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908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 계시록 14장 13절
    설교일
    2019-09-08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

요한 계시록 1413

구주대망 201998일 주일 찬송 35, 149, 608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따라 사는 자들이 받을 최후 심판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과 그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받을 끔찍한 심판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짐승처럼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대열에서 돌아서 버린 자들이 받을 그 끔찍한 최후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까?

 

지난주일 본문은 그들이 받을 최후 심판을 세 가지로 선언했습니다. 불신자들과 배교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가운데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는 자들은, 그 이름의 표를 받은 자들은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성도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붙들고 지켜 나가야 할 이유는 그 무서운 심판의 자리에 빠져들지 아니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믿음을 지키기 위한 오늘의 고난은 결코 만만치 않지만 내일의 무서운 심판과 비교할 때 견뎌 내어야만 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왜 신실해야 하는지, 보다 적극적인 대답을 제시합니다. 이미 9-11절에 소극적인 대답을 한 다음 12절에서 소극적인 격려를 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왜 우리가 끝까지 신실해야 하는지 보다 적극적인 이유를 제시해 줍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보다 적극적인 복을 상기시킴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도록 격려합니다.

 

지금 초대교회 성도들은 짐승에 의한 극심한 환난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끝까지 신실하기 위해서 때로는 순교를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형편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요한은 그가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하고 전합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여기 하늘에서 나는 제 4의 음성이 있습니다. 하늘 한 가운데를 날아가면서 외친 세 천사의 증언에 이어서 나는 소리입니다.

 

앞서 요한은 환상 가운데서 다른 천사가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면서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듣습니다. 두 번째 천사가 좇아와서 바벨론의 최후의 파멸을 선고하는 것을 듣습니다. 또 세 번째 다른 천사가 그들을 뒤따라와서 큰 소리로 짐승 숭배자가 받을 심판을 경고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제 요한은 제 4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나는 음성입니다. 그렇다고 천사가 전하는 음성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음성이라고도 밝혀져 있지도 않습니다. 하늘로부터 나는 음성은 그 출처가 어디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권위 있는 음성입니다.

 

하늘로부터 나는 소리는 땅에 속한 사람을 구속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이 귀담아 들고 순종해야 할 말입니다. 본문에 들리는 하늘로부터 온 음성은 축복을 선언하고 이 선언은 또한 성령의 반응을 이끌어 냅니다.

 

그러면 이제 하늘의 음성을 요한과 함께 들어봅시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늘의 음성은 주 안에서 죽는 사람의 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하늘의 음성은 지금 이후로라고 말합니다. 지금부터란 말은 핍박이 극심할 것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극심한 핍박 가운데 끝까지 신실하게 남는 자들을 향한 복의 선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복은 일차적으로는 성도들 모두에게 선언한 것이라기보다는 곧 순교의 고난을 받게 될 사람들을 향해서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된 선언에 포함된 약속은 모든 성도들에게 유효한 약속으로 보아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까? 그 죽음은 불신자들의 죽음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은 결코 배교자들의 죽음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죽음과 죄인의 죽음은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죽음은 심판아래 빠져드는 것입니다. 죄인은 죽고 나면 영원히 버림을 당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다릅니다. 죽음은 성도에게 영원한 안식의 문을 열어 줍니다. 성도에게는 죽음은 영원한 보상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죽는 양상은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똑 같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유교문화의 영향아래 살아왔습니다. 기독교인이 되어도 유교식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유교문화의 특징의 하나가 외형이나 체면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만 해도 그들은 비명사나 객사를 싫어하고 와석종신을 선호합니다. 마지막 임종의 자리에서 약을 사용하고 자식들이 지켜보는 데서 임종하는 것을 죽음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외로 이런 유교식 사고방식이 신자들 가운데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외형보다 본질을 중시합니다. 죽음의 형태보다 본질이 중요합니다. 암은 불신자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사고는 불신자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도 불치의 병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성도라고 불의의 사고를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에 있어서 다릅니다. 불신자에게 있어 죽음은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선고를 의미하지만 신자들에게는 영원한 안식과 보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진노의 손에 영원히 빠져드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한 보상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죽음이 양상이 어떠하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죽는가 아니면 자기 죄 가운데서 죽는가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지금부터 주안에서 죽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주안에서 죽는 죽음의 의미를 묵상해 보십시오. 주안에서 오늘을 사는 모든 자들은 주안에서 죽는 내일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특정한 죽음만이, 특정한 사람들만이 주안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는 주안에 사는 만큼 주안에 죽는 자들입니다. 하늘의 음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 자들을 향해 복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터져 나오는 감탄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결코 복의 박탈이 아닙니다.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 세상은 이러한 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축복을 이 세상에만 한정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진리일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받는 축복은 이 세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다음 세상에서도 다함이 없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살 때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도 성도는 복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세상에서 받는 축복의 종결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하나님에게서 단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맛보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이제는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하늘은 그 문을 열고 큰 소리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 후의 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늘의 음성이 선언하고 성령이 확인하고 있는 그 복을 여러분의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까? 이 확신은 여러분의 걸음을 성도답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에 대한 처벌을 모두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안에서 살다가 주안에서 죽는 모든 성도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 된 성도들에게는 그 무엇도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단절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주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제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사망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맛보는 복으로부터 우리를 박탈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죽음은 지금 맛보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만끽하게 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복을 지금 누리십시오. 지금 주 안에 있는 복을 맛보는 여러분은 또한 장차 복을 누릴 자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영광스런 복이 또한 여러분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복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 분 안에서 우리가 누릴 복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영원토록 살아계신 그 주님 안에 죽는 모든 자들을 위해서 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 주안에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는 선언에 이어서 성령께서 확인하십니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성령께서는 하늘에서 선포된 주안에서 죽는 성도가 누릴 복이 무엇인지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까? 첫째로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 살아가는데 겪는 일반적인 수고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신앙의 신실함을 견지하는데 따르는 수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수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데서 오는 수고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데서 오는 어려움입니다.

 

당시의 성도들의 삶을 기억해 보십시오. 황제의 숭배를 요구하는 그런 요구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조합에 가입해 있지 않으면 모든 상권을 박탈당하는 사회 속에 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조합원과 함께 그 잔치에 참여해서 박카스 신 앞에서 혹은 다른 신 앞에서 잔치하지 않으면 그들은 다 함께 매매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처해 있었습니다. 다르게 말해서 그들은 날마다 짐승의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시달리는 공격이 이제는 끝이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이 모든 시달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지상에서의 고통을 뒤로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짐승의 공격에서부터 시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순례의 길에서부터의 각가지 고통을 이제는 벗어날 것입니다. 때로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로는 질병의 시달림에서부터도 벗어날 것입니다. 지쳐서 녹초가 되기까지 했던 여러 가지 시달림으로부터 죽음은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굶주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이 상치 아니할 것입니다. 더 이상 그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모든 수고를 그치고 이제 안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던 이들이 누릴 안식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킨 자들이 받아 누릴 안식입니다. 신앙 때문에 생명을 받친 자들의 안식이 도래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 쉼은 아무나 누리고 쉬는 쉼이 아닙니다. 하루를 열심히 산 사람에게는 하루를 마치고 얻는 쉼이 있습니다. 일생을 잘 보낸 이에게 죽을 때에 편안한 쉼이 있습니다.

 

세상을 따라 살던 자들이 받는 저주를 기억하십니까?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들에게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세상 사람들처럼 살던 자들은, 복음을 거절한 자에게는 밤낮 쉼이 없습니다. 신앙을 변절한 자에게는 영원한 쉼이 없습니다.

 

오직 신앙을 끝까지 지킨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여기 쉼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살다가 여기 주 안에서 죽는 성도들만이 누리는 축복이 영원한 쉼입니다.

 

요한은 지금 기진한 순례의 길에서 숨을 헐떡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그들이 가장 기다리는 복을 선언합니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말 한마디만 들어도 은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의 나라를 위해서 힘을 다해 사는 분들에게는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쉰다는 말보다 더 큰 위로의 말은 없습니다.

 

말씀을 따라서 살기에 고달픔을 느낄 때 우리는 보다 더 이 쉼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됩니다. 세상에 의해서 학대를 받고 시달리는 순례자는 누구나 영원한 안식을 갈망합니다. 때로는 질병에 의해서 시달릴 때도 고통이 끝나고 안식이 찾아 올 그 날을 사모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의 복음 때문에 오늘을 힘겹게 살고 있다면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하는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위로가 될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누리는 두 번째 복이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성령께서 성도의 죽음이 복된 이유를 이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한 일이, 그들의 업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선행은 죽는 자 보다 먼저 하늘에 도착한다고 믿었습니다. 사람의 숨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에 그가 행했던 선행은 하나님 앞에 이미 도착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이 죽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증언함으로서 천국에 가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사람이 여기 세상에서 한 일이 무덤 저편에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결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면, 예수 믿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기 위해서 수고를 한 사람만큼 속고 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끝나 버리고 말 것을 가지고 뭐 때문에 진실하게 살 필요가 있습니까? 하지만 결코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의 행한 일이 내일 거기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한 그들의 선행과 수고가 그들의 죽음과 함께 결코 종말을 고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까지 헌신한 그들의 헌신은 끝까지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결과로서 성도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보좌에서 기억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를 위해 무언가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새 역사를 시작하신 성령의 힘으로 감당한 것이기에 그 일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신실하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증거 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끝까지 복음에 신실할 궁극적인 이유를 발견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겪는 수고와 고통이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뿌린 씨앗이라고 해서 여러분 당대에 거두어야 된다는 철칙은 없습니다. 봄에 뿌린 씨앗이 때로는 가을까지 결실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눈물로 씨앗을 뿌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쁨으로 거둘 날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운 분께서는 주를 위한 우리의 적은 수고까지도 기억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그것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상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도가 종사하는 일이라고 모두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동료성도를 향한 사랑의 눈빛, 한 마디 격려의 말조차도 보상하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 준적이 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의지할 때 없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준 적이 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해 본적이 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의 자리로 나가신 적이 있습니까? 주의 이름 때문에 한 영혼을 두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그 상은 결코 잊지 않으리라고 성경은 보증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찬물 한 그릇까지 결단코 그 상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와 영광으로 보상될 날이 반드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에 합당한 상들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 우리가 다 상상할 수 없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업적이 언제나 그들 뒤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사를 주셔서 주의 몸 된 교회의 한 부분을 섬기게 하셨으면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결코 하나님에 의해서 잊힘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 우리의 모든 수고에 대한 복된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앎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수고가 결코 잊혀짐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악인의 죗값을 따라서 최후의 심판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그 이름에 신실했던 성도들을 위해서도 최후의 보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일들을 기억하시고 갚아 주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히 걷기로 다짐하면서 다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