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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901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14:9-11
    설교일
    2019-09-01

우상숭배자의 최후

14:9-11

구주대망 201991일 주일 찬송 33, 150, 50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정보만해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정보가 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는 것은 흘려보내고 맙니다. 매일 대하는 엄청난 정보의 양 앞에, 우리는 선별작업을 거의 포기한 채 무엇을 들어도 대강 듣고 지나가 버리려고 합니다. 여기에 오늘 설교자의 고민이 있습니다. 동시에 청중을 위한 설교자의 투쟁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려는 내용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엄숙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라도 대강 듣고 넘겨서는 안 될 자신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운명이 좌우되는 엄숙한 사실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한날 이를 갈며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무도 심판 가운데 빠져들며 절규하지 않도록 분명히 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피에 대해서 여러분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아무도 저를 향해서 원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왜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지를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적당하게 타협하는 대신에 인내하면서 신실하게 살아야할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최후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사람에게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성경은 보증하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잘못된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무익한 말까지도, 다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추종하며 살았는지에 따라서, 받을 심판이 결정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죄를 범하고도 도피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아무도 도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을 끝까지 추적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무릎을 꿇게 할 것입니다.

 

요한은 지금 환상 중에서 세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듣고 있습니다. 큰소리로 외치는 세 번째 천사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은 것이 없는 포도주로다.”

 

하늘 한 가운데를 날며 외치는 셋째 천사는 최후의 심판의 양상을 자세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짐승을 추종한 그들의 삶의 최후가 무엇일지를 설명합니다. 그들이 받게 될 최후의 심판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짐승 숭배의 유혹을 느끼고 사는 이 땅의 성도들을 위해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한 날 여러분의 손과 이마에 문신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 삶의 태도에 따라 판가름됩니다. 두 번째 천사의 표현을 빌리면 바벨론이 주는 잔을 받아 마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이 성도답게 사는지, 짐승을 추종하는 자처럼 사는지 이미 판정이 납니다. 세상이 주는 쾌락과 음행의 잔을 받아 마시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는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바벨론이 주는 잔을 마시면 그날 하나님이 주는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부어라, 마셔라하는 자들은, 반드시 저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는 잔을 받아 마실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이 하나님의 잔의 진노의 포도주가 얼마나 독한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그 포도주는, 물을 섞어서 묽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부어 넣은 것이다.”(새번역)

 

술을 담글 때 거기 약초를 넣어 약주를 담그듯이 여기에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어서 매우 독하게 만든 포도주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향신료를 섞어서 물로 희석시키지 않고 본래적인 농도 그대로 받아 마시게 할 것이다.”는 경고입니다.

 

이것이 지금 천사가 외치는 경고입니다. 세상이 주는 쾌락에 취해서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아 마실 것입니다. 동시에 세상에 굴복해서 타협하게 될 변절자들이 받아 마실 진노의 잔입니다.

 

황제 숭배의 위협에 굴복한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날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극심할 것인가를 말하기 위해서, 물을 섞어서 묽게 하지 아니한 포도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좆아 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지금도 보응하고 있습니다.

 

음란과 부정 사욕과 각종 정욕과 탐심을 따라서 행하는 자들에게 지금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저 세상에서 임할 하나님의 진노와는 급이 다르고 질이 다릅니다.

 

지상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진리 대신에 불의를 좆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지만 아직 이 세상에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은혜와 많이 완화되어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이 세상에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는 돌이키시려는 선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 내릴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 그 자체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더 이상 돌이키게 하려는 진노가 아니라 그들의 죄에 대한 대가로서 퍼부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진노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가 거기에는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골고루 비춰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는 다릅니다. 거기는 하나님의 진노가 조금도 누그러뜨림이 없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조금도 완화되지 않는 심판으로 그들이 받아 마실 것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즐기던 그들에게 그들이 즐기던 독한 술이 그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칵테일을 좋아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섞어 마시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부어놓은 섞어놓은 것을 한없이 마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의 최후는 무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간 세상을 사는 동안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승리해야 합니다.

 

셋째 천사는 최후의 심판을 또 다른 표현을 통하여 엄숙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짐승을 경배하고 섬기는 자들의 마지막 거처, 지옥은 타오르는 유황불로서 고통당하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최후심판의 표상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리는 불과 유황으로 멸망했던 그 소돔과 고모라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동성연애로 판을 쳤던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께서는 불로 벌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거하는 모든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쾌락을 추구하는 오늘의 성적 타락은 반드시 보응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그들만 심판 받았다고 억울하게 느끼지 않도록, 이 시대의 모든 성적 타락에 대해서 공정한 심판이 찾아갈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서 오늘 사람들은 즐거워 할지 모르나, 내일 그 죄악 때문에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악행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그 주인을 찾아갈 것입니다. 오늘은 그 휘황찬란한 그 불빛 속에서 즐겼지만, 내일은 끊임없이 타오르는 그 유황불 속에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첫째 천사의 최후의 호소를 무시한 자들이, 둘째 천사의 최후 파멸 경고를 무시한 자들이, 그 경고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던 자들이 받게 될 최후의 멸망이 어떤 것인지를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호소를 거절한 자들이 영원히 거할 곳의 참상을 계시록은 그려주고 있습니다.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사람들은 그것은 요한이 본 환상에 지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불과 유황이라고 말한 것은 묘사에 지나지 않지 그것이 어떻게 사실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따위 교만한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리셨던 유황과 불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너무 끔찍한 이야기라고요? 기독교의 메시지치고 저질스럽다고요. 아닙니다. 저질스런 삶, 짐승처럼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어울립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던 사람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사람답게 살지 않던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공정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짐승처럼 살 때에, 심판은 그들이 모습에 어울리게 주어질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도록,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끊임없이 요청한 하나님의 요구를 묵살한 그들에게는, 영원히 타오르는 유황불 외에는 더 적합한 것이 없습니다.

 

너무 끔직한 이야기라고요? 그것은 끔직 하지만 사실입니다. 문제는 끔찍하냐 끔찍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야 아니냐에 있습니다. 이 엄숙한 진리가 여러분과 저로 하여금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짓 대신에 진리를 추구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을 부인하고, 짐승을 경배한 자들이 받을 결과가 무엇인가를 직시하십시오. 아무도 이 심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경고합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9:47, 48) 소금으로서 채소를 간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소금이 배어들도록 간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소금 치듯 하리라고 주님께서 친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이 지옥 불을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란 사실을 여러분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되는대로 살다가 끝난다고 하면 세상에서 바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 번째 천사는 지옥의 고통이 어떠한 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경고합니다.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판단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한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여러분의 삶을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바로 말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없습니다. 제 눈을 얼마든지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날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 거룩한 천사 앞에서, 여러분 삶을 낱낱이 자신의 입으로 고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 눈이 불꽃같은 분 앞에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벌거벗은 것처럼 여러분의 삶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조롱하며 성도알기를 우습게 했던 사람들이 받을 영원한 심판이 여기 있습니다.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평생 대적했던 어린양 앞에서 최후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멸시와 증오를 서슴치 않고 퍼부었던 그 어린양이 심판주라는 사실에 그들은 모욕과 전율을 느낄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은 어린양을 조롱한 사실로 가중될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성도들을 모멸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 신실한 자들을 그들은 공중 앞에서 모욕하기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공민권을 박탈당했습니다. 둘러선 구경꾼이 보는 가운데서 조롱과 모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고 있습니다. 심판은 항상 상황의 역전입니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살후 1:6, 7) 그렇습니다.

 

심판은 상황의 역전입니다. 구경하던 자들이 이제는 구경 당하게 되었습니다. 조롱하던 자들이 이제는 조롱을 당할 것입니다. 고통을 주던 자들이 이제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입니다.

 

죄인이 방면될 희망은 이 땅에 있을지 몰라도 거기에서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의 대신 악을 선택한 대가를 그들이 영원히 지불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영원한 심판입니다. 지극히 순결한 자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후회의 이를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디로 치닫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발걸음은 어디를 밟고 있습니까?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영원의 고통을 값으로 치루는 죄에서 지금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얼굴을 내기 위해서 타협한다면, 한날 하나님의 천사들과 어린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치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환호하다가 세상과 함께 망하게 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예배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 돌아보기 위해서 나오는 자리입니다. 여기에 왔다가 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날 교회만 왔다 가면 여러분의 삶이 용서되고, 여러분의 삶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이 세상에 사는 다른 어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음에 신실하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삶도 지옥의 고통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위기입니다.

 

맑은 의식 속에서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못했으면, 듣지 못해서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이 받은 심판보다 더 클 것입니다. 지금 누리는 쾌락은 잠깐이지만 받을 심판은 영원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셋째 천사의 마지막 외침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사람들이 왜 짐승과 그 우상들을 경배합니까? 왜 적 그리스도를 추종하고 세상을 따라서 살고 있습니까? 그 중요한 이유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아닙니까?

 

좀 더 쉬운 삶을 위해서 부인코자 하는 이유는 그때 소아시아 일곱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유혹입니다. 그러한 유혹은 한 주간에 받고 끝나는 유혹이 아니라 매주일 되풀이해서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유혹입니다.

 

성도들이 순교대신 변절하는 가장 큰 이유도 쉽게 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국을 한번 보십시오. 유혹에 넘어간 교인들의 최후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변절한 거짓형제들의 그 종말을 직시하십시오. 결국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편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쉼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결국 휴일이 없습니다. 지옥의 참상은 결코 휴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끝없는 심판이 이 세상을 쫒아 살던 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누릴 최후의 축복을 영원한 안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주일의 안식은 영원한 안식의 표상입니다. 오늘 누리는 안식은 영원히 누릴 안식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보낸다는 것을,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는 신앙고백의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주일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할 일 없으면 나오고 일 바쁘면 못나오는 날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주일을 어떻게 지키고 있느냐 하는 것은 바로 내일의 영원한 그 안식에 대한 소망을 이 땅에서 고백하며 사는지, 않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부터의 안식을 맛본 자만이, 거기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 이 땅을 살면서 하늘의 안식을 맛본 자만이 그날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을 좆아 살기가 바빠서,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기에 바빠서, 여기에서 안식을 맛보지 못한 자들은 결국 저기에서도 안식이 기다리지 않습니다.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받을 심판을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안식이 영원하듯이 지옥의 고통도 영원합니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고통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피곤하게 일해도 쉴 시간이 기다리는 노동자는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곤하게 일하는 데도 그 일이 끝나지 않는 사람은 저주 아래 빠져든 사람입니다. 마지막 심판은 결코 번복되지 않습니다. 죽음의 선고는 결코 돌이키지 않습니다. 영원한 파멸은 결코 복구되지 않습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습니다. 타오르는 유황불은 꺼지지도 않습니다.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하는 곳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불 못에 던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보상이 휴식입니까? 아니면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최후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지금 평강을 맛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안식일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쉼을 얻지 못한다면, 그대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쉼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누리는 축복이 하늘에서 계속되는 것이지 여기의 삶과 하늘의 삶이 별개로 분리된 게 아닙니다. 지금 여기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이 안식을 맛본다면 거기 하늘에서도 여러분의 안식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풍성하게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마귀를 좆아 살면서 늘 불안해하면서 늘 초초해 하면서, 늘 만족해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자들은 거기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마귀를 좆아 살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최후가 여러분의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그들을 미워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리니 거기는 마귀뿐 아니라 그 짐승과 그것을 선전하던 선지자들도 있어서 밤낮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으리라.”

 

들어보십시오. 비겁한 자와 신실하지 못한 자와 가증한자와 살인자와 음행한 자와 마술쟁이와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던 자들이 차지할 곳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이 사실 앞에서 성도들을 다시 한 번 격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는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다고 주를 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4:12)

 

12절의 말씀은 천사가 외치는 그 말씀이 아니라 이 환상을 보고 있는 요한이 자기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향해서 그러기에 너희들이 인내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 여러분에게도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요한은 악인의 고통을 미리 즐기도록 최후 심판을 기술해 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유황불이 밤낮 타오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대신에 변절하려는 성도들을 향해서 최후 사실에 직면하도록 말씀합니다.

 

좀 더 쉬운 안락한 유혹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엄숙한 최후의 사실을 보게 함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바른 선택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 부터 능력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서 영원한 형벌을 받으리라

 

사도바울도 동일한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불꽃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물론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그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했던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서 영원한 멸망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설교를 통해서 악인이 받을 최후의 심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받을 재앙을 벗어나기 위해서 지금 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말씀 맺습니다. 여러분은 이 설교를 통해서 악인이 받을 최후의 심판이 무엇인지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장차 받을 재앙을 벗어나기 위해서 지금 그들과 함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엄숙한 최후의 사실을 직면하면서 여러분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해야만 됩니다. 여러분은 그 무서운 사실에 대해서 지금 눈을 감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그 사실로부터 도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고통은 아무리 극심해도 그것은 끝이 있습니다. 악인이 받을 최후의 심판과 그 고통은 그러나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고난은 잠깐이요 심판은 영원합니다.

 

여러분이 왜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셨습니까? 여러분이 주일 예배를 드린 사람으로서 한 주간 진지하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아셔야만 합니다. 적당하게 타협을 하는 대신에 올곧게 인내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원한 심판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끝까지 붙드십시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신뢰하십시오. 영원한 안식의 소망이 여러분과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