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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707_정근두.mp4
    성경본문
    행2:1-13
    설교일
    2019-07-07

오순절 성령강림

2:1-13

구주대망 201977일 맥추감사주일 찬송 5*3, 64, 93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의 전통을 따라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절로 지킵니다. 사실 신학적인 의미를 살린다면 성령강림절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 오순절이요 오순절은 유대절기상 맥추감사절로 지켜오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 달을 열흘씩 나누어 부를 때 우리는 초순, 중순, 하순이라는 구분을 합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이라는 말은 오십일을 뜻하는 말이요, 정확히 말하면 보리, 혹은 밀의 추수가 시작되는 유월절이 지난 지 ‘50일째란 말입니다.

 

첫 보리 수확에 손을 댄 지 50, 혹은 칠 주간이 지나면 모든 수확은 끝나고 그것을 경축하는 의미로 절기로 지켰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성만찬을 갖습니다. 또한 오순절의 다른 이름은 칠칠절로도 사용됩니다. 이 날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왜냐면 그 날 교회는 삼천 명이라는 큰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이유로 오늘 맥추감사절을 위한 본문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택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1장에서 약속된 성령세례가 시행된 기록이요 성령강림이 성취된 기록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권능으로 구비된 사건입니다. 이제 초대교회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준비를 완료한 사건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1-13절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1-4절은 성령강림 사건 자체의 기술이라면 5-13절은 그 결과적 반응의 기록입니다. 앞 사건의 핵심 문장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뒤따르는 반응의 핵심 문장은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겼다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부분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1절은 성령 강림 사건 기술을 위한 배경입니다. 시간과 장소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와서 아직도 거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명령에 따라 그들은 기도하며,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동안 열흘이 지나갔습니다.

 

또 누가는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간략히 기술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지금 모여 있는 집이 1장에 모였던 그 다락방인지, 아니면 성전의 많은 방 또는 집회실들 가운데 하나였는지 의견이 아직도 엇갈립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성령이 오신 시간은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오순절 날이 밝아왔습니다. 성령께서는 오순절 날 이른 아침에 위로부터 내려오셨습니다.

 

다시 한 번 제가 읽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너무 간략해서 다 같이 모였다는 그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의견이 나뉩니다만 다시 편성된 열 두 사도라기보다는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쓴 120명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면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한국교회 대부분 성도들은 기도를 하고 있었을 것으로 대답을 합니다. 기도가 우리 한국교회의 대표적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기도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무슨 질문도 기도로 대답합니다. ,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강림하였다면 멋진 장면이 될 뻔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냥 모였더니라고만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하십시오. 누가는 네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 가운데서 기도를 가장 강조한 사람입니다. 만약 그 때 기도하고 있었다면 누가가 그것을 언급하지 아니했겠습니까?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오셨다! 얼마나 멋진 그림입니까?

 

그들은 성령오심을 위해서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몰두했습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기도의 응답으로 일어난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성령 강림 순간에 대한 누가의 기록은 다만 그들이 모여 있었다고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훨씬 열린 마음과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떤 순간도 닫혀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그분은 우리에게 오실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순간에도 오실 수 있습니다. 찬양하는 순간에도 오실 수 있습니다. 설교하는 순간에도 오실 수 있습니다.

 

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순간만 아닙니다. 길가다가 샘물 곁에서 세수를 하다가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숲속에 말을 타고 다니다가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밤에 잠자다가 깨어나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부는 콩나물을 다듬다가도 하나님의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주도적인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잘 모인 무리들처럼 생각됩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성도들이 잘 모입니다. 1장부터 자주 모였다는 기록을 우리는 대합니다. 성령은 한 곳에 모여 있던 성도들에게 오셨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함께 감사의 축제에 참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성령은 어느 때고 개개인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개인적 은혜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부흥이라고는 부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대에 필요한 것은 개인적 회복이 아닙니다.

 

우리 세대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교회적인 부흥입니다. 그래야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흥을 위해서 함께 기도합시다. 모일 때마다 성령주심을 사모합시다.

그러면 오순절 성령강림은 어떠한 양상으로 되었습니까? 누가의 기록을 읽어보면, 무엇보다도 성령은 예상하지 않는 순간에 갑작스럽게 임했습니다. , 제자들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하늘로부터 갑자기 임했습니다. 주의 재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않던 순간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이 그들 가운데 오셨음을 알았습니까? 누가의 기록을 읽어봅시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첫 성령 강림은 초자연적인 세 가지 표적들을 동반했습니다. 첫째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아있는 온 집을 강타했습니다(2). 둘째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여 각 사람에게 있었습니다(3). 셋째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4).

 

이 세 가지 모두가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알리는 표적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권능을 나타내는 임재의 표적으로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현상이 동반되었습니다.

 

바람, , 방언 말고 어떤 현상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나타내는 수단이었습니까? 어떤 것이 있는지 기억이 납니까! 때로는 빽빽한 연기나 구름, 무서운 지진 등도 하나님의 임재의 표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모여 앉아있는 곳은 집입니다. 그것을 감안하신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표적으로 자욱한 연기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불난 줄 알고 도망치면 어떻게 됩니까? 지진은 더욱 금물일 것입니다.

 

권능으로 성령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 사실을 알도록 세 가지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이 각 사람의 머리위에서 머물고, 각 사람의 입에는 다른 방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성령이 시작하신 새 시대와 성령이 행하실 새 일을 나타내는 표적으로 사용되기에 적절한 것들입니다!

 

달리 어떻게 성령 하나님이 오신 것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예기치 않게 도착한 것을 알리려면, 보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리치면 될 것이고, 고개를 돌리면 눈에 보이는 손짓을 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왔는지 말로 설명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신 것을 기록한 첫 상황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성령의 강림을 알리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적 표적이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의 큰일을 설명하는 다른 방언이 각각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들에게 성령의 뜻에 따라 주어졌습니다.

 

이제 성령은 오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는 1장에서부터 기다려온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것은 몇 날이 못 되어 . . . 받으리라”(1:5)성령세례를 받은 사건이요, 제자들로 하여금 증인이 되도록 권능을 위로부터 부어주시리라 (24:49)는 약속의 성취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성취된 것을 정작 기록한 행전 21절에서 4절에서는 성령세례라든지 권능수여라든지 하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일한 사건이 지니는 풍성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은 오셨고 기다리며 모여 있던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한 사건을, 누가는 집중적으로 5절부터 13절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2:5)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2: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2: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5절은 1절과 같이 배경 설명입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를 듣고 모여던 군중들의 배경을 미리 말해줍니다. 그들은 모두 경건한 유대인이었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머물러 있다는 것은 장단기 체류거나 영구 귀국 거주자 모두를 가리킵니다.

 

흩어져 사는 경건한 유대인의 소원이 만년에 거룩한 땅을 밟아보고 거기 살다가 거기 묻히는 것입니다. 해마다 유월절의 끝맺는 기도가 내년 유월절은 예루살렘에서를 비는 유대인으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꿈이었습니다.

 

유월절 아침 고요를 깨뜨리는 굉음의 출처를 알고자 모여든 그들의 눈앞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옷차림이나 억양을 보아 틀림없는 갈릴리 촌뜨기들입니다. 지금 그들이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여 하나님의 엄청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직접 그들로 부터 놀란 사연을 들어봅시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여기서 누가가 첫째로 강조하는 바는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엄청 놀랐다는 사실입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7), “다 놀라며 당황하여”(12) 입을 다물 수 없는 상황 앞에 서있는 당황한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 일이 어디 순간적으로 됩니까? 중학교에서 부터 6년 동안 배우고 대학가서 4년간 전공을 해도 외국인을 만나면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판국에 하루아침에 본토인을 당혹케 한 갈릴리 출신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각 사람의 난 곳 방언구사는 유창한 외국어 웅변 장을 방불케 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발음 교정이나 억양 수정이라면 대책이 없던 갈릴리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으니 당황정도가 아니라 소동이라는 표현도 실감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말하게 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선교사에게 어학 훈련을 면제시켜 복음전파를 손쉽게 하도록 하실 목적은 애초부터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겼다는 반복적인 표현의 의미가 있습니다. 방언은 이제 성령께서 오셨음을 밝히 증명할 수단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들이 예언도 하고 방언도 했던 것과 같습니다.

 

또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말하게 하신 의도는 듣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가장 쉬운 모국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이 어려워 못 알아들었다고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각 방언으로 들음으로 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누구든지 그리스도 사건을 받아드릴 여지를 또한 미리 마련하게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바벨의 저주가 극복되는 새로운 시대가 개막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알아듣는 말로 하나님의 복음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의 소식은 누구나 들어야 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아올 위대한 날이 다가옵니다. 장차 만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또한 누가는 거기 모인 군중이 가히 국제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천하 각국으로부터왔다는 표현뿐 아니라 민족들의 목록이 10절부터 나옵니다. 누가는 마음의 눈을 대략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면서 다섯 개의 집단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날 120명 주위에 모인 자들은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국제적인 군중들입니다.

 

비록 세계의 모든 민족이 문자적으로 거기 있지는 않았지만 모든 민족을 대표한 집단을 상징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왜 누가는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오심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세계화를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증거하기 위한 권능 부여 사건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그 목적이 선교적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그 방향이 땅 끝 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 시초부터 하늘 아래 모든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에게도 땅 끝까지 나아갈 의무가 있습니다. 만민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만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임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증거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사모합시다. 기도하며 기다립시다. 그가 홀연히 임하실 때까지 대망합시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 강림이 120명에게 필요했듯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시대의 땅 끝까지 나아가 증거 하기 위해 우리는 성령 능력을 충만이 받읍시다. 그리하여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아갑시다.

 

하지만 그 날 현장에서부터 혼란은 시작되었습니다. 그처럼 분명한 성령 부어주심의 현장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누가는 그들의 반응들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는 도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어찌된 일이냐고 판단을 유보하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새 술이 취하였다고 부정적인 평가와 조롱을 노골적으로 하는 무리도 거기는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엄청난 첫 성령 강림 사건을 두고도 그와 같이 반응했습니다. 그렇다면 동일한 성격의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날 때 일치된 바른 평가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현금 성령세례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는 그 날 이미 예견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성령의 체험을 무엇보다 사모합니까? 아니면 유보적인 태도로 관망합니까? 혹은 신학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의 빗나간 열심이라고 조롱합니까? 그것이 자신의 영적 계보를 보여줄 것입니다. 어느 줄에 여러분은 서있습니까?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 충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힘 있는 사역을 위해 다시 한 번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최선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은 최선의 삶을 살도록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최선의 열매를 거두게 하는 필요 불가결한 전제 조건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부르짖는 성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리하여 사역마다 열매 맺는 남은 반년이 되길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