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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103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21장 1-8절
    설교일
    2019-11-03

새 하늘과 새 땅

계시록 21:1-8

구주대망 2019113일 주일 찬송 31, 246, 240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1, 12월은 계시록 16~20장을 건너뛰고, 21, 22장의 본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심판은 20장까지로 끝났습니다. 땅위의 성도들을 괴롭히던 모든 세력들은 이미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짐승도, 거짓 선지자도, 사단도 모두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 누구든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사망과 음부마저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이 마지막 본 환상입니다. 여기 21장은 20장까지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요한의 환상은 이제 그 극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래에 관한 요한의 환상은 이제 절정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의가 보금자리를 트는 하나님의 통치의 새벽이 동터오고 있습니다. 심판은 끝나고 세상은 새로워지고 기쁨과 조화가 온 누리에 가득 넘치는 새날이 밝아오고 있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1) 지금껏 요한은 자주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하여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일들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예루살렘에 대한 계시를 봅니다(1-2). 그리고 보좌에서 나오는 큰 음성은 이것이 인류에게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를 설명합니다(3-4). 그 뒤를 따라 나오는 구절들 역시 보충설명으로서 목회적 관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5-8).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에 참여하는 약속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낙심되는 상황 속에서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진리를 떠나 적그리스도의 길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파멸의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엄숙한 경고로 끝맺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고 있습니다.

 

본문은 수난 당하는 교회의 궁극적 축복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바라는 궁극적인 보상은 무엇입니까? 그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이 누릴 최고의 보상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환상은 계시록 전체의 절정인 동시에 성경에 나오는 모든 구원약속의 절정이기도 합니다.

 

적그리스도와 더불어 싸워온 교회의 유일한 위로는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땅위에 온전히 성취되는 것 이하는 아닙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시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음성이 그날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요한이 마지막 본 환상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1) 요한은 너무 말들을 아껴서 표현하기에 해석하기가 종종 어렵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만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있게 하셨습니다. 권능의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 창조를 통해서 그의 전능하심을 유감없이 드러내셨습니다. 그의 전능하심을 분명히 나타내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이제 그 자리를 새 하늘과 새 땅에 내어줍니다.

 

이 진리는 구약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102:26-27).

 

시인의 고백만이 아니라 선지자의 예언에서도 입증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 .”(65:17-18)

 

우리는 동일한 진리를 신약 다른 곳에서도 발견합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베드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우리 주님께서도 직접 선언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13:31)

 

그러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 않고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새로운 상태로 변화됩니다. 본문은 그것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릅니다.

 

여기 라는 형용사는 질적으로 새로워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금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새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이 질적으로 새로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있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또 다른 하늘과 땅이 도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것들이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것과 다른 하늘과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 새로워진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태초에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동일한 하늘과 땅이지만 거기는 더 이상 가시와 엉겅퀴가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약육강식의 동물계가 아닐 것입니다.

 

우주의 신음과 고통은 그치고 본래적인 영광이 회복될 것입니다. 지금 죄의 결과로 신음하고 있는 자연계가 치유되고 원상대로 회복되어 모든 잠재적인 가능성이 실현될 것입니다. 내재적인 모든 가능성이 활짝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하는 순간에 함께 저주 아래 갇혔던 대 자연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동참할 것입니다. 인간 구속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 저주받은 우주도 새롭게 될 것입니다. 죄와 사단의 영향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계시하는 영광스런 우주로 변모할 것입니다.

 

그날은 더 이상 새들이 울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만 영광스런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짐승의 포효하는 소리 대신에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뛰놀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우리 입에서 탄식 소리가 멈추고, 자연의 신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주의 신음소리는 그치고 대 자연의 합창소리가 온 누리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여기서 요한은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포효하는 바다 물결 가운데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실감할 것입니다. 특히 고대 세계에서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은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동반하는 일입니다. 때로 바다는 두렵고 캄캄한 미지의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는 언제나 물결과 파도가 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가 안정되지 못한 세상의 적합한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57:20).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것은 옛 타락한 세상과 새롭게 구속된 세상 사이에는 동질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타락한 옛 질서와 구속된 새 질서의 엄청난 차이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옛 세상은 전적으로 새롭고 다른 새 질서에 의해서 대치된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5절의 선언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 요한은 먼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더 이상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조차도 거기에는 다시 있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한은 또 다른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배경으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도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구속받은 백성들의 처소를 상징합니다. 그것이 거룩한 이유는 죄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많은 무리가 안전하게 함께 살며 서로 친교를 나누는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늘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거처로서 말하기도 하며 성도들의 본향으로도 소개하며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이 거하는 곳으로도 말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신부로서 단장한 구속받은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계시록은 두 도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며 동시에 두 여자의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음녀로 비유되는 세상 도시와 신부로 비유되는 하늘의 도성을 자주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3절과 4절을 통해서 12절에서 요한이 보았던 것의 의미를 파악해 봅시다. 12절에서 요한은 그가 본 계시의 절정을 기술합니다. 그러나 그 환상의 정확한 의미는 3절과 4절의 설명을 들을 때 분명해집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3,4)

 

3절은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 의미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구약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 주제를 보좌에서 나온 큰 음성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언약의 후렴과도 같은 표현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3).

 

하나님의 모든 구원 역사는 여기에 그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구원 사역의 목표가 표현되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맺은 언약의 목표이고 모세와 다윗을 통해서 갱신한 언약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신약 계시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이 언약의 약속이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 . .” 하나님의 장막은 역사 속에 그 백성과 함께 했습니다. 광야 생활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장막은 그 백성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사도 요한은 그 복음서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한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지금 요한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한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광스러운 임재를 사람들과 함께 했다고 증거합니다. 더 이상 일시적인 동거가 아니라 이 시점부터는 영원토록 그 백성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요한은 보통 단수로 나타난 그 백성 대신에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복수형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구속받은 백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 가운데 모든 민족과 백성과 나라와 방언 가운데서 나온 그 백성들과 동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고 오는 세대에 이후로 그 백성들 가운데 계시며 그 백성들과 교제를 나누시는 분입니다.

 

4절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계시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축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4). 은혜와 영광이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계시므로 옛 질서 속에서 보았던 모든 불행한 것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늘에서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지상에서는 다 상상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그 영광 자체를 묘사할 말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현세의 것들과 대조시켜서 서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4). 왜 이런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까? 위로하시는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 날 여러분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사망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생명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어떤 슬픔도 잠식할 수 없는 기쁨을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옛 질서는 다 지나가고 만물은 모두 새로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이 사실을 내다보고 있습니까? 믿기지 않는 놀라운 영광을 자주 묵상해 보십시오. 장차 다가올 영광스런 소망이 오늘의 어두운 현실을 밝히게 하십시오.

 

요한은 지금 그 목적을 위해서 이 환상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기에는 너무 엄청난 사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5절 이하에서 자신의 권위로 확증하며 최종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5) 여기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 대한 절대적인 보증으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진술은 참된 것이고 실재적인 것입니다. 그 많으신 긍휼대로 . . .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 소망은 그를 바라는 모든 자에게 결코 실망이나 환멸을 안겨 주지 않습니다.

 

약속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모든 약속은 약속하는 이의 신실성과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갖게 될 어린 양과 갖게 될 친밀한 교제의 약속을 우리에게 해 오신 분이 누구입니까?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자신을 밝히십니다. 그는 앞에서도 동일하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1:8,18; 2:8).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기시킵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과는 다른 내일에 대한 약속을 보장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46:10)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지금 그 분이 본문에서 이루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끝을 다 내다보시고 만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알파는 반드시 하나님의 오메가를 지향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그대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뜻하신 바는 반드시 끝장을 보고 맙니다. 우리 인생은 계획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과 다른 점은 계획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성취와 마찬가지로 확실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신 그 분을 사모하십시오. 혼란스럽고 암담한 전망만이 우리 눈에 들어 올 때도 하나님의 계획들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모든 계획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확실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불확실할 수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미래는 안전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존재토록 하셨듯이 그 분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만물이 새로워질 때 우리 영혼의 깊은 욕구도 채워질 것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을 가진 모든 자들을 만족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목말라하고 굶주려하는 모든 자들은 그 날 배부를 것입니다.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영적 갈증을 느끼십니까? 그 날이 오면 생명수 샘물로 해갈함을 얻을 것입니다. 지금 목마르다고 음녀의 잔을 받아 마시지 아니한 모든 자들을 위해 준비된 생명 샘물이 여러분의 갈한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한량없는 충만한 삶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로부터 흘러 넘칠 것입니다.

 

지금 나아오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고달픕니까? 진정한 만족이 없습니까? 생명수 샘물만이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한 삶을 주시는 분은 어린양 예수님입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옵니까?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 부터 나옵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22;1,2)

 

그러나 이 생명수 샘물로 마시는 약속은 누구에게 주시고 있습니까?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7). 이 영원한 축복은 오직 이기는 자에게만 주어지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서도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을 들은 바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 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감춰진 만나와 흰 돌을 받을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열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을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약속들은 극심한 시련 가운데서도 신앙을 끝까지 고수한 자들이 기업으로 누릴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셔서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17:7)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삼하 7:14)라고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 옛 약속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는 모든 자에게 성취됩니다(3:29).

 

하나님은 지금 선언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음녀에게 미혹되어 짐승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축복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갈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만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는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축복을 박탈당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8).

 

하늘의 음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예하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의 명단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명단은 길거리에 써 붙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은 모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맨 먼저 두려워하는 자들을 언급합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자는 오히려 겁을 내는 자들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극심한 핍박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를 망설이며 겁을 먹고 신앙을 중도에 포기하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여러 번 살펴보았듯이 요한계시록이 쓰인 목적은 핍박 하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짐승의 위협 때문에 겁을 먹지 말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신뢰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의 환상도 기록되어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 역시 신앙을 가진 적이 없는 자들이라기보다는 신앙을 중도에 부인하는 자들을 뜻합니다. 중도에 신앙을 포기하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대신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할 것을 엄숙히 경고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1절부터 4절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예언은 하나님 자신이 보증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예하는 약속을 하나님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에게만 보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 대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는 경고를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은 주어집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신실한 자들의 몫입니다.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하신 권면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귀담아 들어봅시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