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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721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13:5~10
    설교일
    2019-07-21

바다에서 나온 짐승(2)

요한계시록 13:5~10

구주대망 2019721일 주일 찬송 23, 215, 357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일 말씀 드린 대로 요한 계시록 12장과 13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2장에 예고된 핍박이 13장에서 실제로 드러납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어 쫒긴 용의 발악이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요한 계시록 13장은 용의 최후결전 방안을 보여줍니다. 보십시오. 바다 모래위에 서있는 용은 그 자신이 싸움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하수인을 통해서 대리전을 하므로 최후결전에 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3장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싸울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의 참모습을 알아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대적의 모습뿐 아니라 그의 방법을 파악해야 승리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궁극적으로는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용으로 표현된 사단은 직접 나서서 우리와 싸우지 않습니다. 자신이 택한 하수인 짐승을 내세워 대리전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사단은 짐승을 통해서 대리전을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사람을 통해서, 짐승은 그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을 통해서 싸웁니다.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위해서 짐승처럼 사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예수님처럼 사는 성도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13장에 등장하는 두 짐승의 정체를 바로 아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입니다. 다니엘서와 마찬가지로 요한 계시록은 세상나라의 성격을 짐승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나라의 본질을, 성경은, 짐승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후결전을 시도하는 용의 하수인은 모두 짐승인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지만 세상나라는 야수적인 힘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짐승의 졸개들은, 그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아, 짐승처럼 생각하고 짐승처럼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 첫 번째 하수인의 정체를 지난번에 살폈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짐승의 훼방

그리고 오늘 본문 5, 6절에서는 그 짐승의 권세가 가장 악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여기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라는 말은 하나님을 직접 모독한다기보다는 자기를 신격화함으로써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모독하는 경우를 여기에서는 의미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신이라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신이라고 추앙하는 것은 여러분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는 결과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 세상의 영광과 이 세상의 것을 환호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의 절대 권력을 노래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부인하는 결과입니다.

 

당대의 로마뿐만 아니라 세상은 항상 세상 나라의 절대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자기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 모든 종교로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활동하게 만듭니다.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인정을 받도록 요구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는 종무(宗務)을 두고 종교 행정 업무를 총괄하게 합니다. 종교 교류 및 협력을 통해 종교 간 화합에 기여한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종교 활동도 국가의 허용 안에서 활동하도록 통제하려 듭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종교는 모두 이 권력 앞에 쉽게 넘어가고 충성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에 소망을 두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은연중에 혹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세상체제에 모든 소망을 걸고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내년 총선을 통해 좋은 지도자들이 뽑기 위해서, 각자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 아니면 정당에 투표를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거기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습니다. 세상 정치는 인간기만의 정치입니다. 선거란 사람을 지배하는 합법성을 도출하는 방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짐승이 활동하는 기간을 마흔 두 달로 한정해 두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박해를 받는 전 기간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동시에 그 핍박이 극심해지는 마지막 대 환란의 시기를 마흔 두 달은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짐승의 머리에 새겨져 있는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주의를 해야 하겠습니다. 입을 벌려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하는 짐승의 방해공작에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에 적대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의 이론과 이념을 조심해야만 합니다.

 

짐승의 권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싸움의 마지막 국면을 살펴보십시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이 싸움은 궁극적으로 온 세상 사람들을 둘로 갈라놓습니다. 짐승을 경배하는 무리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을 경배하는 무리로 갈라놓습니다. 용을 대신한 짐승의 권세는 대단합니다. 성도들과 싸워서 한 때는 이길 만큼 기세가 대단합니다.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세계적인 권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어느 한 시점의 모습이 아니라 박해를 받는, 용의 박해를 받는, 용의 하수인의 박해를 받는 하나님의 교회, 그 모든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3장은 역사속의 한 단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그 마지막 시대에 당할 모든 박해를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해가 극심해짐으로써 완연하게 세상 사람을 둘로 갈라놓을 것입니다.

 

용을 대신한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을 증오할 것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죽이는 일도 사양치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성도들과 싸워서 이길 권세를 가졌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자들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그는 신앙의 정조를 유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짐승에 의해서 참패를 당하는 것 같습니다. 보기에는 짐승이 승리를 거두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성도의 승리요, 짐승의 패배입니다.

 

항상 싸움은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만 합니다. 우리의 대장 그리스도께서 그런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것은 일견 보기에 그의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였습니다.

 

보십시오. 때로 하나님의 백성은 박해를 받습니다. 굶주림을 겪습니다. 환란을 받습니다. 칼에 죽임을 당합니다. 패배를 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실은 짐승을 이기는, 용을 이기는 승리의 길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단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완전 참패했듯이 우리의 육체의 생명을 앗아감으로 그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은 사단의 영원한 패배입니다.

 

그는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지마는 우리의 신앙을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용이 승리한 듯 보이지만 사단의 실패이듯이, 짐승이 이긴 듯 보이지만 짐승의 결정적 패배입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의 승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창세전에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합니다. 누가 이단에 넘어갑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넘어가지 않습니까!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할 때, 내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할 때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짐승을 따르는 자와 어린 양을 따르는 자는 창세전부터 구별되어져 있습니다.

 

성도의 인내와 믿음

악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 성도를 위한 권면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악이 기승을 부릴 때에 신앙과 인내가 요구됩니다. 사로잡고 칼로 죽이는 핍박이 최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당연이 자기도 칼에 죽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정하신 판단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끝까지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환란의 날에 요구됩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두려워말고 움츠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원수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또 우리의 생명을 칼로 빼앗을 수 있지마는 우리의 영혼은 해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그 사실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모욕과 핍박이 있다고 하면 순교가 여러분을 기다린다 할지라도 기뻐 뛰면서 우리는 승리자의 반열에 서 있음을 확신해야만 합니다.

 

포로 될 수 있습니다. 굶주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질병과 칼에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여러분의 영혼을 해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처럼 보일지라도, 여기 보니까 권세를 받으니라’, ‘권세를 받아라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행사하는 권세는 주어진 권세입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신 권세입니다. 러므로 이 모든 환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일 뿐입니다.

 

곧 다가올 핍박의 날을 침착히 받아들이도록 권면하는 말로써 여기 환상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어떻게 보면 성도들은 다만 수동적인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악의 패배를 가져올 승리자의 지혜가 거기 있습니다. 때로는 사로잡힐 것입니다. 때로는 칼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1:28)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환란 속에서도 어엿이 서있는 그 성도의 모습이야말로 이미 승리한 성도가 나타내는 구원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박해하는 자를 인해 두려워하지 않는 이 일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그것은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이 이미 실패했다는 것을, 이미 패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승리한 구원자의 대열에 이미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인이 됩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무엇입니까? 머리가 일곱이나 있고 뿔이 열이나 있으니까 어떤 사람은 그것을 통합해서 나타나게 될 유럽 공동체(E.C.) 열 제국이라고들 말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그런 역사적인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갖다 붙이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유럽 공동체가 10개국이 될 때에는 말이 먹혀들었습니다. 하지만 10개국을 넘어선 지금,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것입니까? 그렇게 성경을 푸는 것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누굽니까? 혹은 어떤 세력입니까? 이미 등장한, 지금 나타난,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보고 네로로 부터 히틀러까지 모든 악한 사람을 다 여기에 대입해왔습니다. 그리고 장차 나타날 그 누구, X 라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흐름은 현존하는 이단의 위협으로서 적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서신의 전통에서 볼 때에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이미 요한의 시대에 도래한 적그리스도입니다.

 

동시에 마지막 때에 다시 한 번 분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세력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특정세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하나님을 핍박하는 모든 적대세력은 다 여기서 나타나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로마를 통해서, 그 네로를 통해서, 그 도미티안황제를 통해서 기승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모습에 불과한 것이지 그 이후에도 많은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역사 속에는 출현하고 있습니다.

 

바닷가에 서서 바라보십시오. 하나의 파도가 밀어닥치고 나면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 파도가 다시 밀려오는 것을 여러분은 보실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모습은 계속해서 차례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로마와 그 황제를 통해서 일찍이 그 정체를 나타낸 동시에 어떤 절대 권력과 그 군주를 통해서도 그 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런 자를 일컬어서 여기 짐승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을 압박하고 핍박하는 악의 세력 모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그 적대감이 한 번 더 특정인물을 통해서 극명하게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관건은 성도의 인내와 믿음입니다. 악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그 극한 상황 속에 여러분과 제가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본문은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계시록은 역사적인 퍼즐을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신앙적인 위로와 확신을 제공하기 위해서 쓰인 책입니다. 마흔 두 달 극심한 훼방과 핍박 속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위해서 요한은 이 환상을 보고 우리에게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이 짐승이 누구냐 무엇을 가리키느냐하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실체를 여러분이 지금 바로 보고 있다고 하면 그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채야만 할 것입니다.

 

짐승의 실체를 여러분이 파악해야만 합니다. 짐승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은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을 경배하게 하는 세력들 그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창세 이후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께 찬양과 존귀를 돌려보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해서 존귀와 찬송을 돌려보내도록 그 신앙을 끝까지 붙들도록 하기 위해서 이 예언의 말씀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찬양과 기도를 오직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께만 돌리는 복된 앞날이 되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