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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526_정근두.mp4
    성경본문
    마태 6:9-10
    설교일
    2019-05-2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태 6:9-10

구주대망 2019526일 주일 찬송 38, 93, 27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복된 예배의 자리에 함께 나아오신 이웃 여러분, 오늘 저는 약속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칩니다. 저처럼 알기만 하면 저처럼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잘못 생각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걱정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워주지도 않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살 수도 있습니다. 의심과 침체에 빠져서 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 우리의 신관(神觀)은 어떻게 형성됩니까? 자라면서 친구들로부터, 아니면 부모로부터, 또 영화나 책을 통해서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가지면 불필요한 문제에 봉착하기도, 낙망과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대에 떠돌던 잘못된 신관(神觀)을 박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시려고 드는 무서운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길 즐기는 분이 아니십니다. 결코 우리 일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십니다.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런 행동은 하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일깨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상적인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는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구절이지만 2천년 유대사람의 귀에는 엄청난 충격적인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천 육백년 동안 기록된 구약 성경에 오직 일곱 번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비해서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에만 일곱 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비교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사 복음서를 통해서 모두 150번 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를 원하십니다. 아버지이시기에 인격이시지 무슨 힘이나 능력의 결집체가 아니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좋으신 아버지, 이상적인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라고 부를 때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좋지 않은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십시오. 슬픈 기억도, 화내는 기억조차도 다 없이 하시고 좋은 기억들만 떠올리십시오. 그것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어울리는 것입니다.

 

땅의 아버지는 아버지답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여러분을 학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계시지 않는 분이시기도 했습니다. 말만 들어도 두려움이 생기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 해봐라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라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흔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들 가운데는 가정을 지옥으로 만드는 분도 계셨을 것입니다. 땅의 아버지는 이기적이고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고, 일관성이 없기도 하며, 자기중심적이고, 아이들을 학대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설명을 붙이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란 말은 단지 그가 어디에 있는가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어떠한 아버지이신지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땅의 아버지와 대조적인 아버지임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아버지 노릇을 했습니다만 하늘 아버지는 완벽하십니다. 우린 실수도 하고 화도 내고 성질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다릅니다. 차원이 다른 분이시기에 그분을 구별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릅니다.

 

불완전한 우리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대개 서너 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첫 째는 하나님 하면 도무지 비합리적인 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실 분처럼 여깁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하시는 분처럼 여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삶을 고달프게 하는 온갖 규정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우리에게 온갖 즐거움을 앗아가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하나님은 비합리적이고 지나친 요구를 하는 분으로 생각하면 누군들 하나님을 알고 싶겠습니까? 멀리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비합리적으로는 여기지 않지만 2) 신뢰가 안가는 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상처를 입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도 이상하게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을 합니다. 상처를 입힌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화를 냅니다.

 

하나님, 어떻게 보고만 계셨어요?” “어떻게 그것을 허용하시고 계셨지요?” 여러분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마음 속 깊이 끔찍한 일이 여러분이 삶에 일어나도록 한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거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그 일이 하필 제게 일어났지요? 나는 그런 하나님이 싫습니다.” “나는 당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여러 번 상처를 입으면 아무도 믿을 놈 없어, 하나님도 마찬가지야라고 중얼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한 번도 왜 하나님께서 그런 상처를 입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청중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인형이나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선한 것만 선택하도록 짓지 아니했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아니했더라면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들을 만들지 아니했습니다. 선택의 자유를 주시다보니 사람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잘못된 결정을 하므로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자유를 빼앗았다면 그럴 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하면 여러분의 자유도 빼앗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입은 상처만 생각하지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입힌 상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에게 자주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보셨나요?

 

두 사람이 갈라서면 아내는 버림당했다고 아파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배신당했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상대방도 생각해 보십시오. 관계의 아픔은 상대적입니다. 쌍방적입니다. 버림당한 고통도 아픔이지만 배신당한 고통도 아픔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여러분도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받은 상처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다만 선택의 자유 때문에 허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선한 것을 택하길 원하십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비합리적이거나 믿을 수 없는 분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3) 무관심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계시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제 같은 것에게 관심을 가지겠어요. 우주적인 큰일을 염려하시느라고 바쁘실 텐데요. 내 직업이니 우리 아이문제니 등록금이니 제 남자 친구문제까지 어떻게 신경 쓰시겠어요.”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라면 여러분인들 왜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기만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 알려고 누가 마음을 내겠습니까?

 

네 번째 빈번한 오해는 하나님은 4) 비위를 맞추기 까다로운 분처럼 여깁니다. 눈에 들려고 무척 노력해도 언제나 흡족해 하시지 않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할수록 그 다음 수준을 요구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까다로운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면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오늘 한 번 마음에 있는 것을 내어놓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만나 봅시다.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하게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지금껏 품어온 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그림 대신에 성경이 말하는 바른 그림을 그려보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어떤 분일까요?

 

1.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잘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마음에 긍휼이 자리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잘 보살피는 분이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지금껏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것보다 더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두뇌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분이십니다.

 

시편 103편을 보십시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103:13) 하나님의 특징 첫 번째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보살피시며 돌보시는데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광풍만난 제자들처럼 소리치지는 않습니까? 주님, 우리가 다 죽어가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사실 이 아우성은 인간존재의 심연에 자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시는가? 하나님은 나의 상처를 돌아보시는가? 내가 겪는 이 어려움을 알고 계시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성경은 무어라고 말합니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사소한 문제까지 다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지시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먹고 마시고 입고 사는 것들은 어린 아이가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몫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6:31, 32)

 

그것이 아버지 몫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도 계시고, 알면서도 그 역할을 못하는 분도 있지만, 하여간 그것은 고유한 아버지 직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여러분의 쓸 것에 대해서 여러분이 염려할 일은 없습니다.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세심히 돌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문제는 결코 여러분이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오히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다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2. 하늘 아버지는 일관성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는 변하는 것이나 움직이는 그림자가 없습니다.”(1:17)

 

세상 아버지들은 예측불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날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변합니다. 하루는 조용히 계시다가 다음 날은 열 받아 어쩔 줄을 모릅니다. 어떤 날은 그럴 듯한 아빠요 다음날은 대책 없는 아빠입니다. 일관성이 없는 아빠는 불안한 자녀들을 만듭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한 분위기에서 안정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일관성 있는 아버지이십니다. 기분에 따라 변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기분 나쁜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관성은 나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축 처지는 날이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불변합니다. 우리는 헤매고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불변합니다.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하늘 아버지는 신뢰할 만합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그는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는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딤후2:13)

 

눈 뜨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을 살지만, 흔들리지 않는 만세반석 위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거기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변함없이 대하십니다. 사랑으로 행동하십니다. 용서로 행동하십니다. 은혜로 행동하십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빠 엄마 때문에 속상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모두 하나같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은 결코 철회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약속을 어기시지 않습니다.”(11:29, 현대어성경)

 

그러므로 시인은 고백합니다.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려고 오실 것이니, 하나님께서 내 원수가 망하는 꼴을 나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59:10, 표준새번역)

 

우리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언제나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완전하시며 언제나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는 분이십니다. 세상 아버지는 정말 변덕스럽고 학대하는 분이기도 하지만 하늘 아버지는 온전하십니다.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하늘 아버지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와 여러분은 감정에 기초하지 않고 진정한 신뢰에 바탕을 둔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껏 갖지 못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원하시고 계십니다.

 

3. 하늘 아버지는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언제나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필요할 때마다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지금 바쁘니 다음에 약속을 하자고 말씀하시질 않습니다. 등록교인 5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교회를 목회하면서도 사전약속을 선호하는 여러분 목사와는 다릅니다.

 

여러분 시간만 되면 언제나 하나님 시간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다고 소개합니다.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17:27)

 

여러분 가운데서는 아버지 부재가정에서 자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돌아가셔서 안 계신 경우는 모릅니다만 엄연히 살아계신 데도 바빠서 없는 것 같은 가정입니다. 집에 계셔도 신문 뒤에 얼굴이 감춰진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너무 바쁜 분은 아니십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너무 바쁘시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너무 바쁘다고 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지금은 안 돼, 뒤에 보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11)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에 대해서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을 가지고 나오면 뭐 그런 것을 가지고 그러냐? 반찬고나 붙이고 웃으며 살아라. 제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동정하시고 우리를 돕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145: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4:18)

 

4. 하늘 아버지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문제라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그가 감당 못할 사안은 없습니다. 아무 것도 그가 가지신 자원을 넘어서는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오늘 이 땅의 아버지와는 다른 점입니다.

 

아무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늘 아버지의 뜻을 가로 막을 수 없습니다. 개역성경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그러나 표준새번역에는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1:37, 표준새번역)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 아버지는 거의 전능하신 하나님과 비슷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아버지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텔레비전 방송도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못 본 프로를 아버지가 전화 한 통이면 해결한다고 믿습니다.

 

자라면서 모든 신화는 벗겨지고 맙니다. 별수 없는 아버지로 보이다가 측은한 아버지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늘 아버지는 전능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3:20) 우리 하나님은 그 영광의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떤 일이라도 시간을 좀 다오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의 쓸 것을 능히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 자녀이기 때문에 변함없이 돌보시고 가까이 계시고 무한한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러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창조주라는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자녀로서 관계를 맺고 있느냐를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하늘에 계신 좋으신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 분의 돌보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두 곳 성경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14:6,7)

 

다음은 갈라디아 3장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3:26)

 

세상에서도 자녀가 되는 길은 두 길밖에 없습니다. 그 집에 태어나든지, 입양이 되든지 두 길 외에는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세상에서는 태어나는 길이요 영적으로는 다시 태어나는 길입니다.

 

성경은 거듭남과 동시에 입양개념을 소개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4,5)

 

요한복음 112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믿고 영접하지 않으면 아무 종교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나라로 넣어줄 수 없습니다. 아무 종교도 여러분을 하늘로 보낼 수 없습니다. 오직 길은 믿음으로, 영접함으로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늘 아버지를 알아가는 길을 쉽게 합니까? 아니면 어렵게 하고 있습니까?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버리시고 이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인해서 기쁨, 기도.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