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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811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 계시록 14:1-5
    설교일
    2019-08-11

어린 양과 십사만 사천

요한 계시록 14:1-5

구주대망 2019811일 찬송 27, 145, 34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오늘 본문의 위치를 살펴봅시다. 계시록 14장은 크게 보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사이의 막간 장면입니다. 일곱째 나팔소리와 함께 종말의 도래가 선포됩니다.

 

그러나 요한은 종말의 실제적 도래를 서술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세력 간의 길고 긴 투쟁의 마지막 국면을 기술합니다. 12장에는 이 투쟁이 사람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집니다. 13장에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출현을 통해 역사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제 진노의 대접을 쏟아 붓고 종말의 도래 직전에 역사의 완성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사악하고 세속적인 짐승 문화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떨어집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영원한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살필 14장은 여러 가지 짤막한 환상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오늘 본문 14장은 12장부터 시작한 막간 장면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계시록 12에는 하늘의 큰 이적 - 큰 전쟁으로 시작합니다. 큰 붉은 용을 땅으로 내쫒는 어린 양의 승리를 기술합니다. 그 결과 내어쫒긴 용이 어린 양을 따르는 여자의 남은 자손을 핍박합니다.

 

계시록 13은 그 핍박이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핍박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새끼 양처럼 생겼으나 용처럼 말하는 자-의 동맹으로 이뤄집니다. 짐승은 경배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는 극한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이제 14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됩니다. 앞서 두렵고 암울한 12, 13장들과는 대조적으로 신선한, 밝은 분위기로 접어듭니다. 계시록 14장은 어린 양을 따르던 이들이 얻는 승리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짐승을 따르던 이들이 응분의 심판을 받는 장면이 기술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시록 14장은 절박한 두 가지 의문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기 거부한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의 답을 초반부, 첫 문단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과 그를 따르던 졸개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답을 후반부 6절 이하는 제공합니다.

 

오늘 본문 141절에서 5절의 주제는 모든 원수들은 이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분께 속한 모든 성도들의 안전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 그러면 오늘 본문은 어떻게 이 주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까?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1) 먼저 요한은 그가 본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성도들의 안전을 강조합니다.

 

환상 중에서 요한의 시선을 주목케 하신 분은 어린 양입니다.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12장 마지막 절에 바다 모래위에 서 있는 용의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요동치 않고 영원히 있는 시온 산에 선 어린 양입니다. 끊임없는 파도 앞에, 모래위에 서 있는 용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승리자로서 어린 양을 기술합니다. 마치 시편 21-3절에서 열방이 분노하고 민족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모습이라면, 오늘 본문은 시편 24-6절 말씀의 성취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의와 선동을 비웃으며 당신의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운 것과 비길 수 있습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본문의 환상은 주께서 환호하는 그 백성에 둘러 싸여 시온 산에 서 계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이들은 앞서 계시록 7장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거기서는 큰 환난을 앞두고 보여준 장면이라면, 여기는 큰 환난을 통과한 후 하늘의 축복과 보상을 받는 장면입니다.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있는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백성의 궁극적인 운명을 보여줍니다.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용은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께 충성하지 못하도록 핍박했습니다.

 

두 짐승을 통해서 최선을 다하여 악랄한 핍박을 했지만 단 한 명도 누락되지 않고 십사만 사천이 어린 양과 함께 승리의 시온 산에, 안전의 시온 산에 서있습니다.

 

앞 본문에는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기 거부하는 자를 다 죽이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는 매매조차 못하게 하던 극한 상황을 보여준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요한을 통해 성령께서는 끝까지 신실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의 보상을 보여줍니다.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성도들의 삶은 더 이상 짐승의 손아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짐승의 핍박아래 시달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 승리자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있습니다.

 

선지자 미가의 예언이 성취된 장면입니다. 끝 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미가 4:1) 미가 뿐 아니라 요엘, 스가랴, 이사야도 동일한 예언을 합니다. 모두 시온의 영광이 밝아오는 날을 예언합니다. 시편 역시 2편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 동일한 진리를 증거 합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48:1-2)

 

요한이 환상 중에 본 시온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산이 아니라 하늘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시온 산은 실제로 예루살렘에 있는 산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대한 상징적인 지명입니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 예루살렘”(12:22)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밝힌 대로 입니다.

 

끝까지 신실한 주의 백성들이 마지막 도달한 장소로서 시온 산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궁극적인 승리와 최후의 안전을 웅변적으로 증거 합니다. 상징적 지명 시온 산은 구속과 승리의 장소입니다. 성도들의 최후승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상징적 지명 시온 산은 종말론적 승리를 또한 보여줍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새 예루살렘이 가리키는 바와 동일한 의미를 가집니다. 모든 것이 완성되는 날,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 예루살렘으로 도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시록은 하늘 예루살렘이 내려와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이고 말하고 있습니다.

 

13장 마지막 부분에서 순교의 고난을 겪은 그들은 지금 14장 초두에서 시온 산에서 구속과 승리를 누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마, 여러분의 의식 속에 어린 양 예수의 이름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 아버지의 이름이 있습니까? 생각과 말을 통해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시온 산의 구원과 승리는 그 날 여러분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또 다른 환상을 통해서 모든 원수를 이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 분께 속한 모든 성도의 승리를 말해줍니다. 처음 요한은 환상 중에 그가 본 것으로 그리스도와 그 백성의 승리를 강조합니다. 이제 요한은 환상 중에 그가 들은 것으로 동일한 주제를 밝히고 있습니다.

 

환상 중에 그가 들은 하늘에서 나는 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장엄한 찬양소리였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2)

 

새 노래로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의 소리가 많은 물소리도 같고 우렁차고 큰 뇌성소리와도 같습니다. 떨어지는 물이 지면에 닿아 부서지고 흩어지면서 우레처럼 소리를 내면서 그 잔향이 점점 커져 멀리 퍼지는 거대한 폭포를 생각해 보십시오.

 

웅장하고 위엄 있는 소리이면서 동시에 거문고 타는 소리처럼 부드럽고 향기롭습니다. 요한은 그가 들은 환상 중에 찬양소리에 압도당해 삼중비유를 통해 그 감동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찬양소리에 여러분과 저의 목소리가 합해질 것입니다.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모두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부르는 감격과 감사의 찬양을 올릴 것입니다. 어린 양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체험을 노래한 노래는 성도들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새 노래는 새로운 체험을 가진 자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구속의 감격이 있습니까?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양하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까? 찬송은 구속함을 받은 백성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찬양은 구속받은 백성이 누리는 특권이요 숭고한 의무입니다.

 

참된 찬송은 구원의 경험 없이는 아무도 부를 수 없습니다. 성가경연대회는 절기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감격을 확인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장차 부를 새 노래를 연습하는 마당이어야 합니다.

 

지금 땅에서건 그 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건 이 새 노래는 오직 새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찬양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진 복된 특권입니다.

 

맑은 목소리 같고 큰 뇌성도 같은 동시에 거문고 타는 자의 그 거문고 소리 같은 장엄하고도 감미로운 찬양에 우리 목소리를 합할 그 날까지 예수님을 찬양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진 복된 특권입니다.

 

, 그러면 새 노래를 노래하는 특권을 누리는 무리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 봅시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4, 5)

 

시온 산에 선 어린 양과 함께 한 승리자들을 요한은 몇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이 무리들은 1)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고 기술합니다. 요한은 계속 상징적인 용어로 진리를 나타내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음행으로 인하여(8) 무너진 바벨론과 대조를 이루는 일단의 무리들입니다. 영광 중에 시온 산에 선 어린 양께 신실한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던 것과 맥이 통하는 표현입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계시록에서 요한은 교회를 신부, 어린 양의 아내로 묘사합니다. 결혼을 앞둔 처녀로서 교회가 상징되기에 마땅히 순결해야 합니다.

 

요한은 여기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짐승숭배를 음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새 노래를 노래하는 십사만 사천은 모두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있는 자들입니다. 짐승의 표를 그 이마나 오른 손에 받은 적이 없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요한의 이런 상징적인 표현은 구약배경과 일치하는 기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를 구약은 음행으로 간주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승리하신 어린 양께 새 노래로 노래하는 이들은 모두 짐승숭배의 음행에 동참한 적이 없고 자신을 지켜 하나님만 섬긴 자들입니다.

 

둘째로, 요한은 이 무리들을 2)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그 신분을 밝힙니다. 첫째 묘사가 결혼을 앞둔 처녀 총각에 비유했다면 여기서는 어린 양을 따르는 군대로 묘사됩니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 .”

 

앞의 묘사보다 적극적인 묘사입니다. 어린 양께 대한 충성을 설명합니다. 갈릴리에서 유대로,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나아가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양 예수의 지휘를 따라서 움직이는 무리들입니다. 어디로 인도하든지 때로는 순교의 자리에까지 인도를 따라가는 무리들입니다.

 

다른 사람 어찌든지 나 주님의 용사되리 나는 주의 군사되어 충성을 맹세하여

내가 승리하기까지 주 은혜로 싸우리 주의 용사된 나에게 주의 일 맡기소서

 

어린 양되신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대속 죽음을 당하셨듯이,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갑니다. 어린 양의 피로 값 주고 산 자들이기에 그들은 어린 양을 따라갑니다.

 

요한은 이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제 3의 묘사를 합니다.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음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이 무리들을 요한은 3) 처음 익음 열매로 묘사합니다.

 

구약시대에 처음 익은 열매만 제물로 바쳐졌던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여기서는 계속된 추수를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니고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다는 의미에서 첫 열매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일단의 무리 전부를 가리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야고보 선생은 신자들을 가리켜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했다고 말합니다.

 

예레미아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에서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 . .” 물론 모든 인류가 주께 속하였지만 실제로 주님께 자신을 드린 무리들은 구속함을 입은 백성들뿐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라는 표현을 통해서 헌상과 구별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자들입니다. 뒷부분에 나오는 추수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첫 열매는 주님을 위해 바쳐지며(14-16) 나머지는 사단의 것입니다(17-20).

 

다시 한 번 첫 인류를 두 그룹으로 대별합니다. 첫 열매와 나머지 수확으로 구별됩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통해서 구속받은 모든 백성을 가리킵니다. 영광 중에 새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또한 거짓이 그 입에 없는 흠 없는 자들로 묘사됩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5)

 

그들의 흠 없는 특징을 위해 그 입에 거짓이 없다고 합니다. 사단의 거짓을 용납지 않는 무리들입니다. 적그리스도의 거짓을 끝까지 수용하지 않는 무리들입니다. 흠 없는 어린 양 예수의 뒤를 따라 끝까지 신앙을 지킨 무리들입니다.

 

오늘 우리 본문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한 스바냐의 예언이 성취된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 . .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3:13, 14)

 

스바냐는 그 이유를 이같이 밝힙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를 사모해서 나온 성도 여러분! 시온 산에서 천하 만민 중에서 택한 십사만 사천, 그 입에 거짓이 없는 무리들의 감격의 찬송이 울려 퍼지는 그 날을 사모하며 신실하게 살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