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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825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14:8
    설교일
    2019-08-25

최후파멸

14:8

구주대망 2019825일 찬송 31, 151, 49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미래학 강좌를 개설하기도 합니다. 미래의 충격이라는 개인 저서뿐만 아니라 인류문명 2000년대를 내다본 로마 클럽의 보고서가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범위를 좁게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 통일, 평화 경제에 대해 기대를 걸기도 합니다, 더 좋은 살기 좋은 내일에 대해서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쉽게 그들의 필연적인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오늘 요한은 이런 우리들을 향해서 필연적인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래의 마지막 사건들을 환상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세 천사를 통해서 최후의 사건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두 번째 천사를 통해서 큰 성 바벨론의 파멸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처음 천사에 이어서 둘째 천사가 등장합니다. 역시 공중을 날아가며 큰소리로 외친 것이 분명합니다. 회개를 외친 처음 천사에 메시지에 이어서 이제 바벨론의 멸망을 극적으로 선포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아무 설명 없이 바벨론의 파멸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당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는 이 메시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21세기에 세속화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명이 필요합니다.

 

바벨론의 의미

먼저 그 큰 성 바벨론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에서 계시록 맨 처음으로 바벨론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창세기부터 유래하는 이름입니다. 홍수 이후에 인류가 바벨탑을 쌓던 때부터 나온 이름입니다.

 

특히 바벨론 포로 이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죄악의 대표로서 바벨론이 통해지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부터 바벨론은 하나님 없는 권력을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초대교회는 로마를 새로운 바벨론으로 여겼습니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 함께 택하심을 입은 바벨론에 있는 여자라고 했을 때에 로마에 있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편지 속에서 로마를 바벨론으로 부르고 있으며, 교회를 여자로 상징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큰 성 바벨론은 계시록 자체의 표현을 빌리면 큰 도시 소돔과 애굽으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두 증인의 시체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11:8)

 

소돔, 애굽, 바벨론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를 못 박은 예루살렘까지 때로는 같은 의미로서 포용하고 있습니다.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말하자면 바벨은, 홍수 뒤에 탑을 쌓아서 흩어짐을 면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했던 인간중심의 모든 도모를 꾀하던 곳입니다. 비록 바벨탑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졌지만 그 정신은 무너지지 아니했습니다. 소돔이 그 정신을 이어 받아서 하나님 없는 타락한 문명을 건설했습니다.

 

성적 타락으로 대표된 소돔 문명은 하늘로 부터 내린 유황과 불로 파멸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은 결코 끝나지 않고 불사조처럼 회생한 것을 고대 애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애굽은 바로 같은 정신의 재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시 애굽을 심판하시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구출하셨습니다.

 

애굽의 병사와 그 군사는 홍해에 수장 되었지만 그 정신이 다시금 새롭게 나타난 것이 고대 바벨론 제국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강변의 도시 바벨론은 당시 세계 제국의 수도입니다.

 

정치적, 종교적인 수도로서 사치와 타락으로 그 명성이 떨친 곳입니다.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던 날부터 구체화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류문명은 애굽의 바로를 통해서, 바벨론과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계승되고 있습니다.

 

당시 교회가 처한 상황 속에서는 로마가 새로운 바벨론으로서, 바벨론의 모든 면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본문에 등장한 두 번째 천사가 최후파멸을 선고한 바벨론은 결코 지상에 있는 한 도시나 한 제국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세상나라 가운데서 항상 존재하는 세속정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 모든 역사 속에서 구현된 하나님 없는 권력과 인간중심의 문명 전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어디서나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는 불경건과 교만과 타락한 삶으로 나타난 세속 문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창조주 하나님 대신에 피조물 인간을 칭송케 하는 유혹의 중심지 세상을 의미하는 지명입니다. 그러기에 바벨론의 파멸은 곧 세상의 파멸을 의미합니다.

 

죄악된 인류문명의 최후파멸을 둘째 천사는 통고하고 있습니다. 첫째 천사의 최후 경고를 무시한 인류는 최후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지금 바벨론이 상징한 모든 악의 파멸을 내어다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미래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그것이 낙관적입니까? 아니면 비관적입니까? 아니면 비관적인 낙관론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속해있는 이 인류문명은 지금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습니다.

 

세속문명은 그 종국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세상은 결국 망합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의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그리스도인 입니다. 대 유성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인류문명 최후의 날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을 등장 시킬 때에 늘 크다는 형용사를 가지고 수식하고 있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항상 부르고 있습니다.

 

도시의 크기를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도시의 영향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나라마다 큰 영향을 미치는 바벨론의 문명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세대마다 큰 영향을 끼치는 바벨론 문화의 위력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아니 느부갓네살이 그 큰 제국을 세워놓고, 자기가 큰 도성을 세웠다고, 자기만큼 큰 도성을 세운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교만히 말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셨습니다.

 

크다는 것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는 거만한 마음이 대단한 것을 보여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서부터 인간을 멀어지게 하는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큰 성 바벨론 이라는 말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세속정신은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나타나는 주변적인 흐름이 아닙니다. 세속정신은 이 세상을 관통해서 흐르고 있는 주된 물줄기입니다. 온 세상에 충만해 있고 모든 것을 휩싸고 흘러가게 하는 세력입니다.

 

세상을 바로 의식하십시오. 결코 만만치를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그 흐름은 늘 도도한 흐름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정신을 팔면 떠 밀려가고 맙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거스른 인간중심의 문화는 오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시대문명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시대정신은 점점 더 불경건해지고 비도덕적이 될 것입니다.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이 바벨론 정신이 이 땅에 설칠 것입니다. 온 세상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세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그것이 모든 이야기의 종결이 아닙니다. 도덕정신이 헤이해지는 시대를 살아갈 주의 백성을 위해서 요한은 그가 받은 계시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환상 중에 본 두 번째 천사의 메시지를 들어 보십시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을 날며 크게 외치고 있는 둘째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계십니까?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둘째 천사는 바벨론의 파멸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위엄을 자랑하던 성읍이 무너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이 세상문명의 최후파멸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무너졌다는 선언을 먼저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졌다고 완성된 행동을 가리키는 과거분사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두 번씩 반복함으로서 최후 파멸의 긴급성과 확실성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말하자면 아직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은 여러분이 지금 보시다시피 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천사의 선언은 소위 예언적 과거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미 실현된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그 일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씩 반복해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선언하는 것은 그 일이 긴급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 여러분, 여러분은 두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듣고 있습니까?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은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세속정신으로 충일한 인본주의 문명은 그 최후의 종국을 순식간에 맞이할 것입니다.

 

편안하다. 편안하다고 할 그때에 갑자기 도성이 함락되는 것처럼 끝날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처럼 갑자기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 나라는 최후 심판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속사회는 궁극적인 파멸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른 인류를 향해서 기다리는 것은 최종 심판만이 파멸만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장망성(將亡城)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장차 망할 도시, 그것이 버니언이 천로역정(天路歷程)에서 본 세상의 운명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성큼 우리 앞에 다가 왔습니다. 여러분이 한 주간 동안 그려보던 평화 통일의 꿈을 짓밟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지상에 있는 조그마한 한 나라의 새로운 꿈을 짓밟으려고 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천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최후 파멸의 통고는 울산 상공에서 외쳐지는 소리가 아닙니다. 한반도의 영공에만 울려 퍼지는 외침이 아닙니다.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하늘 높이 날면서 외치는 최후파멸의 선고입니다.

 

망하였도다. 망하였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하나님의 진노는 지구촌 구석구석 마다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파멸 통보는 세속 도시 곳곳마다 실현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속정신은 기어이 무너질 것입니다. 너무나 확실히 일어날 사건이기에 과거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속히 그 일이 성취될 것이기에 두 번씩 반복해서 경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까? 최후 파멸후의 잔해를 내다보면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세상과 짝하려고 안달하고 살지 아니할 것입니다. 파멸 후의 잔해가 된 이 세상의 모습을 생각하고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문명이 주는 사치와 향락에 연연하면서 살지 아니할 것입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우뚝 우뚝 세워지는 빌딩이 대단해 보입니까?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화려하게 장식된 쇼윈도가 여러분의 정신을 빼앗지 않도록 하십시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에서 우리 마음을 빼앗아 가려고 드는 세상의 번쩍거림에 매혹되지 마십시오. 폐허된 바벨론 문명의 잔해를 내다보면서 이 큰 성 바벨론 거리를 걸어 보십시오.

 

황폐된 바벨론 문화의 절규를 들으면서 큰 성 바벨론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십시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하고 두 번째 천사가 하늘 높이 날면서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 큰 성 바벨론은 무너졌습니까?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표준새번역은 바벨론은 자기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도시다.”라고 번역합니다.

 

천사는 바벨론의 죄악을 음행 때문이라고 선언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들로 하여금 자기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한 죄입니다. 먼저 세상 모든 나라들로 자기를 추종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음행으로 빚은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이는 그 악한 행위로 타락 시킨 죄입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나라들로 타락케 한 죄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이게 했습니다.

 

음행의 포도주 구체적으로 무업니까? 문자적으로 술에 취하게 만든 다음에 남자를 유혹하는 창녀의 전통적인 수법을 가리키는 표현 아닙니까? 술로서 도덕의식을 몽롱하게 한 다음에 자신과 성적관계를 맺도록 하는 음녀의 익숙한 수법 아닙니까? 그래서 음행의 포도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 음행이라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얼 가리키고 있습니까? 물론 타락한 인류가 막 가게 되면 도달하게 되는 종착지가 음란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여기 음행이라고 하는 바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만 합니다.

 

계시록을 우리가 풀어갈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 상징과 상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어 보아야만 합니다. 포도주가 의미하고 있는 게 뭔가 하는 겁니다. 음행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거죠.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야 할 세상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 영광과 자기 숭배를 하게 만든 죄악입니다. 하나님 대신 세상을 사랑하게 한 죄입니다. 하나님 영광 대신 자기 영광을 추구한 죄입니다. 창조주를 떠나서 피조물을 섬긴 죄악을 가리켜서 여기 음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신구약을 통틀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갈 때 음행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치 정결한 부인이 자기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쫓아가듯이 하나님의 소유로 지음 받은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것을 섬기려고 할 때에 그것은 음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 피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가 그 피로 갑주고 사신 구주를 떠나서 살려고 할 때 그것을 음행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적인 방종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사치와 허영이 우리 마음을 빼앗아 갈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가게 되면 성적으로 타락 할 수도 있고 물질 가운데서 방종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할 때에 눈에 보이는 사랑이 전부처럼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광이 그의 호의가 세상 모든 것을 결정 짖는 것처럼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자기숭배의 결과로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바벨론은 그 정신으로 세상 나라들을 타락시킵니다. 바벨론 정신은 모든 주위의 나라를 타락했습니다. 그 타락된 사상은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현대 문명을 통해서 전달되는 세속 메시지는 인간을 근원적으로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만 생각하고 섬기고 사랑해야할 인간정신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천사가 전한 영원한 복음에 반응을 하지 못하도록 그 혼을 빼앗아 갑니다. 현란한 불빛과 화려한 장식뿐만 아니라 편리함과 안락함으로 대표되는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들까지 때로는 우리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도구로서 전락하는데 한몫 거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그 화려함과 편리함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부와 쾌락에 대한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포도주를 마시게 합니다.

 

그러나 그 포도주 잔을 마신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또한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음행의 포도주는 진노의 포도주를 불러들입니다. 한잔 마시면 또 한잔 마시게 되듯이 음행의 잔은 진노의 잔을 초래합니다.

 

세상에 취해서 사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시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포도주의 유혹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 붉은 색갈이 우리의 시각을, 그 진한 향기가 우리의 후각을 자극 시킵니다. 그리고 그 달콤한 맛이 우리의 미각을 사로잡습니다.

 

혀를 통해서 오는 그 맛이 우리를 송두리째 흔들게 될 것입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몽롱한 세계가 이상향처럼 여러분을 유혹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른 반역의 잔치는 그 절정에 이를수록 하나님의 심판을 가까이 불러들입니다.

 

부어라, 마셔라 소리치면서, 심판주를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심판은 오히려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반역의 잔치는 결코 심판주 하나님을 멀리하게 할 수 없습니다. 반역의 잔치는 결코 하나님을 무력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그 삶에 불러들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마다 여기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다 선택하셔야만 합니다. 돌아가서 엿새 동안 세상을 살면서 또한 택일 하셔야만 합니다. 감미로운 세상 포도주를 오늘 마시며 살 것인지 한날 하늘 잔치에 포도에서 난 것을 마실 것인지를 결정 하셔야만 합니다.

 

가불해서 세상을 즐길 것인지 정한 날 하늘잔치에 들어갈 것인지를 여러분은 택하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지금 마시고 세상에 도취되어 살다가 내일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실 것인지를 결단해야만 합니다. 오늘 경건히 성도답게 살다가 그날 하나님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 갈 것인지 결정하셔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지금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를 바로 보고 사십시오. 세상에 속해 있다가 세상과 함께 멸망 받지 마십시오. 세상에 빠져 살다가 세상과 함께 마셔야 할 최후가 무엇인지를 인식 하십시오.

 

내 백성아 나와서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 그들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그 준대로 그에게 갚고 그 행위의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그의 칵테일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서 그에게 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사십시오. 여러분에게 오늘도 살날을 허락하신 그분의 뜻대로 시간을 쓰면서 살아가십시오. 그분께 경배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심판주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날 여러분의 입으로 여러분이 살았던 모든 삶을 그분께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이제 돌이키십시오. 세상에서 하늘을 향하십시오. 사람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야만 합니다. 하나님께만 애정을 주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만 경배하면서 그분의 영광만 추구하면서 사는 삶이 삶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눈을 그분으로부터 다른 데로 돌릴 때에, 음행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의 번쩍 거리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이미 음행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음행으로 세상을 타락시킨 큰 성 바벨론은 이제 무너졌다고 선언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성경은 그때 모두 성취될 것입니다. 옛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위해서 성경이 그처럼 많은 예언을 했을 리 만무합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언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많은지를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구약성경의 4분의1이 넘는 페이지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바벨론의 멸망이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선고한 성경의 예언은 바로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장망성의 멸망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벨론의 확실한 멸망은 이 세상의 확실한 멸망을 나타내기 때문에 성경은 그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바벨론은 망하고 만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4분의 1을 넘는 예언서의 핵심 메시지인 바벨론의 멸망은, 지금 다가오는 대 유성 지구의 종말을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세상과 함께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거기서 뛰쳐나오십시오. 그들의 삶의 원리와 방법을 뒤쫓아 가기에 안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그들의 유행을 따라서 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유행의 물결에서 벗어나서 사십시오.

 

바벨론의 생활방식을 그저 본뜨기에 급급하지 말고 거슬려 사는 길만이 거기에서 부터 그 파멸에서 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음녀처럼 사는 대신에 거룩한 신부처럼 날마다 구주 오시는 것을 대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 그 분께만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십시오. 장망성(將亡城)에서부터 탈출하는 길은 지금 그들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지구의 종말이 오는 그 순간에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그들의 삶의 방식에 따라서, 그들의 삶에 목표를 향해서 살지 않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엄청난 영향력을 지금도 우리에게 발휘하고 있습니다. 모든 매스컴을 동원해서 우리의 정신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부터 세상의 메시지가 여러분의 영혼 골수를 장악하려고 달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장망성(將亡城)의 무너진 잔해를 떠올리며 사는 성도들을 결코 유혹하지 못할 것입니다. 편리함과 쾌락을 여러분의 신으로 삼지 마십시오. 그 안락한 도구를 구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에 무관심한 죄악에서부터 돌이켜야만 합니다.

 

더 안일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고통당하고 있는 동료 인생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사는 죄는 여러분이 장차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편리함과 쾌락을 신으로 삼아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여러분의 영혼까지 팔아넘기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그 모든 영화와 함께 순식간에 멸망할 것입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는 자로다.” 이 둘째 천사의 메시지를 기억하면서 한 주간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