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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804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 계시록 13:16-18
    설교일
    2019-08-04

짐승의 표

요한 계시록 13:16-18

구주대망 201984일 주일 찬송 26, 114, 348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에서 내어 쫓긴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과 더불어 싸우는 요한의 환상을 우리는 살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싸우는 용의 최후 결전 방안은 대리전임을 거듭 말씀드렸습니다. 13장의 환상을 통해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용을 대신해서 성도들을 괴롭힙니다.

 

특히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땅에 거하는 사람들로 섬기게 합니다.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행한 이적과 만든 우상에 대해서 지난 주일에 살폈습니다. 짐승의 우상에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고 사람들로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게 합니다.

 

땅에 거하는 모든 자에게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짐승 숭배의 즉각적인 영향을 기술합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6,17)

 

사탄은 다시 한 번 짐승을 통해 하나님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계시록 73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이마에 인침을 받습니다. 큰 환난을 앞두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여 쏟아 붇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증거와 그들의 충성에 대한 확인의 인을 칩니다.

 

오늘 본문은 짐승의 표를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짐승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흉내를 내어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에게 표를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특정 계층만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습니다.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이 일에는 함께 합니다. 가진 자나 갖지 못한 자나 짐승을 숭배합니다. 사업주나 고용인이나 다 함께 그 우상을 경배합니다.

 

그를 경배하는 모든 자의 이마와 오른 손에 표시를 하므로 감출 수가 없습니다. 표를 받은 자는 눈에 띄게 마련입니다. 누구에게 속했는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요한은 다시 한 번 모든 인류를 두 그룹으로 대별합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무리들과 짐승의 표를 받은 무리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이마에 이상한 표식을 받아야 구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잘 지켜보십시오. 사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가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은 자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짐승을 섬기는 자들로 대별됩니다.

 

짐승의 표,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러면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이들은 역사의 한 특정 기간에 받게 될 외형적이고 가견적인 표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즈음 와서 부각되는 것이 바코드입니다. 컴퓨터 처리를 위해서 현재 모든 상품들에게 붙여지고 있는 바코드가 레이저 문신으로 사람에게 붙여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마나 손, 혹은 엉덩이에 새겨질 바코드 문신이 짐승의 표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신용카드나 컴퓨터까지 사용해서 안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특히 브루셀에 있다는 짐승이란 이름의 대형 컴퓨터도 경계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짐승의 표가 장차 받게 되리라고 하는 바코드 문신을 의미합니까? 기발한 상상이기도 하나, 근거 없는 추측입니다. 어떤 문명의 산물이라도 누구의 손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문명의 산물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데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바코드나 컴퓨터라고 예외가 될 리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짐승의 표를 외형적이고 가견적인 표시로 보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이마에 칠 인은 외형적이고 가견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에 대응한 짐승의 표를 외형적이고 가견적인 것으로 보는데도 무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주장의 결정적 잘못은 환상속의 상징과 상징이 의미하는 바를 혼동 하는데 있습니다.

 

짐승은 특정 시기에만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흔 두 달 일하는 권세를 받습니다. 이 기간은 바로 거룩한 성이 짓밟히는 기간과 일치하고 두 증인이 예언하는 날짜와 동일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초림에서 재림까지 전 기간이 짐승의 활동시기입니다.

 

짐승으로 상징된 세상 권력은 항상 교회를 핍박하며 성도들을 파멸시키려고 합니다. 어느 곳이나 어느 때든지 짐승이 나타나는 곳에는 짐승의 표가 발견됩니다. 짐승이 활동하는 곳에는 언제나 짐승의 표가 주어집니다. 이들은 항상 동행하며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짐승의 표, 무엇을 가리키는가?

요한의 환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짐승의 표를 주는 환상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짐승의 표를 땅에 거하는 모든 자에게 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이 말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은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그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하늘에 거하는 자와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강제로 짐승의 표를 받게 될까하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분명히 땅에 거하는 자들, 짐승을 경배하고 섬기는 자들이 표를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이라고 계시록 149절은 말합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짐승을 경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짐승에게 속하고 짐승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소유이며 누구를 섬기고 살아갑니까?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는 그 이마에 이미 하나님의 인이 쳐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섬기며 누구를 위해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을 섬기며 삽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들은 짐승을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13:8) 다시 한 번 생명책에 그 이름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인류를 대별합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삶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짐승의 표 대신 하나님의 인이 그 이마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속이 밝혀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소속과 충성을 밝히며 살고 있습니다. 사는 것을 보면 누가 주인인지 누구를 위해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른 손이나 이마에 주어진 표시를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 속하여 살아가는지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 속하며 누구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제 누구에게 속하고 누구를 위해 살고 싶습니까?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처럼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인을 받고 예수님처럼 살고 싶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은 선택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 . .

왜 하필 짐승의 표가 오른 손이나 이마에 주어집니까? 이마는 한 사람의 정신, 생각,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오른 손은 행위나 생업을 가리킵니다. 오른 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정신으로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생각이 적그리스도 적이면, 생활은 자연 적그리스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생각이나 그 삶에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삶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짐승의 표 받은 자와 하나님의 인 맞은 자는 서로 같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앙모하며 사는 자입니다. 자연인들은 그 생각과 생활이 하나님을 거스릅니다.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거스릅니다.

 

이런 적대 행위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됩니다. 사상이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훼방합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무리들은 그 때 더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매매를 못하게 하니 . . .

일찍 서머나 교회가 겪은 시련입니다. 또한 빌라델비아 교회가 겪은 어려움입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적은 힘만 소유했습니다. 대 환난을 통과한 무리들에게 주어진 위로의 말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런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7:16) 왜 이런 말이 위로가 됩니까? 그들이 겪은 환난이 굶주림과 목마름과 열기에 상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그 뜨거운 열기 속에 방황하던 그들에게 주어진 위로입니다.

 

같은 세상을 살아도 큰 음녀에게 속한 자들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사치하고 치부하고 실력을 행사합니다. 갑질을 하는 것은 그들의 일상사입니다.

 

본문 17장에 나오는 경제적인 제제 조치는 그 당시 성도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7) 세상은 그 정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압력을 가할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한 통속이 되지 않으면 이익 분배에서 제외시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경제적인 손실을 감수한다는 것은 오늘 생겨난 현상이 아닙니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종말을 앞두고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사업의 성공과 신앙의 순결을 두고 선택해야 하는 일은 지금도 드물지 않게 있는 일입니다.

 

이마에 바코드 문신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은 마음에 심긴 도를 따라 살기에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앞서 세상을 살았던 성도들의 고난의 큰 싸움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내린 결단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히브리 서신을 받은 성도들의 상황을 들어 보십시오.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10:33-36)

 

신앙인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 하늘의 큰 상을 바라기에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마도 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세상처럼 생각하고 세상처럼 처신할 수 없습니다.

 

짐승의 수 666에 대한 오해

그러면 요한의 환상, 본문 마지막 메시지를 살펴봅시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17~18)

 

여기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는 짐승의 수 666이 등장합니다. 짐승의 수 666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논란이 많습니다. 이 숫자는 네로 황제, 칼리큘라 황제, 도미티안 황제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 등 고대 문자는 숫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라비아 숫자가 통용되기 전에 알파벳이 특정한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의 황제들의 이름의 알파벳을 전부 합산해서 666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런 주장은 고대 로마 황제에게 끝나지 않습니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최근 인물로는 키신저까지 합산하면 666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666이라는 숫자로 특정인을 알아내려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숫자는 특별한 인물이나 나라를 알아내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문맥에 따라 살펴보면 666은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를 의미한다고 본문자체가 밝힙니다.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헤아려 보라, 읽어 보라는 의미를 풀어보라고 읽어 들어갑니다. 짐승의 수로 특정인 찾아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666이란 사람의 수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 본문의 주장입니다.

 

짐승의 수 666에 대한 의미

그러면 사람의 수 666이 가리키는 바는 무엇입니까? 영적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 요한은 계시록에서 자주 때와 숫자를 동원합니다. 3년 반이라는 기간을 제시함으로 연대 계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시합니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지상사역과 오순절 성령강림까지 - 그의 공사역 전 기간과 일치합니다. 동일한 기간 삼년 반으로 전 역사를 통해 존속할 교회 시대를 상징합니다.

 

또 다른 경우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을 계수해서 144,000이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의 실제 숫자는 하나님만 아시는 비밀입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딤후 2:19)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요한은 144,000을 계수한 바로 다음 환상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계시록을 읽는 독자들의 편리를 위해 144,000이라는 숫자를 제공합니다.

 

또 하나의 경우를 보십시오. 하늘 예루살렘 그 성곽의 벽을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이 수치는 상징적이지 실제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토목기사가 줄자로서 잴 수 있는 숫자가 아닙니다. 하늘 성곽의 위용을 상징하도록 돕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666도 같은 경우로 이해해야 합니다. 거짓 종교는 땅에서부터 올라온 짐승과 666이라는 숫자에 의해서 상징되고 있습니다. 특정 인물을 가리키지 않고 짐승과 거짓 종교를 가리킵니다. 본문은 666의 의미를 알아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666을 세어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즉각 그 숫자는 사람의 수라고 밝힙니다.

 

그러면 왜 하필 짐승의 수, 사람의 수를 666으로 표시했을까요? 요한 계시록은 7로써 완전한 수를 상징합니다. 완전수 7은 계시록에서 여러 번 나옵니다. 일곱 교회, 일곱 천사, 일곱 영,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등 풍성히 나옵니다.

 

예컨대 일곱 교회라고 할 때 소아시아의 교회가 일곱 개 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장중에 잡고 계신 교회가 그 일곱 교회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모두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시록은 7로서 완전을 상징합니다. 이 완전수 7에서 하나가 모자란 숫자가 6입니다. 67과 아무리 가까워도 완전치 못하기에 불완전과 미완성을 나타냅니다. 777은 최대의 완전수인 반면 666은 완전에 항상 못 미치는 항구적인 실패와 좌절과 불완전의 수입니다.

 

최후 승리를 어린 양께!

그래서 이 숫자를 사람의 수라고 밝힙니다.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18)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모든 시도는 항구적인 실패로 운명 지워져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인 세력이든지, 무신론이나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 어떤 사상적 시도든지 그 어떤 것도 결국 승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어떤 시도든지 모조리 무너질 것입니다. 차례로 등장하는 짐승들과 그들의 수작을 보면 온 세상을 삼킬 듯이 보입니다. 마치 하늘 백성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오듯이 짐승 역시 그 권세로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 온갖 큰 이적을 행할 것입니다. 심지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고 우상이 말을 하게 합니다. 모든 능력과 조직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통제해 오지만 그 모든 시도는 영구한 실패로 귀결될 것입니다.

 

처음 무너진 바벨탑에서부터 마지막 던져질 큰 성 바벨론까지 인간의 모든 운명은 파멸로 귀결될 것입니다. 환상을 통해서 요한이 말해 주고 싶은 것은 기실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원수의 기세가 땅에 가득하고 하늘에 충전해도 기억하십시오. 그들의 숫자는 666임을! 들은 반드시 실패로, 완전 실패로 끝남을 기억하십시오! 사탄의 모든 시도는, 사람의 모든 시도와 함께 실패할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이 환상에 이어 나오는 시온 산의 어린양과 십사만사천은 우리의 해석이 정당함을 보여줄 것입니다.

 

요한은 계속 권면합니다. 경제적이 제제뿐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승리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악이 기승을 부리지만 그 짐승의 수가 666임을 알고 위로를 받으십시오. 그 모든 시도는 실패에 실패, 거듭 실패로 끝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계시록 19, 20장에 가면 사단과 짐승, 거짓 선지자의 패망이 나옵니다. 악의 삼인조는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모든 권세와 주권과 영광은 오직 어린 양과 그의 백성들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