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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006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15:5-8
    설교일
    2019-10-06

하늘의 증거 장막

요한계시록 15:5-8

구주대망 2019106일 주일 찬송 38, 214, 48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을 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된 책을 여러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를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역사의 완성을 직설적인 서술체로 쓰는 대신에 상징적인 언어로서 기술합니다. 자기 시대에 통용되던 문학적 표현 방법 가운데서 자신의 의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서 사용합니다.

 

비록 오늘 우리들에게는 친숙하지 못한 방식이지만 당시의 성도들에게서는 익숙한 묵시적 환상들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본 환상들을 기록하는 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계시록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광야의 증거 장막에 대칭되는 하늘의 증거 장막이 등장합니다. 그리하여 증거궤안 두 돌 판에 기록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심판과 구속을 통해서 구현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은 어린 양의 구원으로서 완성됩니다. 바로의 손에서부터 구원은 시작에 불과하고 어린 양 예수를 통해서 그 구원은 완성될 것입니다. 홍해 가에서 부른 노래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의 찬양으로서 완성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같은 노래를 두 가지 제목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심판과 구원으로 나타난 출애굽의 영광은 15, 16장에서도 동일하게 심판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그 첫째 요소인 구원의 찬양 어린 양의 노래를 들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두 번째 요소인 심판의 준비를 살펴보겠습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여러분, 계시록에서 자주자주 등장했던 표현입니다. 내가 보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그 일 후에 내가 보니,” “또 내가 보니라는 이런 표현들이 계시록에서는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요한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성령으로 보았던 것들입니다. 요한은 이 환상을 보았을 때에 그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하늘이 열리고 거기 성전 증거 장막이 보였을 때에 요한이 얼마나 감동했을지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오래 동안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을 한 번 보는 것만 해도 그동안 참고 고생하면서 살아왔던 보람이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지금 모든 하나님의 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는 와중에 있었습니다. 그들을 대신해서 지금 요한은 밧모 섬에서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해서 주의 날 이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하늘 성전이 열린 첫 장면입니다. 15장으로 말하면 21장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에 비길만한 장면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그 때도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나타났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린 후에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잠깐 보였습니다. 언약궤를 보여 주심으로서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때가 가까워왔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늘 성전이 열리고, 다른 표현을 쓰면 하늘의 증거 장막이 열리면서 일곱 천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곱 천사가 등장해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하늘의 장막이 지금 열리고 있습니다.

 

장막이, 무대가 열린다는 것은 지금 배우가 나타나서 활동할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전이 열리고 일곱 천사가 지금 등장하는 것이지요. 그들의 사명을 지금 이룰 것입니다.

 

악한 세상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의 손아래 빠져 들어가게 될 것이다.’는 것을 요한은 지치지 않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성전, 하늘의 증거 장막이 열림은 일곱 천사의 사명의 출처를 밝혀 주는 것입니다. 성전이 열리고 열린 성전으로부터 일곱 천사가 등장합니다.

 

여러분 그 모습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왔는지 관찰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관심을 가지고 이 천사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한 번 살펴보십시오.

 

하늘의 일군다운 차림새를 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첫 환상에서 등장한 살아 계신 주님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서는 그 옷감이 어떤 종류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밝고 빛난 세마포 옷이라고 말합니다. 발에 끌리는 밝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은 주님과 그 천사들을 우리가 연상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두 경우에 가슴에 금띠를 띠고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세한 묘사는 당대에는 의미심장했습니다. 오늘날 특별한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눈여겨 볼 구절일지 모르지만 당대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누가 나타나느냐 하는 것은 중요했습니다.

 

요새는 탈 전통의 시대입니다. 그냥 자기 마음대로 옷을 입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가 도래한 것은 얼마 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옷들을 입고 살아가니까 세상 사람들은 본래부터 원하는 옷을 입고 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0년 전만 해도, 아니 100년 전만 해도 어느 문화권이나 어떤 옷을 입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신분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그가 남편을 가진 아내인지 혹은 아들을 낳은 여자인지 아닌지가 벌써 구별이 나는 겁니다.

 

요새는 좋은 세상이 되어서 시집을 갔는지 가지 않았는지 도무지 옷 가지고는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들을 낳았는지 낳지 않았는지 구별이 어떻게 옷을 보고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옛날은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또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드러내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세한 묘사는 당대 사람들에게서는 아주 관심을 갖는 부분입니다.

 

요한은 자기 당대 사람들을 향해서 편지를 썼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에게서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의상학과를 다니는 사람 말고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을 그런 부분에 대해 세세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옷차림은 그의 신분과 직무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신분에 따라서 의상을 달리 하던 시대에는 천사들의 차림새를 이처럼 자세히 기술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살아 계신 주님의 모습과 유사한 천사의 차림새는 그들이 받은 직무가 영광스럽고 거룩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쏟아 붓게 될 진노의 대접으로 말미암는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위엄과 뜻에 일치하는 사역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보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진노를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진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의 발로입니다.

 

일곱 천사들이 수행할 심판은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의 발로입니다. 천사들의 차림새까지 이 진리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밝고 빛난 세마포 옷과 가슴의 금띠는 세상에 진노를 붓게 될 사역을 감당할 천사들의 순결을 나타낸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는 데에 순수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린 성전 문을 통해서 등장한 천사의 모습은 그래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피게 합니다.

 

그 주님이 어떠하면 그 일군도 그러합니다. 주님이 거룩하면 그 백성도 거룩해야만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는 것이 레위기 전체의 주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여러분은 거룩한 삶을 사셔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신분에 어울리는 삶을 세상을 살 때에 살아가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조화되는 행동을 여러분은 하셔야만 합니다. 아니, 여러분의 차림새 까지도 여러분이 어디에 속한 시민인지를 나타내 줄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열린 하늘 성전으로부터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일곱 천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주시해서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금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금 대접을 주고 있습니까? 네 생물이라고 말합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섬기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직속 부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보통 천사들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는 네 생물 중 하나가 하나님의 최고 시중으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긴 대접을 일곱을 일곱 천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 대접이 등장하고 있지요. 대접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대접이라고 하는 것은 잔치 때는 술잔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제사 드리는 때는 제사 드리는 짐승의 피를 가득 모아 뿌리게 될 때 그 담는 그릇을 가리킵니다.

 

5장에는 기도의 향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합니다. 여기 15장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그릇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를 내뿜는 그릇이 아니라 뜨겁고 쓴 독한 술이 가득 채워진 진노의 그릇으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계시록 5장에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성도들의 기도가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그 금 대접에 세세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히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요한은 같은 금 대접을 등장시킵니다. 이번에는 세세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말하자면 성도들의 그 기도와 하나님의 심판 사이의 상관성입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최종적으로 가져 오게 합니다.

 

미미해 보이는 여러분과 저의 기도가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시키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이 땅에 불러 오는데 있어 우리가 드리는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쁘시게 사용한다는 암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물의 종국을 가져 오는 심판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만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불의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십시오.”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밤낮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본문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세세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 자신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곧 세세에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범한 인류의 죄악을 여기에는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전에서 항상 범했던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말씀하는 표현입니다. 인간 역사는 악이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정말 순간순간을 제외하고 나면 세상은 악한 자들이 지배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구약을 읽어 보면 모세를 통해서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뒤에 다윗을 통해 일어나고 히스기야, 요시야를 통해서 일어나지만 그것은 긴 하나님의 역사의 흐름에서 잠깐잠깐 보였던 한 새로움의 흔적이었고 대부분의 역사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고 부르짖던 성도들의 기도로서 채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버려두시겠습니까?”하는 기도로서 채워진 역사가 인류의 역사인 것입니다. 어찌 악한 자가 자기보다 더 선한 자를 삼키려고 합니까?”라고 부르짖던 성도들의 기도였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은, 악이 판을 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악이 날뛰는 것처럼 보였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결코 좌절되지 않았음을 여기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진노가 여기 준비되어 있습니다. 세세토록 사람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응분의 심판이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빠져 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데도 불구하고 함부로 말하고 생활했던 자이 받을 진노가 얼마나 무서울 것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 여러분이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여러분이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 날짜를 결정했습니까? 가문을 정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아무 것도 결정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태어나고 보니까 김 씨 가문에, 이 씨 가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전라도에, 경상도에 태어날 것인지 여러분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거기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살면서 그 하나님 앞에 몇 번 감사해 보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어려움을 당하면 원망하기에 재빠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도 않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늘로부터 그 진노가 임하고 있다고 줄기차게 선언합니다.

 

이 분노와 심판 앞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맹렬한 심판과 분노만이 타오르고 있는 그곳에서 누가 과연 설 수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칠 배나 쏟아지는 현장에서 누가 하나님 앞에 어엿이 설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만이 어린 양의 진노에서부터 덮어 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합니다. 결코 여러분이 열심히 다닌 그 교회 생활이 아니라, 여러분이 열심히 바친 헌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여러분의 죄를 영원히 도말하실 것입니다.

 

네 생물중 하나가 지금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전달함으로서 심판 준비가 완료되고 있습니다.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이제 제 22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성전이 열림으로 시작되었던 21장은 소위 성전이 닫히는 것과 동등한 환상으로서 종결되고 있습니다. 성전에 연기가 가득해짐으로 아무도 접근 할 수 없는 상황 마치 성전 문이 닫힌 것과 같은 상황으로서 22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기가 타오르는 성전을 요한과 함께 바라보십시오. 뭉게뭉게 타오르는 하나님의 분노의 연기가 이제 성전을 순식간에 가득 채워서 인간의 죄를 향한 심판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거룩으로부터 나오는 연기입니다.

 

구약에서는 종종 구름이나 연기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감히 사람이 접근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과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시는 엄숙한 순간은 아무 사람도 감히 그분께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캄캄한 그 구름 속이나 짙은 연기 속에 아무라도 다닐 수 없듯이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으로 인해서 우리 보잘것없고 더러운 사람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종종 그렇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진 성막이 우리가 예배하는 목표가 돼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 위에 거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어야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의 수준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감히 두려워서 옷깃을 여미게 될 때에 그 때에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사로잡는 하나님의 거룩에 두려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가운데서 동일한 두려움이 지배하게 될 때에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가운데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백성 가운데서 가득하게 나타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이 칭송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던 무관심의 벽들이 허물어지고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형제 안에서 자매 안에서 영광을 보게 되는 그 순간이 도래할 것입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음이며 하나님의 거룩이 우리 가운데에 찾아오게 될 때에 우리는 두려워서 감히 아무도 입을 열기를 원치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우리 가까이 접하게 될 때에 우리는 자신의 죄악을 보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의 성막이 봉헌될 때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성전이 바쳐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하나님께 마지막 봉헌될 때에 그 피로서 바쳐질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가득했습니다. 감히 아무도 두려워서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가 환상을 볼 때도 문지방의 터가 흔들이면서 온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 가운데 거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온 집이 흔들리는데, 문지방까지 흔들리는데 그 사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다. 만군의 여호와여.” 라고 소리치는 것을 여러분은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 역시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엎드러진 기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러져 본 적이 있습니까? 가득해진 연기로 인해서 접근 할 수 없는 환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리켜 주고 있습니까? 이제 심판 준비가 완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심판이 끝나기까지는 아무도 하늘의 성전에 접근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엄숙한 임재로 인해서 죄악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 중재도 이제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더 이상 중보의 기도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마지막 시간이 도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의 시간이 이제는 다했습니다. 오직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만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은 아직 은혜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행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이 예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은혜의 때가 지나가고 나면 심판의 때만 남습니다. 회개 요청 대신에 심판의 집행만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은혜의 때가 다 가지 않을 때에 구원의 역사에 여러분 동참하십시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반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여러분이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은, 함께 모여서 듣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여러분과 같이 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 이 구원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이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항상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때가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어떤 간구도 하나님의 진노의 집행을 연기 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 위엄과 영광 가운데서 그의 심판을 이제 수행 하십니다. 심판 하신 후에 자신의 위엄과 권능으로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가득한 연기 아무도 접근 할 수 없는 상황의 도래는 하나님 자신의 종국 선언입니다. 이제는 끝이다.”고 선언합니다. 이제 심판 준비는 완료되었습니다. 은혜와 자비의 출처이시던 하나님의 그 심장이 이제는 심판과 재앙의 근원이 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인류를 만드시고 그 마지막 순간이 오기까지 하나님의 심정이 인류를 향해서 자비와 긍휼로 무궁하셨지만 이제는 그 긍휼을 닫으시기로 결단하는 때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저버린 자들에게 남는 것은 정죄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를 때에 듣지 아니하는 것은 마지막 심판을 자신의 삶에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 하실 때에 여러분은 각자가 자기의 삶을 돌아보셔야만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들어 보아야만 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간이기에 여러분의 중보의 기도가 효력을 발하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여러분의 중재의 기도가 아직은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간이기에 중보의 기도가 통합니다. 하늘 성전 문을 열고 들으시는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분을 향해서 우리가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연약을 인해서 나아가서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형제의 허물을 인해서 부르짖을 수가 있는 때입니다.

 

은혜의 성전 문이 닫히기 전에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은혜의 성전 문이 영원히 닫히기 전에 이웃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간구 하십시오. 곧 역사의 종국 재앙의 때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엄위로우심 앞에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산아 나를 덮어라 바위야 나를 삼켜라.”하고 호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