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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영상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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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요한 계시록 22:18-21
    설교일
    2019-12-29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 계시록 22:18-21

구주대망 20191229일 주일 찬송 10, 261, 304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주대망 2019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해의 마지막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계시록 21, 22장을 통해 세상의 마지막에 될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 계시록 맨 마지막 말씀인 동시에 모든 성경 계시의 마지막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 어떤 본문보다도 관심을 쏟아서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본문에는 최후의 경고와 아울러 주님의 최종 확인성도의 최후의 기도가 나오고 끝으로 모든 성도를 향한 축도로 끝을 맺습니다.

 

<최후의 경고>

먼저 우리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봅시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18-19).

 

요한 계시록과 같은 묵시문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이와 같은 엄숙한 마지막 경고입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책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썼습니다. 그래서 흔히 신실하게 베껴 쓰도록 요구하는 이런 경고가 첨부되곤 했습니다.

 

계시록의 앞부분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측면은 엄숙한 경고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을 더하거나 제거하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의 선언입니다.

 

요한의 관심사는 그가 사용한 말을 정확히 옮겨 쓰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가감하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엄숙한 경고는 옮겨 쓰는 사람만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거짓 교사들을 향한 것이요 넓게는 모든 청중을 향한 것입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로 보내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배 시간에 큰 소리로 읽혀지도록 의도된 말씀입니다. 요한은 지금 그 청중들을 향해서 그의 예언의 말씀이 신적 권위를 가진 말씀임을 강조하며 그 말씀을 왜곡시키지 못하도록 엄숙한 경고를 합니다.

 

요한의 이러한 경고는 후일 영지주의자들의 역사를 보면 분명합니다. 도마의 복음서라는 책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시켜서 예수님을 영지주의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말시온이라는 사람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참 몸을 가지셨다고 보이는 모든 구절들을 제거시켰습니다. 타티안사복음서 대조라는 책도 마찬가지 입장에서 복음서 내용을 선별해서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경고는 시의적절한 경고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경고는 구약 신명기 말씀에서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4:2).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유대인의 태도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사도 요한은 역사의 중요한 시점을 위해서 자기가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은 본래 주어진 청중에게 가감 없이 전달되어야 함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그것을 가감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저주는 종말론적인 경고로 강화됩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18-19).

 

기록된 말씀에 무엇이든 더하면 재앙을 더하고, 기록된 말씀에 무엇이든 제하면 축복에서 제하여 버리겠다는 엄숙한 경고입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어떻게 여기십니까?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충분한 계시입니다.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는 완벽한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고안해 낸 것도 아니고 찾아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밝혀주신 진리입니다.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정직한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말씀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그 말씀에 승복해야 합니다. 들은 말씀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들은 진리를 제쳐버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축복에서 제외시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거나 암송하거나 공부하거나 아니면 성경말씀을 통해서 선포되는 설교를 통해서 깨달은 말씀이 여러분의 생각과 생활을 지배하도록 하십시오. 그때에 여러분은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최종 확인>

엄중한 경고를 한 다음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씀을 최종확인을 합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이 말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최후의 말씀이요 마지막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백성입니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답답한 상황 속에서 언제까지니이까?”라고 울부짖으며 구원자를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보십시오. 구약 시인들과 선지자들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89:46)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90:1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94:3)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1:12)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서 앞부분에는 할아버지 시므온과 할머니 안나라는 선지자가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표처럼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2:25) 시므온 할아버지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소개됩니다.

 

그리고 잇달아 안나라는 나이 많은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아셀 지파에 속한 바누엘의 딸이었는데 결혼하여 7년 동안 살다가 과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로부터 그녀는 여든 네 살이 되기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긴 여선지로 소개합니다.

 

그 예언자는 마침 들어오다가 시므온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하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후 구주를 기다리는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에게 메시야가 드디어 오셨음을 알렸다.”(2:38)라고 현대어성경은 번역합니다.

 

복음서뿐만 아니라 신약서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께 소망을 걸고 사는 자들로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리는 무리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9-10)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약속은 이미 7절과 12, 그리고 311절에서 말한 바 있는 계시록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22:12)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3:11)

 

하지만 그의 강림의 시기는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사건은 임박한 사건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든지 그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까? 그날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까? 그날은 우리의 모습이 주의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까? 그날은 우리의 몸이 주님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3:21-22).

 

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까? 그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존전에 기쁨으로 서게 될 날이기 때문입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24-25).

 

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까? 그날은 모든 만물이 새로워지는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21:5)

 

<성도의 마지막 기도>

그러므로 사랑하는 신랑이 나타나는 날을 사모하는 신부의 반응은 열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는 초대교회 예배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한 표현입니다.

 

동일한 기도문을 우리는 아람 방언으로 고전 1622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고 선언하면서 번역에 따라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다른 번역은 “‘마란 아타’ ‘우리 주님 오십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본문 20절은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까요? 본문은 마라나 타 라는 의미로 보아야 함은 당연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문을 어떤 문맥에서 이해해야 할까요?

 

요한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는 자에게 발한 엄숙한 경고로 보면 속히 오셔서 심판을 시행하십시오.’라는 뜻이 됩니다. ‘죄인들에게 응분의 보응을 신속히 내리십시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20절은 그렇게 소극적인 의미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의미가 더 타당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즐거운 기대 속에서 발해지는 기도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부가 신랑의 오심을 대망하는 외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 약속은 모든 약속의 요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수많은 약속이 이 한 마디 속에 녹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이 한 마디 속에 모두 성취됩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모든 성도들의 소원의 요약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성도들의 모든 기도는 응답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아니하면 주님의 구속 사역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내일의 세상을 위한 유일하고 확실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심장에 해당합니다. 결코 종말론은 기독교 신앙의 맹장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계속된 재림에 대한 설교로 마음이 상한 분은 없습니까? 할 일 많은 세상에 교회가 참여해야할 일들은 재껴두고 왜 계속 주님의 재림에 관한 설교만 하는 지 의문을 가진 분은 없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재림은 결코 기독교 신앙의 한 지엽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신앙은 재림의 소망 위에 터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상호간의 사랑 역시 재림의 소망 위에 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향한 신앙이 견고해지기 위해서도, 상호간의 풍성한 사랑의 섬김을 위해서도 우리는 이 재림 신앙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과 모든 성도들에게 품은 그들의 사랑을 전해 듣고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믿음과 사랑은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에 근거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 없는 곳에는 상호간의 풍성한 사랑의 섬김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역시 자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이 전에 진리의 말씀인 기쁜 소식을 들어서 확신하고 있는 하늘나라의 소망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1:5, 현대인의성경)

 

우리가 붙드는 하나님의 약속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여러분은 이 약속을 붙들고 살고 있습니까? 이 약속이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습니까?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는 기도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새로운 국면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헌신이 시작될 것입니다.

 

뜻 없이 외우는 기도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마음을 다해 간구하십시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고 기도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통치아래 복속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평화를 맛보실 것입니다.

 

<마지막 축도>

이제 마지막으로 요한 계시록의 축도에 동참합시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 축도는 우리로 하여금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인 회중들에게 읽혀지도록 계시록은 의도된 책임을 다시금 회상시킵니다.

 

요한은 지금 성도들의 모임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당하여 있는 상황인 것을 기억나게 만듭니다. 요한은 비록 몸으로는 이 편지를 읽는 성도들과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그는 지금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합니다.

 

특히 20절의 마라나 타라는 기도에 이어서 나오는 축도는 디다케에 나오는 은혜가 임하기를!’하는 기도를 연상하게 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계시에는 은혜가 맨 첫 단어이자 마지막 단어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1:4-5).

 

사도는 이 편지를 시작하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빌었습니다. 이제 이 편지 마지막에 다시금 동일한 주 예수의 은혜를 빕니다.

 

하나님의 계시 뿐 아닙니다. 역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도 은혜첫 단어가 되는 동시에 마지막 단어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했고 은혜로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잃어버린 자가 찾음을 당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주님의 은혜로 보지 못하던 자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주님의 은혜로 그 두려움에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산 것도 은혜고 그 은혜가 우리를 장차 하나님 앞에 흠도 티도 없이 세우게 하실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제자매를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빌어주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이 은혜를 본문은 주 예수의 은혜라고 부릅니다. 영원하신 아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아들 자신의 은혜입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 그가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심으로 모든 성도들의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십니다. 모든 시대의 성도들, 능히 아무라도 셀 수 없는 많은 무리들을 깨끗케 하시는 분은 우리를 위해서 보혈을 흘리신 어린 양되신 주님이십니다. 은혜의 주님께서 그 은혜로 성도들을 죄와 죽음에서부터 구속하십니다.

 

이 놀라운 축도는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 날을 내다보게 합니다. 어둠이 없고 다함이 없는 그날, 모든 성도들은 영원히 주를 찬양케 될 것입니다. 모든 더러움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세마포 옷을 입고 주를 영원히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날 여러분과 저는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찬양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함없는 우리의 찬양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이삭 뉴톤의 표현을 빌리면 해같이 빛나는 그곳에 가서 억만년의 세월이 흘러가도 우리는 첫 날 도착했던 그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 그것은 거기서 영원히 새롭게 노래할 제목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면서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의 첫마디 축복이 되게 하십시오. 또한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지막 축복의 말이 되게 하십시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 교회 성도 여러분, 요한의 축복에 동참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제가 24년 동안 섬겼던 성도님들께 드리는 마지막 말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