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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714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13:1-4
    설교일
    2019-07-14

바다에서 나온 짐승(1)

요한계시록 13:1-4

구주대망 2019721일 주일 찬송 21, 210, 349

 

지난 5월 이웃초청잔치를 기점으로 계시록 설교를 중단하고, 주제설교나 절기설교를 했지만,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이 많지를 않아서 어디만큼 나갈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다시 계시록 말씀을 집중적으로 살피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서 계시록 전체의 흐름을 먼저 살펴야 하겠습니다. 요한 계시록하면 일곱이란 숫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그동안 일곱 교회,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이야기가 끝나고, 이제 일곱 이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1장에서 11장까지 제 1부는 교회와 세상과의 투쟁을 그렸다면, 12장부터 시작되는 제 2부는 그 싸움의 보다 깊은 배경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피는 본문이 속한 12장부터 14장까지는 요한 계시록에서 가장 실질적인 막간 사건입니다.

 

일곱 째 봉인이 떼어지자마자 즉시 일곱 나팔이 등장했습니다. 일곱 째 나팔이 불어짐으로 일곱 대접이 등장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깨뜨리고, 일곱 심오한 이적이 등장합니다. 12장부터 14장까지의 의미 깊은 일곱 이적을 흐르는 중심 사상은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왕국 사이의 투쟁입니다.

 

그 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환난과 박해는 계시록의 중심 주제의 하나일 뿐 아니라 신약 전체를 흐르는 사상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환난과 박해를 받습니다. 환난과 박해로 인해 고난을 겪는 것은 땅 위에 있는 교회의 일상적인 경험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 12장과 13장은 하나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장에 예고된 박해의 양상이 13장에서는 구체화됩니다. 땅으로 내어 쫒긴 용의 발악이 드러납니다. 땅으로 내어 쫒긴 사단은 최후결전을 벼르고 있습니다.

 

12장 마지막 절에 용이 . . .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서서 여자의 남은 자손과 더불어 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합니다.

 

최후결전 양상

요한 계시록 13장은 용의 최후결전 방안을 보여줍니다. 바다 모래 위에 선 용은 그 자신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하수인을 통해서 대리전을 하므로 최후결전에 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 13장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싸울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의 참모습을 알아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대적의 모습뿐 아니라 그의 방법을 파악해야 승리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궁극적으로는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용은 직접 나서지 않습니다. 자신이 택한 하수인을 내세워 대리전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하수인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13장에 등장하는 두 짐승의 정체를 바로 아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입니다. 용은 하나님의 백성-여자의 남은 자손-을 박해합니다. 그 박해의 하수인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13장은 공개하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

, 그러면 요한이 본 환상을 통해서 우리의 대적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짐승의 출현과 그 모습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기이한 형상의 짐승의 등장은 묵시문학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요한은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에게 친숙한 묵시문학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의 위대한 묵시문학의 요람인 다니엘서의 환상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다니엘서 7장의 환상은 계시록 13장의 환상의 요람입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다니엘서와 마찬가지로 요한 계시록은 세상나라의 성격을 짐승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나라의 본질을 짐승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상나라는 야수적인 힘에 의해서 다스려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나라의 본질을 짐승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후결전을 시도하는 용의 하수인은 모두 짐승인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지만 세상나라는 야수적인 힘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그것은 구약의 묵시문학의 말씀인 동시에 신약계시록이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견지하려고 할 때 우리가 맞닥뜨릴 대적이 짐승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후결전을 시도하는 용의 하수인은 모두 짐승인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다니엘서의 환상을 보면 연속으로 짐승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권세가 하늘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 같은 이에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괴롭히지만, 때가 이르면 짐승에게 주어졌던 권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전체 흐름 속에서 요한 계시록 13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첫 짐승은 바다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두 번째 등장하는 짐승이 땅에서 나오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흔히 바다를 인간 세상으로, 혹은 늘 안정을 얻지 못하는 인간 심성으로 비유합니다. “ . . .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57:27) 악인의 마음속이 계속 요동하는 것을 바다의 요동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경 다른 곳에 보면 세상의 흥망성쇠와 요동을 가리켜서 바다와 같은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무저갱의 상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의 원천으로 바다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최후승리로 말미암아 도래하게 될 하늘나라에는 바다가 다시 있지 않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모습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습을 상세히 살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 . .”

 

이 짐승의 모습은 하늘에 나타났던 큰 붉은 용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123절을 보십시오.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바다에서 등장하는 짐승은 하늘에 나타난 붉은 용과 흡사합니다.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인 면에서는 두 짐승의 모습이 서로 닮아 있습니다. 둘 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습니다. 한 통속인 것을 그 모습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둘 다 커다란 권세를 가진 것을 과시합니다. 사단은 자신을 전능자로 나타내려고 안달합니다. 자만심과 큰 능력으로 자신을 과시합니다. 결코 전능하지는 않지만 물론 그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을 쓴 자인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만 합니다.

 

2절은 그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기술합니다.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 . .” 다니엘서 7장에는 차례로 등장하는 열강의 모습을 하나같이 짐승으로 보여 줍니다.

 

다니엘서는 먼저 사자, 다음에는 곰, 셋째는 표범 같은 그런 짐승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 순서가 반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요한이 본 말세에 등장하는 세상나라는 다니엘이 보았던 나라와 모든 특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껏 역사 속에 나타났던 모든 짐승의 세상나라의 특성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마지막 나라의 모습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온갖 거짓과 속임수, 비인간적인 악은 다 함께 갖춘 세력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싸워야할 세상의 참모습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시대의 대적은 다니엘이 보았던 그 어떤 세력 못지않은 악한 짐승의 세력인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선출된 위정자나 임명받는 권력자가 모두 같은 통속입니다.

 

세상에 나타났던 그 어떤 세력보다도 악랄한 세력이 오늘 우리가 당면한 세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잔인 간교하기는 표범과 같고 그 완력은 곰과 같으며 그 사나움은 사자 같은 권력이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세상의 참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의 본산에서 부터 등장하는 동시에 세상에 등장한 모든 악의 총화, 그것을 이 짐승의 모습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마치 대리자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나라를 확장해 가듯이 용은 짐승을 통해서 자기 세력을 확보해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직접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서 그 나라를 확장하듯이, 용이 직접 표면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짐승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자기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로써 그리스도께서 활동하듯이 용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로써 짐승은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의도

그러면 이 짐승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온 세상을 꾀어서 경배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돌아갈 경배를 찬탈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그만 경배해야할 인류를 꾀어서 자신과 용을 경배하도록 추구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의 시도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용이 자기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짐승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은 머리 하나가 상해서 죽게 되었는데 그것이 다시 소생하는 것을 사람들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용에게 경배하며 그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성경을 제대로 읽고 있다면 여기 기술하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다니엘서를 페이지를 말하지 않으면 못 찾는 실력을 가지고는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긴지 도무지 따라 갈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구약성경을 여러분의 살 속에, 여러분의 핏속에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 말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어떤 교부는 이 사실을 가지고 창세기 315절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승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뱀이, 용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입니다. 짐승이 아직도 기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 이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보아야만 합니다. 죽게 된 것 같더니 죽지 아니하고 활동하는 그것을 통해서 온 세상이 여전히 그에게 경배와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여기에는 의도적인 패러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와 용이 택한 그리스도 사이에 의도적인 대비가 있습니다.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을 흉내 내어서 그 짐승의 머리 하나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었다가 다시 나은 짐승은 기실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흉내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듣고는 미쳤다고 조롱하며 거짓말이라고 몰아 부치던 세상이 짐승의 속임수 앞에서는 환호하고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경이 속에서 환호와 찬사를 돌립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여기에는 또 한 번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돌리던 찬양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전에 매일성경을 통해 출애굽기 묵상을 깊이 했다고 하면 그 한 구절 속에서 이 말씀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이 부른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하며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돌렸던 그 찬양을 흉내 내어서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짐승이 소생할 때 온 세상은 그를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졌던 구원의 찬송을 짐승을 향해서 돌리고 있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는 자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로채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를 일컬어 이 세상 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후 4:4) 요한복음은 그를 가리켜서 이 세상 임금(12:31)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환호하는 자기 백성 가운데 신으로, 임금으로 군림하는 자가 사단입니다.

 

그러나 그의 권세는 한시적입니다. 그의 권세는 정해져 있습니다. 이 짐승이 받은 권세는 용으로부터 연유하고 있습니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2)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4) 이 짐승이 가지고 있는 권세는 용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대적이 우리 앞에 나타날 때에 그 능력의 출처가 어딘지를 우리가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맞닥뜨려 싸워야할 세상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은 알아야만 합니다. 그 세상의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아야만 여러분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그리스도는 이 권세를 받기를 거부했지만 짐승은 이 권세를 받아서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찬양을 모방한 노래를 듣게 됩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사도 요한 당시에 로마가 성도들을 향해서 그런 요구를 해왔습니다. 가이사를 신으로 고백하기를 요청해왔습니다. 그 권력에 죽음으로 항거한 성도들의 신앙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세상은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 짐승을 이기리요?”하고 노래하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창세 이후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께 찬양과 존귀를 돌려보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해서 존귀와 찬송을 돌려보내도록 그 신앙을 끝까지 붙들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를 오직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께만 돌리는 성도들이 되길 빕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