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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0915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시록 14:14-20
    설교일
    2019-09-15

마지막 추수

계시록 14:14-20

구주대망 2019915일 찬송 35, 151, 58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시록은 더 이상 닫힌 책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와 상관없는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열리고 있는 책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 시대의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계시록 강해설교의 어려운 점은 본문의 해석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문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우리들의 상황에 있습니다. 속화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상황과 1세기말 밧모 섬에서 이 계시를 받았던 요한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주는 메시지를 들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야말로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쓴 계시록으로부터 마지막 시대를 사는 지혜를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시록을 사랑하십시오. 계시록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그러면 말세적 상황이 전개될 때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기말적인 현상이 덮칠 적에, 두려움 없이 그날을 직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은 두 종류의 추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4-16절은 곡식 추수의 장면입니다. 17-20절은 포도 수확의 장면입니다. 그러면 먼저 곡식 추수 장면을 요한과 함께 살펴봅시다.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 인자 같은 분께서 앉으셨는데 그분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지고 계셨다. 그때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위에 앉으신 분께 큰소리로 외치기를 주님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이는 땅의 곡식이 다 익었고 추수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분께서 그분의 낫을 땅에 휘두르시니 곡식이 거두어졌다.”(14-16, 바른성경).

 

밧모 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이 계시를 주신 것은 그를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유배된 요한뿐만 아니라 박해 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환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 있는 모든 교회가 받을 수 있는 위로의 원천이 계시록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14장에서 사도 요한은 최후심판을 보여줌으로써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고자 합니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14)

 

곳곳에 환난의 먹구름이 일어나는 암울한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요한의 환상 속에는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흰 구름을 배경으로 한 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빛 가운데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밧모 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의 눈은 영광 중에 오시는 주님을 뵙고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과는 대조적인 영광스런 빛 가운데 축복으로 찾아오시는 그는 분명히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가 쓴 면류관은 그의 승리, 그의 왕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가 가진 예리한 낫은 그가 오셔서 하실 일을 보여 줍니다. 땅에 사는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왕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다가옵니다. 그 손에 있는 예리한 낫을 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를 가늠해야 합니다.

 

예리한 날이 선 낫

그러면 이 곡식 추수 장면을 요한과 함께 자세히 살펴봅시다. 타락한 도시 문명에 젖은 사람들은 손에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알아듣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추수하는 일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는 낫입니다. 보리 추수든 벼 추수든, 포도수확이든 모두 낫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날은 아침부터 하루가 바쁩니다. 이른 아침부터 논밭에 나갈 차비를 하기 위해, 남자는 남자대로 바쁘고, 여자는 여자대로 바쁩니다. 여자들은 새벽부터 밥을 해야 남자들이 일찍 일하러 나갈 수가 있습니다.

 

남자들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낫이란 낫은 다 가지고 나와서 숫돌 앞에 앉아서 갈아야 합니다. 그래서 날을 하나하나 다 예리하게 세워야 그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무딘 낫을 가지고는 추수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면류관을 쓰고 구름 위에 앉으신 분이 손에 예리한 낫을 들고 있다면, 농사짓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명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곧 추수하려는 구나.’하고 알아듣습니다.

 

자 보십시오. 또 다른 천사가 나와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와, 큰 소리로 도시 문명에 찌든 우리를 위해서 지금 외치고 있습니다.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거둘 때가 이르렀습니다.

밭에 곡식이 익었는데도 내버려두는 사람이 있을까요? 땅을 준비해서 씨를 뿌렸습니다. 싹이 트고 자라면 자주 자주 김을 매어 주었습니다. 이삭이 충실하게 맺히고 익으면 이제 수확할 날만 기다립니다.

 

그 때쯤 되면 양식이 다 떨어져서 하루 빨리 한 귀퉁이라도 무르익기를 바라는 농부의 마음입니다. 익은 곡식을 밭에 그대로 내버려둘 농부가 없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아무도 추수하는 것을 연기하지 않습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16). 어떤 트랙터가 거두는 것보다 쉽게 온 땅의 추수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누가 추수를 했는가, 즉 주님이 직접 하셨나 아니면 천사가 했는가는 요한의 주 관심사가 아닙니다.

 

지체되지 않고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데 그의 관심이 있습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한번 휘두른 낫질에 땅의 모든 곡식이 거두어진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곡식 거두는 환상에 이어서 포도 수확하는 환상이 두 번째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 후에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왔는데 그 천사도 역시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불로 세상을 파멸시킬 능력을 지닌 천사가 제단에서 나오더니 낫을 든 천사에게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어서 그 낫으로 땅 위에 있는 포도밭에서 포도송이를 거두십시오. 포도가 다 무르익어 심판할 때가 되었습니다.' 천사가 낫을 땅 위에 휘둘러 포도송이를 잔뜩 거두어 가지고는 하나님의 진노의 큰 술틀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그 술틀은 성밖에 있었습니다. 술틀에 던져진 포도송이들이 마구 짓밟혔습니다. 그러자 술틀에서 어찌나 많은 피가 흘러넘치던지 무려 320킬로미터나 퍼져 나갈 정도였습니다.”(14:17-20, 현대어성경)

 

하늘 성전으로부터 나온 또 다른 천사

그 후에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왔는데 그 천사도 역시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특징은 천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묵시문학에는 여차하면 천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사에 대하여 별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관심을 쏟지도 않습니다. 기껏해야 엔젤리너스 커피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천사에 관심이 많았고, 천사를 숭배하기까지 했습니다.

 

오죽하면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을 설명할 때 천사보다 더 탁월하신 분이라고 비유하겠습니까? 워낙 히브리 사람들이 천사를 내세우니까 그 천사보다 탁월하신 분이 주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유대 묵시 문학에서는 천사가 많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천사는 성전, 즉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신 곳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서 지금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그의 손에 들려진 날이 선 낫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도 역시 수확하려고 등장합니다.

 

제단으로부터 나온 또 다른 천사

이어서 또 다른 한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로 심판을 주관하고 있는 천사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제단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제단으로부터 나온 또 다른 천사는 낫을 든 천사에게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어서 그 낫으로 땅 위에 있는 포도밭에서 포도송이를 거두십시오. 포도가 다 무르익어 심판할 때가 되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제단은 죽임을 당한 자들이 큰소리로 호소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83절 이후를 보면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은 천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천사들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향을 금 제단에 드리는 장면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땅에 있는 성도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들은 쫓기는 패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드리는 기도는 온 세상을 움직입니다. 온 역사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악인의 최후 심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하고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한 천사가 등장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제단으로부터 그가 나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단에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왔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 위에 있는 성도의 기도는 위력이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새벽에 나와서 앉아 있어도, 그 기도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매일새벽, 수요기도회, 토요특별기도회, 닛시 중보기도회, 주일 예배 때마다 설교자를 위한 기도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적으로 보면 시원찮더라도, 동네 반상회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 위력은 한 나라의 각료 회의를 능가합니다. 역사의 완성을 선언하는 데 결정적인 기도가 거기서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선언에 이어서 예리한 낫을 든 천사의 포도수확 활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어서 그 낫으로 땅 위에 있는 포도밭에서 포도송이를 거두십시오.”하는데 이 기도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 불을 관리하는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와 날카로운 낫을 가진 천사에게 큰 소리로 땅의 포도송이가 무르익었으니 낫으로 포도송이를 거두시오.’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가 땅 위에 낫을 휘둘러 포도송이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틀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18~19).

 

날카로운 낫을 휘둘러서 역시 단칼에 모든 포도를 다 수확해서 포도주 틀에 던졌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우린 포도농사를 지어도 주로 과일로 파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포도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주로 포도주로 담급니다.

 

포도가 한참 잘 익었을 때 즙을 짜서 포도주를 담급니다. 즙을 짜는 구유는 대개 두 단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위쪽 틀에는 전체 포도를 넣고 무차별하게 맨발로 밟아댑니다. 그렇게 포도가 밟히면 포도에 즙이 흘러나와 아래쪽 즙 틀에 흥건히 흘러 내려 고입니다.

포도가 성 밖 포도주 틀에서 짓밟히자 피가 흘러 나와 말굴레에까지 닿았고 약 300킬로미터까지 흘러 나갔습니다.”(20) 그런데 그 틀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포도즙 대신에 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시무시한 정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틀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틀이라고 말했듯이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은 심판을 당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피라고 말합니다. 포도송이가 밟혀서 피의 호수가 사람 한 길 정도 되는 높이와 300Km의 땅에 흥건하게 고였다고 말합니다.

 

포도가 성 밖 포도주 틀에서

그런데 여기서 왜 포도송이를 밟는 일이 하필 포도가 성 밖 포도주 틀에서 짓밟았다고 말합니까? 당시 성도들은 이 성 밖에서 밟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던 사람들입니다.

 

성 밖에서 짓밟힌다고 하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한 맺힌 소리입니다. 그들이 주님 때문에 부당하게 정죄 받고, 죽임을 당한 곳이 성 밖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성 밖에서 받은 수난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님께서도 불결한 것으로 취급을 받아서 성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제물의 피는 단에 뿌려지지만 그 제물은 성 밖에서 불살라지듯이 예수께서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기 위해서 성 밖에서 고난을 받았다는 히브리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거기서 주님은 하나님의 눈에 불결한 것으로 여김을 당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진노의 틀에 짓이겨졌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과 당신의 의를 입도록 하기 위하여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주님을 성도들은 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성문 밖에서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를 따르는 성도들이 지금 당하는 고난 역시 성문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원래 사람들이 살고 생활하는 곳은 성안이었습니다. 성문 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문 밖으로 추방당한다는 것은 멸시와 모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 속에 살면서 그리스도 때문에 무시를 받아 보셨습니까? 그래야만 성 밖에서 짓밟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 위로가 될 것입니다. 지금껏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으로 부터 멸시를 받고 천대를 받아왔습니다.

 

아니 당시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 밖에서 짓밟히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에도 공민권을 박탈당하는 즉시 애지중지하던 물건이 다 약탈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문 밖에서 성도들이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때는 세상 사람들이 성 밖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밟히는 시대가 곧 다가옵니다. 지금껏 하나님의 백성이 밟히던 그 장소에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던 자들이 짓밟힐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두 가지 환상의 의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이 밧모 섬에서 본 환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곡식 추수와 포도 수확을 소재로 한 마지막 심판의 메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왜 사도 요한에게 주님은 두 가지 소재를 주었을까요? 곡식 추수와 포도 수확이 갖는 메시지는 각각 상이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곡식 거두는 것을 천국 알곡을 거두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뒤에 나오는 포도 수확은 진노의 포도주 틀에 밟히는 악인의 심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첫 장면은 그 나라를 위한 의인들의 추수이고, 둘째 장면은 심판을 위한 회개치 않던 이들을 위한 추수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환상의 기초는 동일한 구약 예언에 있습니다. 요엘서 313절을 보면,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리니 그들의 악이 큼이니라.요엘은 낫을 써서 익은 곡식 베는 일과 사람들이 몰려들어 포도알 밟는 일을 동시에 기술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같은 사실을 다른 측면으로 반복해서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곡식 추수는 의인을 모으는 일로, 포도 수확은 악인을 모으는 일로 보면 그럴듯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의인의 회집과 악인의 회집은 반드시 별도로 있을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은 오늘 사는 모습이 다른 것만큼 내일 받을 보상이 다를 것입니다. 의인의 회집이 악인의 회집에 선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과연 그것을 보여주느냐는 데 의문이 있습니다.

 

두 번씩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

우리는 두 환상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느냐고 묻지 말고 왜 두 번씩 환상을 보여 주었냐고 물어야 합니다. 각각 심판의 대상이 누구냐고 묻기 전에, 왜 두 번씩이나 환상을 보여주셨나에 질문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곡식은 누구를 상징하느냐, 포도송이는 누구를 상징하느냐 하는 것은 요한이 의도했던 바가 아닙니다. 이 환상을 통해서 요한이 동일하게 강조하는 것은 심판 날이 이제 바로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두 번씩 요한에게 추수 준비가 완료된 환상을 보여 주십니까? 이 설명은 바로의 꿈에 대한 요셉의 설명으로 답할 수가 있습니다. 폐하께서 같은 꿈을 두 번씩이나 꾸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어김없이 하시기로 정하셨고 또 지체 없이 그대로 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 준비를 완료하셨습니다. 어김없이 지체하지 않고 시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마지막 추수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하실 것입니다. 그 보장을 거듭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악이 극심하고 핍박이 날로 성행할 때에 성도들이 갖게 되는 의문이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역사의 의미를 묻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정말 의로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이렇게 당하는 것을 목도한 해야만 합니까?”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하면 왜 의인은 고난을 받고 악인은 출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위축을 당하는데, 불신앙 속에 사는 자들은 부어라 마셔라 흥청대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신앙에 대한 회의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신앙 자체를 포기하는 일들까지도 일어나게 됩니다. 본문은 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마지막 추수를 하실 것이라고 여기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최후의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속히 시행하신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같은 사실을 두 번씩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낫은 각각 예리한 날이 서 있습니다. 추수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심판은 확정되었고 심판은 신속히 임할 것입니다. 거듭 보여준 환상은 각각 누구를 향한 환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반드시 그리고 신속히 있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준비

이제 마지막 질문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신속히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무르익은 곡식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여러분은 살고 있습니까? 짓밟히게 될 포도송이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여러분은 이 전을 출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추수 날은 반드시 다가옵니다. 베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던져질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짓밟힐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으깨길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영혼들에 대해서 신자로서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그 심판을 피했다고 안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며, 그 날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영혼들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마지막 날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내일 그 무서운 심판 자리에 들어서지 않도록 돌아서십시오. 심판의 소식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일말의 두려움을 준다고 하면 거기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주님 오시는 것이 더 이상 두려운 소식이 아니라 주님 오시는 것이 안도의 소식이 되도록, 기쁨과 환희의 소식이 되도록 여러분의 삶은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해서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생명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이 복음이 들려지는 사실을 인하여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성도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을 인하여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오늘도 성도와 함께 이 계시의 말씀을 듣는 사실을 인하여 찬양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로 악해지는 세상 속에서 의롭게 살기에 기진해 있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마지막 심판이 도래해 옵니다. 신속히 그 날이 이를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의 소식을 들어보지 않은 자들과 하나님께 그 입으로 감사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불꽃 가운데 나타나실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숨을 쉬고 살면서도 자기에게 호흡을 주시고 자기의 생명을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한 번도 중심에 감사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은 그 날 포도주 틀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듣고 자기의 삶을 뉘우치고,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받게 될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의 날은 반드시, 그리고 신속하게 이 땅에 도래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