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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110_정근두.mp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21:9-21
    설교일
    2019-11-10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1

요한계시록 21:9-21

구주대망 20191110일 찬송 21, 236, 48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일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는 장엄한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순간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가슴 설레는 장면을 대하고 있습니다.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로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설명합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 단장을 끝낸 신부의 설렘이 그 순간 우리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설명을 하는 천사를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천사는 앞에 등장했던 적이 있습니다. 171절에서 그 천사는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보여준 동일한 천사입니다.

 

동일한 천사에 의해서 전혀 대조적인 환상을 요한은 접하게 됩니다. 멸망 받는 음녀의 도성 바벨론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이 크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상 심판과 구원은 별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은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 완성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공의로 말미암는 심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공의로운 심판은 영광스런 구원의 서곡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아내가 나타나기 전에 음녀의 심판은 필연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바벨론에 살면서 동시에 새 예루살렘에 거주할 수는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살기를 원하신다면 음녀의 도성 바벨론에서부터 나아와야 합니다. 죄악 된 세상의 심판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도래를 위한 필연적인 서곡입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천사로 하여금 두 가지 상반된 환상을 소개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 뿐만 아니라 두 가지 상반된 환상을 요한에게 보여준 그 천사를 통해서 우리는 또 다른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가 해야 하는 사명을 골라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위해 파송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축복을 위해서 파송하실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천사에게처럼 차례로 그 일들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꾼은 누구든지 보냄 받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가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시키는 일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자기가 할 일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 그러면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의 인도를 받아봅시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요한은 성령으로 이끌림을 받아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신부가 아니었고 하나의 도시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부나 거룩한 성이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사가 요한에게 소개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장차 영광스럽게 될 교회를 가리킵니다.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성 예루살렘 역시 미래에 나타날 영광스러운 교회를 보여줍니다.

 

요한과 함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요한은 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소개할 때마다 요한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2,10).

 

하나님의 교회는 그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태어난 자들로서 구성됩니다. 요한은 자기 복음서에서 사람이 위에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에베소 교회를 향해 바울 역시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권세가 하나님의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요한이 바라본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요한은 한마디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11). 그 찬란한 영광을 우리는 11절 뿐 만 아니라 뒤에 다시 18절에서 21절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은 첫 눈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 찬란한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어떻게 사람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요한은 유사한 경험을 앞에서도 한 바 있습니다.

 

그는 4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환상을 보았을 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겨우 보석의 아름다움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4:3)

 

이제 요한은 다시 한 번 보석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11).

 

벽옥은 하나님의 영광을 설명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아마 블루 다이아몬드를 상상하면 될까요? 선명하며 투명하고 매우 밝습니다. 이 보석의 특징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교회에 적용해 봅시다. 드디어 영화롭게 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부여받고 이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궁하신 완전함과 모든 고귀한 속성들이 교회를 통해서 반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교회를 통해서 수정같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지혜와 선하심이 교회에서 반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득히 안고 이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진 교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러면 지금부터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위용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 째로 우리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성벽에 대한 묘사를 살펴봅시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12-14)

 

우리는 여기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크고 높은 성곽 앞에 압도를 당합니다. 크고 높은 성곽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대 사회에서 크고 높은 성벽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적군이 못 들어오도록 막고 시민들을 성 안에서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나타난 크고 높은 성곽은 하나님의 교회가 누리는 안전과 보호라는 두 가지 선물과 특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날 교회가 영광스럽게 될 때에는 더 이상 교회를 공격할 세력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지금 이 세상의 말들로서 장차 저 세상의 영광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이 세상의 표현을 빌려서 저 세상의 영광을 기술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안전을 노래하기 즐겨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 . 그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 .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91:1,2,4,10).

 

동일한 진리를 시편 125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125: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바라보십시오. 요한 계시록을 꿰뚫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기억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전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공격을 당하고 안팎으로 흔들려도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참 교회는 파괴될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볼 때 교회는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도 안전하고 영광스러운 도성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또한 열두 문이 있습니다. 그 문에는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곽의 열 두 기초석에도 어린 양의 열 두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가리키는 바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분명히 당시 교회의 신학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성문과 기초석에 적힌 이름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은 모두 안전하게 모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그 성안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한 명도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성도들도 거기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모두 거기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자들을 단 한 명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과 어린 양의 열 두 사도의 이름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영광스럽게 종결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구약 언약 백성과 신약 언약 백성은 모두 하나로 만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 중에서 신구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60:18)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찬양의 주제 역시 구원입니다.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와 흰 옷을 입고 무엇을 노래했습니까?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열 두 지파도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가리키고, 열 두 사도의 이름도 하나님의 백성 전부를 가리킵니다. 언약의 시대 구분이 없이, 모두 동일한 구원을 그 날 마음껏 노래할 것입니다.

 

성문의 천사들은 하늘 백성을 모우는 사역을 감당한 천사들을 연상시킵니다(13:27). 동시에 성문을 지키는 파숫군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62:6-7)

 

이사야 선지는 성벽에 선 파숫군을 통해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도록 기도하는 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영광 중 도래하기를 중보 기도하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일 그 나라는 완성되어 하늘 시민을 모우는 일은 종결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살필 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규모입니다.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15-17)

 

요한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천사가 금 갈대로 척량하는 것을 묘사합니다. 계시록 111절에도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과 제단과 거기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는 보존이나 심판을 위한 척량이 아니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엄청난 크기를 보여주는 척량입니다.

 

이 성은 길이와 폭과 높이가 다 같이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었습니다. 어떤 지상의 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입니다. 이것을 굳이 오늘 우리의 도량형으로 환산할 이유는 없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는 상징적이고 본래 숫자 그대로 두어야 그 상징성이 가장 잘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일만 이천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흔히 삼위 하나님을 상징하는 3이라는 숫자와 땅의 사방을 상징하는 4라는 숫자를 곱한 데에 많은 수효를 상징하는 1000을 다시 곱해서 나온 숫자로 봅니다. 이 척량이 말하는 바는 모든 세대 모든 민족에서 나온 셀 수 없는 많은 무리들을 다 수용하기에 부족이 없는 광활한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자들이 땅의 사방에서 나올 것과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 모두를 수용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하여간 숫자는 산술적인 의미 이상을 담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는 구절이 시사하는 바를 묵상해 보십시오.

 

요한은 지금 인간의 말로서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정말 그 날은 인간의 모든 경계를 넘어서 땅과 하늘조차 하나로 결합될 것입니다.

 

또한 장, , 고가 똑같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그와 동일한 모형으로 만들어진 지성소를 기억하게 합니다(왕상6:20). 구약에 정통했던 요한의 의중에는 하나님의 거처 지성소가 있었을 것이고 지금 그가 본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완벽한 거처가 되었음을 집요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안에 성전이 없다는 뒤에 나오는 표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구약 시대 지성소에는 일 년 한 차례 대 제사장만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성도들은 지성소의 원형인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매 순간 은밀한 교제를 나누실 것입니다. 그 성안에 거하는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기에 모두가 친밀한 교제를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지성소에 특별히 거하셨듯이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기에 하나님과 우리들의 교제는 더 없이 친밀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생명 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 성의 장, , 고가 같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유의해 봅시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성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새 예루살렘은 완벽한 조화의 도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목적이 온전하게 달성된 것을 상징합니다.

 

모든 세대, 모든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이제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온 우주를 운영하시는 삼위 하나님이 펼치시는 구원 역사는 완벽할 것입니다. 각 나라와 언어와 민족과 족속들 가운데서 나온 무수한 사람들이 거룩하고 완벽한 구원을 거기서 누릴 것입니다.

 

요한이 세 번째 감동한 사실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입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18-21)

 

요한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지니신 아름다움을 반사하는 우리의 영광스런 모습을 11절에 간단히 한마디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만 18-21절에서 여러 가지 보석들을 들어서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요한이 본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색채들은 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황금색, 붉은색, 자주색, 보라색, 초록색, 푸른색, 노란색, 살색, 그리고 벽옥같이 맑고 빛나는 다이아몬드, 상상을 초월하는 진주와 정금성곽과 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있는 그대로 볼 것입니다.

 

그 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도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 묘사한 것은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작은 촛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던 찬연한 영광을 우리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스바여왕이 솔로몬을 만나고 나서 한 고백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왕상10:7). 우리들이 실제로 하늘나라에 도착하면 우리가 들었던 것은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의 영광스런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면서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그 영광스런 단장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의 말에 하나님의 지혜가 반영되게 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아는 척 하지 않습니다. 안다고 잘난 척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지혜가 판을 치는 곳에는 시기와 다툼이 판을 칩니다.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자리하는 곳에는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과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반영되는 삶을 추구하십시오.

 

이것이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습니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이 되게 하십시오. 한날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분을 바라보십시오.

 

사도 요한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에 압도당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영광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건전한 자아상은 건강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연적이듯이 영광스러운 교회상은 성도의 교제에 필수적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서로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 안에서 주의 영광을 보며, 자매 안에서 주의 영광을 보는 안목이 땅 위에서 성도의 교제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은 장차 우리가 도달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로 묘사되는 우리의 자아상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은 여러분과 저의 영광스러운 미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분입니다. 그 날 우리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그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의가 보금자리를 트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십시오.

 

그 날 신랑을 위해 예비한 신부의 아름다움에 비길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과 저의 모습이 지극한 영광으로 화할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하는 모습들을 확인하며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을 향해서 나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