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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027_정근두.mp4
    성경본문
    골2:6
    설교일
    2019-10-27

신앙생활, 어떻게 할 것인가?

2:6

구주대망 20191027일 주일 찬송 32, 80, 43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함께 이 복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특별히 이번 잔치에 예수를 믿기로 마음먹고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드린 이웃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지난 주일부터 시작한 잔치에 수요일 밤까지 방문카드를 기록해 주신 분이 모두 1,865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을 모시고 나오는 일을 위해 애쓰신 울산 교회 성도들께 감사드리고 이 일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웃 여러분이 거기 응답해 주신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번 기회에 처음 신앙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함께 기도를 드린 분들을 마음에 두고 오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던 그 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처음 오신 분들을 배려하는 일을 최우선 하는 것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모든 농사가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밭농사는, 거기 심긴 곡식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긴 논에 모를 심는 일이나 밭에 고구마를 심는 일이나 어떤 농사일이든지 처음 심고 나서 잊어버린다면 농사는 되지 않습니다. 계속 돌보는 일,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이번 잔치에 여러분이 모시고 와서 함께 기도했던 그 분과 함께 지금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결혼해서 수 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해서 애를 쓰고 기도하고 잉태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다가 아기를 가져 순산을 했는데 그 다음 그 아이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만다면 그처럼 무책임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번 가을 이웃초청 잔치에 모시고 왔던 분들도 계속적인 여러분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오늘 오시면서 모시고 나오신 분은 정말 잘 하셨습니다. 앞으로 한동안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분들을 꼭 모시고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오시는 일에 관심을 쏟기를 바랍니다.

 

이제 새로 신앙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예수님의 가장 측근 사역자의 하나였던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 오늘의 터기 남부에 있는 골로새 지역에 사는 신앙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그들에게 보낸 사랑의 권면을 우리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일생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진리 안에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을 위해 같은 열심과 노력을 다했습니다. 마음에 끊임없는 부담을 가지고 진리 안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이러한 바울의 관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권면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에게 한 충고입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서. 그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말합니다.

 

맨 먼저 살필 일은 여러분들에게 일어난 변화입니다. 지난 잔치를 통해서 여러분이 영접기도를 하셨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모셨다는 일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드립니다. 그 분의 말씀 하나 하나를 귀히 여기고 소중하게 받아드립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그 분을 모셔 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결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교훈을 귀히 여기고 순종하는 일에도 재빨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그 분을 모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밖에 무엇을 했든지 하지 않았든지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여러분의 마음에, 여러분의 인생에 모셨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빈손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여러분이 얻지 못한 값진 체험들이 남아있지만, 아직도 여러분들이 오르지 못한 높은 신앙의 산정이 있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모셨다는 사실을 중요시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젊든지 연세가 드셨든지, 배웠든지 못 배웠든지 믿음이 충만하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염려와 근심으로 고민하고 있든지 상관없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사건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기로 결단한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서 여는 마음을 결코 스쳐지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심하는 마음은 하나님 편에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으로 드린 기도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두들 기도하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함께 기도하자, 좋은 게 좋은 거니까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온전히 당신의 사람이 되기까지 물러서지 아니할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새 삶을 살기를 원하여 함께 기도하신 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집념은 대단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실을 두고 자신을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한 일은 받아드린 사실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빈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한 일입니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 한 일입니다.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이 동정해서 던져준 것을 받았다고 자랑할 것이 없는 것과 흡사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는 분에게 달렸지 받아드린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심했다는 사실, 혹은 믿기로 작정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 자신이 자랑할 근거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받아드린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은 선물을 자랑하고, 그 선물을 주신 분을 칭송하십시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셨습니다. 그의 진리를 받아드리고 그것들을 믿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계명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도 완전한 순종이란 먼 훗날의 일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제 그리스도를 받아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꿀보다 송이 꿀보다 더 좋아하는 자리로 나아왔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그 어떤 명령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리로 나아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주님을 여러분의 생명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그분을 통해서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공급하는 음식처럼 날마다 주님으로 인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생명의 물처럼 그 분으로 인해서 해갈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모셨다고 할 때 그리스도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삼대 직책을 맡게 되는 사람은 기름부음을 통해서 취임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 주님은 정식으로 취임해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분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서 구원자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섬기는 삶을 사셨고 우리의 죄를 위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 일을 수행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성령의 능력을 받으신 분입니다. 동시에 측량할 수 없는 선물을 아직도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일을 하시는 기름부음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리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직함이라면 예수는 그의 개인 이름입니다. 여러분이 들은 그 어떤 이름보다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노래합니다. 내 귀에 들린 이름 중 가장 귀하신 이름 예수라고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분이 여러분의 구주이십니다. 모든 죄와 그 벌에서 구출하실 분이십니다. 죄의 능력과 지배에서 구출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으면 여러분은 전적으로 예수 그 이름을 통해서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다른 구원자는 필요하지도 않고 바랄 이유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해결 자는 예수 그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로서 영접하셨습니다. 여러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낸 여러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모셔드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경배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분이 우리 주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문제의 해결자요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 손가락을 그 못 박힌 손에 넣고 우리 주먹을 그 옆구리에 넣어서 도마처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를 다스리시고 지배하십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복되신 예수 그 이름을 아시지 못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여러분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셨습니까? 못 박힌 손으로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그 분을 밖에 세워두지 마십시오. 생명의 강수가 여러분의 발아래 흘러가고 있는데 아직도 마시지 않고 계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는 눈먼 사람을 보고 여러분 가운데 누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할 사람이 있습니까? 의의 태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로 나오지 아니하는 이웃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감정일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번도 아버지의 사랑이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고아를 보고 안타까이 여기지 아니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이웃 여러분이 하늘 아버지의 가없는 사랑 안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건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언제나 병약해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보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보고 대 의사되신 주님의 치료를 받도록 권하지 않는다면 어찌 인간의 도리를 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초청 잔치에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이 나오기를 그처럼 소망한 것입니다.

 

갈라진 대지가 소낙비를 흡수하듯이, 시들어가는 초목이 떨어지는 빗방울로 소성하듯이 주님을 받아드리시기만 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은 다만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모셔 들이는 일입니다.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요 병상에 누워 쇠약해진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살필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드렸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이미 우리가 한 일을 회상시킬 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

 

상상해 봅시다. 우리가 예수님께 그동안 가련한 죄인이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 이제 당신은 구원을 받았소. 이제 당신 길을 알아서 가시오. 지금껏 탕자처럼 살았지만 그 모든 잘못은 용서되었소. 이제 신발도 신었고 가락지도 끼었고 헐벗음을 가릴 좋은 옷도 입었으니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시오

 

물론 받아들이고 환영하고 용서해주시는 일만해도 무한한 호의를 베푼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훨씬 더 큰 호의는 내 아들아, 이제는 집을 나가지 말고 나와 함께 지내자라고 말하는 따뜻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읽은 성경말씀에 나타나 있는 바입니다.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이제 그 분 안에서 항상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분 안에서 행하라 그 분 안에서 걸으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천국에로의 길이 되시니 그를 바라보고 그를 따라서 걸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분을 우리 앞서 달리는 분으로 바라보고 그를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그를 동반자로 바라보고 그와 함께 걸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를 기쁨으로 여기고 그 분 안에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행하라는 말은 행동과 진전을 내포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의 모든 삶을 주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보고 여러분이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채도록 하십시오.

 

또한 행하라는 말에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알아 가는 일에도 진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이제 새로운 분을 만나서 사귀는 즐거움을 맛보기를 바랍니다. 다른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권면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걸어가는 새로운 길을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가까이 교제하는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여러분의 이웃으로 하여금 이제 알도록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걷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우리가 아직 다 말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주님을 모신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 신앙인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새 걸음을 시작하신 이웃 여러분,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주님 안에서 걸어가기를 소원합시다. 주님 안에서 행하는 삶은 아침에 일어날 때에 맨 먼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일어나는 일에서 주님의 인도와 축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행하는 삶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새날을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로운 손을 인해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직장을 향해서 가면서도 하루 동안 하게 될 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일입니다. 사업 처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행하는 삶은 손을 바쁘게 움직일 때에도, 마음이 사업으로 분주할 때에도 우리의 심령은 복된 주님과 함께 하는 밀실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거기는 아무도 우리를 따라올 수 없고 어떤 일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는 곳입니다. 시간이 흘러가서 정오의 태양이 뜨겁게 비칠 때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그늘과 피난처로 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걷는 삶은 서늘한 저녁 시간이 찾아오면 그와 동행하는 것을 우리의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복된 밤의 안식이 찾아오면 주님 품에 우리의 온 몸을 맡기고 잠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결신 자 여러분, 신앙생활은 언제나 주님을 생각하는 삶입니다. 만약 주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일 것입니다.

 

주와 함께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주와 함께 걷는 곳은 어디나 아름다운 정원이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 어디나 즐거운 곳이 될 것입니다. 바람은 상쾌할 것이고 향기는 진동할 것입니다. 불안하고 귀찮은 일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무한한 사랑의 산정을 향해 올라가 보십시오. 주님의 무궁한 계획을 깊이 살펴보는 기쁨을 누려보십시오. 사람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깊숙이 그 사랑을 추구하는 복된 삶이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 이 말씀 기억하고 사는 한평생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