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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124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22:1-2
    설교일
    2019-11-24

생명수의 강

22:1-2

구주대망 20191124일 찬송 21, 85, 246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1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12월 한 달을 지나면 구주 대망 2019년을 마감합니다. 연말을 앞두고 역사의 마지막을 기록한 계시록 마지막 22장을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은 생명수의 강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통해서 우리의 완성된 구원을 묘사합니다.

 

그러면 요한이 본 환상의 큰 맥락을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계시록 21장에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이어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은 아름다운 성의 영광을 처음에는 멀리서 보여줍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찬란히 빛나는 성의 외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다음 우리는 그 성의 내면의 영광스런 특징을 묘사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우리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중심부를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장면을 멀리서 보여주었습니다. 그 다음 높은 산 위에서 찬란한 성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시가지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심장부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요한은 인도자를 따라 그 성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생명수의 강가로 안내를 받습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1~2)

 

여기서 우리는 사도 요한의 밧모섬 계시의 절정을 만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배경으로 등장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의 극치요 절정입니다. 동시에 본문의 장면은 신구약 모든 계시의 완성이요 압권입니다.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왜 열심히 교회에 다닙니까? 예수를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축복된 자리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학습을 약속을 하고 세례를 받는 목적이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뵙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생명수의 강가에서 생명 열매를 먹기 위함입니다.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무거운 짐을 벗어버렸네.

죄 중에 다시 방황할 일 전혀 없으니,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지금 사도 요한은 완성된 구원을 생명수의 강, 생명나무라는 상징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상실한 모든 것이 지금 회복되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처음 잃은 것을 단순히 회복한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낙원의 영광은 아담 안에서 처음 잃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 그러면 이제 회복된 낙원을 생명수의 강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봅시다. 1, 2절은 생명수의 강, 생명나무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복낙원(復樂園)을 묘사했다면 3-5절은 보다 사실적인 표현으로 복낙원(復樂園)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첫 부분 1-2절을 생명수의 강이란 제목으로 살펴봅시다.

 

사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219절부터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거룩한 성의 새로운 요소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된 적이 없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거룩한 성 한 가운데 있다는 새로운 장면을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옛 에덴동산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생명수의 강이 거기에 흐르고 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역사의 시작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맨 먼저 우리는 1 생명수의 강, 그 원천을 생각해 봅시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첫 낙원에도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온 땅으로 흐르는 강이 있었습니다. 여기 복낙원(復樂園)에도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는 강이 있습니다.

 

다만 첫 낙원에서 발원한 강들이 온 지면을 풍요롭게 하는 대지의 젖줄이라면, 복낙원(復樂園)의 강은 모든 피조물을 위한 생명수의 강으로 불립니다. 에덴에서 발원한 네 강줄기가 온 땅을 적시는 젖줄의 구실을 했다면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 한 가운데를 통과하여 그 결과가 만국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육체적인 생명을 보장하는 에덴의 강물과는 대조되는 영원한 생명수의 강이 거룩한 성 한 가운데를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영원한 생명이 그 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물이 넘실대는 곳이 바로 복낙원(復樂園)입니다.

 

생명수의 강은 창세기 2장뿐 아니라 에스겔 47의 환상을 기억나게 합니다. 새 성전 환상을 통해 에스겔이 보았던 것을 지금 사도 요한 역시 보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그 물을 생명수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47: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해(死海)가 변해 생명이 충만한 바다가 되고, 강 좌우편의 마른땅에 수목이 울창해지는 환상을 또 에스겔은 보았습니다. 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47:12)

 

성경은 생명수의 강에 대한 예언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46:4)라고 시편은 노래합니다. 에스겔 선지자 뿐 만 아니라 스가랴 선지자도 동일한 진리를 증거 합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14:8)

 

또한 에스겔은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면 요한은 수정 같은 생명수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에스겔 선지에게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장소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인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보좌야말로 지성소입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원천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라는 표현으로 말하는 바는 하나님과 어린 양이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는 진리를 증거 합니다. 생명수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 발원지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에스겔의 환상을 기억하시며 명절 끝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신 바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오늘 본문의 환상을 통해서 요한은 생수의 강이 성전을 대신하신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온다고 증언합니다.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이는 그리스도께서 받을 성령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가 영광 받으신 후에 부어 주실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부연 설명을 합니다. 오순절 이후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을 부음 받은 성도의 삶은 복낙원의 삶의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장차 복낙원에서의 삶은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2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생수의 강은 어떤 혜택을 줍니까?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1~2)

 

첫 낙원에도 각종 나무의 열매가 사람들을 위해 맺혔다면, 복낙원의 생명수 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는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잎사귀조차 만국을 치료하는 약재가 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상실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회복된 것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더 풍성히 보상되고 남는 모습입니다. 낙원을 잃었을 때 인생은 통곡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낙원이 회복될 때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여기서도 유대 묵시의 전통을 따라 창세기 기사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가운데 생명나무를 심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한 뒤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쫓아내셨습니다.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셔서 다시는 인생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죄악된 상태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는 비극을 막기 위한 배려입니다. 인생이 범죄 한 가운데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것을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이제 여기 복낙원의 환상 속에 우리는 다시금 그 생명나무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강좌우 편에 사람들의 손 가까이 생명나무의 열매가 있는 것을 봅니다.

 

1절과 마찬가지로 2절의 묘사도 그 근원을 창세기 2과 아울러 에스겔 47에 두고 있습니다. 본문 2절의 묘사를 다시 한 번 에스겔 환상의 묘사와 대조해서 들어봅시다. 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부터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47:12)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에스겔의 환상 속에는 여러 가지 과실나무가 나오는 반면 요한의 환상에는 한 그루의 생명나무가 등장합니다. 이 점에서 요한은 에스겔의 전통보다 창세기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에는 각종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있다고 하는 반면 오늘 본문 2절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한 그루에서 열두 가지 열매가 달마다 맺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보면 불가능합니다. 현세에서 모든 나무는 각각 자기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맺는 열매에 따라서 나무의 이름이 정해집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를,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또한 현세에서는 나무마다 열매를 맺는 계절이 정해져 있습니다.

 

움이 트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일 년에 한 두 번이 고작입니다. 그러나 생명수 강가의 한 그루 생명나무에서 열두 가지 열매가 달마다 열린다고 말하는 것은 죽음을 정복한 생명의 완전한 승리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거기는 죄로 말미암는 죽음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지고 넘치는 생명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리고 두 경우 다 강좌우 편에서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그것은 충만한 삶이요 한량없는 기쁨의 삶을 의미합니다. 다함없는 생명을 상징하는 강수와 함께 생명나무의 열매는 복낙원의 진수를 그려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 낙원의 삶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성취된 생명을 이제 만끽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립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 땅에서의 삶은 다만 그 맛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양으로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주기 위한 목자의 사역을 거기서 충만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낙원의 인생들에게 낙원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만 여러분의 모든 꿈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여러분의 모든 소원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눈앞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무지개보다 더 아름다운 낙원의 꿈을 실현시켜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낙원의 회복은 우리의 탁월한 두뇌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 있는 팔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시고 땅에 오셨습니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의 부요하심으로 우리를 만족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실낙원의 인생들에게 낙원을 되돌려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간이 되셔서 죽음을 맛보시고 부활하심은 역사 속에 낙원을 회복시켜 주기 위함입니다.

 

여기 나오는 생명나무의 열매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성취하신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첫 낙원의 생명나무의 열매는 이제 그곳에 들어간 모든 성도들의 몫입니다. 그날 우리는 우리의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것을 입게 될 것입니다.

 

연세가 드신 성도 여러분, 귀담아 들어보십시오. 나이가 많아지면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나타납니다. 새 차일 때 좋은 것이지, 오래 타면 여기 저기 고장이 나는 것은 가끔 있기도 합입니다.

 

하물며 6, 7십년 살다 보면 병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는 소원은 이 쇠해 가는 육신이 건강해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쇠해 가는 육신을 벗어버리고 신령한 몸을 입게 하실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지금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계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지금보다 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때를 만날 것입니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공동체 내에서도 사람들이 내 말을 이전처럼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어린아이처럼 처신하지 마십시오. 공동체를 향해서 섭섭한 마음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더 강건한 자에게 공동체를 이끌어 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손에 쥐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처신입니다. 끝까지 움켜지려고 하는 것은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사람을 키우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내일을 위한 일입니다. 울산교회는 지난 24년 동안 그 일을 신실하게 해왔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준비를 하는 개인은 우리의 육신이 쇠해진다고 낙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쇠해지는 것은 헌옷과 같이 벗어버리고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옷을 새로 입게 될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이가 들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은혜입니다. 범죄한 채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못 먹게 하시듯이, 나이가 들어 세상 것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이제 신령한 것을 바라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배려입니다.

 

나이가 들면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아니할 때는 신령한 주의 음성을 듣도록 하시는, 인생을 사랑하사 자기 곁으로 부르시는 섭리입니다. 안경도 보청기도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사랑하사 가까이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외면하지는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될 새 날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영생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의 몫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 이다.”(17:3)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 그날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직접 교제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기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사모하는 그분을 종종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우리가 사랑하는 그 분을 친히 뵙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 같은 친밀한 교제를 나눌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어 있으리라는 시선만은 확신합니다. 그때 그분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향한 이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여러분의 삶이 깨끗해지도록 소망하십시오. 지금 우리는 구주를 생각하고 기뻐하지만 그날은 주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85)

 

생명나무에 관해서 열매 뿐 아니라 잎사귀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그 잎사귀조차 약재로 쓰이는 점에서는 에스겔의 환상과 요한의 환상이 동일합니다. 에스겔은 그냥 약재라고 언급한 반면 요한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만국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고 용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그렇다고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치료받아야 할 고통이나 질병이 있다고 유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현세의 유한한 언어로서 내세의 무한한 영광을 그리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다만 고통과 죽음이 자리한 현세와 대조해서 다가올 세대의 영광을 말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내세의 영광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죄의 결과로부터 온 모든 고통에서부터 완벽히 벗어날 것입니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가 흐르는 생명 시내를 사모하십시오.

 

거기서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자께서 여러분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흘렸던 모든 눈물을 주께서 친히 그 손으로 씻기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 교회 성도 여러분, 생명수의 강좌우 편에 달마다 새로 맺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사모하십시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세상에 살 때에 세상의 유혹을 받아 넘어지지 않기를 오늘도 성령께서는 바라십니다.

 

세상의 핍박에서 우리가 쓰러지지 아니하고 승리자 이상으로 서게 될 것을 우리의 주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2:7)

 

우리는 그날 거기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성찬의 떡과 잔은 장차 우리가 먹고 마실 생명수와 생명나무의 열매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만이 모든 인생을 위한 신령한 양식과 신령한 음료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주님의 선언을 믿으십시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믿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도달한 후에도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생명이시요 우리의 기쁨의 원천일 것입니다. 이제 성령과 신부가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생명의 강가로 나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