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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208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시록22:6-9
    설교일
    2019-12-08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계시록22:6-9

구주대망 2019128일 찬송 8, 104, 177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은 밧모 섬에서 주의 날 성령에 감동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습니다. 그는 맨 먼저 일곱 촛대를 보았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그 분의 오른 손에는 일곱별이 있었습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합니다. 요한이 본 이 환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 임재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일곱 교회의 사자를 그 장중에 붙드시고 계십니다.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또한 교회의 사역자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지옥의 권세가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는 이 변함없는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성령에 감동하여 하늘 보좌를 보고 하늘 찬양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인봉한 책을 보았습니다.

 

그 책은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일곱 봉인으로 봉하여져 있었습니다. 천지간에 그 인을 떼시기에 합당한 분은 오직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십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어린 양께서 일곱 봉인을 차례로 떼셨습니다. 땅 위의 역사는 하늘 보좌에 계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장하십니다. 그 역사의 장()은 땅 위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펼쳐집니다.

 

또 그 후에 요한은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를 보았습니다. 차례로 경고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마다 땅 위에 재앙이 임했습니다. 경고의 나팔은 울려 퍼지지만 사람들은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우상을 섬겼습니다.

 

일곱 나팔의 환상을 본 다음에 하늘의 큰 이적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땅위에 펼쳐지는 역사의 이면사를 거기서 우리는 봅니다. 거기서 우리는 현상에 대한 깊은 영적 의미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일곱 진노의 대접이 쏟아지는 장면을 요한은 보았습니다. 마지막 일곱째 대접이 쏟아질 때에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이 환상을 좀 더 상세히 전해준 바 있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 맷돌 짝같이 깊은 물에 던져졌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을 미혹하던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마귀가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인류 문명에 대한 모든 심판이 끝난 다음, 새 하늘과 새 땅을 배경으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요한은 보았습니다. 그 찬란한 영광과 새로운 질서를 보여줌으로 요한의 예언은 극치에 도달합니다. 주 하나님의 영광의 빛 속에서 구속받은 백성들이 영원히 왕 노릇하리라는 약속과 함께 요한이 받은 밧모 섬 계시는 완성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요한 계시록 226절부터 끝까지는 요한이 받은 계시를 끝맺는 말입니다. 소위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에필로그를 읽어보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쓴 인상을 받습니다. 특히 요한 계시록 첫머리 부분, 프롤로그와 비교하면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앞뒤에 나오는 말들이 서로 긴밀한 연결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체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되는 대로 기록해서가 아니라 다만 격한 감정이 차분한 논리를 앞서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밧모섬 예언의 말미에 첨가된 에필로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주로 실제적인 교훈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일련의 권면의 말들과 예언의 말씀이 진실한 것을 입증하는 말들, 그리고 주님의 오심에 대한 확실성을 주장하는 말들, 그리고 그의 예언의 말에 독자들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를 간청하는 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오늘을 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설교 제목은 본문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만 본문을 통해 오늘 설교에서 다루려고 하는 내용은 요한이 받은 예언의 말씀의 성격입니다.

 

그가 천사를 통해서 받은 계시는 첫째로 1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도록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질문을 던져봅시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라는 말이 에필로그 첫 마디에 나올까요? 여러분은 언제 이런 유의 말을 합니까? ‘정말이야 믿어도 되언제 이런 말이 필요합니까?

 

우리의 말을 상대방이 믿어주지 아니할 때 우리는 이런 말을 종종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신실하지 않거나 말의 내용이 허황해 보이면 우리는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믿어도 된다고 정말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여기 에필로그의 첫 문장은 왜 등장할까요? 역시 동일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6). 보십시오, 말이 믿을 만한 것을 먼저 강조하고, 이어서 말하는 이가 믿을 만한 분임을 증거 합니다.

 

그러면 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고 강조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밧모 섬에서 요한이 받아 전달한 계시의 내용이 믿기에는 너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일곱 인봉의 내용도, 일곱 나팔의 경고도, 일곱 대접의 비밀도 너무나 엄청난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큰 성 바벨론의 멸망도 너무나 믿기에는 충격적인 내용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을 배경으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도 우리의 머리로 수긍하기에는 너무 엄청납니다.

 

말하자면 지금껏 주어진 계시가 인간의 이성으로 믿기지 아니할 만큼 엄청난 내용이기에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고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말씀이 너무나 엄청납니까? 크고 영광스러워서 믿어지지 않습니까?

 

믿음이 적은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작은 머리로 재단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크고 영화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주시는 계시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것을 당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가 하시는 약속의 말씀이 믿기지 않는 것도 이해할 법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성이 마지막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지막 말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그렇습니다. 어찌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알겠습니까? 어찌 오늘을 사는 인생이 내일을 다 추측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의 한 시점에 자리한 인생이 역사의 모든 종국을 내다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요한이 밧모 섬에서 받은 계시의 절정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쉬이 믿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다시금 다짐해 주십니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다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왜 그 말이 신실하며 참된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6).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이 신실하고 참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천사를 통해서 그 종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시대마다 그 선지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선지자들을 영감 시키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비록 예언하는 영들의 영은 예언하는 이들에게서 통제를받지만 그들의 영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의 진리를 분명하게 표현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이 진리를 망각하는지 모릅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 시대의 사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신실한 설교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보십시오,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며 일곱별을 아직도 자기 손에 붙잡고 계십니다. 설교자가 이 진리를 망각하지 아니하면 주일이 다가올 때 마다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교회도 이 진리를 잊어버리지 아니하면 설교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새롭게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온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놀라운 일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어 그 종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반드시 속히 될 일들에 관한 계시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서두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1:1). 믿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예언의 말씀이지만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이신 것은 그 종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좀 더 요한이 받은 계시의 두 번째 성격을 살펴봅시다. 그가 천사를 통해서 받은 계시는 둘째로 2 요한이 받은 예언의 말씀은 순종을 의도한 예언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22:7). 우리는 앞에서 천사를 통해서 요한이 받은 계시가 너무나 엄청나서 아무나 쉽게 믿을 수 없음을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요한이 밧모 섬에서 본 계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들입니다.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서 요한은 천상의 장면을 접했습니다. 성령에 감동하여 하늘 보좌를 보고 하늘 찬양을 들었습니다. 인이 떼어질 때마다 각종 말들이 달려 나오는 놀라운 환상을 보기도 했고 나팔이 울려 퍼질 때 마다 놀라운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늘의 큰 이적을 보고 바다에서 육지에서 각각 올라오는 짐승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 장면이 우리의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천사를 보내어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요한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호기심 유발이 아닙니다.

 

요한이 전한 예언의 말씀은, 7절 말씀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듣는 자로 하여금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순종을 의도한 예언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22:7).

 

6절의 말씀은 요한에게 놀라운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보도록 안내했던 천사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7절의 말씀을 하고 있는 분은 지금도 그 교회와 온 세상을 실제적으로 다스리고 계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봅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 . .”(22:7).

 

주님께 속한 교회는 주의 재림이 임박하다는 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충성스런 교회는 구주 오심을 대망합니다. 곧 가까이 오신 주의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문밖에 서신 주님을 의식합니다. 그러한 교회는 질서를 회복합니다. 사랑을 회복합니다. 활기를 되찾습니다.

 

오실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교회는 무기력합니다. 어지럽습니다. 시끄럽습니다. 사랑이 식어집니다. 그러나 구주대망(救主待望)은 신앙공동체의 모든 질병을 치료합니다. 생기를 회복시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는 주님이 오십니다.’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었습니다. 이 인사와 기도는 그들의 삶의 활력소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그 날과 그 때를 설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 그러기에 시대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곧 도착하듯이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 .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24:42,43,44)

 

깨어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신자로서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해 놓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표현을 빌리면 음녀와 야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 . ”(22:7). 이 말씀은 우리를 지켜주는 약속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22:7). 여기서 다시 한 번 계시록의 서두와 유사점을 갖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이라”(1:3).

 

앞서 말씀한 바와 같이 계시록의 예언은 미래에 관한 우리의 지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로마클럽 보고서를 읽듯이 읽어서는 안 됩니다. 미래학에 대한 교과서도 아닙니다. 계시록의 예언은 교회로 하여금 그 예언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1세기의 교회나 21세기의 교회나 그 어떤 시대의 교회도 똑같은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투쟁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에서 나온 짐승과의 싸움이 있고 붉은 빛 짐승을 탄 큰 음녀의 유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은 역사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교회에 알려 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교회로 하여금 사탄적인 유혹과 핍박에 굴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 끝까지 충성토록 하기 위해서 이 예언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향해서 복을 선언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7) 이 복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고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자들을 향해서 선포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끝까지 충성하는 자들을 위해서 준비된 곳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을 위해서 마련되어 있습니다.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이 받아 누릴 상급이 기다립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가는 자들이 받아 누릴 복입니다.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 받을 유업입니다.

 

자 그러면 본문 마지막 장면을 살펴봅시다. 이것들은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하더라.”(8-9).

 

여기에서 우리는 요한이 전한 예언의 말씀이 주어진 궁극적인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천사를 통해서 받은 계시는 셋째로 3 요한이 받은 계시는 진정한 경배를 의도한 예언입니다. 계시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모든 계시를 전해준 사람은 요한입니다.

 

이제 요한은 자기에게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보여준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습니다. 왜 요한은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렸을까요? 그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영광 앞에 압도당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보여준 천사의 위엄 앞에 엎드렸던 것입니다. 심원한 경외심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놀라운 성취를 천사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자 놀라움과 경외심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예배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말합니다.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22:9). 요한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 충동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한은 앞서 받았던 책망을 다시 한 번 받게 됩니다.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19:10). 엄청난 계시의 위대함 앞에 그 계시를 중개한 천사를 경의를 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 행위를 금지시키면서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천사는 자신이 요한과 그 형제 선지자들과 함께 된 종이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요한의 행동과 천사의 설명은 요한에 의해서 입증된 말씀이 권위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더 나아가서 천사는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된 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사와 같은 신분으로 높아질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는 자로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것입니다. 그 신분이 상승되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권뿐 아니라 장차 모든 것을 공유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지만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특권을 향유할 것입니다. 잠시 동안은 우리가 만물의 찌꺼기 같은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는 것 같이 하리라”(3:21).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이는 첫째 부활이라”(20:4).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9) 하나님만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찬양과 경배를 오직 하나님께 돌려드립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그 어떤 피조물 앞에서도 엎드려 경배할 수 없습니다. 천사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가리켜 성경은 구원받을 후사들을 섬기는 영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나 천사가 뛰어나 보여도 피조물은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광을 돌립시다. 새로워진 세상에서 만물은 하나님께만 다만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만물은 그 발아래 복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홀로 하나님만을 높일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2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것이 오는 세상의 질서일진대 지금 우리의 예배도 그러해야 합니다. 홀로 하나님만 높이고 끊임없이 하나님만 경배하십시오.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예배의 합당한 대상이십니다.

 

요한이 받은 계시는 그 수종자를 칭송하도록 의도된 예언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우리로 하여금 참으로 예배할 자가 누구인지를 밝혀줍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립시다. 역사의 주인이신 그분만을 찬양합시다. 만물을 새롭게 하실 그 크신 하나님께 경배합시다.

 

우리를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영광이 충만한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시고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의 실과를 예비하신 분께만 경배를 드립시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믿어야 할 예언의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순종해야할 예언의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경배해야할 분을 밝혀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직 주께 영광과 경배를 영원토록 드립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