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http://vod.upcweb.net/pastor/2019_1222_정근두.mp4
    성경본문
    계시록 22:16-19
    설교일
    2019-12-22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계시록 22:16-19

구주대망 20191215, 찬송 10, 114, 526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성탄절이 가까웠습니다. 오늘쯤은 성탄에 관련된 본문을 택하지 아니할까 기대한 분이 있었다면 좀 실망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바로 성탄의 주인공 예수님입니다.

 

성탄절은 다만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을 기념한다면 오늘 본문은 그가 오셔서 시작한 모든 사역을 완성하신 분으로 소개됩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구속사역을 완수하시고, 유다지파의 사자로서 승리하신 분, 광명한 새벽 별로 소개됩니다.

 

복음서가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시며 가르치신 사역을 기록했다면 계시록은 그가 세상에 오셔서 시작한 사역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그 모든 것이 완료된 후 발해지는 은혜로운 초청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혹시 송년 축하 파티에 초청을 받아두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누가 그 초청장을 보냈는지 살펴보셨습니까? 틀림없이 여러분 앞으로 보내진 초청장임을 확인하셨습니까? 혹 상황이 안 되어서 초대를 거절한다면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 계산해 보셨습니까? 오늘 우리 본문도 그 핵심이 초청이라고 하면, 초청장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1 누가 초청합니까? 오라고 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16).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나 예수는이라고 이 모든 말씀의 배후에 서신 분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는 죽음에서 살아나신 분입니다. 그는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그는 아버지의 우편에서 영광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가 지금 선언하십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16) 는 주장은 우리로 하여금 요한 계시록의 맨 앞부분을 기억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1:1) 요한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신 바로 그 일을 예수님이 하신 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을 일치시킴으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존재와 영광이 동등하신 분임을 암시합니다.

 

거기서는 일곱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교회는 시대마다 각처에 있는 여러 부류의 교회를 나타냅니다. 거기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은 요한이 밧모 섬에서 차례로 받을 계시를 의미합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이것들을 이미 그가 전달한 모든 계시를 가리킵니다.

 

이것들을 너희에게즉 자기 교회, 그 백성들에게 주신 분은 어떻게 자신을 소개합니까? 두 가지 칭호를 사용합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먼저 첫 칭호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다윗의 뿌리라는 말은 55절에서 나온 바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 다윗의 뿌리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 뒤에 오셨을 뿐 아니라 다윗 앞에도 계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다윗의 뿌리요 그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뿌리로서 예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요 다윗의 창조주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으로 다윗의 후손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절은 그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셔서 유다지파의 사자(獅子)로 불리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달리 말해서 성탄의 주인공 예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그는 사람이 되셔서 많은 사람을 섬기고 그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약속된 구세주이십니다. 이 영화롭게 높이 들리신 분이 바로 계시록의 저자되신 예수님입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이 계시를 자기 교회에 주신 분은 자신을 또 어떻게 소개하십니까?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광명한 새벽 별로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무슨 말일까요?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는 새벽 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여기서는 주님은 자신을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 표현의 구약적 배경을 살펴봅시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24:17). 성탄의 주인공 예수께서는 발람이 발한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왜 하필 광명한 새벽 별로 자신을 소개할까요? 새벽 별이 떠오르면 여러분은 무엇을 압니까? 이제 곧 날이 밝아올 것을 압니다. 주님을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하는 데는 무슨 뜻이 함축되어 있을까요?

 

긴 밤의 어두움이 이제 곧 지나가고 그림자가 없고 끝이 없는 한 날이 막 동트오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영원한 여명의 시작입니다. 자신을 광명한 새벽 별로 선언하심으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메시야가 오리라는 예언을 성취하신 분으로 자신을 주장하십니다.

 

그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 원수를 심판하심으로 메시야의 통치를 바라는 백성의 소망을 성취하십니다. 역사의 유일한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십니다. 역사의 유일한 주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 안에서 새로운 시대가 동터 올랐습니다. 그의 초림으로 의와 평강의 여명이 밝아왔습니다. 그의 재림은 이제 온 누리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지는 영원한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그 날은 비칠 것입니다. 그 날은 우리의 광명한 새벽 별 되신 분께서 온 누리를 비취실 것입니다. 영원한 날이 밝아오면 그림자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에 주께서 자신을 자기 백성에게 주시고 자신의 영광을 그의 성도들과 나누실 것입니다. 이 같은 영광은 현재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극한 영광입니다. 거기는 더 이상 해와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을 것입니다.

 

거기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는 더 이상 밤이 없을 것입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영원히 우리의 빛이 되실 것입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22:5)

 

두 번째로 2 이 초청은 누구에게 보내진 것입니까? 반복적으로 들리는 오라는 말은 누구를 향해서 발해지는 말씀입니까?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처음 두 오라는 말을 그리스도께 향하는 기도로 보고, 다음 두 오라는 천국에의 초대로 보는 입장입니다.

 

또 다른 입장은 네 경우 모두를 복음 전파에 관련시키는 입장입니다. 말하자면 그 차이는 처음 두 번 발해지는 오라를 간구적 의미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선교적 의미로 볼 것인지에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22:17).

 

처음 오라는 초대를 하시는 분은 성령과 신부라고 합니다. 성령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대언의 영을 주시는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신부는 그리스도의 참 교회인 어린 양의 아내를 가리킵니다. 성령과 신부가 함께 오라고 하십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누구를 향해서 오라고 하실까요?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 간구적인 의미로 살펴봅시다. 그러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향해서 두 번 반복적으로 오십시오.”라고 호소하는 것이 됩니다. 주께서 구원자로서 당신의 충만한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의미입니다.

 

16절을 최종 구원의 약속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으로 보고 17절을 성령과 신부의 응답으로 보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구주요 온 세상의 주께서 다시금 최종 구원을 약속을 확증하십니다. 거기에 대해서 성령과 신부가 응답의 외침을 발합니다. 오십시오.”라고 소리칩니다. 오셔서 온 세상에 구원을 완성토록 호소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령께서 주님께 간구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시렵니까? 보혜사 성령의 사역과 관련해서 요한은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15:26-27).

 

성령과 교회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함께 증언하는 일을 합니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감동시키셔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증언하시며 죄를 폭로시키시며 의와 심판을 말씀 선포를 통해 나타내십니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중보의 기도를 하게 하시는 분으로 가끔 소개합니다. 구약 선지서에는 회개와 간구의 영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특히 로마서 836절 이하에서는 중보의 간구를 하게 하시는 분으로 소개됩니다.

 

왜 성령과 신부는 주님을 향해서 오십시오라고 간구합니까? 성령께서는 그 종들을 통해서 예언의 말씀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계시록의 증언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광명한 새벽 별 예수께서 인도하는 하나님의 새 날의 도래가 다시금 확인됩니다.

 

그 날이 오면 성령께서 감동시킨 모든 예언이 그 절정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신부에게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속히 오시도록 호소합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신부와 함께 탄원합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십시오 하시는 도다.”

 

신부는 이제 신랑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게 될 날을 사모합니다. 요한의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그녀의 곤궁한 현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고난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는 자신이 신랑과 지금은 떨어져 있음을 새삼 실감합니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인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언의 책에 담긴 말씀을 통해 미래에 나타날 자신의 영광을 보고 신랑의 영에 감동되어 오십시오.”라고 호소합니다.

 

두 번째의 오라는 외침도 동일한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듣는 자도 오십시오할 것이요 예배하기 위해서 모여든 성도들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읽을 때 들을 것입니다. 그들 각자도 그 호소의 기도에 함께 하도록 부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교회 뿐 아니라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이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데 귀하게 소용됩니다.

 

물론 주님의 재림의 날짜는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연기하거나 앞당겨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주님의 재림하실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기도는 멈출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은 성도들의 마땅한 기도의 제목입니다. 성도들의 응답으로 주님은 오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은 듣는 자도 오십시오 할 것이요.”라고 호소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 간구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입니다. 이 소원은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표현 속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계시록의 지식으로 채우기보다 그리스도께 향하기를 더욱 바라십니다.

 

말세가 언제인지 아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날을 위해 준비하기를 성령께서는 더욱 바라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대망해야 할 주제요 간구해야 할 제목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서 떠날 수 없는 기도의 소원입니다.

 

그러면 이제 네 번 모두를 선교적 의미로 살펴볼 차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22:17). 달리말해서 오라고 초청받는 대상을 성도가 아니라 네 경우 모두 은혜의 외인인 세상 사람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밧모 섬에서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주님의 종 요한에게 세상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이 영광스럽게 완성될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천지 창조의 시작에 있던 모든 것이 그 날 영광스럽게 성취될 것입니다.

 

요한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모든 자들은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미래에 다가올 종말입니다. 그 때에 끝없는 끝의 시작될 것입니다.

 

비록 새벽 별이 그 굳건한 약속과 함께 빛나고 있지만 아직은 이 어두움의 세상이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아직은 밤의 어두움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의 빛을 전파해야 하는 때입니다. 주님의 대사로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해야 합니다.

 

만유의 주께서 계속해서 당신의 부요하신 은혜를 그를 부르는 자들에게 부어주십니다.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그런즉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2-13). 그래서 본문에는 은혜로운 복음초청이 반복됩니다.

 

단순히 그러나 분명히 초청하고 있습니다. “오라는 호소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는 도다말하자면 신부되신 교회 가운데서 능력을 공급하시는 성령께서 믿음으로 연합된 모든 성도들을 통해서 초청하십니다. 신부와 함께 신부를 통해서 온 세상의 구주요 주님이신 분께 초대하십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 전도의 책임은 광역시의 새생명훈련원의 사역이나 교회의 각 전도회와 선교회의 직무라고 한정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숭고한 특권입니다.

 

동시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긴급한 임무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14). 따라서 듣는 자도 오라할 것이요라는 말이 첨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금 누구에게 발해진 초청인지 살펴봅시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복음은 목말라 하는 자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복음은 진리를 갈구하는 자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복음은 삶의 의미를 묻는 자에게 좋은 소식이 될 것입니다. 복음은 암담한 처지에서 희망을 찾는 자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17)

 

이는 성경 곳곳에서 들리는 초청의 마지막 확인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55:2)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이 초청은 또한 영광을 받으신 주님께서 이미 발하신 약속의 재확인입니다.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21:6).

 

생명의 샘물을 원하는 자에게 주님은 주시리라고 약속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2-13). 주님께서는 낫고자하는 자를 온전케 하십니다.

 

생명수를 원하십니까? 목마른 자에게 주님이 주시는 생명수는 언제나 넘치는 은혜의 강수입니다. 온 세상에 그보다 더 갈구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세상의 생수는 다시 여러분을 목마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합니다. 은혜의 부요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은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영원히 채우십니다.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는 여러분을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차 확인 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복음을 전하지 않고 가만히 않아 있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핍박과 유혹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의 확실성을 보여준 것이지 결코 전도의 필요성을 부인하기 위해서 보여주신 생명책은 아닙니다.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는 말은 복음이 시급히 전파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탄의 핵심소식을 전합시다. 우리는 누가 이 초청을 기다린 듯이 받아드릴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누가 이 선물을 받아드릴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누구에게든지 힘써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 진리를 전하십시오. 하나님은 죄인의 심령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전도를 통해서 구원받을 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울산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일 년 중 초청하기 가장 적합한 때에 지금 있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도 여러분이 성탄 예배에 초대해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절기입니다.

 

평소에 기독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성탄절에는 그 마음이 열리는 좋은 기회입니다. 때를 놓치지 말고 기도하며 초청하십시오. 믿지 않는 부모 형제를 초청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평소에 아내가 교회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남편조차도 성탄절에 아무 말 없이 혼자가면 섭섭한 마음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특히 연말연시를 앞두고 사람들은 세월이 흐름을 인식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는 지금껏 살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야하겠다는 결심을 남모르게 마음속에 하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이 때가 전도의 최적기라는 사실은 수 년 동안 우리 울산 교회에 등록한 사람들의 통계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웃초청잔치 앞뒤를 제외하고는 특히 연말연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많은 사람이 등록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번 성탄절에는 여러분 주위에 있는 진리에 목마른 자들을 초대하십시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는 복된 성탄절이 되도록 나아가서 초대하십시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라는 말씀에 순종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