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117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 21:22-27
    설교일
    2019-11-17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2

21:22-27

구주대망 20191117일 주일 찬송 20, 235, 490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일 우리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위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엄청난 크기와 찬란한 영광을 접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성의 또 다른 특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외형적으로 관찰했다면 이 시간에는 그 성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관찰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성전의 위치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들을 만나주시는 곳이 성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회막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건축된 다음에는 성전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칠십년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맨 먼저 허물어진 성벽을 건축하고, 불타버린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열왕들의 시대와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에 있어서 성전은 유대인 예배의 중심지였습니다. 다만 신약 시대에 와서 쿰란 종파만이 성전 예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제사장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새 성전이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이 점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수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하시면서 성전제사가 새로운 예배 질서로 대치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 다른 어떤 말보다 이 말이 당대의 유대 지도자들을 격분시켰습니다.

 

주님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지으리라고 말한 것으로 고발되었습니다. 그들이 46년에 걸쳐서 지어놓은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짓겠다고 말한 예수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새로운 성전을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다. 그 성전은 살아나신 주님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은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21)고 설명합니다.

 

유대인에게 성전이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은혜 가운데서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는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을 드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전의 역할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주시는 장소가 되셨습니다.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성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으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요한은 지금 이것을 염두에 두고 성안에 성전을 보지 못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그 백성을 만나주시고 그 삶을 받아주십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 한국 교회가 성도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 땅에는 성전은 없습니다.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함께 예배할 공간은 예배당이라고 불러야 하고, 교제할 공간은 친교관, 하나님의 진리를 전수시킬 공간은 교육관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는 성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통해서 완성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성전을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그 백성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삶을 받아주십니다.

 

사실 구약 시대의 성막이나 성전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였습니다. 모세가 본떠서 만든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축소판이라고 히브리서 85절은 말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새 예루살렘 성이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꼭 같은 정육면체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또 회막 가운데 있었던 지성소가 꼭 같은 정육면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참 성전은 이제 사람의 손으로 건축한 것이 아닙니다. 돌로 지은 것도 아니고 더욱이 보석으로 지은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의 성전이 아름다웠으니까 지금도 교회당을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건축에 돈을 끌어 모우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공간을 수정으로 지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새로운 성전은 구속받은 수많은 성도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구속받은 백성들은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위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벧전2:5)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이 바로 신령한 건물로 지어지는 성전이 되는 동시에, 그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바울도 동일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 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고 설교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점점 더 완성되어 갑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서 열어드리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린 순간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성전이 된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며,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당신의 거처를 이루어, 우리 안에 온전히 거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표현이 맞긴 하지만 완벽한 표현은 아닙니다. 반대로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이 대대로 거할 거처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90:1)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처소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성안에 성전을 보지 못한 것은, 성도들이 성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는 것은 그 주민들 때문이 아니라 전능하실 이와 어린 양이 우리들의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옛 시대 사람들은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이제 그 성 새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직접 하나님을 뵈옵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림자의 역할을 했던 성전은 필요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모든 축복과 은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으로부터 그 백성들에게 도래할 것입니다. 창조주요 구속주가 되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이제부터 그 백성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성전의 역할은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만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 양에 의해서 충족되고 있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표현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동등하신 분인 것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해방하신하나님의 어린양께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도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계속 감당하실 것을 보여줍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찬송의 주제가 되실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그 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뵙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2 해나 달의 비췸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23).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영광이 그 성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에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다고 요한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빛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아니한 빛이 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그 빛이 그 성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와 달의 비췸이 더 이상 필요치 아니할 것입니다.

 

요한은 지금 새로운 세상의 천문학적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거기에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적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임재로부터 발산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빛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낮의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60:19). 우린 그 때 이 예언이 성취된 것을 확인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의 빛을 제공할 것입니다. 어린 양은 그 빛을 전달할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요한은 일찍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4).

 

어린 양의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하신 영광과 동일합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사도들은 변화 산에서 이 영광을 한 번 바라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특권을 누렸던 사도 요한은 이와 같이 증거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그 영광에 동참했던 베드로 역시 그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벧후1:16-17).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는 표현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8:12)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함께했던 회막에 나타났던 영광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빛이시오 구원의 근원이십니다. 온 인류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비치는 등불이 되십니다.

 

세 번째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특징을 3 만국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는 말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21:24~26)

(21:27)

 

요한은 다시금 우리가 아는 현세적인 사람의 말로, 우리가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고, 우리 마음에 한 번도 생각이나 상상해 본적도 없는, 장차 올 영광의 나라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성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완전 개방되어 있는 성이지만 어떤 원수의 공격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질 않습니다. 사실 모든 원수들은 이미 불타는 못 속에 던져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문이 열려 있으며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그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고 들어가리라고 하니까 오해하는 사람이 나올까봐 걱정됩니다. 이 세상의 표현들을 빌려서 그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강대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변의 모든 나라를, 온 천하를 평정하면 그 성문이 활짝 열려있고 열방이 조공을 가지고 그 성문으로 수시로 들어갔던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제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빌려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달리 말해 복음의 진리가 온 세계에 넘치게 될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완성될 때에 구속받은 자들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부터 나올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사야의 예언을 빌려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 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60:2-3).

 

세상은 캄캄한 중에 빠지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영광 가운데, 영화로운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이 말세의 특징이 될 것입니다. 그 날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찰 것입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 다니게 될 것입니다.

 

만국 백성들이 그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올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모든 가능성이 활짝 꽃피게 될 것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 안에 심어주셨던 모든 재능들이 활짝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완벽한 완성을 보여주는 것을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심어주신 이 모든 재능들이 지금은 우리의 환경 때문에 우리 부모들의 욕망 때문에 교육제도 때문에 제대로 피어날 수 없지만 그 날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그 영광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 그리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온 모든 백성들은 창조주요 구속주 되신 하나님께만 영광과 존귀를 전적으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4 성문들은 닫히지 아니하리라고 요한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문들은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25). 요한은 이 말들로서 거기서의 삶이 보장하는 안정성과 개방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성문들은 24시간 활짝 열려 있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의 삶은 완벽한 자유를 누리는 삶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삶은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인간 역시 그들이 지음 받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이제 온전히 이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해 질 것입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완성대고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완벽하게 이루어질 그 날은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예비한 그 아름다움을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완전해질 것입니다. 티나 주름 잡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 안에 있는 옛 상처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파괴되는 아픔도 없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우리의 상처가 별처럼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모두 다 더 없이 아름다운 상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 곳에는 밤이 없을 것이라고 요한은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의 영광이 그 성이 빛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그 날은, 다시는 해가 지지 않는, 영원한 날이 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모든 악한 것과 더러운 것이 더 이상 보이지 아니할 것입니다. 어떠한 적대 세력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두움은 언제나 악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곳에는 밤이 없다는 말을 잘 이해해 보십시오. 성의 평화를 위협할 그 어떤 세력도 남아있지 않으므로 그 성은 닫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옴이라 ... 다시는 낮의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로 네게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60:11,19-20).

 

성문들이 언제나 닫히지 아니한다고 해서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곳은 거룩한 성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들어온다면 더 이상 구별된 성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한 자들뿐이라”(27).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속된 자들이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문은 항상 열려져있지만 어떤 악한 세력도 그 곳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모든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을 곳은 없습니다. 이미 그들은 둘째 사망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졌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하게 될 사람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영화롭게 된 자들만이 그 곳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들만이 창세로부터 마련한 지극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곳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분량에까지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60:21). 다시 한 번 옛 예언의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2015절에서 동일한 진리를 말한 바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 우리라 앞에서 부정적으로 진술했던 진리를 오늘 본문에서는 긍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묵상하십시오. 자주 그 성의 특징을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 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순례자이요 그 성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복된 미래상이 오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바랍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날의 영광이 도래하기를 사모합시다. 그의 약속이 이루어져서 의가 보금자리를 트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입니다.

 

그날에는 더 이상 성전이 따로 필요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과 어린 양의 영광이 해와 달의 비췸을 필요로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성의 문들은 언제나 활짝 주의 백성에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그날을 대망하십시오. 그날에 합당한 준비를 하십시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 12) 그 날이 오기를 대망하는, 그 영광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