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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602_정근두.mp4
    성경본문
    시 4편 5-8절
    설교일
    2019-06-02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45-8

구주대망 201962일 주일, 찬송 64, 91, 289

 

올바른 제사를 드리고, 주를 의지하여라. 수많은 사람이 기도할 때마다 주님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 주의 환한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하고 빕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에게 안겨 주신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4:5-8, 표준새번역)

 

오늘 이 자리에 처음 나오신 이웃 여러분, 그리고 교회에 발을 디디긴 했지만 아직도 하나님이 잘 믿어지지 않는 구도자 여러분, 그리고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심층 욕구를 만족시켜 주시는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달리 말해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사람은 누구나 기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기쁨이 없는 삶이란 우리를 위축시킵니다. 기쁨이 없는 삶은 우리에게 삶의 에너지를 앗아갑니다. 기쁨을 상실한 삶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기쁨이 없는 삶은 우리를 탈진시킵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쁨이란 근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욕구가 충족되면 더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쁨을 회복하게 되면 생산성도 높아집니다. 기쁨이 넘치면 우리는 보다 활기차고 보다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심리적인 욕구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시편 43편은 하나님을 극락(極樂)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극락(極樂)하면 불교용어처럼 들리지만 지극한 기쁨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넘치는 기쁨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기쁨의 하나님이십니다. 잔치를 배설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잔치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기쁨의 책입니다. 특히 빌립보서는 그 특징이 잘 나타난 책입니다. 4장으로 된 그 짧은 편지 가운데 16번이나 기뻐하라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또 놀라운 것은 바울은 경관이 좋은 멋있는 휴양지에서 지금 친구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손발에 쇠사슬을 차고 속박된 가운데 수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곧 석방될 것을 예상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사형선고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생애에 가장 암울한 시기에 기쁨 가운데 지내며 성경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 여섯 가지 기쁨 만들기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기쁨을 앗아가는 것들을 하나씩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이 말하는 기쁨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기쁨 만들기를 위한 여섯 단계를 오늘 말씀드리겠습니다.

 

맨 먼저 1.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모든 후회를 던져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청중 여러분, 여러분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과거의 모든 후회를 망각의 바다에 던져버리기 전에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마치 풍랑을 만난 배가 무거운 짐들을 바다에 내어버리듯이 과거의 후회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지금 싣고 있는 후회와 절망의 짐들을 하나님의 망각의 바다 속에 던져버려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의 후회스런 과거를 던져버리십시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든 후회스런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기에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산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을 견딜 수 없이 무겁게 짓누르는 모든 과거의 죄 짐을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 삶의 주인이신 대 주재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시인과 함께 고백하십시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후회는 시간낭비입니다. 후회해도 과거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 때 그러지 말았더라면하고 후회한들 변화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때 그 말을 하지 않고 참았어야 했었는데. . .’ 아니 그 때 그렇게 결정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 . .’ ‘한 번만 새롭게 할 수만 있다면 . . .’ 등등은 모두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잊어버리라고 권면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3:13).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과거를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내어놓고 고백하면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여러분 대신 죽음을 당한 예수님께 모든 잘못과 죄악을 내어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잊으시고 다시 기억도 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과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옮기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께서 우리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기쁨의 삶을 시작하는 출발지점은 슬픔과 후회와 탄식의 과거를 잊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2.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미래에 대한 염려를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3:13- 14). 우리의 오늘의 기쁨을 삼키려는 것들은 과거의 후회스런 삶뿐이 아닙니다. 또 시간의 다른 끝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미래로 인해 불안하면 하나님이 주시길 원하는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염려는 기쁨을 죽이는 대적입니다. 여러분은 염려와 기쁨을 동시에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염려는 일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염려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커 보입니다. 염려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심각하게 보입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미래에 대한 염려는 과거에 대한 후회만큼이나 쓸모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미래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무슨 대안을 제시합니까?

 

여기에 두 구절이 있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3:13-14). 또 다른 구절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염려하든지 기도하든지 택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 가지를 하는 것은 일관성도 없고 불가능합니다. 복음송 가사처럼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염려하는 사람은 모든 필요한 것을 아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신 모든 일로 인해 감사하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여러분은 택일하셔야 합니다. 염려하시렵니까? 아니면 기도하시렵니까? 염려한다는 것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하면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기뻐하기를 원한다면 과거를 잊어버리고 미래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후회하지 말고 염려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한 놀라운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염려대신 기도하십시오.

 

세 번째로 3.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내맡기십시오.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모르면 사는 기쁨이 없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생의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여기 이 땅에 왜 사는지 알지 못한다면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늘의 기쁨대신 세상의 행복을, 영원한 기쁨대신 순간의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목적을 발견할 때 비로소 삶의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은 결코 진정한 기쁨을 여러분에게 안겨주지 못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하던 순간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문자 적으로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이 된 늙은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외로운 처지에 있습니다. 그는 로마의 지하 감방에 갇혀 쇠사슬에 메여 있습니다. 하루 스물 네 시간 네 명의 간수에 의해서 같은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바울은 빼앗긴 셈입니다. 친구도 없습니다. 사역도 중단되었습니다. 자유도 없습니다. 아무런 프라이버시조차 없습니다. 하루 24시간 밀착 감시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울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던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생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서 121절에서 고백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그의 삶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삶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그리고 구도자 여러분, 누구든지 이 분명한 삶의 목적을 발견하면 새로운 삶에로의 초대를 받습니다. 놀라운 기쁨이 바로 주어질 것입니다.

 

로마서 613절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육신의 한 부분이라도 죄에 내맡겨 악의 도구가 되게 하지 말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처럼 여러분을 전부 하나님께 드려 의로운 일에 쓰일 도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6:13, 현대어성경)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신체 모든 부분을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로서 내어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되게 하십시오. , , 귀 입 모두를, 팔다리와 오장육부 모두를 주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생각과 지식 모두를 주님께 드리십시오.

 

달리 말해 나를 사용해 주옵소서.”라고 기도드려 보십시오. 쉽지 않은 기도입니다. 위험스런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기도를 드린다면 후회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후회하게 된다면 이 기도를 더 일찍 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는 모릅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삶을 삶고 싶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네 번째로 4.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나의 삶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이 기뻐한 이유는 그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기를 원하십니까? 여기에 비결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바치십시오.

 

사소한 문제로부터 자유 하십시오. 여러분의 자잘한 아픔과 고통에만 관심을 쏟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여러분의 관심을 쏟으십시오. 어떻게 여러분의 생이 다른 사람의 축복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의 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어주게 되면 여러분은 새로운 삶의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남을 더 생각할수록 더 큰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만 더 생각하면 더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방에 있습니다. 그는 감옥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4:1).

 

바울은 감방에서도 그들을 사모했습니다. 바울의 기쁨은 그가 자기 삶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돌본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께 인도해서 자라게 한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여러분이 나의 기쁨입니다, 여러분은 나의 사역의 자랑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독백일 것입니다. 그는 지금 삶과 죽음을 놓고 저울질합니다. 말하자면 고통스럽게, 불명예스럽게 살 것인가 아니면 깨끗이 자살을 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합니다.

 

바울 역시 동일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다만 정반대의 입장에서입니다. 햄릿은 고민합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두고 고심합니다.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러울지를 저울질합니다.

 

하지만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는 것이 더 나을지 아니면 여기 남아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나을지를 두고 고민합니다. 두 사람 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지만 바울의 경우는 어느 것이 더,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합니다.

 

이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1-24).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형제들을 섬기는 기회가 되기에 유익하고, 떠나는 것은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기에 더욱 사모하는 바입니다. 그 두 가지 선택을 두고 망설이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의 삶의 목적도 주를 위한 것이요 그가 죽는 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기에 바울은 주저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기쁨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삶의 목적과 죽음의 목적이 분명했기에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삶의 목적이 분명합니까? 죽음의 목적이 분명합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 때문에 죽는지가 분명해야 기쁨을 누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을 알고 여러분의 생을 하나님의 목적 성취를 위해 드렸다면 여러분은 사는 이유가 분명할 것이며 죽는 이유도 분명할 것입니다. 생사 간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면 여러분의 삶은 비참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드렸기에 삶과 죽음 사이에서도 놀라운 기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의 생애를 위해서 여러분의 삶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감격스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애를 양도하는 사람을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기를 즐겨하십니다.

 

다섯 번째로 5.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선한 것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는 길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습니다. 산 봉오리도 있고 골짜기도 있습니다.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습니다.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습니다. 햇빛 비치는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습니다. 비난받을 때도 있고 칭찬들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하셔야 합니다. 어디에 여러분의 초점을 맞출 것인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돌아다니며 온갖 나쁜 것들에 초점을 맞추든지 아니면 모든 좋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선택해야 할 사안입니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불평하든지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감사하든지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사항입니다. 식탁에 차려진 생선을 두고 뼈가 많다고 불평을 하든지 아니면 살을 골라 먹든지 여러분은 택일 할 수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최악의 날도 삶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최악의 순간에도 여러분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어느 순간에도 남겨두신 선하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것에 여러분의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바울이 설명하는 기쁨 만들기를 위한 충고는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을,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은 골똘히 생각하십시오(4:8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어디에서 이와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까? 휴대폰을 켜고 텔레비전을 열면 나옵니까? 텔레비전 화면에서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명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날마다 배달되는 신문일 리도 없습니다. 주간지나 월간잡지일 리도 없습니다. 오직 한 책, 성경에서 여러분은 그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묵상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더욱 적극적이고 더욱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진리이고 옳으며 순결하고 명예롭고 사랑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채워 가십시오.

 

큐티를 위한 책자 복 있는 사람을 사서 묵상하십시오. 예배드리고 주보 돌려주실 생각마시고 가져가서 활용하십시오. 시간을 내십시오. 묵상한 말씀에 생각을 맞추십시오. 그리하여 그 말씀이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저울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 부정적인 것을 담기도 하고 긍정적인 것을 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들을 찾아 헤맬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온 사방에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상품 선전하는 텔레비전 자주 보시면 그 물건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처럼 다가옵니다.

 

속지 마십시오.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은 신기루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시는 기쁨은 우리 삶에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생각들을 채워가야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인 것들로 압도당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침체에 빠지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만들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균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의 생각을 무엇에든지 좋은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권면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충고대로 스스로 실천했습니다. 감방에서 그는 불평할 모든 것을 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든 친구들은 그를 떠났습니다. 그는 이제 나이 많은 사람입니다. 외로운 감방에 갇혀 있습니다. 불공정하게 재판을 받고 곧 처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가 감방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그를 공격했습니다. 그는 억울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비난당하는 것처럼 손쉽게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는 것도 없습니다. 비난을 받으면 기쁨은 쉽게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은 꼭 같이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남을 비난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드렸습니다. 나는 무엇이든 선한 것만을 주목합니다. 나의 기쁨을 빼앗도록 어리석게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기쁨을 빼앗아 가도록 하지도 않겠습니다.’

 

왜 여러분은 그처럼 쉽게 기쁨을 빼앗깁니까? 그것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이 여러분을 화나게 하도록 내어 맡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집에는 얼마나 중요한 문제로 서로 싸웁니까?

 

나물을 무치면서 소금을 사용할 것인지 간장을 사용할 것인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싸웁니다. 치약을 어디에서부터 눌러서 사용할 것인지 때문에 아침부터 큰소리가 나옵니다. 아니면 화장지를 걸 때 풀어지는 부분을 밖으로 걸 것인지 아니면 안으로 걸 것인지로 다툽니다.

 

정말 우리는 민족중흥이나 인류발전의 역사적인 사명을 두고 싸우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문제로 열을 낼뿐입니다. 그것들로 인해서 기쁨을 상실합니다. 30분만 지나면 상관없는 사안을 가지고 왼 종일 기쁨을 빼앗깁니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로 삶의 기쁨을 포기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얼마나 자주 그런 사소한 일들로 기쁨을 놓치고 있습니까?

 

바울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선한 것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사안입니다. 매일 매일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기뻐할 것인가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인가를 두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 총기 있던 아내가 가방을 전철에 두고 내렸답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결정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가방을 두고 염려하는 아내를 뒤숭떤다고 야단을 칠 것인지, 아니면 가방을 잃어버린 것을 알려온 아내가 남아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내를 위로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 년이 지나도 꽃다발하나 사올 줄 모르는 남편께서 매달 빠짐없이 속도위반 스티커를 그것도 한 장도 아니고 . . . 그럴 때 아까운 돈을 날리는 것을 잔소릴 할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라도 살아있는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인지 결정하십시오.

 

기쁨은 여러분의 선택사항입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다만 어디다가 초점을 맞출 것입니까? 여러분도 동일한 선택을 하셔야 할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선한 것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끝으로 6.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기를 배워야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기쁨을 빼앗기질 않습니다. 빌립보서 411절에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4:11)

 

그는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만족한다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의 생애는 험한 생애였습니다. 고후 1123-27절에는 그의 간략한 전기를 대할 수 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차례 맞았으면 얼마나 많은 상처를 그 등에 남겼는지 헤아려 보십시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에서 그는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기쁨이란 결단입니다. 기뻐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낙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바른 선택을 하면 여러분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쁨은 우리의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가 아닙니다. ‘내가 결혼을 하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내가 취직을 하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내가 사업에 성공하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고 말하는 성경이 말하는 기쁨의 비결이 아닙니다.

 

기쁨이란 상황에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결단에 따라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도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쓴 약을 삼키듯이 살아야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기뻐할 만한 아무 것도 없어 보입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는 것 같은 때에 어떻게 여러분은 기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처형을 앞두고 고백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나를 위해 간구하고 있기 때문이요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시고 계시고 필요한 능력을 공급하시니 내가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웅장한 원형극장에서 전도 집회를 하기를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로마 제국에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로마에 왔지만 죄수로 왔습니다. 자유로운 전도자가 아니라 재판을 기다리는 죄수로 호송된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시위대의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24시간 네 명이 4 교대를 했으니까 2년간 상당히 많은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누가 참으로 죄수입니까? 죄수에게 마음대로 복음을 전하는 바울입니까? 바울 곁을 떠나지 못하는 군인들입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떠날 수 없습니다그 결과 시위대 안의 군인들과 네로의 집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결박당한 유익은 그 외에도 있습니다.

 

사슬에 묶인 결과로 그는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약 서신들 가운데는 옥중에서 쓴 것도 있습니다. 자유로운 전도 여행을 계속했더라면 그 바쁜 가운데 편지 쓸 시간은 없었을 수 있습니다. 사슬에 묶여 감옥에 있었기에 그가 쓴 상당한 서신을 우리는 지금 읽을 수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바울은 자기 나름대로 계획을 가졌습니다만 하나님은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더 나은 계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뜻대로 안됩니까? 그래서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렵니까? 불평하고 화를 내시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화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함을 알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더 좋은 일을 하시리라는 것을 믿고 기뻐하시렵니까?

 

바울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우리는 우리의 생을 위한 하나님이 가진 계획을 알지 못하므로 때로는 좌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일들이 우리의 기대를 벗어날 때도 우리가 할 일은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비록 우리 눈으로 일이 어떻게 되는지를 다 알지 못해도 말입니다.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한 최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기쁨이란 결코 특정 기질의 사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기쁨이란 만사를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과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흔들리지 않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기쁨 만들기 여섯 단계를 기억하십시오. 1) 과거를 후회하지 마십시오. 2) 미래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3) 자신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도록 드리십시오. 4)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자신을 드리십시오. 5) 나쁜 것 대신 좋은 것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6)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기를 배우십시오. 그러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지극한 기쁨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아멘.

 

<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쁨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후회와 죄책감과 슬픔과 억울함에 사로잡혀 있기도 합니다. 삶의 기쁨뿐 아니라 내일의 희망도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 끊은 사람도 있습니다. 살아있어도 엄청난 염려의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삶의 목적을 알지 못해서 기쁨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리게 하옵시고 그들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옵소서. 그들의 남은 삶이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의 계획을 이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함께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삶을 받아주옵소서.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남은 생애가 복된 생애가 되게 하옵소서.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게 하옵소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지금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삶에 영원한 기쁨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