 받아오신 이웃 여러분, 복된 예배의 자리에 오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은 할아버지 시므온이 아기, 어린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한 이야기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한 평생 구원자를 기다리며 살던 신앙인입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26)는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 기다린 사람입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란 히브리 말로는 메시야, 우리말로는 구원자를 뜻합니다. 그는 지금 구원자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안고는 찬송을 부릅니다.

 

주재(主宰)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할아버지 시므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찬송 내용을 살펴보십시오. 대 주재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이제는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그리스도를 보기까지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보고나면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의미입니다만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신앙인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과 같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12년 전에 제작된 영화의 제목입니다. 지금 노인은 젊은 시절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키고, 열심히 일해서 국가경제 건설에 기여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내신 분들입니다. 오늘 사회의 중추인 장년층과 앞으로의 중추가 될 청년층을 키워낸 분들입니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제목은 절망적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게다가 절망적인 세상 끝에, 찾아오는 죽음, 그 이후의 두려움 때문에, 오죽했으면 거름 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낫다.”고들 말할까요?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주인공 시므온 할아버지는 다릅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통해서 신앙을 가지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1 예수님을 믿으면 찬란한 내일이 기다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어~”라고 자조하지만 신앙인에게는 찬란한 내일이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나이가 들었던 아직도 젊은이든, 찬란한 미래가 있습니다. 죽음,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서양 기독교인들은 흔히 이런 표현을 합니다. 우리 생애의 가장 영광스런 날은 아직 오질 않았다”(The glorious day in our life have not yet to come!)입니다. 간단히 줄이면 최선은 아직 오질 않았다!”(The best is not yet to come!)입니다.

 

보십시오. 시므온 할아버지의 고백을^^ 주재(主宰),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분을 주재(主宰)라고 부르면서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시므온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마치 노역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힘든 노역에서 평안한 쉼의 자리로 옮겨지는 것으로 고백합니다.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면 찬란한 내일을 누가 맞이할 수 있습니까? 시므온 할아버지는 직함이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앞에 등장한 안나처럼 선지자도 아닙니다. 집사도 장로도 아닙니다. 찬란한 내일은 직분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연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언급할 만 했습니다.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의롭고 경건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삶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아래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도리입니다. 이 근본적인 도리에 부합한 삶을 시므온은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또 특별한 점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는 설명입니다. 그가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산 구체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25절에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38절에는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다 같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기다리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스라엘의 위로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이 위로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신뢰할 때만 가능한 것인데 하나님의 약속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약속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의 삶이 회복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지금껏 자신의 능력으로 살려고 하셨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찬란한 내일을 맞이합니다. 그들이 겪는 모든 고난이, 오시는 메시야를 통해서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손을 내밀면 여러분의 삶을 달라집니다.

 

할아버지 시므온이 이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가졌다는 것을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누구나 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고 하면 특별히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시므온이 아직도 그것을 붙들고 사는 소수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언제나 이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간직한 소수의 무리들로서 구성됩니다. 겉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전부가 다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심으로서 문제가 해결될 것을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각자 자기 수완에 따라서, 자기 생각에 따라서 풀어 나가려고 했지 여기 시므온처럼 오실 메시아를 더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은 그때 당시에도 아주 소수였습니다. 물론 그때 당시 사람들도 이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면한 고통을 인내로서 견디면서 하나님의 구속이 가까움을 믿고, 거기에 위로를 걸고 있었던 사람들은 적었습니다. 약속된 구주에 대한 소망으로 자기 영혼을 지탱할 만한 사람이 희귀한 시대에 등장한 사람이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이라는 사람입니다.

 

신앙을 가지면 눈으로 보는 현실대로 평가하지 아니하고, 약속된 구주가 오셔야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의 오심을 정말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주님이 오셔서 의가 통치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고통 중에서도 탄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정말 신자다운 신자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보내신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기 바랍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 살던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께 마지막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둘째로 2 예수님을 믿으면 찬송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인은 나이가 많아져도 초라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를 두고 가진 주님과의 사귐으로 인해서 신앙의 아름다움이 그 얼굴에까지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신실하게 주님을 잘 섬겨온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 영광스런 직무를 맡아서 충성한 성도 시므온의 모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면서 평생을 산 사람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 마침 아기 예수의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아기 예수를 덥석 받아 안고, 기쁨으로 찬송합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28)

 

평생을 기다려온 주의 그리스도, 아기 예수를 바라보면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라고 하면서 기뻐하는 노 성도의 모습입니다. 수십 년 동안 그 직무에 충실한 신하가 이제 근속 상을, 아니 승진을 받기 위해서 왕을 알현하는 기쁨을 상상해 보십시오.

 

온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이 마련한 구세주를 바라보면서 이방의 구세주요 이스라엘의 빛을 찬양했습니다. 주재(主宰)여 이제는이라고 우리 성경은 되어있지만 본래는 이제는 주재(主宰)라고 이제란 말이 먼저 나옵니다.

 

시므온이 지금 외치고 있는 이제 아주 의미심장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온 인류가 대망해온 구원의 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자기 품에 안은 시므온의 감격의 외침이 이제는 주재(主宰) 하는 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그는 하나님을 주재(主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 된 자신의 절대적인 주권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절대적인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대 주재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종들에게 일을 분담하시는 분이십니다. 일을 맡기시는 그는 절대적인 권한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가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우리 각 사람에게 지정하십니다.

 

하나님을 주재(主宰) 하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을 그분의 종으로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이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고 생생히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그 생을 보람 있게 살아갑니다. 젊은 날이나 은퇴 후의 삶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삶은 결코 무료하거나 지루한 기다림의 나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긴 일을 하는 사람은 지루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영광스런 기대와 설렘의 나날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사는 것이 황홀하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재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직무를 이루기 위해서 사는 삶은 날마다 가슴 설레는 삶입니다. 무의미한 삶, 지루한 삶은 아직도 대 주재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 자의 삶입니다. 삶을 가치 있게, 보람 있게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의 누구인지를 바로 파악해야 합니다.

 

대 주재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생애에 일을 분정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그 일을 다 하기까지 결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에게는 위험한 고비가 있을 뿐입니다.

 

삶을 바로 인식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죽음도 두려운 종말이 아닙니다. 무겁게 지워진 짐을 벗는 행복한 순간입니다. 이 땅에 부과된 직무를 완성한 후에는 행복한 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죽음을 쉼이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인생의 모든 수고에서부터 이제 풀려나서 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주님이 맡긴 직무에 신실한 종들이 누린 축복은 복된 승진이요 휴식입니다. 아울러 거기에는 영광스런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무작정 쉼이 아니라 이제 보상의 때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를 눈으로 확인한 시므온은 기쁨으로 주의 도래를 외치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아기 예수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제는 그 구원의 대열에 참예한 자로서의 외침입니다. 약속된 하나님의 구원을, 인류가 대망한 메시아를 통한 구속의 만족이 그 영혼을 휩싸는 순간입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한 것이요.” 이 아기가 오기 전까지 특정 민족만이 구원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구원의 축복의 잔치에 만민이 맛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기가 옴으로서 이제 구원은 만민 앞에 차려져 놓은 잔치 상입니다. 아기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은 만민의 필요를 따라서 공급되는 구원입니다. 온 세상의 필요를 다 채우고도 남는 구원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만민 앞에 예비하신 구원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그리스도가 없는 온 세상은 어두움 속에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밖에는 한줄기 빛마저 없는 캄캄한 암흑입니다.

 

성경은 인류의 모습을 암흑 가운데 있다고 묘사를 합니다. 인문과학도 발달하고 자연 과학도 발달해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면에 있어서는 캄캄하다는 것입니다. 주변 사물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사람은 그리스도 그분 없이는 왜 사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질문에 대해서 캄캄한 상태입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뿐 아니라 죽음을 앞둔 때에 유일한 위로가 무엇인지 세상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하나님을 나타내는 빛 되신 그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캄캄한 가운데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암흑 속을 헤매듯이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생을 걷고 있습니까?

 

아직도 암중모색을 하는 자신을 응시하며 괴로워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아기 예수 그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입니다. 지금 그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두루 비추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으로 인해서 감사 찬송을 하고 있습니까? 그 빛이 온 세계를 두루 돌아서 흑암의 앉은 배달겨레에게까지 비췬 이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또한 시므온은 아기 예수가 이스라엘에게 주는 의미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전수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구름 가운데 나타난 영광을 보던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아들로 인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맨 먼저 보게 된 민족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사람들 가운데서 경이와 감사의 찬송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의 탄생은 하늘의 천사들까지도 노래하게 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의 탄생의 의미를 바로 깨닫는 심령마다 오늘도 동일한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탄생의 의미를 깨닫고 큰 소리로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찬송가는 그의 탄생 이후로 주님을 바로 만난 자들을 위해서 마련한 노래집입니다. 여러분이 예배 시간에 부른 찬송은 여러분의 신분을 입증하는 행위입니다. 중심에서 믿고 중심에서 찬송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서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자들만이 찬송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자들은 모두 찬송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는 찬송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과 입술에 가득하게 됩니다.

 

셋째로 3 예수님을 믿으면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 . .”(34) 옛날에 축복 기도를 하는 나이가 되면 인생 다 산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어디를 가도 축도하는 순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축도 군번이라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가져다주는 선물 때문입니다. 이전에 비해서 세상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이전에 보지 못한 측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본문처럼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 .”라는 문장조차 은혜가 됩니다. 젊은 날보다 노년에 어울리는 역할이 바로 축복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노년이 되면 젊었을 때 보지 못하던 것을 보는 눈이 있고, 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어울리는 사역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축복하는 역할입니다.

 

아줌마 나이 50이 되면 어린아이들이 무차별하게 예쁘게 보인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은 아름답게 나이가 든 것을 입증합니다.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따스한 말을 건네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은 신앙이 아름답게 영글어가는 현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어르신들은 모두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에 인색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신앙을 갖게 되면,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백성들을 축복하는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은 이웃 여러분, 그 때 예루살렘에 살던 시므온이라 하는 어르신처럼 찬란한 내일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삶을 시작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부디 주님을 영접하여 남은 생애가 더욱 찬란한 내일을 사모하는 여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찬란한 내일에 주님 오심을 사모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쁨 기도 감사의 나날이 펼쳐질 것입니다. 남은 생애가 더욱 주님을 찬송하는 생애가 펼쳐질 것입니다.

 

비록 총기는 옛날만 못하고 목소리의 윤기는 이전과 같지 못해도 주님 사랑하는 마음은 날로 새로워지고 사랑의 깊이는 날로 더해가기에 주님을 기뻐하며 찬송하는 삶이길 빕니다. 마음에 항상 기쁨, 기도, 감사가 넘치면 입술에는 찬송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영접하면 더욱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여생 됩니다. 앞으로의 날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날마다 누군가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일을 꼭 시도해 보십시오.

 

산다는 것이 축복임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축복하고 싶은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들로 둘러싸인 복된 여생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들 하지만 신앙인에게는 노인이든 젊은이들 찬란한 내일이 기다립니다. 여러분 모두 이 찬란한 미래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