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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201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22:3-5
    설교일
    2019-12-01

왕노릇하리로다

22:3-5

구주대망 2019121일 찬송 25, 85, 243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생명수의 강가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환상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받은 계시의 절정이자 신구약 성경 계시의 극치입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중심을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보았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열두 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었습니다.

 

그 나무 잎사귀조차 만국을 치료하는 효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낙원의 삶이 얼마나 생명이 풍성한 삶일지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낙원의 삶을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3절부터 5절을 살피겠습니다.

 

회복된 낙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생명이 넘치는 삶을 성경은 어떻게 소개합니까? 첫째로 1 그 곳에는 저주가 없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창세기의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웠던 낙원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는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라는 표현은 인간의 죄로 임했던 저주가 이제 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눈은 거기서 더 이상 가시와 엉겅퀴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귀는 거기서 더 이상 욕설과 악담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폭력과 고함이 난무하는 것을 접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의가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제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그 곳에 살기 때문입니다. 그 날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 . .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14:9,11)

 

구약 선지자는 이 땅과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예언을 했지만 그 예언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구약 선지자는 지상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예언했지만 그 예언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동안 여기서 드린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소원하고 간구했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더 영광스럽게 그 날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간구하십시오.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구하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도 올 한 해 동안도 있었지만 그들이 드린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그날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울산 복음화를 위해서 드린 기도를 하나님은 장차 크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선지자가 보고 예언했던 환상을 넘어서서 하나님은 여기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주시고 계십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온 땅에 임한 하나님의 저주는 어떻게 제거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에 저주는 제거되었습니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3:13)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새 삶의 터전에는 더 이상 저주가 없습니다.

 

거기는 이제 저주를 가져왔던 원인조차 제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인류에게 덮친 것이 저주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성안에 사는 모든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안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파멸이 찾아오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심판과 처벌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는 왜 더 이상 저주가 없습니까?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거기는 하나님과 어린양이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그의 뜻이 새 누리 곳곳마다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라는 기도가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중에는 축복의 샘이 솟아날 것입니다. 다함없는 은혜의 강수가 그 보좌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끝없는 축복의 생수가 저주로부터 속량함을 받은 그 시민을 위하여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거기 거하심으로 그 성중에는 오직 축복만이 넘쳐납니다.

 

복낙원의 삶의 두 번째 특징은 무엇입니까? 저주가 없다는 부정적인 진술만으로는 그 풍요로운 삶을 다 서술할 수 없습니다. 복낙원의 두 번째 요소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2 하나님의 가까이 섬기는 삶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의 이마에 있으리라

 

그러면 하나씩 나누어서 살펴볼까요? 복낙원에서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종들이 2.1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것입니다. 구속받은 백성의 최대의 기쁨은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는 일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교육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아무도 더 이상 가르치지 아니해도 누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삶에 참예 합니다. 여기서는 소원하는 것만큼 되지 않아서 안타까워하지만 거기서는 우리의 소원에 넘치도록 주를 가까이서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의 뜻을 준행하고 동시에 준행하는 기쁨을 만끽할 것입니다.

 

그 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목적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 날 율법이 요구하던 수준의 삶이 실현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10:12)

 

그 날 우리는 사도적 가르침이 성취되는 것을 목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그 날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곳에서의 봉사는 영원히 왕 노릇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기서 왕으로서 섬길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서 영원히 왕 노릇하는 봉사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 곳에서의 삶의 또 하나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2.2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것은 대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마음속에 간직해 온 소원의 성취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축복의 절정입니다.

 

이 소원은 구약 여러 곳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들을찌어다 너의 파숫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52:8)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11:7)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27:4)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2) 구약 성도들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도 친히 팔복의 말씀 속에 약속하고 계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그러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신비적으로 체험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심판자를 부끄러움 없이 뵈옵는 특권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창세기의 사건을 떠올립니다. 범죄한 인생은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이 한 첫 번째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한 일입니다.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아오시기까지 그들은 축복의 근원에서부터 자신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했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 시민들은 부끄러움 없이 전능하신 심판자 하나님을 뵙게 되는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사죄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뵙는 것은 최고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부끄러움 없이 바라보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 분의 얼굴을 뵈올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그 분의 얼굴을 뵈올 것입니다.

 

그 날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한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구속주 하나님과 더불어서 온전한 교제를 누릴 것입니다.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랑 가운데서 그 분과 교제를 나눌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시대마다 주의 백성들은 주님을 뵈올 소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일찍이 욥은 이 소망을 품고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19:25-27)

 

다윗의 마음도 동일한 확신으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17:15) 여러분은 이 찬송을 어떻게 생각하고 부릅니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그의 얼굴을 뵈올 때에는 모든 의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의 얼굴을 뵈올 때에는 모든 것을 밝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그의 얼굴을 뵙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인격적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온전히 열려 있는 삶이 시작됩니다. 눈길만 주고받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자리에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세 번째 요소는 무엇입니까? 2.3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우리는 비슷한 표현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3:12)

 

또한 우리는 환상 중에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후에 요한은 또 다른 환상 가운데서 그가 본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4:1)

 

이마에 이름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구속받은 백성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구속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보배로운 자들입니다. 우리는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산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마에 쓰인 이름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소유인 것을 나타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누릴 특권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거기는 아무라도 능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아무도 군중 속에 자신의 개성을 상실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아무도 그 분을 얼굴과 얼굴을 바라보는 일에서부터 차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군중 가운데 하나로 취급당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는 별반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다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간과되거나 무시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인간 목자는 여러분을 일일이 여러분을 보살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는 우리의 대목자되신 그 분을 뵈올 때에는 여러분이 그 분의 극진한 사랑의 대상인 것을 여러분 자신의 눈이 확인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은 거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중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사람과 그 이웃으로부터 사랑 받는 소중한 사람인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복낙원의 삶의 특징을 고찰해 봅시다. 회복된 낙원에서 생명이 넘치는 삶을 우리 본문은 무엇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까? 세 번째로 3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5)

 

비슷한 표현을 우리는 앞에서 몇 번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 . .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21:23,25).

 

이와 같이 비슷한 표현이 앞에 나왔지만 오늘 본문은 다만 반복적인 표현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본문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왜 다시 밤이 없습니까? 왜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습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뵙는 성도들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과 더불어서 가려지지 않는 충만한 교제를 누릴 것입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비취신 그 빛은 이제 충만히 비취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빛 가운데 비취신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된 축도가 성취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축복했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6:24-26)

 

축도의 두 번째 문장을 주의해 보십시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6:25) 예배마다 선포되는 축복이 무슨 효력이 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이 그 종들을 통해서 선포한 모든 축복은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축복의 성취를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읽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그 백성을 향해서 선포된 축복의 성취가 이제 그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친밀한 임재의 빛 속에서 성도들은 이제 살아갑니다. 그것을 일컬어서 본문은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밝힙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행복의 극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주님과 더불어서 영원히 다스릴 것입니다. 은혜로 그 백성을 통치하시던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섬김으로 그 백성을 다스리던 주님처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모든 분들은 꼭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권위는 섬김에서 나옵니다. 섬김이 없이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려는 분들은 주님의 신실한 종이 아닙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사역자들은 살아서 그 백성을 섬기고, 죽어서 생명까지 그 백성을 위해 드리신 주님을 닮아야만 합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사역자들을 세상은 찾고 있습니다. 주님을 닮아서 그 백성을 섬기는 사역자들을 사방에서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서 울산 교회가 그런 사역자들을 많이 배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임을 받아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며 후원을 받아서 신학을 하고 선교사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직분에 걸맞은 섬김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섬김으로 그 권위를 찾지 아니하고 직분의 권위로 나오는 사람을 물리칠 수 있는 건강한 교회, 자정능력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백성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약속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백성의 삶에까지 확산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통치에 우리가 참여한다는 것은 지금 다 상상조차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앞에 다가올 영광을 지금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영광스런 사실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7)

 

주님은 보다 쉬운 말로 당신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함께 먹고 마실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는 약속이 우리에게 아직 유효합니다. 생명수 강가에서 주를 섬기는 그 날을 사모하십시오. 그의 얼굴을 친히 뵈올 그 날을 사모하십시오.

 

그 때 여러분을 사람들 가운데서 더 이상 외롭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토록 주님의 것입니다. 거기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로에게 귀한 자로서 다가올 것입니다.

 

하늘의 삶이 그러하다면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위에서 우리의 삶이 그렇게 닮아 가야 합니다. 교회는 끼리끼리 만나는 곳이 아닙니다. 다른 것을 모두 다를지라도 그 안에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 입술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면 서로 받아 주십시오. 소외당하는 자들이 한 사람도 교회 안에 없기를 바랍니다.

 

그 날에는 하나님의 영광 빛이 우리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 날에는 더 이상 아픔이 없고 죽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 날에는 더 이상 이별이 없고 눈물이 없을 것입니다. 생명수 강가에서 그 백성의 모든 눈물을 주님의 친수로 씻겨 주실 것입니다.

 

이제 때가 가까웠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켜 행하십시오. 말세가 되면 경제적인 양극화 현상 뿐 아니라 도덕적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들은 말씀대로 살아가며 오실 주님을 기다립시다. 그가 곧 오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 함께 화답합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